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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셔플 어롱> [No.154]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ulieta Cervantes 2016-07-18 4,443

미국 뮤지컬 속 흑인들에 대한 잊혀진 이야기, <셔플 어롱>




2016 토니상의 빛과 어둠


지난 6월 12일 토니상 시상식이 막을 내리자, 문화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SNS에서는 ‘#TONYSOBLACK(너무 검은 토니)’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처럼 퍼졌다. 지난 2월에 열린 오스카 시상식 직후 SNS를 뒤덮었던 조롱 섞인 해시태그 ‘#OSCARSOWHITE(너무 하얀 오스카)’를 패러디한 것이다. ‘#TONYSOBLACK’이라는 해시태그가 보여주듯이 올해 토니상은 그 어느 때보다 유색인종의 활약이 두드려졌다. 최우수뮤지컬상과 최우수리바이벌상은 각각 유색인종들의 미국을 다룬 <해밀턴>과 <컬러 퍼플>이 받았으며, 남우주연상(<해밀턴> 애런 버 역 레슬리 오돔 주니어), 여우주연상(<컬러 퍼플> 실리 역 신시아 에리보), 남우조연상(<해밀턴> 라파옛 역 다비드 딕스), 여우조연상(<해밀턴> 안젤리카 역 르네 엘리스 골즈베리) 등 배우 부문의 굵직한 상 모두 유색인종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이달의 리뷰작인 <셔플 어롱> 역시 유색인종의 미국, 유색인종의 브로드웨이를 그려낸 작품으로, 토니상 최우수뮤지컬상 후보였다. 편의상 <서플 어롱>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의 원제는 <셔플 어롱; 1921년 만들어진 놀라운 뮤지컬 <셔플 어롱>과 그 후에 벌어진 모든 것들>이라는 꽤나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다(짧은 제목에 세미콜론으로 연결된 긴 제목이 따라오는 것은 20세기 초까지 문학 작품에서 자주 쓰였던 전형적인 형식이다).


<셔플 어롱>은 1921년 흑인들이 직접 제작과 출연을 맡아 뉴욕에서 4년간 성황리에 공연됐던 뮤지컬 <셔플 어롱>을 만드는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들은 검정 분장을 덧칠해 흑인을 희화화하는 민스트럴 쇼나 보드빌 무대에만 설 수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셔플 어롱>에 놀라운 뮤지컬이라는 부제가 붙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셔플 어롱>이 올해 토니상에서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워낙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해밀턴>의 영향 탓이기도 했지만, 백스테이지 드라마와 역사에 대한 사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브로드웨이의 한계였다고 볼 수 있다.




흑인 뮤지컬 역사의 장밋빛 시작 <셔플 어롱>


<셔플 어롱>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원작을 재조명해 브로드웨이의 역사,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 유색인종(특히 흑인)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잊혀진 이유에 대해 돌아본다. 작품의 구조는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형태를 띠지만, 더 크게는 액자식 형식을 취하고 있다.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더해주는 식이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1921년 원작 <셔플 어롱>과 포스터만 봐도 여느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르게 이 작품이 교육적인, 또는 교훈적인 의도를 지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극장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작품 관련 공연 책자 <플레이빌>은 1921년 <셔플 어롱> 초연 당시의 복사본처럼 만들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초연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브로드웨이 작품치고 <플레이빌>을 이렇게 공들여 만든 경우는 사실 흔하지 않은데, 이것만 봐도 창작진의 의도를 알 수 있다.


1막에서는 <셔플 어롱>의 제작 과정과 작품을 같이 만들었던 창작진 간의 관계가 그려지고, 2막에서는 <셔플 어롱>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토니상 시상식에서 짧게 보여줬던 ‘브로드웨이 블루스’가 흐르면 주요 인물들이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1막이 시작된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은 무대를 둘러싼 프레임 상단에 공간이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글이 뜨는 창이 있어 좀 더 일관성을 갖는다. 첫 곡인 ‘브로드웨이 블루스’는 1921년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데,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배우의 회상이나 주석이 들어간다.



이야기는 당시 잘나가던 보드빌 콤비인 에프 이 밀러와 오브리 라일스가 자신들보다 더 유명한 유비 블레이크와 노블 시슬 콤비를 흑인 단체 행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네 사람은 마음이 맞아 원래 밀러와 라일스가 준비했던 짧은 단막극 레퍼토리를 남부 흑인 마을의 시장 선거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흑인 마을 여행>으로 만들게 된다. 네 사람은 제작비를 대줄 수 있는 백인 프로듀서를 만나 창작과 관련된 결정은 창작진의 뜻대로 한다는 약속을 받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이미 유부남인 작곡가 유비 블레이크가 <셔플 어롱>을 준비하면서 디바인 라티 지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전쟁으로 투자가 어그러질 위기에 놓이는 등 여러 위기를 맞게 된다. 네 사람은 흑인들에게 주어진 유례없는 기회에 대한 집념과 오기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공연을 완성한다.


2막에서는 최초의 흑인 공연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장밋빛이 점쳐졌던 유비 블레이크, 노블 시실, 에프 이 밀러, 그리고 오브리 라일스의 관계가 어떻게 깨어지고, 그들의 삶이 마무리됐는지, 제목의 뒷부분에 적힌 대로 ‘그 후에 벌어진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네 사람은 전례 없는 성공에 이어 다음 작품을 준비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 사소한 오해가 신문 기사들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팀이 깨져 법정 소송까지 이른다. 결국 원래 시작한 대로 블레이크-시슬, 밀러-라일스 두 팀으로 나뉘어 각자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만 여러 모로 <셔플 어롱>에 못 미치는 작품이 돼 네 명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된다. 2막의 마지막에 네 인물이 각각 내레이션을 하는데, 블루스와 재즈풍인 <셔플 어롱>의 배경 음악에 맞춰 카바레 공연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유령처럼 자신의 말년을 회고한다. 언제 어떻게 그들의 인생을 마감하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기회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왜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잊혀져 갔는지 얘기하며 작품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린다.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전하는가


2막에서 창작자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마지막에 각 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회고하기 직전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백인 기자는 <셔플 어롱>과 그 작품의 의미를 가볍게 보는 듯한 취지로 <셔플 어롱>을 요약 정리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곧바로 네 주인공이 역사의 무게를 안고 <셔플 어롱>이 남긴 유산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작품이 백인의 이야기가 아닌 흑인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다. “누가 이야기를 하고, 누구에게 기회가 주어지는가”라는 질문은 <셔플 어롱>의 정치·사회적인 의도와도 묘하게 연결된다. 여기엔 백인이 중심이 되는 브로드웨이 업계에서 흑인이 만들고, 흑인의 얘기를 담은 <셔플 어롱>이 잊혀질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분명 있다. 그런 의미에서 1막보다 조금 더 어두운 분위기의 2막은 다분히 의도되었고, 메시지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렇다고 연극적인 강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사회적인 목적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지만, 전반적인 내용과 정서적인 연관성으로는 마치 스티븐 손드하임의 <폴리스>를 연상시킨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그들의 말년에 대해 얘기할 때,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마치 당시의 인물들이 이 세계와 저 세계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 현재 시점으로 그들의 과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그렇다. <셔플 어롱>은 흑인들의 삶을 담은 작품을 제작해 온 존경받는 인물 조지 C. 울프가 연출과 각색을 맡았다. 조지 C. 울프는 다른 작품에서 종종 그랬듯이 장면 전환 같은 기술적인 부분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연극적인 부분에서 그가 왜 1921년에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들춰보고 싶었는지, <셔플 어롱>을 재조명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충분히 표현해 준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했듯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1막보다 작품을 만든 후 각 인물들의 관계와 사연을 이야기하는 2막이 느슨하다. 유비 블레이크와 라티 지의 사랑 얘기라든가, 인물 간의 뻔한 갈등 구조는 관객 입장에서 지루할 수 있다. 그런 지루함을 털어주는 것은 탭의 전설과도 같은 안무가 사비온 글로버가 작품 전반에 걸쳐 짜넣은 탭댄스의 폭발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다. 게다가 무대 위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유비, 시슬, 에프이, 오브리, 그리고 라티 지와 플로렌스 밀즈, 이 여섯 인물뿐 아니라 댄스 브레이크 장면이 있을 때마다 뛰어난 춤을 보여주는 앙상블까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흑인 배우로 구성된 앙상블의 넘치는 열정은 이야기의 구성에 빛을 더한다. 특히 1막의 시작을 알리는 앙상블 군무와, 2막에서 유비-시슬, 밀러-라일스 콤비가 각각 다른 작품을 들고 나와서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장면을 두 팀으로 나뉜 앙상블이 탭댄스 대결을 펼치는 듯한 상징적 동작들, 이 두 시퀀스에서 보여준 사비온 글로버의 안무와 그 안무를 표현해 내는 앙상블의 능력은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주요 배역을 맡은 여섯 중에서 라티 지 역할을 맡은 오드라 맥도날드는 토니상을 여섯 차례나 받은 브로드웨이 베테랑으로서, 작품 내에서 목소리 크고 주장 강한 디바답게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녀는 임신으로 7월 중 하차를 앞두고 있는데도 탭과 안무를 정확하게 소화해 무대에서 더욱 빛났다. 거트루드 샌더스와 플로렌스 밀즈 두 명을 맡아서 연기한 에이드리언 워렌 역시 각 인물의 특징을 잡아서 노래할 때 그녀의 매력을 최대한 드러냈다. 전반적으로 남자 배우들의 이야기가 여자 배우들의 이야기보다 더욱 부각되는 전형적인 남성 위주의 스토리텔링이긴 하지만, 공연 중간중간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2막 초반에 거트루드 샌더스가 쇼에서 하차하고 대신 신인 플로렌스 밀즈가 공연에 합류하는데, 플로렌스 밀즈에게 라티 지가 노래를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 두 여배우는 다양한 창법과 멜로디를 넘나들면서 노래를 주고받으며 매력을 한껏 뽐낸다. 작품을 만들어낸 4인방, 유비, 시슬, 에프이, 오브리 역할을 맡은 네 배우 역시 브로드웨이 베테랑인데, 브라이언 스톡스 미첼이 연기하는 에프 이 밀러와 빌리 포터가 연기하는 오브리 라일스 콤비는 두 사람의 목소리와 음색, 특히 성격의 하모니가 잘 어우러져 이 이야기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액자식으로 만들어진 무대는 1921년의 작품과 그 전후 벌어진 일들에 대한 주석 같은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의 성격에 잘 맞아떨어졌는데, 무대와 조명의 역할이 특히 돋보였다. 2막에서 댄스 경합을 벌이는 부분이라든가, 여러 장면에서 분위기면 분위기, 기능이면 기능, 부족하지 않게 딱 떨어지는 조명이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기여한 바가 컸다.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토니상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해밀턴>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너무 컸기 때문에 같은 카테고리에 있었던 <셔플 어롱>이 밀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셔플 어롱>이나 <엘리전스> 같은 또 다른 미국, 또 다른 브로드웨이를 이야기하는, 좀 더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덜 인정받은 결과는 조금 씁쓸하다. 원작 <셔플 어롱>은 분명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2016년의 <셔플 어롱>은 역사 속의 이야기를 왜 현재 다시 풀어내야 하고,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다른 작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좀 더 오랫동안 선전하길 바라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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