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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시카고> 최정원 [No.175]

사진 |심주호 진행·글 | 안세영 스타일링 | 박정아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 곽보영 헤어 | 현주 메이크업 | 이창은 2018-05-04 7,883
BORN TO BE A MUSICAL STAR

<시카고>를 빼놓고는 최정원을 논할 수 없다. 아니, 최정원을 빼놓고는 <시카고>를 논할 수 없다. 2000년 초연부터 시작하여 지난 18년간 <시카고> 라이선스 공연의 모든 시즌을 함께해 온 최정원. 그가 올해 다시 한 번 벨마 켈리로 무대에 오른다.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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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
의상을 갈아입은 최정원이 조명 앞에 나서자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들 입에서 ‘헉’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다음 멘트는 ‘역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 준비됐으니 신나는 음악 좀 틀어달라는 말과 함께 촬영에 들어간 최정원은 비욘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어쩔 줄 모르고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배우가 많지만, 최정원과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3초에 한 번 꼴로 자유롭게 포즈를 바꾸는 그 앞에서 결국 사진작가가 먼저 ‘천천히’를 외쳤다. “카메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배우는 오랜만이네”라는 말과 함께.

그가 18년간 <시카고> 무대를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듯 잠깐의 촬영만으로도 알 수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매 순간을 새롭게 만드는 능력 말이다. “어떻게 18년간 계속 같은 작품을 해요? 지겹지 않아요? 물으시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똑같은 걸 반복한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그때그때 제 나이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작품에서 와닿는 부분이 달라지는걸요.” 흔히 더 많은 작품, 새로운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배우의 역량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최정원은 다른 작품을 포기하면서까지 <시카고>와 오래 인연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에게 더 완벽한 무대를 선물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뮤지컬하면 떠오르는 모든 게 들어 있는 진정한 뮤지컬이에요. 노래, 춤, 연기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절대 함께할 수 없죠. 그래서 무대 위에서 느끼는 성취감도 남달라요. 오케스트라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세트와 의상의 변화 없이 배우의 역량만으로 극을 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마당놀이와 비슷해요. 브로드웨이식 마당놀이랄까.”

물론 초연부터 한 작품의 역사를 빠짐없이 함께하는 명예가 원한다고 아무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시카고> 하면 여전히 그를 떠올리고 기다리는 관객, 그리고 그를 신뢰하는 제작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매번 <시카고>가 공연할 때마다 신시컴퍼니에서 먼저 저를 찾아주셨어요. ‘<시카고>에는 최정원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듣는 건 배우로서 무척 행복한 일이죠. 저 또한 그런 제작사와의 의리를 지켜왔고요.” 그동안 <시카고>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작품도 적지 않다. 이제는 <시카고> 때문에 다른 작품에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면 다른 제작사에서도 이해하는 분위기란다. “<넥스트 투 노멀>의 다이애나 역을 제안받았을 때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카고>와 공연 기간이 딱 한 달 겹치더라고요. 주연 배우가 같은 시기에 두 작품을 번갈아 공연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넥스트 투 노멀>의 박용호 프로듀서님께 사정을 설명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카고>라면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시카고>는 최정원 씨가 하셔야죠.’ 잊지 못할 감사한 말이었어요.”

한국 공연에 출연하는 것도 모자라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8번이나 <시카고>를 관람했다는 최정원. 그가 <시카고>를 처음 본 것은 국내에서 초연되기도 전인 1998년 브로드웨이에서다. 당시 충격이라 할 만한 감동을 받고 잊지 않기 위해 인터미션 때 무대를 옮겨 그리기까지 했다. 한국에 돌아와 주변 배우들에게 <시카고>를 전도했다는 그는 결국 2000년 초연에서 록시 역을 따냈다. “‘한 가지 얘기해 줄까요’ 하고 시작하는 모놀로그 장면을 할 때마다 진짜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내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배우란 얼마나 행복한 직업인가 실감했죠.” 그해 록시로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최정원은 2001년 공연에서 다시 한 번 록시로 무대에 올랐고, 2007년에는 벨마로 변신했다. “처음 벨마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솔직히 섭섭했어요. 나 아직 록시 할 수 있는데, 한 번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대본을 다시 집중해서 읽어보니까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벨마의 대사가 지금의 나와 더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록시를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록시와 벨마가 서로 팽팽하게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도 알 것 같았고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최정원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한국의 벨마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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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의 소중함
공연을 할 때마다 <시카고>에서 와 닿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최정원. 최근 그에게 특히 와 닿는 노래는 바로 ‘Class’다. “노래 안에 ‘품위는 어디 갔나’라는 가사가 나와요. 점점 멋지고 세련되어지는 세상 속에서 품위가 사라지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아요. 품위는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거거든요. ‘Class’를 부르면서 저도 스스로를 돌아봐요. 배우가 가장 놓지 말아야 할 게 무대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을 대하는 ‘클래스’라고 생각해요.”

최정원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사람과 동료라고 했다. “제게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모노드라마예요. 상대 없이 공연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어요. 그때 이후로 다시는 혼자 하는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제가 뮤지컬을 하는 이유는 무대 위에서 상대와 감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가 <시카고>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픈 가치도 함께의 소중함이다. “배우는 작은 철학자예요. 작품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게 만들고, 삶의 위기에 놓인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시카고>는 우리에게 품위 있는 삶이 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마지막에 벨마와 록시는 한 팀이 되어서 전국 순회공연을 떠나는데,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인기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최정원은 최근 공연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무대 위에서 멋지게 빛날 수 있었던 신인 배우, 배우 지망생이 성추행을 겪고 영영 무대를 떠났다는 얘기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 선배가 되니까 성추행을 경험한 후배에게 울면서 전화가 오곤 해요. 그중에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친구도 있죠. 내가 거길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웃어주지 않았더라면,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더라면. 그때마다 꼭 얘기해요. 절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저는 제 딸에게도 똑같이 말해요. 너도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누가 널 밀어서 다친 것뿐. 그러니 숨기지 말고 얘기해다오. 너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정당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 후배들의 상담 역을 맡으면서 최정원은 결국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아야만 치유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기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 불쾌함을 드러내고 사과를 요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최정원은 지금의 미투 운동이 고무적이라고 느낀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스승이 제자가 예뻐서 엉덩이 한 번 만지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고,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인지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해요. 우리는 예술하는 사람이잖아요.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지 않는 작업 환경 속에서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너만 참으면 된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입다물게 하고 문제를 쉬쉬하며 공연을 이어가는 문화는 없어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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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
배우 최정원을 설명할 때면 ‘1세대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1987년 롯데월드 예술극장 1기 뮤지컬예술단에 최연소 여배우로 입단한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온 선생님에게 트레이닝을 받으며 뮤지컬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을 뮤지컬 배우라고 소개하면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다. “선배 뮤지컬 배우가 없어서 노인 역도 다 저희 또래가 맡았어요. 동갑인 배우한테 ‘어머니’ 하고 불러야 했죠. 지금은 제가 후배한테 엄마도 되어주고, 저보다 어른인 박정자 선생님이 할머니도 되어주시니 얼마나 좋아요.”

어느덧 많은 뮤지컬 배우의 롤모델로 꼽히는 배우가 되었지만 그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다. “어려서 멋모를 때는 제 단점보다 장점이 많이 보였어요. 지금은 아는 게 많으니까 그만큼 제 단점도 많이 보이고 고민도 많이 하게 돼요. 저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죠.” 그럼에도 무대에 서면 여전히 설레고 행복하다는 최정원. 아프다가도 공연할 때면 컨디션이 더 좋아진다니 ‘천직’이라는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행복해요. 뭔가를 이루기 위해 한다기보다 너무 행복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 무대에 선 순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동안 배우 생활의 신조로 삼아온 것도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이다. “제가 팬들에게 사인할 때 쓰는 문장이에요.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참 중요한데, 다행히도 저는 매너리즘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같은 작품을 해도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작년 말부터 <빌리 엘리어트>의 윌킨슨 역으로 공연 중인 그는 요새 다섯 명의 빌리와 번갈아 합을 맞춰 공연하는 데 푹 빠져 있다. 일주일에 네 번‘밖에’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아쉬울 지경이란다. “매일 오늘은 어떤 빌리와 만날까 궁금해 하며 행복해해요. 함께할 빌리가 누구인지 듣는 순간, 머릿속에 그 배우의 장점이 딱 떠올라요. 거기에 맞춰서 난 오늘 이런 느낌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죠.” 매니저의 증언에 따르면 최정원은 <빌리 엘리어트>처럼 반년 가까이 공연하는 작품도 마지막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대본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10년 넘게 같이 일했지만 한번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지겨워 죽겠어요’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매일매일 공연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그는 앞으로 창작뮤지컬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사실 데뷔 초에는 웬만한 창작뮤지컬을 제가 다 했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 <쇼 코미디>, <하드락 카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등. 창작 작업에 참여하는 배우는 고민이 많이 필요하죠. 쌀을 씻고 밥을 짓는 게 아니라 벼부터 심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힘들어도 제 의견을 반영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2015년 <아가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창작뮤지컬의 재미를 다시 느꼈어요. 자다가도 일어나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메모했죠.”

만약 배우 최정원의 인생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면 그 작품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시기는 언제가 될까? “저의 절정이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저는 절정일 때 떠날 거거든요. 더 이상 이보다 잘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진짜 과감히 떠날 거예요. 근데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항상 공연이 끝날 때마다 아쉬움이 남거든요. 그래서 늘 다음 번 무대에 서는 순간이 기다려져요. 오늘은 어떻게 하면 어제보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는 최정원. 30주년을 위해 계획 중인 이벤트가 있느냐 묻자 그는 손사레를 쳤다. “아이고, 없어요. 실은 20주년 때 뭘 해볼까 했는데 했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지금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겨우 20년 해보고 뭐 잘났다고! 그래서 30주년에도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50주년이면 모를까.” 우문현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축하 인사를 삼켰다. 앞으로 30년은 더 무대에 설 배우에게 30주년을 축하하기는 너무 이르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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