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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위스퍼 하우스> [No.166]

글 |김한내 연출가 사진제공 |Johan Persson 2017-07-18 3,932

웨버가 선택한 덩컨 셰이크의 신작    

<위스퍼 하우스> WHIPER HOUSE


<위스퍼 하우스>를 홍보하는 캐치프레이즈는 ‘암울하고 흥미진진한 뮤지컬 유령 스토리’였다. 아닌 밤중에 유치하게 귀신 얘기라니! 10대들의 성과 사랑의 질풍노도를 파격적으로 다루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작곡가 덩컨 셰이크의 신작이라고 하기엔 김빠지는 홍보 문구였다. 하지만 공연 전 구입한 프로그램 속에서 ‘이 작품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경한 이민 반대/강제 추방 정책으로 충동질되는 동시대 서구 사회의 외국인 혐오 추세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는 극작가 카일 재로(Kyle Jarrow)의 노트를 본 순간, 의심은 극도의 기대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등대를 떠도는 유령들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무대 뒷벽을 가득 채운 구름이 잔뜩 낀 하늘. 끊임없이 일렁이는 스산한 회갈색의 파도 영상 아래, 중앙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4층의 원형 계단 구조로 된 무대 위로 한 쌍의 남녀 유령이 등장하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등장과 동시에 울려퍼지는 그들의 첫 노래는 이곳이 어떤 곳이며 등장인물들이 각각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국 북동부 해안에 위치한 메인주의 고립된 등대. 이곳을 지키는 중년의 여인 릴리는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끊은 채 외롭게 살고 있다. 이어 동네 보안관 찰스와 릴리의 일을 도와주는 일본인 하인 야스히로가 간단히 소개되고 노래의 말미에 11세의 소년 크리스토퍼가 등장한다. 전쟁통에 비행기가 격추되어 파일럿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엄마도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소년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고모 릴리에게 맡겨진다. ‘죽는 게 나아(Better To Be Dead)’라는 곡목에 어울리게 유령들은 단순히 인물 소개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 모두가 멍청한 짓들을 해왔기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한 시간 사십 분의 공연 내내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며 극 전체의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유령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첫 곡에서부터 촉발된다.


한편, 고모인 릴리는 몰래 흑백사진 몇 장을 꺼내어 보며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을 뿐 크리스토퍼에게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등대의 한구석 옹색한 이부자리에 몸을 뉜 채 오지 않을 엄마를 마냥 기다리는 크리스토퍼는 그 밤, 벽 속에서 흘러나오는 유령들의 속삭임을 듣고 두려움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 소년의 질문에 고모는 세상에 유령은 없다고 말한다. 고모는 어린 시절 남동생(크리스토퍼의 아빠)이 유령이 무섭다며 울 때마다 불러주었던 자장가 한 토막을 들려주며 꿋꿋하게 지내기를 당부한다.


그러던 중, 크리스토퍼는 등대를 찾아온 보안관 찰스로부터 유령의 정체에 대해 듣게 된다. 찰스의 솔로로 시작해 유령들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솔로몬 스넬 이야기’는 <위스퍼 하우스>의 대표곡 중 하나다. 이 노래에 따르면 이 등대에 깃들인 유령들은 수십 년 전 이 해안에서 배가 난파되면서 죽은 남녀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종교가 서로 다른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 유령이 되었다고 한다. 찰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유령들이 이곳을 서성이며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이유를 아직은 관객들은 알 길이 없다. 찰스의 노래에 이어 유령들은 그저 황열병에 걸려 죽어간 솔로몬 스넬의 이야기를 노래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황열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알지 못하던 시절, 채 죽지도 않은 그를 사람들은 묻어버리려고 했다. 솔로몬은 자신의 손가락 끝에 종과 연결된 실을 매달고 자신이 종을 치면 무덤에서 꺼내어 달라고 사람을 샀지만, 그 사람은 술에 취해 종소리를 듣지 못했고 솔로몬 스넬은 그대로 생매장을 당한다. 이 곡의 후렴구인 “과도한 신뢰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Too much trust is the road to hell)”은 유령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불리며 이들 사이에 불신의 저주를 부른다.



드러나는 진실


찰스는 릴리를 만나 이틀 뒤에 독일의 배가 이곳 해안에 잠입할 예정이라는 첩보가 있으니, 그때 등댓불을 꺼 적을 교란할 것을 부탁한다. 자신이 작전을 위해 다시 방문할 때까지 야스히로를 이곳 등대에서 내쫓으라고 강력히 요청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스퍼 하우스>를 탄생시킨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 함께 대본과 가사를 쓴 카일 재로는 프로그램에서 창작에 영감을 준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독일 잠수함이 1942년 당시 미국 동부 해안에서 활동하며 미 해군과 여러 차례 교전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미국의 동부 해안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같은 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적국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을 이러한 ‘제한 구역’에서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선포했는데 이 결과 많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수용소로 강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보안관 찰스의 요청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크리스토퍼는 우연히 릴리와 찰스의 대화를 엿듣고는 일본인 야스히로를 염탐한다. 야스히로가 자신의 방에서 카메라를 몰래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는 그를 스파이라 의심하고 릴리 고모에게 그를 쫓아낼 것을 강변한다. 릴리는 갈등 끝에 그간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야스히로를 찾아가 어렵게 떠나달라고 말한다. 대화 중에 야스히로는 카메라가 릴리를 위한 선물임을 고백하고, 좌절된 사진사의 꿈을 다시 펼치기를 응원하는 그의 마음에 감동받은 릴리는 그를 숨겨주기로 한다.


야스히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2막은 빠르게 진행된다. 10곡을 소화한 1막과는 달리 2막에서는 단 6곡의 넘버밖에 소개되지 않는다. 보안관 찰스의 애국심에 고취된 크리스토퍼는 야스히로를 밀고하고 야스히로는 몸싸움 끝에 찰스에게 붙잡힌다. 밀고를 했다는 두려움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크리스토퍼는 가출을 감행한다. 갑작스런 폭격이 일어나고 나서야 어른들은 크리스토퍼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를 찾아 나선다. 물가에서 크리스토퍼를 발견한 릴리는 유령들의 저주에 홀려 물속으로 빠져드는 크리스토퍼를 살려내려 안간힘을 쓴다. 유령들과 릴리, 크리스토퍼의 실랑이는 무대의 가장 낮은 층에서 이루어지는데 포그를 채워 그 바닥을 감춤으로써 더욱 극적이고 환상적인 무대 연출을 보여준다. 마침내 크리스토퍼를 물 밖으로 끌어낸 고모는 감춰왔던 진실을 조카에게 털어놓는다. 과거 남동생(크리스토퍼의 아빠)과 등대 위에서 놀고 내려오다가 등대에 불을 켜 놓는 것을 깜빡했는데, 자신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바람에 남동생이 자신을 구하는 동안 배가 난파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꿈을 접고 평생 등대지기로 외롭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년을 찾아나선 야스히로를 쫓던 찰스는 크리스토퍼 일행과 만나게 되고, 야스히로의 선의를 이해하고 그에게 사과한다. 야스히로에 대한 마음을 계속 부정해 왔던 릴리는 체포되어 가는 야스히로에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속삭임(Whisper)을 전한다. 과거의 유령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고모를 위해 어린 조카가 불러주는 자장가 속에 평생 릴리를 옥죄고 있던 유령들은 그들의 저주와 함께 사라진다.




전혀 무섭지 않은 유령 이야기


2막을 보면서 빠른 진행 속에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못하고 다소 급하게 해소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비슷한 이유로 <위스퍼 하우스>는 런던 평단에서 높은 별점을 받지 못했다. 극적 개연성 부족과 단면적인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현지 리뷰의 곳곳에 표현되어 있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나 최근작 <아메리칸 사이코>가 기존의 희곡이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2015년 <요술(Legerdemain)>에 이은 덩컨 셰이크의 두 번째 순수 창작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워크숍을 통해 개발되었고 같은 시기에 이미 덩컨 셰이크 본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반도 출시되었다. 짐작건대, 대본이 완전히 완성되기 전에 넘버들이 먼저 쓰였고, 그러다 보니 가사의 내용이 구체성을 띠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덩컨 셰이크의 음악 자체는 드럼, 기타, 베이스, 건반으로 이루어진 정통 록 혹은 팝 밴드의 구성에 클라리넷, 프렌치 호른 등의 브라스 밴드가 결합한 이색적인 조합임에도 매우 훌륭하게 연주되었다. 유령 역의 사이먼 베일리(Simon Bailey)와 니암 페리(Niamh Perry)의 노래도 흠잡을 데 없다는 평을 받았지만, 가사는 시종일관 드라마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서성이기만 했다. 뮤지컬에서는 스토리 전개의 향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노래가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매우 효과적인 공식인데, <위스퍼 하우스>에서는 그런 곡을 찾아보기 힘들다. 은유적이고 두루뭉술한 가사는, 넘버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전체 극의 스토리텔러로서, 여러 세대를 아울러 과거로부터 동시대적 의미를 찾아내어 주는 가교의 역할을 해야 할 유령들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켰다. 현지의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전혀 무섭지 않은 유령 이야기’라는 혹평을 남겼다. 이는 유령들의 저주가 그저 누군가의 실수로 처녀 총각 귀신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신세에서 비롯된 것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는 데다, 그마저 모호한 가사 속에 얹히다 보니 그 저주마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 천명한 바와 같이, 인종 혐오 추세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엔 일본인 야스히로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야스히로에 대한 유령들의 소개는 ‘구원을 찾아 낯선 땅으로 찾아든 외국인’ 정도에 불과했고 극 중에서 보여준 야스히로의 모습도 릴리를 사랑하고 크리스토퍼를 아끼는 착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면서, 독일과는 달리 현재까지 과거의 죄에 대해 실질적인 사과나 반성을 하고 있지 않은 일본의 국민을 마냥 선한 개인으로 그리고, 그런 개인을 그저 선한 개인들이 포용한다는 드라마는 역사에 대한 거시적 인식뿐만 아니라, 역사적 증오와 개인적 휴머니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미시적인 갈등에 대한 탐구마저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런던에서 어떤 작품을 보게 되든 습관적으로, 이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다면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여전히 반일 분위기가 짙은 우리나라에서 야스히로를 둘러싼 드라마의 부족은 이 작품의 창작 의도에 대한 관객들의 오해마저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현지의 평단에서도 릴리의 죄책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일본인 야스히로의 ‘타자성(Otherness)’을 다루는 깊이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스퍼 하우스>에 대해서 느낀 아쉬움이 기대로 승화될 수 있다면 이 공연을 올린 극장 디 아더 팰리스(The Other Palace) 덕분일 것이다. 명망 있는 미국의 창작자들이 개발 중인 공연을 굳이 미국의 물적 인적 자원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초연을 런던에서 올린 이유는 아마도 이 극장의 힘일 것이다. 디 아더 팰리스는 올 2월 문을 연 뮤지컬 전용 극장인데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그 소유주이다. 그는 디지털화된 극장 환경에서 창작자들이 작품을 온전한 형태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으면 하는 소망으로 웨스트엔드에서 벗어난 런던 서부에 이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지만, 작품을 개발하는 단계에선 무대나 조명, 영상 등의 모든 물적 조건을 실현할 수 있는 극장에서 쇼케이스를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작품이 쇼케이스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아 본 공연의 기회가 와도, 창작자들은 공연의 외연을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오랜 경험을 한 창작자로서 이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극장주로서 큰 손실의 위험을 감당하고서라도 가능성 있는 뮤지컬 대본과 창작자에게 애초부터 이런 이중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디 아더 팰리스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발전 단계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더욱 충실해진 <위스퍼 하우스>를 수년 후에 뉴욕이나 런던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도 관객들과 만나게 되길 바라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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