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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No.160]

글 |나윤정 사진제공 |국립극단 2017-01-13 3,971

복수라는 이름의 쓸쓸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017년 국립극단의 첫 공연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2015년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주요 연극 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쥔 작품인 만큼, 이번 재연 소식이 참 반갑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의 원작은 중국 고전 역사서 『사기』에 수록된 사건을 원나라 작가 기군상이 재구성한 중국 고전 『조씨고아』다. 고선웅은 이를 특유의 화법과 스타일로 각색·연출하며, 자신의 장점을 한껏 무대 위에 발현하였다.




원작의 드라마틱한 힘

                     

 사마천의 『사기』에 허구를 덧붙여 재구성한 『조씨고아』. 원나라의 희곡 작가 기군상은 『사기』에 등장하는 춘추시대 진나라의 충신 조순과 간신 도안고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당시 대중 연극이었던 잡극의 대본을 만들었다.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동양의 햄릿이라 불리는 『조씨고아』는 화해로 막을 내리는 서구 비극의 구조와는 달리, 끝없이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희생 끝에 결국 비정한 복수로 마무리된다.


고선웅 연출은 2000년 즈음 극작 공부를 하던 시절 원대 잡극에 빠져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그는 이후 이를 무대 위에 올려보기로 했다.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원작이 갖고 있는 구조가 좋아서 마음고생 안 하고 기분 좋게 각색할 수 있었다. 희곡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 힘이 있다. 아주 박력이 넘친다. 전개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보니 이를 그대로 무대에 옮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대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하면 무대 위의 그림으로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해 관객들이 감정을 충분히 이입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작품은 간신 도안고가 권력에 눈이 멀어 충신 조순을 모함하고 조순의 가문 300여 명을 몰살시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문을 멸족하는 정치적 처단 속에서 유일하게 조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가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 특히 정영은 조씨 집안과의 인연을 맺고 한마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식과 아내를 희생하며 조씨고아를 살리는 데 자신의 삶을 내던진다. 그리고 그런 정영과 조씨고아를 돕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도안고는 정영을 자신의 편이라 믿고 조씨고아를 양아들로 삼아 키운다. 그리고 조씨고아가 장성했을 때 비로소 정영은 참혹했던 지난날을 고백하며 복수를 부탁한다.




고선웅 스타일의 비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고선웅 연출의 장점이 잘 살아난 작품이다. 특히 <푸르른 날에>에서 빛을 발했듯, 비극을 그리는 고선웅 연출만의 스타일은 관객에게 꽤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의 비극은 단순히 슬프고 어둡지만은 않다. 드라마가 한없이 심연에 빠지려는 찰나 고선웅 스타일의 유머가 가볍게 훅 치고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은 가벼이 흘러가지 않고 어느새 묵직한 주제 의식을 관객 앞에 던져준다. 이러한 완급 조절 덕분에 그가 그리는 비극은 웃음과 울음을 교차하며 특별한 관극 경험을 전해 준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내되,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비운의 필부 정영의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정영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씨고아를 외면하지 못하고 20년의 삶을 올곧이 그에게 바친다. 심지어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대신 희생시키는 엄청난 결단을 한다. 그 충격과 상실로 인해 정영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일어난다. 이런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정영의 지난 20년, 결국 그는 도안고에게 복수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함뿐이다. 결국 무대는 복수 끝에 씁쓸한 공허만이 남는 정영의 인생을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복수란 과연 무엇인가?’


고선웅 연출은 ‘정영 캐릭터’가 바로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 이야기한다. 원작의 경우 결말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정영 캐릭터를 좀 더 선명하고 정교하게 다듬음으로써 엔딩에 큰 방점을 찍었다. 고선웅 연출 스스로도 엔딩을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꼽으며, 복수가 끝난 후 정영 앞에 펼쳐지는 쓸쓸함을 통해 ‘인생사 일장춘몽’이란 상징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결국 고선웅 연출이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료하다. “복수를 꼭 해야 한다면 하면 된다. 하지만 꼭 복수를 한다고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고선웅 연출이 전하는 이 작품의 주제다. 이를 통해 고선웅 연출은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 바랐다. 작품 말미 객석을 향해 던지는 이 대사가 여운을 남기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연극은 재연하면 할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한다”는 고선웅 연출은 극의 템포와 미장센을 좀 더 다듬어가며 배우들의 내공이 빛나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초연 멤버들이 그대로 출연해 더욱 농익은 무대를 기대하게 만든다. 지난 무대에서 정영 역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하성광 배우를 비롯해, 장두이, 이영석, 유순웅, 이현훈 등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다만 지난 초연에서 공연 중 운명을 달리한 공손저구 역의 임홍식 배우의 빈자리를 정진각 배우가 대신한다.


1월 18일~2월 12일   

명동예술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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