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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ELEBRATION] 패기로 시작된 역사 <삼총사>

정리 | 배경희 2018-03-13 4,214
최근 뮤지컬계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대형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를 탄생시킨 주역 왕용범 연출. 그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유럽 뮤지컬 열풍의 발화점이 된 2009년 초연작 <삼총사>다. 어느덧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삼총사>를 기념하기 위해 왕용범 연출이 직접 추억담을 회고했다.
 


 
도전으로 시작된 모험

2009년 5월 12일. <삼총사>의 첫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 터져 나오던 박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관객들의 따뜻한 호응이 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삼총사>가 지금 초연됐다면 그때와 같은 불안을 느끼진 않았을 텐데, 당시의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당시엔 지금처럼 대형 뮤지컬 편수가 많지 않았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작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유럽 뮤지컬은 더더욱 생소했다. 오죽하면 한 극장 관계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을까. “이건 기회가 아니라 독이라고 생각해라.” 삼십 대 초반의 신인 연출이었던 내게 <삼총사>란 기회가 왔던 것은 이전에 체코 뮤지컬 <햄릿>을 올린 경험 덕분이었는데, 사실 주위 반응이 긍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나섰던 이유는 친숙한 명작 콘텐츠가 지닌 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내 자신이 그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가. 또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이게 바로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원작 소설 『삼총사』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니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또 체코에서 본 오리지널 공연의 음악이 무척 좋았다. 단, 대본의 경우에는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체코 공연은 달타냥과 리슐리외의 정치적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는데, 그보단 궁정 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셋의 우정을 중심에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본을 새로 쓰는 것에 대해 체코 제작사 측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고, 삼총사 캐릭터를 강화한 쇼코미디 컨셉으로 국내 공연의 가닥을 잡아 나갔다.
 


 
<삼총사>의 주춧돌 엄유민법이 탄생하기까지

초연 준비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개성 강한 캐릭터를 살려줄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 캐스팅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지만, <삼총사>는 정의로운 쾌남 달타냥 역에 가장 먼저 떠올린 엄기준이 빠르게 출연을 확정해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었다. 전설적인 검술의 소유자 아토스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배우는 유준상이었다. 머릿속에서 아토스를 상상하던 중  2000년대 초반에 본 <더 플레이>에서 그의 우월한 신체 비율에 감탄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인물, 아라미스와 포르토스를 찾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 공연을 열심히 보러 다녔는데, 그렇게 찾은 배우가 민영기와 김법래다. <클레오파트라>에서 각각 안토니우스와 시저로 출연한 두 배우를 봤을 때 느낀,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삼총사>의 경우 애초에 배우의 실제 모습을 대본에 반영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캐스팅이 확정되자 각각 캐릭터의 성격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로맨티스트 아라미스가 원작 소설과 달리 성직자가 아닌 오페라 가수가 되고, 감초 역할로 활약하는 포르토스가 해적 출신의 화끈한 남자로 변한 이유다.

<삼총사>에서 진한 우정으로 묶인 네 사람은 ‘엄유민법’이란 4총사가 됐지만, 솔직히 말해 개성 뚜렷한 베테랑 배우 넷이 한자리에 모여 하모니를 이루기가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작품 특성상 우정이란 정서를 전달하는 게 중요했던 터라 서로 마음을 열고 신뢰를 쌓기 위해 각자 부단히 노력했다. 엄유민법의 우정은 함께 술을 마신 시간으로 완성됐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많은 시간을 쏟아가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던 것, 나는 그 점이 항상 고맙다. 그리고 경력도 적고 나이도 어렸던 나를 끝까지 믿어주었던 것도.
 


<삼총사>의 10년을 돌아보며 

1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되돌아보면, 초연 당시 주연 배우와 모든 스태프를 통틀어 나이가 제일 어렸던 탓에 고군분투했고, 여러 시즌 재공연을 올리면서 기획사의 상업적 마케팅으로 관객들의 질타를 받은 아픈 기억도 있다. 물론 스스로 작품이 퇴색됐다고 느껴 회의감에 공연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다. <삼총사>는 내게 애증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젊은 날의 초상 같기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작품이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청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상견례를 위해 지금까지 <삼총사>를 지켜온 스태프와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모두 공통으로 느낀 게 있다. <삼총사>는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자 현재라는 것, 그래서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이번 10주년 공연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연을 준비하는 요즘 마치 다시 전장에 나가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전우와 함께 짐을 싸고 전투기에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부디 10주년 공연에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신 관객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끝으로, 지금까지 <삼총사>의 10년을 함께한 모든 배우, 스태프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동안 공연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보내준 관객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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