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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라카지> 건강한 가정의 조건 [No.137]

글 |누다심 사진제공 |랑 2015-03-11 5,258

가정이란 무엇일까? 심리학자 사티어(V. Satir)는 가정을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정의했다. 간략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다. 한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고 성장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정은 든든한 울타리인 동시에 자양분이다. 강제로 갇혀 있는 상황만 아니라면 새장(La Cage)에 비유할 수도 있다. 연약한 아기 새가 외부의 포식자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새장에서 아기 새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새장 밖으로 나가 겪게 될 모든 상황을 예행 연습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연습도 하고, 권위에 순종하는 연습도 한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실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상대와 협상하는 것도 배운다. 가정에는 언제나 갈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건강한 가정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건강한 가정은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가정이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갈등을 풀어가는 훌륭한 매뉴얼이 있고,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매뉴얼이 왜곡되어 있다. 

가정 내 갈등 중 가장 큰 것은 자녀의 독립(결혼)이다. 새장 속에서 아기 새를 옥이야 금이야 키웠던 어미 새는 때가 되면 아기 새를 새장 밖으로 보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자녀의 독립은 부모에게 큰 충격이다. 20년 이상을 가슴에 품으며 ‘내 자식’이라 생각했던 자녀가 이제 홀로서기를 하겠다니, 다시 말해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겠다고 하니 어느 부모가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자녀의 독립은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큰 갈등이자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장 미셀의 부모인 조지와 앨빈도 그랬다. 장 미셀의 엄마인 앨빈은 비록 남자로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조지의 아들이기에 기꺼이 가슴에 품어 키웠다.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찾아와 결혼을 하겠단다. 그것도 극우파 정치인 에두아르 딩동의 딸 안느와 말이다. 소위 정상과 정통을 중요시하는 딩동에게 장 미셀의 가족은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장 미셀의 부모는 동성인 데다가 게이 클럽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양립 불가능한 두 가문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장 미셀과 안느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장 미셀은 로미오와 달리 부모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먼저 아빠 조지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안느를 사랑해서 꼭 결혼해야겠으니 도와달라고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견례를 위해 집 안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엄마 앨빈에게 부탁해서 하루만 자리를 비켜주고 생모를 불러달라고 말한다.


장 미셀의 부탁에 아빠 조지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조지는 장 미셀에게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장 미셀도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서로의 주장이 명확했지만, 두 사람은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조지는 아들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하고, 아내 앨빈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 앨빈 역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 아들의 상견례 자리에 자신이 빠질 수는 없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20년 동안 가슴으로 키웠던 자신이 아니라 열 달 동안 뱃속에 넣고 키웠던 여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와 아들이 그랬듯이 남편과 아내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지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앨빈도 삼촌 자격으로 상견례 자리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장 미셀은 반대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장 미셀의 생모가 상견례에 참석 못하게 되자, 앨빈은 여장을 하고 나왔고 장 미셀은 또 한 번 엄마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위기와 갈등 상황 속에서 세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하면서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통 자신의 의견이 분명할 경우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자신의 뜻을 꺾고 상대방에게 맞춰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한 가족은 그렇지 않다. 소통을 통해 접점을 찾아갈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의 문제를 치료했던 심리학자 미누친(Salvador Minuchin)은 건강한 가정이란 서로의 책임과 한계가 명확히 설정되어 있으며 갈등 상황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아 자신의 주장이 분명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맞고 틀린(Wrong) 문제가 아닌 다른(Different) 문제로 인식해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미셀의 가정처럼 말이다.


장 미셀의 가정과 대비되는 것이 에두아르 딩동의 가정이었다. 상견례에서 여장을 한 앨빈이 커밍아웃을 하자 에두아르 딩동은 아내와 딸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딸의 결혼을 허락했지만, 평소 같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통이 단절된,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모습이다.


이해득실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상대방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이득은 상대의 손해, 자신의 손해는 상대의 이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기려고 한다. 그러나 가족끼리는 자신과 상대의 이득과 손해가 이런 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의 행복이나 불행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의 주장에 전적으로 따라주라는 것도 아니다. 장 미셀의 가정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 미셀과 그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누다심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꿈꾸는 이.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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