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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스폰지밥 스퀘어팬츠> [NO.172]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8-01-24 4,982

어른이들의 가족 뮤지컬

<스폰지밥 스퀘어팬츠>

Spongebob Squarepants




낙천적인 스펀지가 전하는 뮤지컬


1999년 유아 청소년 방송 전문 채널 니클로디언에서 처음 방송된 만화 <스폰지밥 스퀘어팬츠>. 당시 화제였던 만화 <포켓몬>의 인기를 꺾으며 광풍을 불러일으킨 이 만화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2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다. 이 작품은 아이들 만화라고 하기에는 극단적인 캐릭터와 내용이라는 지적과 어른들의 만화라고 하기에는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화의 주인공은 바닷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비키니 바텀(비키니 팬티 혹은 비키니 해구 정도로 해석이 되겠다)에 사는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스펀지다. 사실 디즈니가 야심 차게 내놓은 뮤지컬 <인어공주>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는 업계 사람들은 2012년 니클로디언이 <스폰지밥 스퀘어팬츠>를 무대화할 계획이라는 발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디즈니조차 바다의 삶을 구현하지 못했는데 니클로디언이 할 수 있을지,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인물들과 그들의 에피소드들로 어떻게 관객을 모을 수 있을지, 아무리 유명한 스폰지밥이라도 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작년 시카고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47가와 브로드웨이 코너에 있는 팔래스 시어터에서 오픈한 뮤지컬 <스폰지밥 스퀘어팬츠>는 이런 걱정들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키니 바텀 근처의 화산이 갑자기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악당 플랑크톤의 위협에도 스폰지밥과 그의 친구들이 비키니 바텀을 지킨다는 뻔한 이야기는 대부분의 만화처럼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원작 캐릭터의 멍청함에 가까운 어이없는 낙천성을 잘 살린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와 안무, 무려 열일곱 팀이 쓴 음악 그리고 무대와 조명의 적절한 사용과 전체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이런 요소들은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란 속의 조화를 보여주며 오락과 여가 활동으로서의 뮤지컬 가치를 제대로 살려냈다.


병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한 그들의 세계


원작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속칭 ‘병맛’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만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그들 나름의 논리와 순수한 진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작품의 힘이다. 스폰지밥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어이없는 낙천성이다. 또한 그의 절친 패트릭(뚱이)의 매력은 멍청함이다. 그리고 무대에 올려진 스폰지밥과 주변 인물들의 진정성을 온전하고 성실하게 재연해 낸 것이 바로 이 뮤지컬의 매력이다.


극장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바쁘다. 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우선 무대 외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또한 남국의 섬나라를 연상시키는 음악으로 관객들을 만화의 순수한 세계로 서서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극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짚으로 엮은 오두막이 자리해 있고, 그 속에서 스폰지밥 MD를 팔고 있다. 또한 공연장에 들어서면 음악 소리와 함께 무대 가장자리를 두른 여러 가지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대 1층에는 바닷가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장식이 달린 박스가 있고 그 안에 밴드가 자리해 있다. 무대 아래 벽에는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 둔 구식 라디오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양한 크기의 비치볼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무대 바깥 객석 천장의 경우 한 면은 파랗고 다른 면은 은박지를 길게 잘라서 커튼처럼 붙였다. 무대 위 큰 스피커들에도 스프레이 낙서가 있다. 특히 무대 양옆의 박스석에 달려 있는 구조물은 공연 중간에 화산 폭발의 전조로 부산물들이 떨어지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공들로, 실제로 공연 도중 무대 위로 떨어진다. 읽기만 해도 어지러운 무대를 굳이 설명하는 것은,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스폰지밥스러운’ 혼란의 카오스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면서 다양한 관객층이 스폰지밥의 만화적 세계에 효과적으로, 서서히 마음을 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연의 시작 역시도 정신이 없다. 일단 공연 시작 전까지 무대는 파인애플 패턴이 그려진 막으로 가려 있는데, 바로 앞 무대 중앙 바닥에 아주 작은 모형으로 패트릭의 집 바위, 스퀴다드(징징이)의 집 석상 그리고 스폰지밥의 집인 파인애플이 놓여 있다. 관객들이 한창 시끄러울 때 갑자기 무대 앞에서 원작 만화의 오프닝 시그널의 해적이 자기가 스폰지밥의 최고의 팬이라며 무대 위로 올라온다. 공연장 안전요원들이 그를 끌어내리면 그제야 비로소 객석 불이 꺼지고 스폰지밥 TV 만화에서 스폰지밥의 성우를 맡은 톰 케니가 내레이션으로 비키니 바텀의 세계를 소개한다. 이 장면 역시 TV 만화 오프닝 시그널을 연상시키는데, 내레이션과 함께 조명이 무대의 모형을 비추고, 앙상블이 나와서 모형이 놓인 넓은 판을 비스듬히 들어 관객들에게 좀 더 잘 보여주다가 뒤집으면 그 밑에서 자고 있던 스폰지밥이 굴러 나오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만화를 기반으로 한 가족 뮤지컬이기에, 작품은 굉장히 단순하다. 오프닝은 스폰지밥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비키니 바텀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폰지밥은 언젠가는 게살버거 가게의 매니저가 되고 싶은 마음을 미스터 크랩스(집게 사장)에게 전하지만, 미스터 크랩스가 이를 무시해 실망한다. 이와 함께 무대는 마을에 닥친 화산 폭발의 위험을 보여주며 상당히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샌디(다람이)는 그 나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화산 폭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쉘든(플랑크톤)은 이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을 탈출 기구에 모아 최면을 걸어 미스터 크랩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꾀에 빠진 사람들은 샌디의 제안을 무시하고 해양 생물이 아닌 샌디를 따돌리고 비난한다. 이 와중에 스폰지밥은 샌디와 그의 절친 패트릭(뚱이)과 함께 샌디의 제안을 따라 비키니 바텀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과정에서 패트릭의 어이없는 말들을 심오하게 받아들이고 패트릭을 구세주로 모시려던 정어리 떼로 인해 패트릭과 스폰지밥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또한 쉘든이 스폰지밥 일행의 계획을 방해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쉘든의 계획대로 탈출 기구에 탈 돈을 모으기 위해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려다 실패하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국 작품은 스폰지밥과 샌디 그리고 패트릭이 마을을 살린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만화에 기초를 두었지만, 샌디를 내쫓자며 데모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소수 인종의 차별 문제를, 별 능력이 없는 시장의 모습은 현재 미국 정부의 무능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살아난 만화적 상상력


작품의 오프닝이 끝나고 나서 우연히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많은 관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스폰지밥의 세계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놀라움과 즐거움, 그리고 아이 같은 흥겨움을 안고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케빈 아담스의 사이키델릭한 조명과 월터 트라박의 재기 발랄한 음향 그리고 데이비드 진의 무대와 의상이 정말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해적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스폰지밥의 등장 그리고 악당 플랑크톤이 비키니 바텀의 시민들에게 그의 계획을 따르라며 랩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는 장면, 스폰지밥이 자신은 어리숙한 스펀지가 아니라며 노래를 부르거나 마지막에 화산을 오르는 장면까지 아담스의 조명은 빛을 발한다. 때론 바닷속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코미디 장면에서 유머를 도드라지게 하는 등 연극적인 장치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특히 원색과 네온 빛깔을 적절하게 사용해 비키니 바텀을 만들어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음향 디자인을 맡은 월터 트라박은 스폰지밥이 걸어 다닐 때 나는 ‘뽀각뽀각’ 소리, 스퀴다드가 걸을 때마다 나는 ‘뽀르륵’ 거품 터지는 소리 등 만화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들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재현해 관객들의 끊임없는 웃음을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완전한 만화적인 세계를 그려내 주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이 모든 효과들이 무대 왼편에 자리를 잡은 퍼커셔니스트 마이크 돕슨의 손을 통해 라이브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설명한 디테일한 무대 장식들과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앙상블의 의상, 그리고 아담스의 조명, 트라박과 돕슨의 음향은 무대 위 비키니 바텀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각 캐릭터들은 만화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특징적인 색깔을 표현한 의상을 입고, 앙상블은 여러 의상을 수없이 갈아입는다. 특히 네온 빛 연두색과 핫핑크를 조합해 입은 정어리 떼의 의상과 말도 안 되는 풀 누들 장식을 머리에 쓰고 있는 바다 생물체 의상들은 네온 조명과 어우러져서 2D의 비키니 바텀을 무대 위에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혼돈 속의 질서를 이뤄낸 조합


화려한 의상을 입고 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 모든 배우들이 빛나긴 하지만 <스폰지밥 스퀘어팬츠>의 가장 큰 동력은 스폰지밥 역을 맡은 에단 슬레이터이다. 패트릭 역할을 맡은 대니 스키너 역시 패트릭의 어눌함을 무대 위에서 제대로 살려내긴 한다. 그런데 팔이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몸이 쪼개졌다가 다시 붙어도 괜찮아야 하는 스폰지밥 캐릭터는 공연 기획 단계 때부터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걱정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레슬링과 뮤지컬로 신체 훈련이 잘되어 있는 배우 에단 슬레이터는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데뷔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을 단숨에 불식시켰다. 첫 등장에 기지개를 펴면서 일어나는 동작이라든가, 오프닝에서 돕슨의 음향효과에 맞춰 몸을 꺾는 장면, 스폰지밥의 둥둥 뜨는 걸음걸이와 높은 톤의 목소리와 웃음,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에단 슬레이터는 공연 내내 스폰지밥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 것 같다고 느끼게 만든다. 또 움직임뿐 아니라 노래도 주인공으로서 아쉽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특히 2막, 화산의 꼭대기에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무대 위 거미줄처럼 수직으로 짜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거꾸로 매달린 채 흔들림 없이 노래를 불렀다. 그가 이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을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다.


<캣츠>로 이름을 처음 알리고 <뉴시즈>처럼 역동적인 안무에 특히 능한 크리스토퍼 가텔리는 특별한 움직임을 통해 비키니 바텀의 특징인 ‘혼돈 속의 질서’를 잘 표현해 냈다.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오프닝을 시작으로 비키니 바텀의 사람들이 화산 폭발의 위험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나 플랑크톤의 랩에 맞춘 안무 그리고 2막에서 스퀴다드가 환상 속에서 탭 댄스를 추는 장면의 군무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기에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의 움직임에 맞게 짠 안무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패트릭은 움직임이 별로 없고, 스폰지밥은 팔의 움직임이 좀 더 보이지만 샌디는 다리의 움직임이 좀 더 많이 보이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인물의 움직임과 모양새를 염두에 둔 안무는 각 캐릭터들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또한 이 작품이 최근 그리고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17개 팀의 작곡가·작사가가 뭉쳤다는 점이다. 물론 <넥스트 투 노멀>의 작곡가인 톰 킷이 음악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각각의 노래가 가텔리의 안무와 마찬가지로 각 인물들과 상황을 다양한 색깔로 그려낸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 데이비드 보위, 존 레전드, 사라 바레일레스, 신디 로퍼 등 잘 알려진 뮤지션을 포함해서 패닉 앳더 디스코나 플레이밍 립스 등 인디 뮤지션과 조나단 쿨튼처럼 인터넷 게임 삽입곡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스폰지밥 스퀘어팬츠>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관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준다.




만화니까 그래야 했고 만화니까 가능했던 프로덕션


오프닝 이후 많은 리뷰들이 관객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는 이 작품을 향해 긍정적인 평을 내놓았다(<할리우드 리포터>의 데이비드 루니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스럽다고 굉장히 적절하게 평했다). 대다수의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공연을 보는 내내 이 작품의 정신없음에 덩달아 정신을 놓으며, 창작자들의 정신세계에 대해 진심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스폰지밥의 정신없음을 이렇게 멀쩡히 무대 위에 그대로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원작 인물들의 만화적인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무대와 관객의 상상력을 믿었던 연출가 티나 란다우의 힘이 아니었을까. 물론 뻔한 내용을 비롯해 만화적인 한계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스폰지밥 스퀘어팬츠>는 무엇보다도 엔터테인먼트로서 뮤지컬의 매력을 오랜만에 한껏 드러낸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 스폰지밥의 캐릭터들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2시간 반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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