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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끝이 좋아야 다 좋다 <몬테크리스토> [No.80]

글 |박병성 사진제공 |떼아뜨로 2010-05-11 6,218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실없는 질문일 수 있지만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music컬’이니만큼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극예술은 드라마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뮤지컬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것이 드라마이고, 노래는 그것을 치장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다. <몬테크리스토>를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 2009년 스위스에서 첫선을 보인 후 국내 무대를 찾았다. 최근 유럽 음악극에서 발전한 클래식한 유럽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나 프랑스 대형뮤지컬들이 감성적이고 클래식한 유럽 뮤지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삼총사>나 <살인마 잭>은 유럽 뮤지컬이지만 브로드웨이적인 색채가 많이 가미된 작품들이다. 그것이 한국적으로 각색된 결과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공연된 두 작품은 유럽 뮤지컬이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은 느낌을 준다. <몬테크리스토>는 브로드웨이 색채가 가미된 후자에 속한다. 비록 스위스에서 초연되었지만 미국 출신의 연출가인 로버트 요한슨이 연출을 맡고,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유럽 뮤지컬과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차이라면 전자가 감성에 호소하고 비약을 통한 시적인 전개를 한다면, 후자는 세부적인 드라마를 통해 사실적인 전개를 추구한다. 그것은 무대나 안무에서도 드러난다. 유럽 뮤지컬이 간단한 소도구로 상징적인 처리를 하는 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몬테크리스토>에서도 에드몬드가 갇힌 감옥이라든가, 몬테크리스토 섬의 풍경,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고급스런 저택 등 모든 장소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에드몬드가 파리아 신부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땅을 파는 장면까지 직접 재현한다. 사실적 재현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영상이다. 무대 앞 샤막에 비친 영상은 실제 무대와 겹쳐지면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특히 영상으로 표현한, 바다에 버려진 에드몬드가 자루를 풀고 나오는 수중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해적선 장면에서 흥청거리는 분위기나 싸우는 모습 등, 상황을 격정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 때 아크로바틱이나 춤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로버트 요한슨의 연출은 다양한 장소 변화와 사건들을 유연하게 풀어갔다. 객석 통로로 등퇴장해 무대 공간을 확장시켰는데, 국가를 넘나들고, 섬과 바다, 파리와 로마를 오가는 특성을 잘 반영한 선택이었다. 그의 연출 역시 드라마가 명료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음악과 무대, 안무는 에드몬드의 모험담을 충실히 반영해내고 있다. 문제는 드라마 그 자체이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뒤마의 원작에 기본 토대를 두지만 결말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섯 권이나 되는 원작 소설을 2시간 정도의 무대에 단순화시켜 효과적으로 압축했다. 1막에서 촉망받는 젊은 선원인 에드몬드 단테스가 몬데고와 당글라스, 빌포트의 음모로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잃고 감옥에 갇힌다. 에드몬드는 감옥에서 만난 파리아 신부에게 검술과 수학 등을 배우고 신부가 가르쳐준 섬에서 보물을 찾아 복수를 결심한다. 음모에 빠지고 복수를 결심하는 1막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스피디하게 전개되면서 긴장감을 준다. 1막 마지막에 복수의 칼을 갈며 부르는 ‘너에게 선사하는 지옥(Hell to Your Doorstep)’은 2막에서 전개할 복수의 과정을 기대하게 만든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복수의 과정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복수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몬테크리스토의 내면에 집중한다. 에드몬드 역의 류정한은 ‘너에게 선사하는 지옥’에서 건실한 청년이 복수를 다짐하며 악마처럼 변하는 몬테크리스토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왕처럼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부를 가졌지만, 그 능력을 복수에만 집중하는 그는 이전의 에드몬드가 아니다.
그러나 몬테크리스토의 복수 과정은 ‘더 많이 더 높이’ 한 곡을 부르는 동안 모두 이루어진다. 돈, 명성, 여인 때문에 에드몬드를 파멸시킨 당글라스, 빌포트, 몬데고를 몬테크리스토는 같은 방식으로 파멸시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받은 대로 돌려준 복수는 상징적이지만 너무 싱겁게 끝나 버린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 작품의 초점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복수를 단순화시킨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복수 이후 메르세데스를 만난 몬테크리스토는 매를 날려 가냘픈 새를 무참히 죽이면서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변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몬테크리스토가 복수를 선택하면서 사랑을 잃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어리석은 복수의 허망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몬테크리스토를 보며 메르세데스의 “사랑은 베푸는 자의 것”이라고 읊조리듯 흘리는 대사가 깊게 뇌리에 남는 것도 더 이상 순수했던 에드몬드로 돌아갈 수 없는 한 남자의 운명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몬테크리스토>는 이 지점부터 무리수를 둔다. 원작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의 복수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자 죄책감을 느끼고 복수의 칼날을 거둬드린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도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몬테크리스토가 다시 에드몬드로 돌아오도록 만든다. 이때부터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알버트의 약혼녀인 발렌타인이 갑자기 부각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발렌타인에게 솔로곡 ‘아름다운 거짓말(Pretty Lies)’을 부르게 한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지만 이 순간까지 발렌타인이 노래 부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래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발렌타인을 무리하게 부각시킨 이유는 다음 장면에서 알게 된다. 몬테크리스토가 복수의 불꽃을 잠재운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알버트와 발렌타인의 사랑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적인 논리상으로는 큰 무리가 없지만, 복수의 화신으로 변했던 몬테크리스토를 되돌릴 만큼 알버트와 발렌타인의 사랑이 감동적이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2막 초반부를 떠올려 보면 로마 여행 중 다른 여자를 쫓아다니다 납치되는 인물이 바로 이 알버트다. 게다가 발렌타인은 판사 빌포트의 딸로 그동안 아무런 설명이 없었던지라 아버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물려받는다. 그런 둘의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을 잃고 수십 년 감옥에 갇혀 복수를 결심한 사람이 변하게 된다는 설정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한번 무리수를 둔 작품은 좀 더 과감해진다. 메르세데스를 빼앗아간 몬데고가 몬테크리스토에게 또 다른 복수를 감행한다. 칼싸움이 전개되고 결투에서 이긴 몬테크리스토가 방심하는 틈을 타 몬데고가 그를 공격하려 하자 알버트가 몬데고를 총으로 쏜다. 알버트는 자신이 한때 죽이려고 했던 몬테크리스토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를 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하기 위해 연출은 부단히 노력한다. 우선 몬테크리스토가 알버트와의 결투에서 알버트를 살려주고, 몬테크리스토와 몬데고의 칼싸움 도중 몬데고가 알버트를 상처입힌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총을 쏘는 막장 아들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대사는 더욱 기가 차다. “너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다.” 알버트가 몬데고가 아닌 에드몬드의 아들이란 이야기다. 그러니 의붓아버지는 죽여도 상관없다는 식의 대사는 옥주현의 열연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인물은 몬테크리스토가 아닌 몬데고가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만난 에드몬드와 메르세데스, 알버트는 가족애를 느끼고 화해의 포옹을 나누며 막을 내린다.

 

<몬테크리스토>는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빠른 전개와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영상과 적절한 세트 전환으로 흥미롭게 이끌어갔다. 주연 인물뿐만 아니라 자코프, 루이자, 파리아 신부 등 조연 인물들의 캐릭터들도 개성이 분명하고 입체적이어서 드라마를 풍부하게 했다. 더구나 류정한, 옥주현 등 주연 배우들의 호연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복수의 과정이 아닌 복수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을 그린 설정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황폐해진 인간을 섣불리 구원하고 화해시키려 들면서 작품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아름다운 음악도 구원할 수 없었던 마지막 10분은 2시간여 동안 쌓아왔던 재미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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