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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이블데드> 박강현 [NO.167]

글 |안세영 사진 |이배희 2017-08-08 14,026

담백한 낙관주의자




B급 좀비 뮤지컬 <이블데드>의 주인공 애쉬는 살벌하고 황당한 좀비들 틈에서 마지막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다. 이 역할의 배우에게는 1, 2막에서 상반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력과 가창력, 체력, 개그 센스가 요구된다. 신인 배우 박강현이 유독 눈에 띄었던 건 그가 앞의 조건을 두루 충족시킨 건 물론, 과장된 연기를 하면서도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맛을 살리면서도 부담스럽게 반응을 강요하지 않는, 그 적정선을 아는 배우. 실제로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박강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행동도 말투도 억지스럽지 않은 사람.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리듬대로 말하는 사람. 그의 말에는 어떤 과장도 미사여구도 없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만큼은 단단히 뿌리박혀 있었다.


특별함을 가장하지 않아서 더 남달라 보이는 그가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고등학생 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이나영이 너무 만나고 싶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과생으로 과학자를 꿈꿨던 그는 주변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매달리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느닷없이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계기는 불순(?)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연기 자체에 매료되어 갔다. “나서기 싫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제가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할 때만큼은 짜릿함을 느꼈어요.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죠.”


이후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떡하니 합격한 박강현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외국 공연 영상을 보고 반해 뮤지컬로 관심을 넓히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적은 없지만 노래방에서 쌓은 실력으로 고등학교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기도 한 그다. 경찰홍보단 ‘호루라기’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한지상, 서경수와의 인연도 그가 뮤지컬의 길로 들어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제대 이후 창작뮤지컬 <라이어 타임>으로 데뷔한 박강현은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 역으로 이름을 알렸고, <인 더 하이츠>의 베니 역으로 단숨에 대극장 주역을 따냈다. 올해는 연극 <나쁜 자석>과 뮤지컬 <이블데드>의 주인공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블데드>는 좀비 영화와 B급 개그를 좋아하는 그가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한 작품이다. 하지만 재밌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은 어느 때보다 혹독했다. 코미디에서 중요한 완벽한 합을 위해 일찍부터 ‘텐 투 텐’ 연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박강현이 배운 것은 웃기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웃음을 끌어내는 법이다. “코미디는 의도가 들어가면 깨져버려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야지 ‘자, 지금 웃긴 거 한다’ 하고 설명하면 안 웃기더라고요. 연출님이 계속 강조하신 점이 배우들은 어떤 황당한 상황에서도 진지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예컨대 관객에게는 웃긴 ‘S마트 하모니’ 장면도 저희는 정말 진지한 사랑의 감정으로 연기하는 거예요.” 1막의 순수한 ‘교회 오빠’에서 2막의 섹시한 '상남자’로의 변신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표정과 제스처, 특히 목소리 톤에 차이를 주려고 노력했어요. 2막에서는 외화 더빙을 연상시키는 낮게 깐 목소리를 사용했죠.”


1막과 2막 중 실제 성격과 비슷한 건 어느 쪽인지 묻자 그는 “상남자인 척하는 교회 오빠?” 하고 씩 웃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양면적인 이미지는 배우로서 그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서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생긴 게 이도저도 아니라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게 어느 한 사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양하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내게 그런 여러 가지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가 앞으로 가장 맡고 싶은 역할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와 <헤드윅>의 헤드윅. 여장을 위해 거쳐야 하는 험난한 과정에 대해 운을 띄우자 스스럼없이 “그것도 다 경험이지 않을까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전 남들이 굳이 안 해도 될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해보고 싶어요. 그 모든 경험이 제 연기에 깊이를 더해 줄 거라 생각하거든요.”


데뷔 2년 만에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박강현. 그가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동료 배우나 스태프분들이 칭찬해 주실 때? 나쁘지 않구나. 네,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사실 앞일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자는 주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보상이 따라오기도 하지만, 보상이 없어도 크게 신경 안 써요.” 신인 배우의 조급함이나 객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에겐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꺼내 보는 보물이 있다. 바로 그만의 ‘보물 수첩’이다. “제가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글을 써달라고 해요. 뭐든 내가 간직하고 되새겨 볼 만한 글을 써달라고요. <인 더 하이츠> 때 양동근 선배에게 받은 글도 있어요. <네 멋대로 해라>에서 형님이 보여준 릴렉스한 연기를 모델 삼아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하니, 제 수첩에 선배의 하루 일기를 써주셨어요. 그 안에 좋은 말이 많아서 감동했죠.”
수첩에 적혀 있는 여러 글귀 가운데서도 그가 특별히 마음에 새기고 있는 문장은 이것이다. “절대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마라. 그와 동시에 자기에게 직면한 가장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 일명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품고 신념을 추구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막연히 모든 일이 잘될 거라 믿는 자기기만과는 다르다. 인터뷰 내내 박강현이 보여준 낙관적인 태도가 단순히 ‘근거 없는 자신감’처럼 비치지 않았던 이유도 그의 이런 가치관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가 단단히 쌓아올린 하루하루는 과연 어떤 미래에 가닿을까. 그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15 <라이어 타임> 안단테
2016 <베어 더 뮤지컬> 피터
2016 <인 더 하이츠> 베니
2017 <나쁜자석> 프레이저
2017 <이블데드> 애쉬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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