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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VIEW] 절대권력 안에 감춰진 연약한 마음 <태양왕> [No.128]

글 |누다심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4-06-16 4,086
많은 자신을 태양으로 비유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는 세계 역사상 최고의 권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왕이 23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기에 ‘신의 선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 루이 13세가 죽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에 왕이 되었다고? 역시 어렸을 때부터 막강한 권력자로 살았던 사람이라 다르군!’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다. 한 없이 무력했고 상처 입은 영혼을 가졌기에 절대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 과연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정치와 경제, 전쟁은 어머니 안느 대비와 마자랭 추기경의 손에 달려 있었다. 자신은 허수아비, 그저 껍데기였을 뿐이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세상 물정을 몰랐으니 이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치다. 그렇다면 이외의 것은 달랐을까? 그렇지 않다. 왕은 만나야 하는 사람, 해야 하는 공부, 먹어야 하는 음식 등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눈과 귀가 곳곳에 있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살았다. 말이 좋아 왕궁에 사는 왕이지,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는 감옥에 사는 죄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갑갑한 삶에 한 줄기 빛이 비추었다. 마자랭 추기경의 조카 마리 만치니가 나타났다. 루이 14세는 그녀에게 반했다. 왕궁에서 태어난 그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모습, 왕궁에 출입하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평민이기에 가능했던 생기발랄함과 자유로움이었다. 얼마나 멋져 보였겠는가. 프랑스의 왕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 여기에 더해 그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루이 14세가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루이 14세는 마리 만치니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허나 왕은 평민과 결혼할 수 없는 법. 안느 대비와 마자랭 추기경은 루이 14세가 스페인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며 극렬히 반대한다. 루이 14세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누구보다 자유롭고 생기 넘치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마자랭 추기경은 자신의 조카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지킬 수도 없었던 루이 14세. 극도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그는 상처받았다.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모두가 왕이라 불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 좌절과 고통 속에서, 무력감과 연약함 속에서 그는 ‘왕이 되리라’고 결심한다. 

나 짊어지고 나갈 내 운명의 무게
밀려오는 두려움 떨치고 이겨내리라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리라 저 하늘 태양처럼 세상 밝히리라
난 저 태양 같은 왕이 되리라 세계의 정점에서
모두가 우러러 바라보는 난 이 세상의 왕이 되리라


루이 14세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 만치니를 잃고,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안느 대비를 떠나보낸 후 마자랭 추기경을 실각시키고 전면에 나서게 된다. 드디어 무력함과 연약함 속에서 막강한 권력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두움과 그늘에서 벗어나 온 세상의 중심인 태양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에게 선포한다. 

“짐이 곧 국가다”



루이 14세는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자신을 보좌했던 마자랭 추기경과 오랫동안 사랑했던 몽테스팡을 내치는 모습 속에서 루이 14세를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사람으로 보았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착취하고 악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절대권력자로 보았다.

우리 주변에도 루이 14세처럼 겉으로 화려하고, 겉으로 강한 사람들이 있다. 주변 사람을 막대하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내치는 사람이 있다.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 배경을 보면 루이 14세처럼 상처받은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경험을 가졌다. 그래서 겉으로는 화려하거나 겉으로 강할지 몰라도 그 내면은 여전히 연약한 경우가 많다. 

루이 14세도 그랬다. 그의 내면에는 아직 충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자신의 여린 마음을 차분하게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했다. 절대권력자로서 자신을 사랑한 몽테스팡 같은 요부가 아니라, 한없이 무력하고 연약했을 때의 자신을 사랑한 마리 만치니 같은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 했다. 그래서 프랑소와즈를 선택했다. 프랑소와즈 역시 마리 만치니처럼 신분의 차이가 현격했기에 반대가 많았지만, 루이 14세는 그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예전의 무력하고 연약하기만 했던 루이 14세가 아닌 태양왕 루이 14세였기 때문이다. 루이 14세의 절대권력 이면에는 연약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꿈꾸는 이.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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