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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베헤모스> 정원조 [No.162]

글 |배경희 사진 |황혜정 2017-04-04 4,295

<베헤모스> 정원조

깊어서 맑은 세계




욕망으로 점철된 사회를 그린 <베헤모스>에서 정원조가 맡은 인물은 욕망을 위해 신념을 저버리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씁쓸하지만은 않았던 까닭은 정원조라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레 배어나는 강인한 느낌 때문이다. 신념이라는 말이 힘을 잃은 세상이라 해도, 자신의 신념대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 같은 배우. 설령 그게 허울뿐인 환상이어도 정원조는 기꺼이 그렇게 믿고 싶은 배우다.


기본을 다시 새긴 시간

 

                    

 

지난주에 프리뷰 공연을 끝내고 어느덧 개막 2주 차에 접어들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욕망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요즘엔 현실에 더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우리 이야기가 약하게 느껴지진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됐죠. 근데 다행히 관객분들이 작품 의도를 잘 파악해 생각지 못한 메시지를 찾아주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기분 좋게 공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삼 공연은 관객들의 영향을 받는구나 싶죠.


한 편의 작품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공연하는 순간이 제일 좋은 가요?

관객들을 만날 때가 제일 좋죠. 연기하는 게 좋다고 혼자 연기하면 그게 무슨 재미겠어요. 내가 만든 결과물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니까 재밌는 거죠. 연극도 결국 일종의 소통이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은 정말 소중한 존재예요. 단 한 명이라도.


이번 캐스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전혀 다른 에너지의 두 배우가 한 역에 캐스팅됐다는 거였어요. 제 생각에 정원조 씨는 정적인 배우인데, 김도현 씨는 동적인 배우에 가까운 것 같거든요. 연습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연습 초반에 힘들었던 게, 도현이가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오검은 진짜 저렇게 행동할 것 같은 거예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맨날 생각했지만, 자꾸 도현이 연기가 정답 같고 나도 저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거죠. 사실 제가 더블캐스트 공연을 많이 안 해봤거든요. 공연이라면 더블캐스트라 해도 같은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아무리 도현이처럼 하려고 한들 그렇게 될 리가 없잖아요. 처음에 좀 헤맸는데, 연출이 그런 부담 갖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라더라고요. 맞아, 목적지만 같으면 거기 도달하는 방법은 달라도 되는 건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결국 답은 제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죠.


오검의 행동 중 이해가 안 간 부분은 없었어요? 복수심 때문에 신념을 간단히 저버리는 것을 쉽게 수긍 못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저도 그런 비슷한 의문을 갖는 분들을 봤어요. 인물의 변화 동기가 약한 것 아니냐고요. 근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게, 원칙과 소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더라도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에 흔들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매일 기분 나쁜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하더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지 않을까요? 오검이 이변의 죄를 밝히는 데 집착하게 되는 것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눈엣가시였던 존재를 혼내줄 기회니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반칙을 하게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이 괴물이 되는 그 순간을 보여주는 캐릭터예요.


작품에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런 인상과는 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배우 아닌가 싶어요. 반듯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근데 그런 시선이 도리어 불편하진 않아요?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편견은 편견이니까.

제가 술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밤에 술 마시는 것보단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좋아요. 그럼 사람들은 바르고 올바른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술을 안 먹는 게 바른 건 아니잖아요? 그냥 술을 안 좋아할 뿐인 거지. 근데 그런 시선에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이 있겠죠. 저도 당연히 있고요. 하지만 사람이라면 자제할 줄도 알아야죠. 지금껏 욕심 때문에 비뚤어진 행동을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럴 일이 더 드물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먹을수록 확실히 사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데, 그 장점 중의 하나가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잘 이해 못했다면 이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여요. 젊었을 때처럼 쉽게 욱할 일이 잘 없죠. (웃음)


연기라는 건 결국 그 인물을 얼마큼 이해하느냐의 문제 잖아요.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질수록 연기가 수월해지는 면이 있을까요?

분명 전보다 더 많은 캐릭터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제 연기의 폭이 커졌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공감한다고 해서 다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표현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세상에 대한 깊은 믿음

                    

데뷔 초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될 줄 몰랐다면서요.

네,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라…. (웃음) 사실 지금도 자신감은 없어요. 도현이를 보면서 자꾸 마음이 흔들렸던 이유도 걘 되게 잘하는 것 같은데, 난 못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꾸 내가 하는 게 맞나, 의문을 품게 되는 거죠. 배우가 확신을 가지고 연기해야 관객들도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라 믿게 되는데, 그런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에요.


주위에서 연기 잘한다는 얘기 많이 들을 텐데, 의외예요.

저요? 그런 얘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연기 잘한다는 얘기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어렸을 때도 선생님들한테 맨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런 얘기만 들었어요. 본능적으로 깡따구 있게 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근데 잘한다는 얘기를 못 들어봐서 그런가(웃음), 어떤 때는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뭘까 싶어요. 그냥, 자신과 좀 더 잘 맞는 캐릭터가 있고, 덜 맞는 캐릭터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최근에 한 작품 가운데 작년에 했던 <글로리아>의 무기력하고 어수룩한 로린이 가장 잘 맞는 캐릭터 아니었나 싶어요. 인생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요? 제 가족들은 저랑 별로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웃음) 근데 또 친구들이나 후배들은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가족들이 아는 저와 사회생활을 할 때의 제가 다른가 봐요. 사실 예전에는 가족들이 공연 보러 오는 게 싫었어요. 부끄럽잖아요. 근데 애정 어린 조언이 힘이 되더라고요. 예전엔 누나랑 동생이 공연 보러 온다 그러면 오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온다고 하면 안 말려요. <베헤모스>도 얼마 전에 보고 갔는데, 어땠냐고 그랬더니 좋진 않은데 이상하진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말래요. 상처받았어요. (웃음)


그럼 지금까지 한 역할 중에 스스로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건 뭐예요?

잘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면서 재밌었던 건 <프루프>요. 천재 수학자 얘기를 다룬 대본이 재밌었거든요.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작품은 나중에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졸업하고 진짜 하게 돼서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필로우맨>도 재밌었고, <알리바이 연대기>도 재밌었어요. 몇 년 전에 갑자기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졸업 논문으로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를 <알라비아 연대기>와 연결해 써서 더 기억에 남나 봐요.


앞으로 한 달 정도 공연 기간이 남았는데, 관객들이 <베헤모스>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가길 바라나요?

저희 작품에서 가장 나쁜 인물은 이변이라고 생각해요. 욕망 덩어리라 해도 될 만큼 본능의 끝을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돈을 위해서 살인까지 저지르거든요. 오검이 이변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유에는 물론 복수심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그가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이기 때문이에요. 니가 아무리 돈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 했어도 사람까지 죽여? 와, 이런 무시무시한 놈, 어떻게든 잡아야겠다, 이런 마음인 거죠. 근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잖아요? 공연을 하면서 그걸 느낄 때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라는 말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걔가 원래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놈인데, 이번엔 사람까지 죽였어!”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대사인데, 좀 흘려듣는 분위기랄까. 내가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건가. (웃음)


돈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식이니까 그게 어떤 일인지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요.

그게 정말 끔찍한 거죠. 저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도 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24시 카페 같은 곳이 정말 사람을 위해 생겨난 건 아니잖아요.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지. 자꾸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 되니까 사람의 가치가 형편없어지는 것 같아요. 저희 공연을 보신 관객들이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는 모두가 좀 더 나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산산이 깨져버린 시대 아닌가 싶어요. 자칫 잘못하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기 쉬운 때가 아닌가 싶은데, 그런 회의감을 느끼세요?

저는 여전히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무기력과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 까닭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위에서 자꾸 그렇게 세뇌해서 그런 것 같아요.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세상은 결국 바뀌지 않을 거야” 이렇게. 아주 나쁜 사람들 아닌가요. (웃음) 누군가는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분명 세상은 좀 더 좋은 쪽으로 바뀔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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