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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홍광호, 그를 위한 인터미션 [No.97]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1-10-25 7,717


 

when I know  I`m on my way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홍광호는 내내 지킬이고 하이드였다. 무대 위에서나 아래서나 격렬하게 들끓는 감정과 에너지로 스스로를 담금질했던 9개월이 지나고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극장 밖으로 나온 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큰 산 하나를 막 넘어온 젊은 배우가 느끼고 생각할 법한 것들에 대해 물었다. 홍광호는 맥주 한 잔,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처럼 경쾌하게 말하다가도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질문들은 모두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9개월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뭔가. 사실 곧바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다른 배우들은 다 마지막 공연 때 짐을 뺐는데 나는 그 후에 콘서트가 있어서 극장 측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후에 짐을 정리했다. 사무실에서 갖다놓은 소파부터 갖가지 비타민, 홍삼, 팬들이 선물해준 목에 좋은 차, 슬리퍼, 편한 옷, 샤워 용품까지 어마어마한 짐을 빼고 나니까 그때서야 이 공연이 끝났다는 감이 온 것 같다.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큰 작품을 장기 공연으로 하고 난 후에 후유증을 겪는 편인가. 후유증을 겪을 여유조차 없었다. 늘 차기작이 정해져 있었고, 차기작의 다음 작품까지 정해져 있기도 했으니까. 재작년 <빨래>를 하기 전에 잠깐 미국에 갔다 온 거 말고는 쉰 적이 없었다. 제때 해소하지 못한 것들을 나중에 한꺼번에 겪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쉬어보자, 지금까지 계속 달렸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된다 싶어서 미국에 있는 친구 집에서 돌아올 날짜 정해놓지 않고 기약 없는 휴가를 시작할 거다. 지금 하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나는 정말 자유다. 이게 마지막 숙제다.(웃음)


작품을 하다보면 배우가 공연 외에 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 않나. 연기 외에 요구받는 일 중에 어디까지는 하고 어디부터는 하지 않는다는 선이 정해져 있나. <지킬 앤 하이드>를 처음 했을 때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으니까 인터뷰를 진짜 많이 해야 했다. 각종 패션지, 신문까지 50군데는 한 거 같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다 끝내놓고 홍보를 하는데 우리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하니까 아직 머릿속에서 뭔가 확실해지지 않은 채로 말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 때 중간에 팬텀으로 역이 바뀌면서 며칠씩 몰아서 인터뷰를 할 때도 그랬고. 그런데 이번 <지킬 앤 하이드>는 처음도 아니니까 작품에만 집중을 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공연 후에는 무조건 쉬었다. 뮤지컬은 립싱크도 없고, 후시녹음도 없고, 재촬영도 없는 순수한 라이브니까 컨디션에 따라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이 달라질 수박에 없다. 방에 습도계 두고, 잠을 최대한 많이 자고, 목에 좋은 것, 몸에 좋다는 걸 계속 챙겨 먹었다.


열성 팬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팬이 많다보면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을 거 같다. 나름의 대처법이 있나. 감당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거, 그게 대처법이다. 매 공연을 끝내고 나오면 잠깐 보겠다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을 넘겨도 끝이 안 나니까 사인도 못해 드린다. 그런데 그중에는 눈 바로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거나 갑자기 팔을 붙잡고 윽박지르는 분도 있다. 그렇게 붙잡혀서 난 상처가 아직도 팔에 남아있는데, 그럴 때는 표정을 관리하기도 힘들다. 평범하게 좋아해주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데,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따라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도를 지나치는 소수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마음을 닫게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어쨌든 묵묵히 좋아해주는 분들께는 사실 굉장히 고맙다. 속으로는 정말 감사하고 있다.


공연을 시작한 직후에 한 번 봤고, 막바지에 다시 봤는데 굉장히 달랐다. 캐릭터의 해석이나 표현에서 큰 변화들이 있다고 느꼈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그 전에는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전해진다고 생각했다. 가령 내가 오늘 인터뷰 때 속으로 기분이 안 좋으면, 굳이 말을 하거나 티를 내지 않아도 ‘아, 저 사람 기분 안 좋구나’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처럼 뭔가를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마인드에서 좀 바뀌어서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관객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느끼게 됐다. 9개월간 계속 같은 작품을 하는데 뭘 안 해봤겠나. 그동안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 거, 일일이 떠먹여 주지 않는 게 더 고급 연기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다보니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 싶더라. 서서히 생각이 바뀌어서 연기에 반영이 되었는데 최종적으로 보면 옳은 판단이었던 거 같다.


막바지 공연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일반적으로 지킬이 순수한 정신의 표상이고 하이드가 완전히 상반된 악의 정수로 그려진다면, 당신의 지킬은 훌륭한 사람이고 숭고한 목표를 갖고 있지만 하이드로 변할 수 있는 속성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선과 악이 완전히 분리된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게 보였다. 많이 채우려고 노력을 했다. 살을 붙이기 위해서 애썼다는 뜻이다. 사실 플롯이 좋은 작품은 아니잖나. 그런 빈 곳들을 채우고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굉장히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어떤 날은 그냥 나의 본능에 맡겨보자고 작정을 하고 상대 배우에게만 집중하면서 내 계산을 지우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느낌이 좋은 디테일들을 많이 얻었는데 자기 전에 곱씹어보면서 이건 괜찮고 저건 좀 아닌 거 같다고 다시 정리를 해서 다음 날 다시 시도를 했다. 그러면 여전히 좋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렇게 조금씩 보완을 해나갔다. 마지막에 좋았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사실 망가질 수도 있는데.

 


연출가가 외국인이라 계속 작품을 본 건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변화를 줄 때는 어떤 조언을 얻었나. 데이비드 스완이 <조로>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후반부에도 공연을 보러 왔는데 굉장히 좋아해주더라.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해줬다.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고집이 센 편일 것 같다. 고집 정말 세다. 그런데 뭐 안 좋은 고집이 아니니까. 연출가와 의견이 다를 때는 내가 완전히 설득을 당하거나, 완전히 설득을 해야 한다. 어설프게 설득을 당하거나 어설프게 설득을 시키면 그건 100퍼센트 오답이다. 짧은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렇더라. 둘 중 하나는 100퍼센트 정답이다.


아까 그동안 해온 공연 포스터들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새삼 느꼈지만 그동안 작품을 참 잘 골라온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나. 내가 봐도 그렇다. 일단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게 첫 번째다. 예를 들어서 같은 시기에 네 명이 나를 원한다고 치자. 그런데 나는 한 사람이니까 네 작품 중 하나만 할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친분 관계나 학연 같은 부수적인 것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이 끌리고 잘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나면 다른 세 사람에게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작품으로 좋은 공연을 하고 나면 그들은 계속 나를 원한다. 그런데 학연, 지연, 친분으로 작품을 선택했다가 내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치자. 그러면 그들은 나를 찾지 않을 거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마음이 설레는 작품인가, 올인 할 수 있는 작품인가를 최우선으로 파악한 후에 작품을 선택하면 진짜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러면 당장은 좀 아쉬워하시더라도 다음에 다시 인연이 되기도 하고, 그런 것 같다.


뭐가 제일 두려운가. 제일 두려운 거. 다음 작품이 안 잡히면 어쩌지?(웃음) 글쎄. 두려운 거. 내가 알려지는 것? 사실 뮤지컬 관객들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상관없는데, 연예인처럼 되는 건 싫다. 난 사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명성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다. 뮤지컬 배우를 마치 아직 연예인이 되지 못한 그 지망생 정도로 생각하는 어른들, 그러니까 엄마 친구 분들이 계신데(웃음) 그런 분들에게 일일이 해명을 하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게 그게 아니다. 무대에 서는 것과 별개로 일반인으로서의 나를 지키고 싶다. 대중들은 한 사람을 한없이 높이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그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기 싫다. 높아지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 좀 적게 벌고 큰 명성이 없더라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


지금까지 한 작품들의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공통점은 뭐였나. 대본을 읽었을 때 아, 이거 재미있겠다 싶으면 끌린다. 음악도 신경을 쓰지만 굳이 나누자면 6대4의 비율로 중요도가 나뉘는데 대본이 6이다. 나는 뮤지컬에서도 대본이 중요한 것 같다. 뭘 말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쫓아갈 끈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대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서른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시간이 빠르지 않나. <미스 사이공>의 크리스 커버로 처음 무대에 섰을 때를 생각하면. 빠르다. 굉장히 빠르지. 아까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내가 이 작품들을 몇 년도에 했는지 헷갈리더라. 특히 장기 공연을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미스 사이공> 때는 최선을 다해서 하긴 했는데,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진짜로. 무대에 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공연 종료 일주일 전이 됐을 때는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 사실 커버 배우가 애환이 많다. 연습을 할 때도 그렇다. 앙상블로 계속 무대에 섰고 커버 리허설도 있긴 했지만 거의 동선만 맞추는 식으로 형식적인 거였으니까… 그래서 갑자기 크리스로 무대에 올라가게 됐을 때의 기억이 전혀 없다. 정말 하얗다.(웃음)


주연으로 처음 무대에 선 작품이 <미스 사이공>이다. 굉장히 벅찼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나는 그런 감정이 별로 없다. 이번 <지킬 앤 하이드> 마지막 공연 때도 동료들이 옆에서 울고 있으니까 아 나는 눈물이 안 나는데 어쩌지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영원히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 무대가 끝이 아니고, 이걸 딛고 다른 걸 또 할 거니까.


일에서는 감상적인 면이 없나보다. 일상생활에서는 감상적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감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일이 아니다. 일이라기보다는 나의 전부다.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거고, 덤으로 돈을 버니까 그걸로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어서 좋고.

 


많은 배우들이 관객에게는 단 한번의 공연이니까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백 번을 하는 공연의 백 번이 다 최선일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경우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했다. 120퍼센트인가 110퍼센트인가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오래 하고 있지만, 관객은 처음 보고 그게 마지막이다. 물론 여러 번 봐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많은 정보 없이 처음 공연을 보러 온 그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지킬 앤 하이드>는 9개월 내내 정말 계속 잘됐다. 어떻게 이렇게 잘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파사드 신에서는 객석의 관객들이 보인다. 매일매일 놀랐다. 뮤지컬 관객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많은 분들이 보러 와 주셨고 <지킬 앤 하이드> 역사상 이번이 제일 잘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관객들을 계속 봤다.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솔직히 가장 마음에 안 찼던 공연은 마지막 공연이었다. 막공을 보러 갔다가 소외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고 그게 참 싫어서 막공일지언정 성냥개비 쌓듯이 쌓아온 것들을 지키면서 공연을 하고 싶었다.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엉뚱한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좀 그랬다. 관객들의 반응은 엄청났고 굉장한 함성이 나왔지만 사실 나는 좀 그랬다.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는 거 같다. 타협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와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들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 일에 대해 꿈을 꿨다. 학교 다닐 때부터 정말 뮤지컬이 하고 싶었던 뮤지컬 키드 1세대다.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다른 장르를 해보려다가 넘어온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꿈이 너무나 명확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나아졌는데 한때는 많이 힘들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들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꿈꿔 왔던 것들을 하고 나니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놓지 않은 채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누가 들으면 건방지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접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갈 길도 멀다. 좋은 창작뮤지컬도 해야 하고, 콘서트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내 집 마련도 하고 싶고.(웃음)


그러고 보면 콘서트 무대도 종종 선다. 뮤지컬 공연과 어떻게 다른가. 아, 콘서트 재밌다. 진짜 재밌다. 이번에 콘서트를 하면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웃길 수 있구나 싶어서 신났다. 사실 다수의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정말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친척들 모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라고 시키잖나. 난 끌려 나가면서 얼굴이 새빨개져서 싫다고 울면서 버티는 애였다. 그렇지만 공연은 가면을 쓰는 거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콘서트를 해보니까 나로서, 그냥 내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게 가능하구나, 다른 재미와 매력이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작은 규모로라도 콘서트를 더 해보고 싶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이제야 말할 수 있는데 <지킬 앤 하이드>가 3개월 연장 공연을 안 했다면 <모비딕>을 하려고 했다. 이스마엘 역으로. 클라리넷이나 섹소폰 같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악기로 바꾸거나 아니면 완전히 올인해서 피아노를 연습하거나. 형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액터 뮤지션이라는 것에 로망이 있다. 얼마나 멋있나. 일반적인 뮤지컬보다 형식적으로 조금 더 종합예술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정말 하고 싶어서 조용신 감독님께 출연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연장 공연이 확정되면서 아쉽게 됐다.


<모비딕>은 봤나. 재밌었다. 그런데 보면서 ‘아, 연주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작품이구나. 내가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싶더라.(웃음) 옛날에는 무조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벅찼다면 지금은 저건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는 게 보인다. 가령 어렸을 때는 <렌트>를 하고 싶었다. 초연 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하는 공연 실황 DVD를 보고, 아, 저건 정말 쟤들이 해야겠다, 내 정서로는 도저히 쟤들만큼 해낼 수가 없겠다는 걸 알겠더라. <모비딕>도 연주자로서 정말 음악성이 있는 배우들이 해야 하는 작품이고. 이제 그런 것들이 보인다.

 


뮤지컬 배우로서 내가 이걸 갖게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키가 5센티만 더 컸으면 좋겠다.(웃음)
댄스 뮤지컬을 할 게 아니면 상관없잖나. 댄스 뮤지컬, 하고 싶다. 춤에 대한 갈증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춤을 기가 막히게 췄다. 다들 이렇게 안 믿고 콧방귀를 뀌는 반응인데 진짜 잘했다.(웃음) 발레처럼 선이 예쁜 춤이 아니라 파워풀한 애크러배틱에 강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갓스펠>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공연이 내 인생의 첫 뮤지컬이었다. 그때 연습실에서 열심히 춤을 추면 그 열기 때문에 유리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그때가 그립다. 그 당시에는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그런 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내 애크러배틱 선생님이었던 심정완 형한테 배웠다. 계원예고의 우리 기수 중에 내가 정완이 형의 수제자였는데 손가락에 금이 갈 정도로 연습했다. 당시에는 정말로 뮤지컬이 전부였으니까. 지금도 전부지만.


꼭 애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완전히 댄스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댄스도 하는 뮤지컬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 액터 뮤지션 뮤지컬도 꼭 해보고 싶고. 어쨌든 나는 올인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야 한다. 나를 습관적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낭비하고 빨려 나가는 게 아니라 나를 채워 나갈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무대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걸 내주고 돈을 버는 식은 싫다는 이야기 같다. 정확히 그 이야기다.


무엇에 대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나. 한마디로 하자면 ‘나는 뮤지컬 배우다.’ 나는 지금 꿈을 이룬 거다.

 

스타일리스트 | 이한욱  메이크업 | 이창주(라메종 0809)  헤어 | 김진주(라메종 0809)  플로리스트 | 허예조(꽃여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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