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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흥보씨> 고선웅 연출 [No.163]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7-04-28 3,669

<흥보씨> 고선웅 연출

선하면 손해를 보는가?




고선웅은 연극, 창극, 뮤지컬, 오페라 할 것 없이 새로운 작품을 기획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연출가 중 한 명이다. 이전에도 작가와 연출가로 주목받는 작품을 내놓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내놓는 작품마다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는 행복한 작업이 이어졌다. 2010년 <칼로막베스>로 동아연극상을 받기 시작해서 2011년 연극 <푸르른 날에>를 5년 동안 매해 올렸으며, 2014년 <변강쇠전>을 유쾌하게 뒤튼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신파극 양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홍도>를 비롯, 2015년 주요 연극상을 휩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까지 매해 문제작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문체부 담당자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를 보고 감명받아 그를 블랙리스트에서 뺐다는 일화가 회자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올해 이 작품의 재공연을 올렸으며,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뮤지컬 <아리랑> 재공연이 대기 중이다. 신작으로 연극 <라 빠르망>, 뮤지컬 <광화문연가> 극작 등 굵직한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2018년 평창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아 안 그래도 바쁜 일정에 묵직한 직무를 하나 더 보탰다. 다가오는 4월에는 그가 각색과 연출을 맡은 또 다른 창극 <흥보씨>가 올라간다. 기존의 <흥보전>을 상상력을 가미해 거의 창작하다시피 작업했다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창극 도전기를 들어본다.





놀이성을 강조한 연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관객과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새로 도전하는 창극 <흥보씨>는 앞선 작품과 접근하는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다르게 풀려고 한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니까 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푸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감이 올 게 아닌가. 두 작품이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연극적인 방식을 가져갔다면 <흥보씨>는 드라마적인 얼개는 있지만 자상하게 풀지 않고 이야기는 심플하게 넘어가면서 판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드라마 얼개를 뭉개면서 완창 판소리에 가까운 방식으로 가려고 한다.


이자람 음악감독과는 “동시대에 맞춰 변화시키되 원형을 놓지 말자는 데” 서로 동의했다고 보도자료에 나와 있더라. 여기서 말한 원형이란 판소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흥보가>에서 인기 있는 대목들은 대부분 다 넣었고, 그 외적인 부분은 이자람 감독이 작창을 했다. (김성녀) 예술감독님도 전통 판소리의 본질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나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연극성을 강조한 연출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래서 고전극을 다룰 때 성과가 좋은 것 같다. 특히 다년간 숙련된 예술성 짙은 소리가 어우러진 창극에서 더욱 연출의 장점이 산다.

창극을 하면 좋은 게 뮤지컬 같은 경우는 노래나 가사를 걷어 내려면 작곡도 다시 해야 하고 굉장히 큰 작업이다. 창극에서 소리는 배우들에게 한 장면 쉬었다 들어가자고 하면 알아서 해준다. 이 부분은 편한 소리를 내주세요, 하면 바로 시연해주고 탄력적이고 굉장히 유연하다. 잘랐다 붙이고 걷어내는 작업이 유연하게 잘 돌아간다. 늘 신기하다.


놀이성을 강조한 연출을 추구한다. 그것이 너무 부각되는 것에 대한 경계는 없나?

불량한 의도로 관객을 울려야겠다, 웃겨야겠다 하는 계산으로 관객을 조종하려 한다면 아주 문제가 많은 태도일 거다.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을 안 한다.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까, 이러면 더 재밌지 않을까 선의로 접근하니까 놀이성이 강하다고 해서 자신들을 조종한다는 느낌은 안 들 것이다.


작품을 보면 속도감 있는 전개를 선호한다. 과거의 연극들에서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곤 했다. 빠르게 말하는 데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되더라.

집중은 되는데 그때는 그런 시도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바란 것은 말을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봇물처럼 밀려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정확하게 표현된 것이 아니라 보채서 만들어졌다. 배우 내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밀려 나왔을 때 재미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잡아 끌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말을 빨리 하라고는 잘 안 한다.


연극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연출을 선호하고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듯하다. 그것이 연극에 대한 생각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연극을 해보니까 그게 맞는 거 같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보면 스펙터클해서 뒤로 넘어간다. 연극은 빈 무대에서 놀이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실적인 무대를 못 써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게 더 효과적이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는 듯도 싶다.

지금까지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만드는 과정의 분위기가 좋고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결과도 좋았다. 과정이 엄청 힘든데 결과가 좋았던 적은 난 잘 없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연습 과정이 힘들고, 연습실도 가기 싫고 공연하는 것만 좋다고, 연습 안 하고 공연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연습 자체를 즐기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즐기게 하는가?

내가 재밌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재밌겠거니 하는 거지. 잘 모르겠다. 연극은 액션이기 때문에 행동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분석은 잘 안 한다. 흥보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은 안 한다.


그럼 어떤 식으로 연기 지도를 하나?

담백한 연기를 요구한다. 정말 가난한 사람이 (담백하게 시범을 보이며) 돈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하지 (잔뜩 걱정을 하며) 아! 돈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나. 진이 다 빠지면 오히려 담백하게 나온다. 정말 배 고프면 오히려 담백하게 말이 나오지, (기운이 다 빠진 듯이) 아! 배고파, 이러면 배고플 힘이 남아 있는 거다. 담백하게 이야기할 때 관객들이 빨려 든다. 이게 진실이다. 고뇌하는 연기를 할 때 흔히 고뇌하려고 애를 써서 들킨다. 고뇌를 만들어서 하니까 어색하다. 고뇌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그 사람의 고뇌가 보일 때 그 사람을 안아주고 싶은 거다. 인물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그래서 이럴 것이다. 이렇게 준비해 온 연기는 거의 틀렸다. 그래서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드라이 리딩을 할 때 감정을 자제하고 읽는데도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조금 다르다. 내가 원하는 연기는 빙산과 같다. 공연에서 드러나는 부분은 일부밖에 없는데 그 내면에 어마어마한 것이 들어 있다. 그런데 자꾸 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슈가 코팅을 하고 반짝반짝 하려고 한다. 그런 의지를 다 걷어낸 자체가 보여졌을 때 감동할 수 있다.






선하면 손해를 보는가


흥보나 놀보는 이본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는데, <흥보씨>에서 흥보와 놀보는 어떤 관계로 설정했나?

인물 구도는 똑같다. 놀보는 나쁜 놈인데 더 못됐고, 흥보는 착한데 좀 더 착하다.


<흥보씨>를 통해 ‘선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

<한국인의 초상>이란 작품도 하고, 한중일 연극인들과 <인어도시>도 하면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환란을 겪었다. 930번인가 외침을 당했다.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몽고나 일본, 청나라에서 쳐들어 왔다. 그런 경험에서 누적된 유전자가 있다. 그래서 선하게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라면서 손해 보면 안 되고, 나 먼저 챙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지금도 그런 정서가 남아 있다. <흥보씨>를 통해 선하게 살아가는 일에 대해 환기시키고 싶었다.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인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선하게 살라고 하면 ‘바보냐’, 내 것을 챙길 줄 알고 분노할 줄 알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선하게 사는 게 복 받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베풀며 살아온 편인데 결국 그게 나에게 돌아오더라. 그렇게 살다 보니 좋은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흥보전>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통해 상과 벌을 받는 장면인데, 이 부분을 대폭 바꿨다.

제비 다리 고쳐 주었다고 은금보화도 주고 대궐 같은 집도 주어준다. 관객들은 멀뚱이 부자가 되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흥보씨>에서 흥보가 얻는 것은 텅 빈 충만이다. 우리 작품에서는 박이 (두 손을 모아) 요만한데 그걸 죽을 만들어서 먹고는 설사를 하면서 삼칠일을 지낸다. 곰 설화와 비슷하다. 굶고 설사하다 보니 텅 비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다. 도를 깨닫는 과정인데 관객들이 보기에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다.


선함을 행하는 것이 도를 닦는 것과 같다는 것인가?

선함을 행하는 것, 선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함 자체가 되는 게 어렵다. 이 사람에게 베풀면서 어떤 이익을 바란다면 그건 거래이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 그렇게 선의로 해야 진정 자신에게 이롭다. 내가 보여줄 게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와 맥이 닿는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채현국 선생의 인터뷰에서 옮겨 적은 ‘지식은 잘못된 옳은 소리다’와 같은 문구를 보여주었다. 거부였지만 유신 시절 남을 돕기 위해 재산을 모두 쓰고 애초부터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채현국 선생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 작품마다 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그것을 정하는 것이 창작의 출발인가?

그렇다. 그게 없으면 쓸 수가 없다. 그게 없으면 왜 봐야 하지, 뭔 말을 하려는 거지 관객들이 혼란스럽지 않나. 효도를 해야 한다, 일반적인 명제지만 내가 이 작품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효도는 꼭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내 목소리가 있어야 작품을 출발할 수 있다.


‘선하면 손해를 보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해답을 정해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해 주면서 관객들에게 결정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방법도 있지 않나?

주제를 모호하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젊었을 때 나도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들을 했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선명하게 주제를 이야기하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명확히 주제를 제시하지 않나. 그 말에 동의하게끔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다. 폼 잡아 봤자, 헛방이다.


<흥보씨>

4월 5일~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2280-4114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3호 2017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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