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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빌리 엘리어트> 김영주의 윌킨슨 선생님 [No.175]

글 |박보라 사진제공 |신시컴퍼니 2018-04-17 6,437
행운을 빌어요


‘탄광촌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습니다. 바로 발레 유망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 왕립발레학교의 신입생 빌리 엘리어트인데요. 이 소년이 탄광촌에서 어렵게 발레를 배운 사연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윌킨슨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이 글은 윌킨슨 역을 맡은 김영주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빌리의 첫인상을 회상해 보면 어땠나요?
처음 빌리를 본 순간부터 재능을 알아본 건 아니었어요. 여자아이들만 가득한 발레 수업에 남자아이 하나가 들어왔고, 그 아이가 있으면 ‘쥐와 고양이’처럼 재미있을 것 같았죠. 맞아요. 사실은 빌리의 존재가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내게 자꾸만 열쇠를 건네주는데 일부러 못 본 척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더군요. 솔직하게 ‘어, 이것 봐라? 안 나가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빌리가 발레에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아차렸죠.

그럼 빌리의 엄청난 재능을 깨달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빌리가 처음 턴을 돌고, 피루엣을 연습할 때요. 그 아이가 천천히 내게 오는 순간 ‘이 아이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까지는 빌리가 발레 수업에 함께 있는 게 단순히 재미있었죠. 사실 그렇잖아요. 여자아이들만 있으면 할 수 없었던 장르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고요. 정말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그 순간부터는 정말 적잖이 놀랐어요.

빌리가 계속 발레 수업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나요?
반신반의였어요. 사실 안 와도 상관없었죠. 그런데 빌리가 계속 오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혹시 몰라 발레 슈즈를 가지고 갔죠. 슈즈를 챙기기 전에도 살짝 고민했어요. ‘올까? 올 것도 같은데? 그럼 슈즈를 챙겨 가자’ 이랬던 거였죠. 그랬는데 정말 빌리가 왔고, 슈즈를 챙겨 와 다행이었어요.

빌리에게 발레를 가르쳐주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빌리는 내가 알려주는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했어요. 빌리를 지켜보면서 내가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대리 만족을 느꼈어요. 그래서 빌리와 함께할수록 ‘빌리가 잘 해냈으면 좋겠다. 나보다도 더 잘 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 찼죠.



그런데 빌리의 가족들은 빌리가 발레를 하는 것에 심하게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당연해요. 아마 가족들은 빌리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탄광이 파업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빌리가 발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죠. 아마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발레’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어봤을 거예요.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빌리에게 왕립발레학교의 오디션을 제안했다고요.
빌리를 위한 마음 하나만으로 그랬던 거죠. 사실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에 가기 위해 발리의 집으로 갔을 땐, 그를 바로 데리고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가족들의 반대를 꺾을 수 없더군요. 빌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정말 말 그대로 시궁창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순간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빌리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찾아왔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시큰둥했어요. 그런데 빌리가 오디션을 볼 수 있냐고 묻더군요. 그에게 빌리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고 정말 잘될 수 있을 거란 걸 알려줘야만 했어요. 사실 빌리의 아버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몰랐어요. 이제야 말하지만,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애원하고 부탁을 했거든요. 아마 빌리의 아버지도 느꼈을 거예요. 내가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애원한 게 처음이라는 걸. 빌리가 오디션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빌리의 아버지가 내 마음을 알아차려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빌리가 당신에게 엄마의 편지를 보여줬다면서요.
아…, 정말 어색했어요. 사실 누군가와 감정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음…, 고개 숙인 빌리를 안아줄 수도 없었어요. 전 그런 그릇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빌리는 이미 엄마의 편지를 다 외우고 있더군요.



왕립발레학교 오디션 추천서에 어떤 내용을 썼어요?
정말 사실만 썼어요. 빌리가 처한 상황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에 관해서도 썼죠. 그러나 빌리는 재능과 열정이 있다. 이렇게요.

빌리의 왕립발레학교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어떤 기분을 느꼈나요?
빌리의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는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어요.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순간조차도 찰나였어요. 이 모든 것이 지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 담담해졌죠.

빌리가 왕립발레학교로 떠나기 전에 만났다고요.
빌리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빌리, 행운을 빈다.’ 사실 눈물이 차올랐는데, 빌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어요. 그런데 빌리가 돌아서서 ‘선생님도 행운을 빌어요’라고 하더군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알았어요. 빌리는 내 모든 걸 알고 있고, 자기가 떠나면 난 이 거지 같은 인생을 버티면서 살아갈 거란 걸. 난 그걸 알아주는 빌리가 정말 고마웠죠. 내 인생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거든요.

그럼 그 이후에 빌리는 당신을 만나러 왔나요?
아니요. 빌리는 탄광촌에 다시 오지 않았어요. 빌리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죠. 그저 멀리서 빌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빌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빌리는 내 꿈과 희망을 품고 간 아이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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