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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1) 무지개들의 합창 <빨래> 솔롱고스 [No.110]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메이크업,헤어|차윤경,이선영,김홍민 |장소협찬|맥앤로건 2012-11-27 6,586

 

이번 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오는 11월 11일 2,000회 공연을 맞는 뮤지컬 <빨래>의 솔롱고들이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고 “아파요, 돈 줘요, 때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달고 사는 몽골 출신의 이주 노동자 솔롱고. ‘무지개’라는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착한 심성을 지닌 그의 아픔과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7년간 16명의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 중 12명이 <빨래>의 2,000회를 기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10월의 어느 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카메라 앞에 선 김재범, 김종구, 박시범, 박정표, 박호산, 성두섭, 이규형,  이주광, 이진규, 정문성, 최호중, 홍광호가 바로 그들이다.

 

 

강원도에서 상경한 비정규직 서점 직원 나영과 몽골 출신의 이주 노동자 솔롱고, 그리고 그 이웃들의 고되지만 따뜻한 서울살이를 그린 <빨래>가 처음 세상 빛을 본 시기는 2003년 12월이다. 추민주 연출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으로 선보인 무대를 기억하는 김재범은 “그때 솔롱고가 민준호 형이었고, 이재준 연출이 빵과 낫심(마이클)이었다”며 추억 속의 <빨래>를 끄집어 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공길전> 등 한예종 출신의 작가·연출가들의 작품들과 인연이 깊은 그는 <빨래> 역시 추 연출과의 인연으로 2008년 3번째 팀에 합류했다. “꽤 일찍 출연해서 기억을 못하시는 분들도 많다”며 내심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빨래>는 “무대 옆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게 만들었던” 따뜻한 공연 중 하나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솔롱고를 연기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는 그에게 ‘참 예뻐요’는 설렘보다 가슴 아픈 곡으로 남아있다. ‘내게 말을 걸어준다면, 내 손 잡아준다면’ 하는 가사에서 스스로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솔롱고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김재범과 출연했던 박시범에게는 공장장과의 전화 장면이 인상적이면서도 아쉬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한 달 정도 라면만 먹고 살아본 적은 있지만 솔롱고와 낫심처럼 서너 달까지는 못해봤다”는 것이 그 이유. 가장 친한 친구가 몽골 여성과 결혼한 덕에 몽골 친구들과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고충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쉽다. 추민주 연출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으면서도 그 작품이 <빨래>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시범. 전작의 솔롱고들(민준호, 임진웅)에 비해 체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185cm가 넘는 자신에게 솔롱고를 맡긴 이유를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박시범은 “좋은 사람들과 지내며 쌓은 새로운 경험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역대 가장 큰 솔롱고가 박시범이었다면, 4차 팀에 합류한 박호산은 가장 나이가 많은 솔롱고였다. 공연을 본 날에 추민주 연출을 만나 “어떻게 하면 이 작품에 출연할 수 있냐”고 물었다는 그는 두 달 뒤에 치른 오디션에 도전했다. 하지만 <빨래> 제작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배우에게 솔롱고를 맡기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내가 빵(서점주인)을 하다가 솔롱고를 하지는 못할 거 아니냐고.” <빨래>의 무엇이 그를 그리도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박호산은 희정 엄마와 구씨의 대화를 들려줬다. “‘5백에, 아니다 보증금 1천에 18 하는 데로 이사 가자’ 하는 대화가 찡하더라고요. 그러다 나영이 옥상에서 빨래를 ‘툭’ 하고 터는데, 하얀 조명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는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내 옥탑방 생활과 겹쳐져서….” <빨래>를 통해 위로받기는 그와 나란히 무대에 섰던 박정표도 마찬가지다. 준비 부족으로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가 김희원 예술감독의 추천으로 기사회생하게 된 그는 “돈을 안 받고라도 출연하겠다”며 강하게 출연의지를 밝혔다. 서울살이 5년 차에 만난 솔롱고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위로하려면 공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 때가 많은데 <빨래>는 달랐어요. 연기하면서 울고 나면 시원하고, 박수 받으면 내일 더 잘살고 싶어지고. 보는 사람뿐 아니라 하는 사람도 같이 위로받았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부로 전할 수 없어 고민을 많이 했다는 그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옥탑방으로 이사를 한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의 호기였겠지만 그만큼 절실했으리라. 지칠 때면 <빨래>를 찾아가 힘을 얻었다는 그는 햇수로 5년, 4회 차에 걸쳐 솔롱고 역으로 무대에 올라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냈다. 그러는 사이 30대가 되고 결혼도 하고 오디션 없이도 작품에 캐스팅되는 배우가 됐지만 박정표는 여전히 솔롱고가, <빨래>가 그립다.

 

‘초연 첫날 유료 관객이 두 명이었고 한 달 동안 유료 관객이 열 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던 <빨래>는 2009년 무대와 음악, 캐릭터 등에 변화를 겪었다. 골목 배경의 무대에는 다양한 풍경들이 더해졌고, ‘안녕’과 ‘한 걸음 두 걸음’ 등 두 곡이 뮤지컬 넘버에 추가됐으며, 7명이었던 인물은 12명으로 확대됐다. 2008년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빨래>를 본 이후 솔롱고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홍광호가 작품에 합류한 것도 바로 이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지킬 앤 하이드>와는 달리 분장부터 스무 개가 넘는 소품을 챙기는 일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빨래>의 소소한 추억들을 잊지 못하는 그는 “학생으로 돌아가 학교 워크숍을 하듯 배우면서 참여했다”고 고백했다. 어색한 외국어 표현을 위해 영어로 연습한 적도 있었다. “영어를 잘 못하니까 괜히 더 어색하고 말도 잘 안 나오고 주눅 들고 눈치 보게 되는 솔롱고의 심정을 더 잘 알 것 같았다”며 웃던 홍광호는 ‘무대 위의 상황을 진짜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하며 연기 도움을 많이 준 주인 할매 역의 이정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학전그린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오픈 런 공연을 시작한 <빨래>는 정문성과 이규형을 새로운 솔롱고로 맞았다. 솔롱고가 되기 전, 필리핀 이주노동자 낫심 역에 캐스팅돼 박호산, 박정표, 임창정, 홍광호 등과 호흡을 맞췄던 정문성은 “솔롱고가 하고 싶어서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했다”며 웃었다. ‘솔롱고보다 더 사랑받는 낫심이 되겠다’며 섭섭한 마음을 다독인 그는 캐릭터에 다양한 시도를 더했고, 그 노력은 낫심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졌다. 낫심을 경험한 이후에 만난 솔롱고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예민하고 거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안에 들어가서 보니 다르더라고요.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고 밝게 살고 있었고요. 돈이나 맞는 것보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게 뜻밖이었어요. 똑같이 덥고 똑같이 배고픈데 한국 사람들만 챙긴다는 거예요, 치사하게.” 늘 참아야 하는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낫심과 솔롱고로 서면서 정문성은 어른이 되어갔다. <빨래>가 아니었다면 이규형을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지 못할 뻔했다. 이전까지 지원한 모든 뮤지컬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 뮤지컬 도전을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솔롱고와 나영, 구씨를 뽑는 오디션 공고를 본 그는 큰맘 먹고 오디션에 참가했고 운 좋게도 2009년 6차 팀에 중간 합류할 수 있었다. 솔롱고를 이해하기 위해 동대문의 몽골 식당을 자주 찾았다는 그는 투박한 외모 때문에 오히려 몽골 사람으로 오해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첫 뮤지컬 무대에서 솔롱고의 묵직한 울림을 선보인 이규형은 네 시즌을 <빨래>와 함께했다.

 

2010년 이규형과 8차 팀에 합류한 성두섭에게도 <빨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기만의 솔롱고를 만들어갔다. “사람 냄새 많이 나는” <빨래>를 통해 연기의 변화도 경험했지만, 그보다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크다. ‘비오는 날이면’을 부를 때면 마치 자신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더 감상적이 됐다는 성두섭.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동네이고 사람들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앞으로 몇 년은 더 공연할 수 있을 거예요” 하며 미소를 머금는다. 2011년 성두섭, 정문성과 솔롱고로 무대에 선 이주광은 “늘 꿈꿔 왔던 서른 살의 첫 단추를 잘 낀 것 같다”며 <빨래>를 추억했다. 자기 안의 선한 모습을 꺼내볼 수 있었던 것도,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됐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다. “생긴 것과 달리 ‘욱’하는 성격도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 경향도 있었거든요. 솔롱고로 사는 동안에는 뭐든 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인터뷰만으로 진행됐던 제작진과의 오디션에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작품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한 그의 얘기가 현실이 된 셈이다. 김종구 또한 착한 작품을 만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시적화자가 되어 시를 읊고, ‘아프고 눈물 나는 사람’을 대사로 연기하는 등 힘들고 어색한 오디션을 거쳐 <빨래>에 참여하게 된 김종구는 자신과는 다른 순수하고 착한 솔롱고를 표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이니까 화날 때도 있고 공연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빨래>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고 착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참 웃긴 공연이죠.” 곁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모난 부분을 매만져준 좋은 스태프와 배우들, 관객들도 고마울 따름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 속에서 보낸 7개월이 마냥 행복했다는 김종구는 “손잡고 어깨동무하는 다른 솔롱고들과 달리 백 허그로 나만의 엔딩 신을 연출할 수 있어 기뻤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이진규와 최호중은 지난 4월에 <빨래>에 합류했다. 2010년 마이클로 먼저 출연한 적 있는 최호중은 자신이 곁에서 봐온 솔롱고들의 이미지를 지우는 일이 힘들었다고 했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몽골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솔롱고에 덧입혔던 그는 극적 재미를 위해 한국어가 어색한 컨셉으로 서서히 바꿔갔다. 실제로 남직원 같은 캐릭터인 그로서는 11년 만에 선보인 멜로 연기로 어색하고 가슴 뛰는 어쩔 줄 모르는 경험도 해야 했지만, 그것 역시 나영을 처음 본 솔롱고의 심정으로 받아들였다고. 마이클과 솔롱고로 1년 6개월을 보내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는 최호중은 기회가 닿으면 구씨와 빵 역할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배우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빨래>에 참여한 이진규에게 솔롱고는 오랜 꿈같은 배역이었다. 그는 2008년과 2011년 오디션에서 낫심 역을 제안받았지만 자신이 목표로 한 솔롱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연을 포기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아차’ 싶지만 솔롱고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뜨거웠다. 그토록 바랐던 작품에 투입되고 나서야 “<빨래>에는 누구 하나 주인공이 아닌 이가 없다”는 것을, “그동안 솔롱고 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15명의 배우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대본이 워낙 좋으니까 그냥 마음 편히 하자 싶었어요. 저만의 솔롱고보다는 하루하루 다르게 살아가는 솔롱고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받쳐주는 맛있는 조연이 더 탐나는 이진규에게, 6명의 나영과 새로운 호흡을 맞추게 된 2,000회 기념 공연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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