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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아르센 루팡> 양준모, 두 개의 인격? 그게 사람이다 [No.113]

글 |송준호 사진 |박인철 2013-02-13 5,620

인터뷰가 항상 얼굴을 마주본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서 시작되지만, 어떤 경우는 그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 순간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배우 양준모의 경우는 후자다. 데뷔 시절부터 워낙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잇달아 도맡아온 묵직한 존재감의 배우. 마치 다음 공연은 안 할 듯, 모든 걸 다 쏟아붓는 열정 또는 대책 없음이 그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국내 초연으로 창작되는 <아르센 루팡>에서 루팡 역을 맡게 됐다. 팬텀, 지킬에 이어 루팡이라니, 마치 ‘삐뚤어진 신사’ 전문 배우 같다. 광기에 가까운 카리스마로 캐릭터를 지배해온 그는 새로운 인물 ‘괴도 루팡’을 맞아 어떤 무기를 꺼내들까.

 

                          

장소협찬|카페 푸치니(02-580-1851)


묵직하고 단단한 양준모표 루팡

요즘 두 번째로 지킬을 연기하고 있는 양준모는 <지킬 앤 하이드>의 공연장과 <아르센 루팡>의 연습실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낮 공연에서 예의 ‘혼신의 힘’을 다한 그는 잠시 후 탈진 상태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미처 메이크업도 제대로 못한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나서는 것에 그는 내내 찜찜해했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팬텀, 지킬과 하이드, 안중근까지 언제나 센 캐릭터의 가면을 쓰면서도 진짜 자신은 감춰온 배우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제작 발표회에서 쾌활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이끌던 그 양준모가 아니었다. 물론 공연이 끝난 후라 힘이 빠진 탓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실제의 양준모는 굉장히 신중하고 과묵한 남자였다. 모든 대답은 ‘음’이라는 말머리가 붙고 몇 초의 침묵이 지나서야 그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이게 원래 성격이에요. 말도 별로 없고 신중하다는 소리도 듣는 편이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평소대로 조용히 앉아 있는 걸 주변에서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약간 오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그가 루팡이라니, 한편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했다. 소설, 만화, 영화에서 봐온 루팡의 이미지는 ‘괴도’이면서 동시에 ‘쾌도’이기도 했다. 루팡은 만능 스포츠맨이면서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인 데다 의외로 허술한 매력도 있는 쾌남아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많은 마니아층을 이끄는 요인이기도 하다. 빈틈없는 천생 ‘싸나이’ 양준모는 도대체 이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려고 궁리 중일까.


이번에는 답이 금방 나왔다. “양면성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린 모두 지킬이나 하이드 같은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팬텀도 겉으로는 포악하고 폭력적인 사람이지만 실은 모성애에 대한 결핍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는 인물이죠. 루팡 역시 아픔을 딛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몰래 상황을 꾸미는 인물이거든요. 지킬과 하이드는 말할 것도 없죠.”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듯 그는 한 시간 전에 바로 그런 두 인격을 오가는 불꽃 연기를 펼쳐 보였다. 그의 설명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이런 연기가 그대로 루팡을 표현하는 데에도 좋은 자양분이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결국 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많은 관객 분들이 저의 하이드를 좋게 봐주시는 만큼 제가 하이드에 힘을 더 실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지킬을 표현하는 게 더 신경이 쓰이고, 어려워져요. 그래서 지킬을 더 잘 표현하려고 주변에 스피치나 프리젠테이션 잘하는 사람을 알아봐서 그걸 따라하기도 하는 중이에요.”


그런 양면성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표현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터. 그러고 보면 그동안 그가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역들은 하나같이 양면적인 인물들이었다. 심지어 <영웅>의 안중근과 <서편제>의 유봉도 그랬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보였겠지만, 한편으론 나약한 내면을 다잡기 위해 자신과 투쟁한 남자들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루팡은 어쩌면 이 모든 캐릭터들의 결정판이 될지도 모른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홈즈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정의의 편에 있긴 하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야.” 원작 속 홈즈 역시 마찬가지다. 괴짜스러운 면모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그는 정의를 행하지만 선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루팡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이다. 도둑, 즉 범죄자지만 동시에 휴머니스트이자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법질서를 무시하지만 좋은 사람이랄까. 양준모는 이런 캐릭터 소화에 대해 “아직 고민 중”이라고 하면서도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모습들 속에서 인간적 매력과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는 신비로움으로 모든 남자 배우들이 하고 싶어하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고 속내를 비쳤다.

 

 

 

 

끌림보다는 도전으로

양준모가 쉽지 않은 캐릭터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수월하게 소화해온 데에는 그 자신의 사연도 한몫했다. 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제대로 된 훈련법을 몰랐던 그는 잘못된 자율학습을 반복하다가 결국 만성후두염 진단을 받았다. 다시는 노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기고자 망가진 목으로도 노래할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동토에서 홀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는 더 크고 단단해졌다. 어쩌면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양준모의 강인한 표정은 이런 풍파를 꿋꿋이 견뎌내며 완성된 굳은 심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20대의 젊은 나이부터 고령의 역할을 맡게 되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몇 년이 지나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보다는 스스로 갈급함이 있었어요. 나는 왜 내 나이대의 역을 못할까 하는 의문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역들을 해오면서 언제부턴가 배우관이 조금씩 생기더군요. 나에게 잘 맞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깨닫게 됐달까요. 지킬도 옛날에 했다면 불편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루팡에서도 그런 경험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돼요. 이제는 30대 초반~40대 역을 하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들은 이번 두 번째 <지킬 앤 하이드>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 발산되고 있다. 클래식 발성과 팝 발성 두 가지 소리를 다 내야 하는 이 작품에서 경험은 특히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그 접점을 맞춰가는 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해요. 저는 지금도 완전한 팝 발성은 어려워요. 클래식 발성이거나 두 가지가 섞인 것까지는 소화가 되죠. 이런 것도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을 두루 경험하다보니 자연스레 체득된 것들이 많아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이런 경험들이 도움이 많이 되죠.”(그는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전임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성악 전공의 다른 배우들이 그렇듯 연기에 대한 부족함은 신인 시절부터 늘 그를 따라다녔던 고민이었다. ‘양준모’ 하면 ‘노래’라는 공식은 뮤지컬 배우에게는 절반의 칭찬이었다. 갑자기 1년간이나 소극장 작품을 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2007년 <스위니 토드>를 끝낸 그는 대극장 작품에 대한 제안을 몇 차례 받았다. 하지만 그가 택했던 것은 소극장 뮤지컬 <이블 데드>여서 당시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다. “소극장 연기를 배우고 싶었고, 코미디도 해보고 싶었어요. 못추는 춤도 춰보고 싶었죠. 그때 많이 배웠어요.” 그의 도전 정신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 공연된 <서편제>다. “유봉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는 ‘경계에 선 인간’의 모습이 보여요. 전 그 순간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유봉이 정말 끔찍한 일을 하긴 했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살인만 안 했을 뿐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사람으로서 극한까지 밀고 나간 감정에 대한 표현은, 뭐랄까. 끌림이라기보다는 도전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큰 소리꾼이 되거라!” 하며 딸 송화를 끊임없이 채근하는 아버지 유봉 역의 양준모는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이상하게 못하겠더라고요. 배우 생활 초반에는 뭘 몰랐기 때문에 나이대와 무관한 역을 맡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 저와 잘 맞는 부분을 잘 알잖아요. 그래서인지 유봉은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많았죠.” 자식이 없는 것도 생동감 있는 연기를 펼치는 데 장애물이 됐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판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뭐든 흉내 낼 거면 아예 하지 말자는 주의예요. 성악 한 사람이 해봤자 어쩔 수 없이 ‘흉내 내기’밖에 안 되더라고요. 관객들은 이미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판소리가 나올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저를 보면 당연히 흉내로 볼 수밖에 없죠.” 양준모는 그럴수록 더 인물을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끝날 때쯤에는 유봉의 노래로, 유봉으로 봐주시더라구요.”


당시의 치열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그의 도전욕이지만 의외로 그가 스스로 배우임을 느꼈던 작품은 별다른 몸부림 없이 자연스럽게 잘 해냈던 <영웅>이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캐릭터 연구도 열심히 안 했는데 안중근이라는 옷을 입은 듯 모든 게 자연스럽게 표현됐다고. “정말 편안한 옷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욕심을 버리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나왔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매번 오디션에서 좌절했던 <지킬 앤 하이드>도 결국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이는 그에게 좋은 교훈을 남겼다. “뭐든 열심히 하는 건 좋아도 고시 공부하듯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가장 좋은 건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잘하는 걸 거예요.”


그는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이런 배움의 조각들을 얻는다고 했다. 그건 소극장에서는 디테일한 연기였고,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서는 노래 연기의 표현이었다. <스위니 토드>에서는 감정 표출 방법을 익혔고, <오페라의 유령>을 하면서는 여성을 향한 한 남자의 감정 표현을 배웠다. 이제 그는 <아르센 루팡>에서 또 어떤 배움의 조각을 얻게 될까. 도전 정신으로 무장된 그가 루팡이라는 옷을 입고 무대를 누비며 갖게 될 새로운 배움의 조각들이 뭘까 문득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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