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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팬레터> 대만 NTT 공연, 신뢰를 향한 단단한 첫걸음 [No.180]

글 |박병성 사진제공 |라이브, NTT 2018-09-06 7,387

<팬레터> 대만 NTT 공연, 신뢰를 향한 단단한 첫걸음

 

지난 7월과 8월 대만의 타이중 국가가극원(臺中 國家歌劇院, National Taichung Theater, 이하 NTT)에 한국 뮤지컬 두 편이 올랐다. 7월 20일부터 22일까지는 <헤드윅> 한국 프로덕션이, 8월 17일부터 19일까지는 창작뮤지컬 <팬레터>가 공연했다. 필자는 <팬레터> 대만 공연의 연관 행사로 진행된 4일간의 워크숍 중 마지막 날 발제자로 참여했다. NTT <팬레터> 공연과 현지인들의 반응, 그리고 대만의 공연 시장과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었다.

 


 

타이중의 랜드마크 NTT

NTT는 대만의 중서부에 위치한 제3의 도시 타이중의 국립극장이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가 섬의 북쪽에 있고 제2의 도시 가오슝은 섬의 남쪽에 자리 잡았다. 타이중은 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타이베이의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차로 2시간 정도를 달리자 타이중 시가 나타났다. 일제의 지배를 받은 역사 때문인지 대만의 건물들은 오래된 일본과 현대적인 감성이 결합된 듯한 느낌을 줬다. 아열대 기후의 성장력이 좋은 야자수가 도심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견고하고 높은 빌딩들과 단조롭고 밋밋한 건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현대적인 대도시와 오래된 일본 느낌이 적절히 섞인 대만만의 풍경이 펼쳐지다가 갑자기 NTT가 모습을 드러냈다. NTT는 어떤 국가적인 느낌도 없었다. 심지어 대만적인 느낌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미래적인 건축물이었다. 
 

NTT는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의 작품이다. “어느 곳이든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도록 설계했다”는 건축가의 말대로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마치 모든 공간이 이어져 있는 동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면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외부로 보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사무 공간 역시 마치 동굴 속에 움집을 지어놓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런 곳이라면 52시간이 넘도록 근무를 해도 불만이 덜할 것 같았다. NTT는 무려 12년의 건축 기간을 걸쳐 2016년 9월에 완공되었다. 
 

NTT는 총 세 개의 시즌으로 작품을 기획한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대만이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계절별로 시즌을 마련한 것이다. 여름 시즌은 ‘여름에 타이중에서 뮤지컬을 보자’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2017년에는 대만 창작뮤지컬 <뮬란 소녀>와 일본의 <데스노트>가 이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연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한국 뮤지컬 중 라이선스 <헤드윅>과 창작뮤지컬 <팬레터>(대만 제목은 光的來信, 빛이 보낸 편지)를 선택했다. NTT는 총 세 개의 극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0석 규모의 대극장, 프로시니엄 공연과 아레나 공연이 가능한 가변형 플레이 하우스, 야외 공간과 연결된 200석 규모의 블랙박스 시어터가 그것이다. <헤드윅>과 <팬레터>는 NTT의 메인 공연장인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대만의 뮤지컬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편이다. 2014년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한국 뮤지컬 <썸머 스노우>가 대만 국부기념관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국내 제작사의 작품이지만 일본에서만 공연하고 한국에서는 공연하지 않았다. 2017년 대만 창작뮤지컬 <뉴요커>와 2018년 천핀링의 1인 뮤지컬 <맨투잇>이 DIMF를 통해 소개되었고, 지난해 서울 스타라이트 뮤지컬 페스티벌에서는 대만 뮤지컬 배우 차이파오 창이 출연해 <디어 에반 한센>과 <빨래>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만과의 뮤지컬 교류는 앞서 언급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활발하지는 않다. 그래서 NTT에서의 한국 뮤지컬 공연이 더욱 의미를 지닌다.



공연장 입구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팬레터> 대만 공연

NTT 1층 내부에 들어서자 <헤드윅>과 <팬레터>의 디스플레이가 눈에 띄었다. 앞에는 <팬레터>의 해진이 글을 쓰던 책상을 디스플레이하고 뒷면은 헤드윅 이미지를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한 구조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연장 내부 기념품 숍에서는 <팬레터> MD로 편지지와 해진의 안경을 연상시키는 안경수건을 팔고 있었다. 단 3일 공연이지만 NTT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 역시 NTT와의 작업을 만족스러워했다. 강병원 대표는 지난 <팬레터> 동숭아트센터 공연에서 중국어 자막 서비스를 했던 것이 이번 인연으로 이어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대만 공연을 제안하러 온 사람이 공연 에이전시가 아니라 공연장 관계자였던 것이 우선 믿음이 갔다고 한다. 계약 이후 NTT는 기술 스태프를 김해 공연에 파견해 상황을 살피는 등 꼼꼼하게 공연을 준비했고, NTT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매거진과 대만 공연 잡지에서 <팬레터>의 창작진과 배우를 취재하기 위해 이틀간 방문해 공들여 취재한 것도 인상 깊었다. 제작 발표회를 정성 들여 준비한 것이나, 공연장 내 디스플레이부터 워크숍 진행, 제작 과정에서 NTT가 보여준 배려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실제 NTT의 <팬레터> 공연에서 한국 공연보다 좋은 인상을 받았다. 중소극장 규모의 공연을 2천 석 극장에서 공연한다고 할 때 부정적인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인 상황은 이해할 수 있으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우려는 훌륭한 공연장 환경과, 같은 생각을 했을 제작진들의 노력으로 만회됐다. 그리스 야외극장처럼 부채꼴 형태로 펴져 있는 NTT의 대극장은 2천 석 규모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객석과 무대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2층에서 관람한 지인에 따르면 2층에서도 무대가 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음향이 한국 공연보다 좋았다. 분명 MR이었지만 라이브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음향은 진공관 스피커로 듣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작품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갈색 톤의 부드러워진 음향은 <팬레터>의 문학적인 가사나 시대적인 분위기와 적절하게 어울렸다.
 

대만 관객들은 좀 더 자주 웃었다. 한국보다 작품을 편하게 즐겼다. 웃음이 자주 터져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막 번역이 잘되었다는 의미였다. 자막 오퍼레이터는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봤고 작품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100여 차례 공연 영상을 보며 연구하고 연습했다고 한다. 한국 관객들이 웃는 지점뿐만 아니라 웃지 않는 지점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특히 해진이 혈서로 편지를 썼다는 대사에서는 그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마음이 도드라져 큰 웃음이 터졌다. 배우들은 대만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작품 자체에 순수하고 솔직히 반응하는 것 같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한국 관객들은 반복 관람객이 많다 보니 대사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반응하지만, 대만 관객은 처음 접하다보니 좀 더 순수하게 반응한다는 말이었다. 
 

공연 후 몇몇 대만 관객을 만나보았다. 전체 관객에 비하면 소수였지만 대략적인 대만 관객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팬레터>를 보러 온 관객들은 공연을 좋아하는 그룹, 대만 뮤지컬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까지 좋아하는 그룹, 한류를 좋아하는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이규형을 보러 왔다고 하는 이들도 한 그룹을 형성했다. 이규형이 출연한 드라마를 넷플렉스로 볼 수 있어서 어느 정도 팬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한국의 문인들을 모티프로 한 작품임에도 대만 관객들은 <팬레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한 대만 관객은 “대만도 일본의 통치를 받은 역사가 있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팬레터>에 대해 다른 관객은 “이 작품은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일제 시대 문인들의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퀴어이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후자는 남자 주인공을 여성으로 대치해 피해 가고 있다. 이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대만 관객들이 <팬레터>를 속속들이 이해하며 관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감상평이었다. 대만 관객들은 상당수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해진이 마지막에 보내는 편지를 꼽았다. 

 


메인 로비에 전시된 <팬레터> 디스플레이 
 

MINI INTERVIEW

왕웨이링(Wang Wei-Ling) NTT 제너럴 매니저

 

이번 시즌 프로그램으로 한국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해 일본의 <데스노트>를 올렸는데 성과가 좋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시즌 프로그램으로 가져오기 힘들다. 한국 뮤지컬이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여러 작품을 살펴보고 어떤 작품이 어울릴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라이선스 하나, 창작뮤지컬 하나를 선택했다. 


<팬레터> 첫 공연을 한 시간 앞두고 있는데 지금 심정이 어떤가?

이틀 전부터 리허설 장면을 객석에서 보고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뮤지컬 제작에 대해 한국에 배울 것이 많은데 <팬레터> 제작 과정을 보면서 디테일하게 음향을 잡아내는 실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헤드윅>에서 오만석의 연기는 최고였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탄탄했다. <팬레터>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력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에 대한 대만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헤드윅>은 영화로도 상영됐고 대만 극단에서 소규모로 올린 적이 있어서 <팬레터>보다 인지도가 높았다. NTT가 한국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를 마케팅적으로 이해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티켓 판매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만석의 <헤드윅> 첫 공연을 보고 <헤드윅>뿐만 아니라 <팬레터>의 티켓 판매가 빠르게 올랐다.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보았기 때문이다. <팬레터>는 대만 관객들이 드라마를 통해 이규형 배우를 알았기 때문에 홍보하는 데 조금 더 수월했다. 


대만은 경제적인 규모나 문화적인 수준으로 볼 때 뮤지컬 시장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대만 전체 인구는 2천3백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인구가 못된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예술 분야도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 


대만의 뮤지컬 시장은 어떤 분위기인가?

대만을 대표해 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아직 성과가 두드러지진 않지만 최근에는 뮤지컬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단체도 두 곳 생겼고 뮤지컬을 즐기려는 관객층이 형성되어 있다. 대만에는 뮤지컬을 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효율적이지는 않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정부 지원이나 프로듀서의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인재도 부족하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고, 공공 극장이라도 장기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번 한국과의 뮤지컬 교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는가?

좀 더 실무적인 부분에서 배우, 창작진, 프로듀서와 많은 교류를 하고 싶다. 젊은 인재들이 대만에 와서 워크숍이나 강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국의 K-뮤지컬 로드쇼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헤드윅>과 <팬레터> 공연이 대만과 한국의 뮤지컬 교류에 중요한 걸음이길 바란다. 

물론.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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