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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브리프 인카운터> [No.176]

글 |남윤호 배우 사진 |Steve Tanner 2018-05-11 4,376

 

<브리프 인카운터> Brief Encounter 
그 짧고도 강렬한 만남




독특한 형식을 지닌 음악극 

여전히 비수기인 듯 보이는 런던 공연계에 흥미로운 작품들이(하지만 주로 연극이) 여럿 막을 올리고 있지만, 어떤 작품을 소개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런 고민은 아마도 매달 이 글을 쓰는 나의 목적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계적으로 공연을 보고 그 공연에 대한 느낌을 기계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리뷰를 통해 공연을 관람하라고 권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좋은 공연을 소개하고 싶은 것인지(어쩌면 둘 다인지) 고민하고, 또 왜 이 작품을 택했으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극장에서 겪은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기고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달 여러 공연을 보고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라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리뷰를 쓰는 목적은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한 결과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찾아 쓰기로 무의식중에 나 자신과 약속했던 것 같다. 

이런 고민 끝에 고른 이번 달의 작품은 영국 근현대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노엘 카워드(Noel Coward)와 현대 영국 공연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극단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Kneehigh Theatre Company)가 만든 <브리프 인카운터>다. 사실 <브리프 인카운터>는 전형적인 뮤지컬보다는 오히려 음악극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쓰기로 한 것은 <브리프 인카운터>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고, 몇 년 전 내한한 바 있는 뮤지컬 <데드 독>을 만든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니하이 시어터의 예전 작품을 접하진 못했지만, 워낙 소문이 자자한 단체였기에 <브리프 인카운터>가 런던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다재다능 팔방미인 전천후 아티스트, 노엘 카워드

노엘 카워드 경은 1899년 영국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테딩턴에서 태어난 극작가 겸 연출가, 작곡가, 배우, 싱어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노엘 카워드의 작품을 접해 보지 못했는데, 그는 근현대 영국 연극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는 극작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노엘 카워드는 본인이 쓴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또 공연뿐 아니라 영화 각본을 쓰고 출연을 맡았던 전천후 예술가였다. 또한, 작곡도 해서 본인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음악극 형식의 작품도 만든 바 있다. 노엘 카워드의 글은 특유의 위트와 대담함으로 유명했는데, 타임지가 그를 두고 “개인의 독특한 스타일, 농담조의 가벼움과 시크함, 침착함과 문제 제기의 콤비네이션”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노엘 카워드는 극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이전에 배우로서 먼저 무대에 올랐다. 1911년 첫 활동을 시작하였고, 1918년에 극작가로서 첫 작품을 완성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만 하여도 영국에서는 로드 체임벌린스 오피스(번역하자면 궁내장관실 정도가 될 듯하다)가 검열을 시행했는데, 노엘 카워드의 작품 다수는 요즘 말로 하자면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불륜을 소재로 남녀 관계의 복잡한 면을 다루다 보니 꽤나 검열 대상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오늘날 가장 친숙한 작품은 지난해 케빈 클라인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에 올라갔던 <프레젠트 래프터(Present Laughter)>라는 작품일 것이다. 그 외에도 <보어텍스(The Vortex)>, <헤이 피버(Hay Fever)>, <프라이빗 라이브스(Private Lives)> 등 큰 성공을 거두고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노엘 카워드는 당시 본인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였던 배우 거트루드 로렌스와 협업하면서 함께 웨스트엔드를 휩쓸었다. 특히 두 사람이 주연을 맡은 <프라이빗 라이브스>는 웨스트엔드는 물론이고 브로드웨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두 사람은 순수한 창작 파트너였을 뿐 다른 사적인 관계는 없었다). 이번에 소개할 <브리프 인카운터>는 노엘 카워드의 단막극 모음인 <오늘 밤 8:30>(총 열 편의 단막 희곡을 묶은 것으로 3일간의 저녁에 걸쳐 공연되도록 쓰인 단막극 모음)에 포함돼 있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를 원작으로 데이비드 린 감독이 1945년에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거트루드 로렌스와 함께 노엘 카워드가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

‘Brief Encounter’. 이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짧은 충돌 또는 짧은 만남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밀회>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로 탄생한 <브리프 인카운터>는 그의 초기작으로, 대표작인 <닥터 지바고>(1965)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콰이강의 다리>(1957) 같은 영화에 비하면 스케일도 작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가 왜 거장인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에 영화 편집자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데이비드 린은 1942년 노엘 카워드와 공동 감독을 맡아 만든 <인 위치 위 서브(토린호의 운명)>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네 번에 걸친 공동 작업의 첫 산물이었는데, 노엘 카워드는 이 영화에도 직접 출연을 한 바 있다. 

다시 <브리프 인카운터>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각자 가정이 있는 알렉과 로라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이 끝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막극을 장편 영화로 만들다 보니 몇몇 장면이 추가돼서 그런지 원작 <스틸 라이프>보다 이야기가 좀 더 명확해졌는데, 원작자 노엘 카워드가 제작자로 참여한 만큼 원래의 플롯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알렉과 로라가 주로 만나는 장소는 밀포드 정션(Milford Junction)이라는 가상의 기차역에 있는 카페다. 두 사람은 알렉의 아파트를 오가며 영화관에 가거나 강가에서 배를 타기도 하며 만남을 이어가지만 결국은 둘의 관계가 가져올 아픔과 위험성을 인지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알렉과 로라가 사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밀포드 정션에서 서로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야 하는 위치다. 둘이 마지막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는 장면에서 로라의 지인인 돌리가 우연히 나타나 두 사람의 슬픔과 아픔은 알지 못한 채 자기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그러는 사이 알렉의 기차가 도착하고 둘은 마지막 작별의 순간을 도둑맞아 제대로 된 포옹 한 번 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된다. 

<브리프 인카운터>는 어쩌면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작품일지 모른다. 두 사람은 불륜이지만 영화 또는 공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에 둘의 관계에 몰입될 수도 있는데, 또 한편으론 불륜이라는 현실성 때문에 이 작품에 몰입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쟁점을 떠나 작품만 놓고 생각을 하자면 인간의 본능과 사랑, 관계, 각자가 생각하는 도덕성을 로맨스라는 장르를 통해 깊게 파고들지 않았나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노엘 카워드의 작품들이 주로 남녀 관계의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당대에도 검열의 대상이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되는 것이 껄끄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공연과 영화 그리고 원작 단막극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브리프 인카운터>의 성공이 시작된 런던 웨스트엔드로 10년 만에 돌아온 니하이 시어터의 공연은 원작 단막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토대로 영화의 플롯과 분위기를 ‘니하이’스럽게 잘 풀어냈다고 본다. 특히, 영상과 음악 그리고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공연을 보기 전, 공연 사진만 보고 내 멋대로 원작 영화를 틀어놓고 거기에 맞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영상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버전에 대한 헌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 당시 흑백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영상들이었다. 물론, 영상에 나오는 배우들은 무대 위 배우들이었다. 여러 매체나 작품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배우가 스크린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영상으로 나오는 기법을 썼지만, 이것을 적절한 타이밍과 뛰어난 연기로 살려내 무척 세련돼 보이게 만들어 놓았다. 

음악은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부터 시작된다. 객석이 오픈되기 전, 로비에서 전문 뮤지션으로 착각할 만큼 뛰어난 연주와 노래 실력을 지닌 콰르텟이 관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 준다. 그리고 객석으로 이동하면 이번엔 또 다른 조합의 콰르텟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그 외에도 (콰르텟을 포함하여) 마치 1940년대 벨보이 또는 기차 승무원, 영화관 직원들처럼 유니폼을 갖춰 입은 앙상블들이 관객들과 자유로이 대화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막이 오르면 이들이 자연스레 무대 위로 올라서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참고로 주인공인 알렉과 로라는 공연 시작 전 객석 첫 줄 중앙 좌석에 마치 영화를 보러 온 관객처럼 앉아 있다. 거의 모든 배우들이 돌아가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여기서 빼놓지 않고 얘기해야 하는 음악이 하나 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다. 이 음악은 영화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공연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작곡하기 직전까지 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이 곡을 그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감을 되찾게 도와준 니콜라이 달 의사에게 바쳤다고 한다. 혹자는 라흐마니노프가 니콜라이 의사의 딸과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랑이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작곡하게 된 계기라고도 한다. 대중에게도 유명한 곡이지만 라흐마니노프 자신에게도 소중했을 이 곡이 <브리프 인카운터>에 사용된 것은 어쩌면 불같았지만 진실했던 사랑이 영감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는 피지컬 시어터 단체이다 보니 배우들의 움직임 또한 쫀쫀한 합을 보여준다. 특히, 알렉과 로라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둘의 관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샹들리에에 매달려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충분할 것이다.




콘월주에서 탄생한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는 1980년에 출발해 현재 영국 공연계에서 큰 인기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단체다. 영국 남서쪽에 위치한 콘월주에서 탄생한 이 극단은 마을 회관이나 절벽 위 같은 곳처럼 장소를 불문하고 공연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공연을 해오던 중 2007년 버밍엄에서 <브리프 인카운터>의 초연을 올려 큰 성공을 거두면서 웨스트엔드로 진출하게 된다. 이번 웨스트엔드 공연이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에게 큰 의미가 되는 것은 이들이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시작했던 똑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고, 어찌 보면 이 공연이 지금 현재의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극장은 엠파이어 해이마켓 시네마로 원래는 영화관인데, 그중 가장 큰 관을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니하이 컴퍼니 시어터는 전 세계를 돌며 자신들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의 많은 극단들이 그러하듯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 또한 고정으로 소속된 배우나 스태프가 있진 않다. 다만,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아티스트들이 자주 같이 일을 할 뿐이다.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는 올해 다섯 개의 공연이 영국 내에서 투어 중이고, 그중 하나는 해외에서도 투어를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도 이들이 어떤 공연을 창조해 낼지 기대된다.




노엘 카워드와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의 만남

앞서 말했듯이, <브리프 인카운터>는 노엘 카워드와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 이 둘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만했고, 그 기대치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부응하는 공연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개개인의 감상과 시각은 다른 법인지라 이 세상의 모든 관객들이 이 공연을 좋아할 거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존의 극장을 떠나서 영화관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특별함과, 1940년대의 영화를 향한 존중 또는 존경심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공연이었다.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음악극에 가까운 형식이지만 언어를 모르더라도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된다. 당장 한국에 니하이 시어터 컴퍼니의 <브리프 인카운터>가 공연되긴 힘들겠지만, 대신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버전을 찾아보길 바라본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인터넷에 있는 노엘 카워드의 육성도 들어보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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