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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IFE GRAPH] 가식 없는 신념 구원영 [No.156]

글 |안세영 2016-10-04 7,519





“제 꿈은 일일 드라마에 나오는 아줌마 배우가 되는 거예요. 내가 보기엔 그 아줌마들이 연기 제일 잘해!” 그렇게 말하며 웃는 구원영의 목소리는 솔직하고 당당했다. 언제나 역할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여 온 그녀. 결혼 이후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지금도 그녀의 신념은 여전하다.





2001년 배우 인생의 반석 <의형제>
<사랑은 비를 타고>, <지하철 1호선> 같은 소극장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운 저는 극단 학전에서 배우 일을 시작했어요. 학전은 제게 제2의 학교였죠. 황정민, 설경구 선배 같은 훌륭한 단원들과 함께하며 배우가 뭔지, 좋은 연기가 뭔지에 대한 개념을 잡았거든요. 지금도 학전 출신 배우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학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형제>예요. 영국 뮤지컬인 <블러드 브라더스>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사실적으로 각색한 <의형제>는 저뿐 아니라 모든 학전 배우들이 사랑하는 작품이죠. 이때 주인공 쌍둥이가 좋아하는 여자를 연기했는데, 13년 뒤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쌍둥이 엄마를 연기하면서 이 작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어요.




2007년 대극장 뮤지컬의 이해 <천사의 발톱>
학전 시절까지만 해도 제가 아는 뮤지컬은 소극장 뮤지컬이 전부였어요. 2005년 <그리스>로 처음 대극장 무대에 섰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사실적인 연기만 하다가 양식화된 연기를 하려니 뭘 어떡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죠. 대극장 뮤지컬은 예술이 아닌 쇼라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회의감에 빠졌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대극장 뮤지컬이 이런 거구나 감을 잡은 게 <천사의 발톱> 때예요. 내면에서부터 에너지가 확장돼야 양식화된 연기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이 큰 규모의 음악과 무대가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걸 이때서야 이해한 거죠. 그걸 안 뒤로는 모든 무대가 즐거워졌어요.



2011년 소중한 만남 <조로>
전형적인 여주인공을 연기했던 이십 대 초반,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재미도 없고 해볼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에는 주로 개성 있는 조연을 연기했죠. 그러다 서른 후반이 되자, 이제는 나이 때문에 여주인공을 못 맡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조로>의 루이사를 연기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저랑 안 맞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이 작품을 통해 신랑을 처음 만났다는 거죠. 신랑은 저보다 어린 신인 앙상블이었는데, 상견례 때 연습실에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어요. 그때는 내색도 못했지만, <블러드 브라더스> 때 다시 만나면서 신랑도 오랫동안 저를 마음에 두었단 사실을 알았고, 6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2013년 자아 성찰의 시기
2013년 <클레오파트라>의 타이틀롤을 맡으면서 그간의 대극장 뮤지컬 경력에 정점을 찍을 뻔했죠. 그런데 이 작품이 엎어지면서 갑작스레 1년 정도를 쉬게 됐어요. 실망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됐어요. 그동안 내가 교만했다는 걸, 나의 만족과 영광만을 위해 무대에 서왔다는 걸 깨달은 거죠. ‘내가 조명 받기 위해 공연하는 게 아니다,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을 받쳐주면서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자’라고 마음먹으면서 인격적으로 훨씬 성숙해졌어요. 이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무척 우울했을 거예요. 나이가 들면 들어오는 배역의 비중이 작아지기 마련인데, 배우로서 그걸 의연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는 이 시기에 그런 벽을 뛰어넘은 셈이죠.




2014년 운명적인 도전 <블러드 브라더스>
학전 시절 공연한 <의형제>, 한양대 연극영화과 시절 공연한 <핏줄>에 이어 영국 초연 연출가가 직접 연출한 <블러드 브라더스>에 참여하면서한 작품의 세 가지 버전을 모두 경험하는 행운을 누렸어요.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죠. 사실 처음 존스턴 부인 역을 제의받았을 때 한 달을 꼬박 고민했어요. <의형제>에서 엄마를 연기한 방주란, 배해선 선배의 연기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감히 그 역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제게는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만족스런 연기로 해낸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2016년 늘 감사한 마음으로 <도리안 그레이>
결혼 이후 한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신랑이 배우로 자리를 잡도록 밀어주고, 저는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강의를 시작했거든요. 차기작도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는 역할을 찾던 차에 <도리안 그레이>의 브랜든 부인을 만났죠. 런던 사교계의 여왕 브랜든 부인은 원작 소설에는 없는 캐릭터예요. 사실 이제껏 맡은 배역 중에 가장 작은 역할이지만, 앞서 말했듯 비중에 상관없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어떤 배역이든 즐거이 임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하늘로 치솟는 그래프를 그려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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