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그녀는 예뻤다 - <키스 미 케이트> 아이비 [No.82]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2010-07-29 5,891



‘내 방식대로’ 행동한다는 게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의미에 따라서는 꿋꿋한 의지일 수 있다. 나도 그녀도 ‘내 방식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다소 뜬금없는 응원의 한마디로 그녀와의 인터뷰를 여기에 옮겨보겠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하고 대중 앞에 서는 여가수나 여배우의 인터뷰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범접하기 힘들도록 공주 같은, 혹은 여신 같은 외모 뒤에 ‘털털한 성격’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것. 그런 ‘털털한 성격’쯤은 너도나도 갖고 있어서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별반 장점이 되지 않는데, 왜 유독 그녀들에게만 그 ‘털털함’이 그토록 찬사받는 장점이 되는 것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녀들이 외형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간미도 지닌 매력쟁이임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일 것이다.


가수 아이비의 인상 역시, 우월한 외모에 무척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다른 털털한 여가수의 성격이 어떤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감히 아이비가 특별했다고 말한다면, 그녀의 털털함은 가면 쓰고 얼굴 바꾸기에 능숙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데서 기인했다. 그러니까 아이비는, <키스 미 케이트>를 연습하고 있던 아이비는, 무대 위에서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 강렬한 안무를 선보였던 그 유혹적인 아이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녀는 뮤지컬 무대에서 몇 차례 앙상블을 경험하고 처음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은, 여느 뮤지컬 배우와 같은 자세로 연습에 임하고 있었다.

 

 

로아 레인 길들이기

<키스 미 케이트>에서 아이비는 ‘로아 레인’이라는 이름의 여배우를 연기한다. 로아 레인은 극 중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비앙카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비는 로아 레인과 비앙카를 모두 연기한다. 연습실을 찾았을 때, 아이비는 같은 역할을 번갈아 연기할 배우 오진영과 2막의 한 장면을 연습 중이었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스완은 푸근한 몸매로 애교 넘치는 동작의 안무를 유연하게 선보였고, 그의 시범에 따라 두 여배우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로아 레인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어떤 음색과 감정으로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지 김문정 음악감독의 지시도 따랐다. 연기와 노래, 춤을 고루 고려해가며 로아의 마음을 표현해내야 하는 작업이 어려울 테지만, 두 여배우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솔로곡 연습을 이어갔다.


이 장면은 2막 4장에서 로아가 연인인 빌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사랑스럽고 교태 섞인 몸짓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다. ‘언제나 당신에게 진실된 나(Always True to You in My Fashion)’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데, 로아의 마음이 노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충실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임은 틀림없다. 스스로 허영심 많고 헤프다는 걸 인정하고서 하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로아가 질투하는 빌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 덤벼든 남자 너무 못 생겼어도 리무진 생기면 안아줄 거야. 하지만 당신에겐 진실해요, 달링. 당신을 사랑해요, 내 방식대로.” 로아가 사랑하는 방식이 어떤 방식인지 짐작이 되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빌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은 로아를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연습을 마친 아이비가 어떤 장면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로아가 어떤 여자인지,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에 더욱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에서 처음 맡은 역할에 대한 소감은 어떨까? “로아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배우지만, 실은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이에요. 가수 출신의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로아는 섹시함과 사랑스러움을 모두 가진 캐릭터이다. 아이비가 가수 활동을 통해 많이 보여주었던 섹시한 이미지와 평소 그녀가 가진 발랄한 성격에서 그녀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역할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 대본과 DVD를 보았는데, 당시 로아를 연기했던 최정원 선배님이 정말 잘하시기도 했고 저런 캐릭터라면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잘 소화해낸다면 저랑 정말 잘 어울리는 역할이 될 것 같아요. 제 첫 작품으로 정말 딱 맞는 작품이죠.”

 

아이비 미트 키스미 케이트

 


<키스 미 케이트>는 볼티모어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이야기이다. 극중극이 존재하는 작품이라서 배우들이 맡은 역할도 두 개, 이름도 두 개다. “바깥 이야기는 현대 배경이고요. 극중극은 셰익스피어 시대라서 고전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하죠. 극이 두 개라서 헷갈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 관객들께서 공연 전에 프로그램북을 통해서 미리 극의 구성을 인지하고 보시는 게,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거예요.” <키스 미 케이트>를 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에 대해 아이비가 전하는 야무진 안내 멘트였다. 주인공인 프레드와 릴리는 1년 전 이혼한 사이로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남녀 주연을 맡고 있다. 말괄량이를 연기하는 릴리를 길들이는 역할은 프레드의 몫이다. 재미있는 것은 극중극에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가 액자 바깥의 이야기에서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프레드와 릴리 역할은 각각 남경주와 최정원이 맡았다. 명실상부 ‘환상의 콤비’인 두 사람의 호흡이 뮤지컬 신인인 아이비에게도 큰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두 분이 하는 장면은 정말 모두 재미있어요. 극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워낙 두 분이 잘하시고 호흡이 잘 맞거든요. 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뮤지컬을 향한 아이비의 의지가 금세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뮤지컬 넘버는 가요와 많이 다른데다가 특히 <키스 미 케이트>는 클래식한 공연인데, 가요에 익숙한 아이비가 어떻게 소화해낼지 우려된다. 그래서 아이비도 처음에는 최정원이 연기했던 과거 공연 DVD를 많이 보았는데, 선배의 스타일대로 따라하게 될까봐 DVD 참고는 자제하게 되었단다. “제 방식대로 소화하려고요. 뮤지컬 창법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가사 전달만 제대로 된다면 꼭 다른 뮤지컬 배우들처럼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관객들이 듣기 편하도록, 감동받도록 노래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무대 위에서 로아가 돋보이는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중 아이비는 1막의 극중극에서 비앙카가 세 명의 구혼자들과 함께 부르는 ‘톰, 딕 또는 해리(Tom, Dick or Harry)’를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았다. “음악도 굉장히 빠르고, 턴이 많이 포함된 안무도 되게 어려워요. 그런데 세 남자와의 앙상블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낼 것 같아요. 물론 잘해야 가능한 것이지만요. 저와 함께 할 세 명의 남자 배우들도 가장 춤 잘 추는 분들이니, 저희가 잘 해낸다면 정말 멋있을 거예요.”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대화 내내 흘러나왔다.

 

뮤지컬 첫 도전

 

아이비가 댄스 가수로서 보여주는 무대 퍼포먼스는 한 편의 짧은 뮤직 드라마인 듯, 강렬한 표정 연기와 안무를 선보인다. 노래와 춤에서 끼를 발산해 온 아이비에게 뮤지컬 출연 제안이 많았을 것이다. 그녀 역시 언젠가는 오르게 될 무대라고 예상했겠지만 실제로 부딪혀보니 뮤지컬이 만만치 않은 도전임을 그녀는 몸소 느끼고 있다. “너무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번 기회에 알았어요. 뮤지컬 정말 하고 싶었는데, 해보니까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열심히 해야죠.” 무대 위에서 늘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아이비에게서 자신감 없는 모습은 의외였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무대 매너를 익히 아는 우리로서는 뮤지컬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게 된다.

 

처음 경험하는 뮤지컬 연습, 처음 만나는 뮤지컬 배우들, 모든 것이 낯설 텐데 뮤지컬에 입문한 아이비의 만족도는 꽤나 높다. “뮤지컬 연습이 어렵긴 하지만,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요. 가수는 혼자만 잘하면 되는데, 뮤지컬은 배우들 간의 앙상블이 잘 맞아야 하잖아요. 상대를 돋보이게 해야 나도 돋보이고. 그런 공동작업이 재미있어요, 가족 같고요. 제가 아직 서툴러서 틀리면 많이 죄송한데, 다른 배우들이 저를 위해서 ‘다시 해보자’며 많이 맞춰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가수 활동을 하는 중에는 경쟁의식 때문에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노래하는 것은 정말 좋은데, 노래보다는 다른 걸 신경 써야 해서 노래가 싫어지는 때도 있어요. 뮤지컬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마음의 벽 없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세요. 그게 되게 좋아요.”

 

뮤지컬 배우들만의 에너지가 자신에게도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며, 그들과의 작업을 즐거워했다. 스태프들의 제보에 따르면 첫 만남부터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간 활달한 성격 덕에, 배우들 사이에서 아이비는 인기 만점이라고. 어느새 그녀는 동료 배우들과 ‘안녕, 로아’ 혹은 ‘안녕, 폴’하고 인사하며, <키스 미, 케이트>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뮤지컬을 시작하고 생긴 변화가 있는지 물었는데, 그 답변도 의외로 사소하다. “아침형 인간이 되었죠. 아침 10시부터 연습이거든요. 가수는 스케줄이 들쑥날쑥한데, 뮤지컬 하면서부터는 남들처럼 출퇴근하는 느낌이에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식사 후에는 양치하는 등 뮤지컬 배우들의 규칙적인 습관이 처음에는 의아했단다. 밤낮 없는 생활을 주로 했던 그녀에게는 이런 사소한 일상이 오히려 기분 좋은 새로움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뮤지컬에 내딛은 첫발이 가볍다. 아직은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다음 작품으로의 도약도 가능하지 않을까 선수쳐본다. 아이비가 탐내는 배역이 있지 않을까 묻는 중에 이미 머릿속에 짐작되는 역할이 있었다. 아이비에게 어울릴 듯한 이미지, <시카고>의 록시 하트. 아이비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배역에 대한 바람을 수줍게 내비쳤다. “나이가 어리면 소피도 해보고 싶어요. <맘마미아> 노래가 정말 좋잖아요. 무대도 좋고. <맘마미아>는 볼 때마다 재밌어요.” 배해선 씨가 처음 소피 역을 맡았을 때의 나이를 알려주니, 솔깃한지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뮤지컬을 좋아하고 뮤지컬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그녀를 보니, 가수 아이비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색안경 낀 시선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가수로서의 장점은 살리고, 뮤지컬에 필요한 능력은 갖추려 노력하는 신중하고 성실한 배우 아이비의 첫 공연이 기대된다. 작품에 애정과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과장 없이 생각을 전하는 그녀의 모습이 ‘예상했던’ 가수 아이비의 모습이 아니어서 더욱 반갑고 매력적이었다고 말하면 어떤 의미인지 모두들 알겠지.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2호 201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