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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블라인드> 이재균·정운선 [NO.171]

글 |박보라 사진 |김승완 2018-01-03 1634

<블라인드> 이재균·정운선

내 마음의 꽃이 피는 시간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은 네덜란드 영화 <블라인드>는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사랑을 받았다. 눈이 보이지 않은 소년 루벤과 마음속 깊은 상처를 지닌 여자 마리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는 설국을 배경으로 아련한 감성을 전한다. 여기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블라인드>가 12월 무대에 오른다. 루벤과 마리로 짙은 여운을 뿜어낼 이재균과 정운선을 만났다. 이들은 한창 연습이 진행되는 도중 마련된 인터뷰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다가도, 곧 다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재균과 정운선이 조심스럽지만 그리고 다정하게 바라본 사랑의 이야기는 어떤 결을 띌까.




고마워요, 나의 그대여

                     

<블라인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재균     다른 무엇보다 대본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거기에 소재도 좋았어요. 그래서 바로 선택을 하게 됐죠.

정운선     흔하지 않아서요. 소재, 인물, 내용 모두가 기존의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어요. 흥미로웠죠.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 수 있겠지만 도전하고 싶었어요.

이재균     사실, 누나(정운선)는 엄청 고민했어요.

정운선     맞아요, 처음에 대본을 읽으면서 너무 잘 읽히는 거예요. 재미있어서요. 그런데 무대로 올리는 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 같았어요. 고민하는 도중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재균     배우들의 연기요. 감정선이 정말 좋아요. 원작 영화가 워낙에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연극에서도 배우의 연기 또한 하나의 미장센처럼 드러나거든요. 

정운선     정말로 섬세한 작품이에요. 영화와 연극의 차이라고 보는데, 영화는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거나 미장센을 보여주면서 섬세함을 표현해 줘요. 그러나 무대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밀도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죠. 여기서 나오는 매력이 있어요. 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소통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루벤과 마리는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바라봐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눈빛만 봐도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고, 공기의 변화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일상에서는 이런 감정을 흘려버릴 때도 많아요. 그런데 <블라인드>에서는 이러한 섬세한 소통이 도드라져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첫인상을 설명해 주세요.

이재균     루벤은 시각장애인이에요. 처음 대본을 보자마자 제가 루벤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어요. 또 잘 해낼 수 있을지도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캐릭터들과는 분명 무언가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죠. 이런 고민에서 나온 새로운 깨달음도 있어요. 사실 루벤도 루벤이지만, 마리가 너무나 기대돼요. 루벤만큼이나 마리도 상당히 매력적인 역할이니까요.

정운선     전 마리를 본 순간 강렬했어요. 복합적인 인물이라, 솔직히 약간 겁도 났어요. 내가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이런 인물이 그냥 표면적인 캐릭터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매력적인 만큼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리는 상처가 정말 많은 인물이에요. 또 약하면서도 강하죠. 모든 인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특히나 마리는 처음 보자마자 ‘어려운 인물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재균     아직 그걸 찾고 있어요. 음…, 지금 현재 상황에서 생각해본다면, 전 가장 원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고 있거든요. 물론 지금보다 더 루벤에게 빠지면 깊게 볼 수 있겠지만요. 대본에도 있는 말인데 이 사람(마리)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좋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도망가지 않아서 좋고, 내게는 엄마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러 준 사람이라는 거죠. 마리를 향한 감정의 첫 시작은 이거에요. 또 이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거죠.

정운선     저도 재균이가 말한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마리와 루벤은 서로에게 새로운 인물이죠. 그 새롭다는 걸 설명하자면, 마리는 일상생활을 할 때도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언제나 위축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루벤은 실제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마리는 그가 그 너머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서로를 통해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시야가 넓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과정들을 통해 다른 것을 보는 거죠. 보이는 걸로만 아름답다고 판단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은 루벤이 마리에게 아름답다고 했을 때 새롭게 판단이 바뀌는 거죠. 또 루벤도 마리만큼이나 상처가 있어요.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절망을 느낄 수도 있었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하잖아요. 심지어 모두가 자신을 거부하는 상황에 있다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 마리를 만났어요. 마리의 말과 행동으로 루벤은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무언가가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내포되어 있고 사랑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지점이라고 봐요. 내가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소통의 창구가 서로에게 되어주니까.


마리는 특수 분장을 한다고 들었어요.

정운선     정확하게 어떻게 특수 분장을 하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구체적인 디자인이 나온 건 아니거든요. 마리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파요. 저희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요즘 시대에 외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잖아요. 겉모습을 토대로 암묵적인 판단을 내려버리니까요. 마리의 상처는 부모의 학대로 생긴 것이고, 마리를 본 사람들은 놀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하지만, 이것조차도 그녀에게 큰 아픔으로 쌓여요. 전 이 부분을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도 그러잖아요, 얼굴에 조그마한 여드름이 하나만 솟아올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얼굴을 보는 것만 같고. 아마 특수 분장은 이런 마리의 아픔이 잘 드러나도록 강하게 그려질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 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재균     일단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이 나을지. 실제로 앞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을지를요. 연습실에서는 실제로 앞이 보이지 않는 특수 렌즈를 끼고 연기하고 있어요. 제가 앞을 볼 수 없단 사실은 상대 배우들에게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우리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 움직이는 건데. 마리한테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거든요. 연기할 때도 아마 그럴 거고. 이런 점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연습하고 있는 이유에요.

정운     루벤은 앞이 보이지 않고, 마리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연습 전에 감각 훈련이나 신체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요. 시각 장애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감각이 발달됐다는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죠. 또 마리의 경우도 다른 신체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움직임이나 청각, 촉각, 후각 등의 훈련을 더하고 있어요.


<블라인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정운선     이 질문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연을 보신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나 메시지는 분명히 있겠지만, 이걸 말하는 순간 어쩌면 관객에게 강요가 돼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다만 저는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슬프면 울어도 괜찮고, 재미있으면 웃어도 괜찮고요. 요즘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그냥 흘려보낼 때가 많잖아요. <블라인드>를 보면서는 그냥 그 순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재균 맞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해석할 여지가 많은 공연이라 보거든요.



혼자가 아닌 둘

                     

두 분이 어떻게 친해진 거예요?

이재균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으로 만났을 때 참 좋았어요. 그때도 이미 연기 너무 잘하는 배우라는 소문은 듣고 갔죠. 누나는 편견이 없어요. 저는 그때 어린 나이였고 연극도 <히스토리 보이즈> 이후로 두 번째였거든요. 함께하는 대부분의 배우가 선생님들이셨고, 저와 또래라고 할 수 있는 건 누나밖에 없었어요. 저도 긴장을 했죠. 연기를 정말 잘하시는 선생님들도 있고, 누나도 있었으니. 그런데 연습하면서, 작품을 하면서 속없는 말이나 장난도 종종 했는데, 감사하게도 모두가 예쁘게 봐주셨어요. 또 누나랑 맞붙는 장면이 많았어요. 누나가 뭘 하면 다 믿었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니까. 사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배우와 배우로서 만날 때마다 정말 좋았죠.

정운선     재균이는 솔직한 배우라서 좋았어요. 자기가 느끼는 걸 충실히 보여줘요. 저는 투박하고 촌스러워도 진정성 있게 연기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재균이는 굉장히 거침없어요. 저는 그 부분이 좋았어요. 본능에 충실한 배우에요. 솔직하고. 이게 어렵거든요.


친한 배우와 함께 무대에 선다는 건 어때요?

이재균     저희가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거나 자주 만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정운선     필요한 만큼 친한가? (일동 웃음)

이재균     기본적으로 배우들은 서로를 믿어주거든요. 저도 누나랑 연기할 때면 누나의 모든 것을 믿어요. 누나가 좋은 점은, 만약 어떤 부분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부분에서 함께 무대에 서는 게 좋아요.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친하니까 서로의 감정이 익숙하다는 건 아니에요. 서툴러요. 아직도 누나의 감정은 제게 어렵기도 해요. (웃음)

정운선     저도 비슷해요. 친한 배우들과 공연을 하면 좋은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전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정말 좋죠.


본인들의 인생에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될 것 같나요?

정운선     우선은 작품이 끝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런데 항상 작품마다 의미가 있어요. 다양한 각도로 무언가를 건네죠. 저는 ‘왜 하필 그 시기에 그 작품이 내게 왔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 있어도, 그 작품을 꼭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삶에서 어떤 작품을 만나는 건, 내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해준다고 봐요. <블라인드>도 ‘이 타이밍에 왜 내게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블라인드>가 끝난 후에 제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저조차도 궁금해요. 특히 마리는 지금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인물이니까요. 작품이 끝난 후에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지 저도 사실은 기대가 되네요.

이재균     전 가장 재미있는 것이 재미없어질까봐 두려워요. 전 연기가 가장 재미있어요. 그래서 연기가 재미없어질까봐 두렵죠. 재미없어지면 연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런 의미에서 <블라인드>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나면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이번 공연은 제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설레고 있는 만큼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공연을 위해서 저희는 정말 열심히 준비할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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