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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몬테크리스토> 정재은, 별이 빛나는 순간 [No.118]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3-07-11 4,938

“전 아직도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누가 너보고 메르세데스래? 웃기는 소리하지 마’ 이럴까봐 무서워요.” <몬테크리스토> 프리뷰에서 스태프들이 ‘저 친구 신인 맞아?’라는 눈짓을 주고받았을 만큼 대담한 공연을 보여준 정재은이, 예상외의 소심한 소감을 내놓는다. 물론 ‘<닥터 지바고>(2012) 앙상블’이라는 그녀의 얄팍한 한 줄 프로필을 보면,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여주인공의 행운을 거머쥐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대 위의 그녀를 본다면, 아마 생각이 이렇게 바뀔 것이다. ‘이 배우가 왜 이제야 발견된 거지?’ 정재은은 그녀가 차세대 주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을 정도로 빛나는 신예지만, 정작 자신은 배우가 된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첫날 커튼콜을 잊을 수 없어요. 인사하러 나가는데, 너무 떨리는 거예요. 이거 내가 나가도 되는 자리인가? 앞자리 관객들과 눈이 살짝살짝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어제는 문득 공연이 끝나면 백스테이지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모든 일이 마냥 신기하다고만 말하는 모습에 지나치게 겸손한 건 아닐까 생각하는 찰나, 경험이 전무한 이 신인 배우에겐 지금의 무대가 그저 꿈같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줄 알았어요.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가 맏딸인 제가 그 길을 따르길 바라셨거든요. 저도 바이올린을 싫어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아빠 따라간 뉴욕에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게 된 거죠. 그걸 보고 마음에 바람이 들어서 바이올린이 손에 안 잡혔어요. 뮤지컬 하겠다고 부모님께 투쟁하다 다니던 예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봐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거예요.(웃음)” 우연히 본 뮤지컬 한 편이 무엇이기에 그녀의 마음을 그토록 흔들어 놓았던 걸까? “항상 제 안의 무언가를 표출해내고 싶었는데, 바이올린은 그러려면 테크닉이 완벽해야 하잖아요. 그런 갈증이 있었어요. 그리고 연주자는 악기라는 매개체를 거쳐서 나를 표현하는 건데, 뮤지컬은 내가 느끼는 걸 맨몸으로 표현하면 되니까, 그게 진짜 매력적이었어요. 솔직히 그 전까진 노래나 연기에 대해 관심은 없었어요.” 뛰어난 음악성이 강점인 그녀가 성악 전공자도 아니었을뿐더러, 노래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는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어머니가 성악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녀의 재능은 타고났음을 인정하게 된다.
“출연작이 <닥터 지바고> 한 작품만 알려져 있지만, 학창 시절에 <크리스마스 캐롤>도 하고, <넌센스>도 하고, 몇몇 작품에 참여했어요.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니까 오디션도 진짜 많이 봤어요.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랬나 봐요. 특히 EMK 작품은 항상 서류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이번 <몬테크리스토>에서도 제가 주인공을 맡을 거란 생각은 아예 못했죠.” EMK 뮤지컬컴퍼니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작품부터 신인 여배우를 발굴해보자는 의지로 오디션을 진행했고, 때마침 정재은이라는 재목이 스태프들의 눈에 띈 것이다. “어차피 이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오디션에서 원 없이 노래를 불렀어요. 이게 나의 첫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요. 제가 오디션 볼 때 항상 녹음을 하는데 그걸 나중에 들어보니, 음정 틀리고, 박자 틀리고, 가사도 통째로 날리고 난장판이었어요. 그런데 진짜 열정적으로 불렀더라고요.” 이십대에서 중년의 여정을 보여줘야 하는 한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을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론 절대 와 닿지 않는 거예요. 그 세월이라는 걸 전 모르겠더라고요. 프로덕션에서도 아직 어린 제가 이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었나 봐요. 최종 오디션에서 ‘세월이 흘러’를 불러야 했는데, 그때 엄마 아빠 생각에 눈물이 툭 떨어진 거예요. 그냥 그 상황에 저를 대입해서 상상해 봐요.”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 표현하는 것,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류정한 선배님하고 처음 ‘사랑의 진실’을 불렀을 때, 음원으로 듣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눈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데 무대에선 그냥 저 사람은 에드몬드고, 나는 메르세데스다, 이런 느낌이랄까? 에드몬드도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인 거잖아요. 이야기의 포커스가 에드몬드에 맞춰져 있는 것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부담되지 않아요. 무대에선 괜찮은데 사석에서 선배들을 만나면 어려워요.” 선배들과 아직 친해지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

 

 


스물다섯,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배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선배들이 그러시는데, 이제 좀 할 만하다 싶으면 공연이 끝난대요. <몬테크리스토>는 그렇게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좀 더 메르세데스다워지려고 고민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도 안 떠올라요. 지금 제 머릿속엔 메르세데스 생각밖에 없어요.”


2012년 <닥터 지바고> 앙상블
2013년 <몬테크리스토> 메르세데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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