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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삶의 끝, 죽음의 시작에서 만나는 저승사자 [No.175]

글 |안세영 2018-04-17 8,912
흔히 죽은 사람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 사후 세계로 간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저승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저승사자가 나서 해결한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저승 시왕(十王) 앞에서 이승에서의 죄를 심판받는다고 믿었는데, 이때 시왕의 명에 따라 망자를 잡아오는 이가 바로 저승사자.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는 저승사자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인 판타지의 소재다. 최근에는 각종 매체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현대적인 모습의 저승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승의 변화에 발맞춘 저승사자의 변신! 그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자.




설화 속 저승사자
신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세 명의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고 한다. 하늘의 일을 보는 일(日)직차사 해원맥, 땅의 일을 보는 월(月)직차사 이덕춘, 그리고 이승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잡아가는 강림도령이 그들이다. 우두머리는 강림도령으로 좌에서 일직차사, 우에서 월직차사가 보필한다. 먼저 강림차사가 적배지(赤牌旨, 저승으로 가야 할 자의 이름이 쓰인 붉은 천)를 들고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本鄕堂神)을 방문해 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가택신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집 안까지 들어가기는 힘들다. 강림도령은 대신 지붕 상마루로 들어가 망자의 나이와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른다. 초혼(招魂), 이혼, 삼혼까지 부르고 나면 망자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온다. 이후에는 월직차사가 이승에서 저승까지 가는 길을, 일직차사가 저승 내의 길을 인도한다. 이 밖에도 각종 사고로 집밖에서 비명횡사한 이를 전담하는 차사들과 인간이 이승에서 저지른 잘잘못을 감시하는 인황차사, 명부를 관리하는 명부차사 등 다양한 직군의 저승사자가 존재한다.

저승사자라고 하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온 것처럼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조선 시대 불화 ‘사직사자도(四直使者圖)’ 속 저승사자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장군의 모습이다. 붉은 오랏줄을 차고 눈을 부릅뜬 모습이 무시무시하다. 전통적으로 상을 당한 집에서는 저승사자의 심술을 달래고 망자를 편하게 모셔가 달라는 뜻으로 임종 직후 대문 밖에 사자밥을 차려놓았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저승사자 대접이 꼭 대문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저승사자를 집에 들이면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가 삼 년 안에 다른 사람을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승사자가 마냥 무섭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설화 속에서 저승사자는 종종 실수로 동명이인을 잡아가거나, 망자에게 후한 대접을 받고 그냥 돌아가는 등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표적인 예가 삼천갑자 이야기다. 자신이 단명할 것을 안 동방삭은 저승사자가 오는 길에 밥, 돈, 신발을 정성스레 차려놓는다. 밥을 먹고 돈과 신발을 나눠 가진 저승사자들은 뒤늦게 그것이 동방삭이 준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저승사자는 고민 끝에 명부에 적힌 열 십(十)에 한 획을 더해 일천 천(千)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동방삭의 수명은 삼십에서 삼천으로 늘어난다.




웹툰 <신과 함께> 속 저승사자
웹툰 <신과 함께> 시리즈에 나오는 저승 삼차사 강림도령, 해원맥, 이덕춘은 신화처럼 셋이 한 조로 움직인다. 다만 웹툰에서는 이덕춘이 강림도령을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로 그려진다. 저승은 현대화가 이루어져 삼차사가 정장을 입고 지하철로 망자를 이송한다. 또 지장보살이 양성한 저승 변호사가 시왕 앞에서 망자를 변호한다. 웹툰 속 강림의 주무기는 주먹인데, 이는 신화와 관련이 있다.『차사본풀이』에 따르면 강림은 이승에서 맨주먹으로 염라대왕의 수하를 때려눕히고 염라대왕을 붙잡은 적이 있다. 이때 강림의 능력을 눈여겨본 염라대왕이 그를 저승차사로 삼았다고 한다. 웹툰 속 강림은 또 다른 능력을 겸비했다. 그가 무거울 중(重)이라는 낙인을 찍은 인간은 저승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고 무조건 지옥의 형벌을 치러야 한다. 『차사본풀이』에는 강림도령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나온다. 염라대왕은 강림에게 남자는 칠십, 여자는 팔십이 되면 저승으로 데려오라 명한다. 하지만 이승까지 가기 귀찮았던 강림은 염라대왕의 명이 담긴 적패지를 까마귀에게 맡긴다. 적패지를 잃어버린 까마귀는 이승에 날아가 되는대로 지껄인다. “아이 갈 데 어른 가십시오. 어른 갈 데 아이 가십시오.” 이후 사람들은 앞뒤 순서 없이 죽게 되었다. 웹툰 <신과함께 신화편>에서는 이 일화가 다르게 그려진다. 모든 인간의 수명이 일정한 것이 부당하다고 여긴 강림은 직접 적패지를 찢고 염라대왕에게 까마귀가 물어갔다고 둘러댄다.




드라마 <도깨비> 속 저승사자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저승사자가 일종의 공무원처럼 그려진다. 조직 내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며, 워크숍, 회식, 서류에 시달리는 등 현대의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저승사자의 적패지는 봉투 안에 든 카드로 바뀌었다. 카드에는 붉은색 한자로 이름, 나이, 사망 시각, 사인이 적혀 있는데, 인간은 이 글씨를 볼 수 없다. 저승사자는 망자의 영혼을 집무실로 데려와 이승의 기억을 지우는 차를 대접한 뒤, 문 너머 저승으로 인도한다. 저승사자의 제복은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 저승사자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옷차림인 검은 두루마기와 갓의 현대적 변용이다. 이들은 평소 살아 있는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일을 할 때는 모자를 써서 모습을 감춘다. 저승사자는 손을 잡은 인간의 전생을 보는 등 다양한 초능력도 발휘한다. 하지만 이처럼 초월적인 존재인 저승사자도 인간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 집세와 생활비는 망자의 제사상에 놓인 노잣돈을 모아 해결한다. 이승을 떠도는 저승사자에게는 알고 보면 슬픈 사연이 있다. 작중 저승사자는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수백 년간 지옥에서 스스로 기억을 지운 자들로 나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인간처럼 살아가며 자신이 저버린 삶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형벌이다. 기억을 잃고 이름도 잊은 저승사자들은 모두 똑같이 ‘김차사’로 불린다.




드라마 <블랙> 속 저승사자
드라마 <블랙>에도 자살자가 저승사자가 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작중 저승사자는 순수 천계 출신과 자살한 인간 출신으로 나뉜다. 자살자는 자신이 버린 목숨이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위해 저승사자가 된다. 이들은 생전의 기억과 모습을 유지하며 임무를 수행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승사자에서 벗어난다. 드라마가 진행되면 스스로 천계 출신이라 믿었던 주인공 저승사자도 실은 인간 출신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그의 실체는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실종자의 영혼. 이런 영혼은 생전의 기억과 모습을 잊은 채, 시신이 발견되어 장례를 치를 때까지 구천을 떠돌며 저승사자 노릇을 한다. 이름을 잊은 이들은 사망 날짜에서 따온 번호로 불리며, 형체도 없어 인간의 영혼을 수거할 때만 잠깐 인간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이때도 인간과 인간의 물건을 만질 수는 없다. <블랙> 속 저승사자들은 영혼 캡슐을 이용해 망자의 영혼을 수거한다. 캡슐에서 영혼의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려 그 즉시 영혼을 수거해야 한다. 문을 통해 원하는 장소로 순간 이동하여 재빨리 영혼을 수거하면 임무 완료. 다만 문이 잠겨 있으면 이동할 수 없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실수로 영혼을 놓치면 지하 감옥에 떨어지는 벌을 받는다. 파트너에게서도 눈을 떼선 안 된다. <블랙>의 저승사자는 모두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파트너가 도망칠 경우 남아 있는 저승사자에게도 책임을 물어 도망친 사자나 원혼을 잡는 귀찰대의 개로 만들어버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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