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POTLIGHT]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전성우 [NO.169]

글 |배경희 사진 |표기식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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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고집


전성우는 자신이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만약 작품을 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다면 서울대에 갔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배우. 그런 그가 요즘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작품은 초연 창작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올가을 관객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있는 창작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장르적 변용이 기대되는 이 작품에서 전성우는 평생 마츠코를 사랑한 야쿠자 류를 맡아 새로운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단단한 마음


올 초 뮤지컬 한 편을 끝내고 나서 꽤 오랜만이죠.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사실 준비하고 있던 작품이 있었는데, 일정이 조금 연기되면서 의도치 않게 공백을 갖게 됐어요. 중간에 영화 <더 테이블>을 찍긴 했지만, 저예산 영화라 이틀 만에 촬영을 마쳤거든요. 생각해 보면 한 일곱 달 정도 쉬었나. 그렇게 오래 쉰 것도 아닌데, 계속 달려와서 그런지 그 몇 달이 되게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하는 거 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뭔가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웃음) 대신 생각을 많이 했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또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제 자신을 많이 들여다봤어요.


첫 영화 작업을 하면서 신인 때의 마음이 많이 생각났다면서요. ‘신인 시절’ 하면 떠오르는 장면 같은 게 있을까요?
서류 하나 들고 열심히 오디션 보러 다녔던 시간들이 생각나요. 오디션은 배우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지만 그땐 정말이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근데 돌이켜보면, 마음은 힘들었어도 그때가 가장 순수하게 빛났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떤 분야든 경력이 쌓일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곤조란 게 생기잖아요. (웃음) 여러 사람이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다 보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데, 자기 고집을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매체를 경험하면서 흔히 말하는 초심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됐죠.


배우라는 직업은 항상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하잖아요. 어렸을 때 그게 힘들진 않았어요?
아뇨, 오히려 신인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어요. 평가에 대한 부담을 느낄 새가 없었죠.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걸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객석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진짜 좋았어요. 물론 활동하면서 질타를 받은 적도 있지만, 그건 제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사람들 반응에 너무 쉽게 휘둘리진 말자는 생각도 하죠. 평가라는 게 어떤 땐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하니까요.



얼마 전에 개막한 <엘리펀트 송>은 이번이 두 번째 출연인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을 다시 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부담스러웠죠. 이미 지난 시즌에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한다면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담 때문에 안 하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더라고요. 마이클은 저와 다른 점이 많은 캐릭터라 색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재미가 컸거든요. 예를 들면 마이클은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는데, 저는 스스로를 정해진 틀 안에 몰아넣는 편이랄까. 누군가를 만나면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항상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어요. 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고, 사람들하고 부딪치는 것도 싫어서 말도 행동도 조심하게 되죠. 그런데 마이클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연기하면서 재밌어요. 이번 공연도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어요.




안주하지 않는 삶


차기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다소 의외의 선택 아닌가 싶어요.
저는 의외로 쉽게 출연을 결정했는데 사람들에겐 조금 의외인가 봐요. (웃음) 원래 작품 결정할 때 생각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어떤 작품의 캐스팅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응’ 하고 수긍하는 게 아니라, ‘어?’ 하고 반문하게 되는 쪽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거든요. 저를 두고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는 건, 저라는 배우에게 특정 이미지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거기서 벗어나는 뭔가를 한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도전의 결과가 좋을 때, 제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의 범주가 좀 더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마초적인 야쿠자 캐릭터를 맡은 것도 그런 이유예요?
네, 처음부터 류로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민정 연출님하곤 이번이 두 번째 작업이라 연출님이 그리는 그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 맡고 있는 마이클과는 또 다른 지점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마음이 끌렸고요. 근데 야쿠자라고 해도 흔히 생각하는 덩치 큰 험악한 남자와는 거리가 좀 있어요. 그리고 야쿠자는 류에 대한 설명 중 하나이지, 이 사람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여러모로 한번 해볼 만한 도전이겠다 싶었죠.


주위 동료들이 전성우는 소년 같은 이미지와 달리 남자다운 성격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그런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던데요?
그렇게 표현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야쿠자 이미지를 좀 찾아 봤는데, 가만히 서서 상대를 분위기로 제압할 것 같은 모습이더라고요. 무대에서 그런 아우라를 풍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웃음) 연습을 시작한 지 이제 2주 정도 됐거든요. 아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는 단계인데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어제는 연습하다 류는 문신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와서 우스갯소리로 팔토시 문신을 하자는 이야길 하면서 웃고 그랬죠. (웃음)



뮤지컬은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워낙 큰 인기를 끌었잖아요. 영화에 대한 인상은 어땠어요?
전 영화를 이번에 공연하게 되면서 처음 봤어요. 어두운 분위기의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팬시한 면도 있고, B급 영화처럼 코믹한 요소도 많고, 영화는 감독 스타일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엔 색감이 너무 화려해서 뭐지 싶었는데, 점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분명 내용은 전형적인 신파인데, 신파 영화처럼 풀지 않은 지점이 흥미로웠죠.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왔고요. 마츠코의 비극적인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던데요. 아마 뮤지컬은 영화와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류라는 캐릭터에 대해 좀 더 힌트를 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류는 몸은 커버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 같아요. 아버지의 부재, 가정을 소홀히 하는 어머니, 배다른 동생, 그야말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사랑이라는 걸 받아보지 못한 채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아이 같죠. 자기가 빠진 늪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우울한 인물이고요. 영화에는 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안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류의 과거나 그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꽤 자세히 설명하거든요. 뮤지컬에선 류라는 인물의 과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전달할지 고민 중인데, 아마 너무 설명적으론 풀어가진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간 제약이 있으니까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났을 때, 엄청난 도전이겠다 싶었는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 보면 의외로 수월하게 풀릴 때가 있잖아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류는 어떨 것 같아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류에 대한 캐릭터 설명이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한 남자인데, 그 부분에 대해 아직 갈피를 못 잡겠거든요. 중학교 때 마츠코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고선 몇 년 후 갑자기 야쿠자가 돼서 그녀 앞에 불쑥 다시 등장하는 점이나, 마츠코를 다시 버리고 나선 그녀가 죽자 그녀의 조카에게 나는 평생 마츠코를 사랑했다고 하는 점이 잘 이해가 안 돼요. 사랑했다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싶은 거죠. 물론 이미 자신 때문에 한 번 인생이 망가진 여자에게 또 상처를 줄 순 없다는 생각에 그런 선택을 한 거라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캐릭터를 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류를 이해 못하는 건 어디까지나 저잖아요. 최대한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지우고 편견 없이 다가가 보려고요.


서른을 앞두고 한 여러 인터뷰에서 앞날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어요.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요?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뀌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뭔가 욕심낼수록 마음만 급해지는 것 같은데, 전 개인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연기 또한 안 좋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사람 연기 진짜 좋다 싶은 배우들을 보면 대부분 느긋했던 것 같아요. 연기에서 테크닉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유 있는 사람에게서만 풍기는 편안함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 분위기는 테크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도 무엇보다 여유 있는 배우가 되는 거고요. 어차피 배우를 하루이틀 하고 그만 둘 거 아닌데, 괜히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제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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