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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에쿠우스> 안승균, 오롯한 전율 [No.180]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18-09-10 5,805

<에쿠우스> 안승균, 오롯한 전율  

지난 2016년 그해의 기대작이었던 연극 <렛미인>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600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기회를 거머쥔 반짝이는 신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니었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 신인 배우는 무서운 기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불필요한 겁을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 <에쿠우스>라는 도전에 나서는 안승균을 만났다.



준비된 도전
알런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번이 처음인가?’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기다려온 캐스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사실 예전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어요. 2015년인가, 휴학하고 나서 제일 먼저 본 오디션이 <에쿠우스>였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곤 완전히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 공연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예술의전당 영상자료원에서 옛날 공연 영상을 본 거였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에쿠우스>는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했다 떨어졌지만, 당시 저한테는 꽤 의미가 있었던 게 저를 서류 전형에 붙여준 거의 유일한 작품이거든요. 덕분에 ‘<에쿠우스> 오디션도 봤으니까 다른 오디션도 볼 수 있을 거야’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웃음)   

졸업 전에 휴학하고 오디션을 봤던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돼요? 빨리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걸까요.
아, 허리 디스크 때문에 재활 치료를 해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스트리트 댄스를 춰서 허리 상태가 별로 안 좋았는데, 대학 들어가서 무대 작업을 하다 허리를 삐끗한 거죠. 재수해서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시 학교 일에 열정이 엄청 컸거든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요. (웃음) 그런데 치료가 생각보다 금방 끝나서 이 시간에 놀면 뭐해 싶어 오디션을 봤던 거예요. ‘아르바이트 말고 내 일로 돈을 벌자!’ 하는 마음으로요. (웃음) 오디션에 떨어질수록 조바심이 나서 더욱 많은 오디션에 마구 지원했던 것 같아요. 근데 다 떨어졌죠.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없었으니까. 

<에쿠우스> 오디션 결과를 들었을 때, 언젠간 다시 기회가 올 것 같단 느낌은 없었어요?
이 작품은 나하고 인연이 아니란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 이한승 연출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거든요. “승균이가 이 작품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다. 좀 더 훈련하고, 좀 더 성숙해진 후에 다시 와라.” 그래서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 속상함이 덜했던 것 같아요. 연출님 말씀에 나한테 앞으로의 시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번에 오디션 보러 가자마자 연출님께 이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기억을 못하시더라고요. (웃음) 



이번처럼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잘 어울린다는 말이 제일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기대를 너무 많이 하시면 좀…. (웃음)  제가 <에쿠우스>에 빠졌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가진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 같거든요. 관객분들에게 제가 느낀 쾌감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직접 연습을 해보니까 와, 정말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사실 제가 멀티 플레이가 안 돼요. 작은 역할을 하나 맡더라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죠. 그런데 요즘 공연 연습하고 드라마 촬영을 동시에 하다 보니 머리가 과부하 상태가 되는 거예요.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에쿠우스>는 특히 좋은 컨디션으로 연습실에 가야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데 말이죠. 스케줄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조금 속상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제가 처음 <에쿠우스>를 직접 본 게 2014년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했던 공연이었어요. 그리고 2015년에 충무아트센터에서 한 것도 봤고, 그 공연의 연장 공연이었던 2016년 공연도 봤어요. 올봄에 대학로에서 공연한 것도 봤고요. 한 작품을 이렇게 꾸준히 챙겨 본 적이 또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뭐라 해야 하지. 저한테 <에쿠우스>는 공연한다고 하면 자동으로 “봐야지” 이렇게 되는 작품? 아마 인간의 본능을 다루는 작품이라 그런가 봐요. 극 중 대화 장면 중에 다이사트가 알런을 두고 내가 이제까지 어느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정열을 가져본 소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인용되는 알런의 말이 이거예요. “적어도 난 달려봤어! 그런데 넌 해본 일이 있냐.”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뭔가에 미친 듯이 빠져본 적이 있나 질문해 보는데… 솔직히 없었던 것 같아요. 알런을 사로잡은 순수한 광기가 뭐였을까. 계속 그 생각 중이에요.  

알런을 연기하는 데는 그의 정신 치료를 맡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와의 관계도 중요하잖아요. 다이사트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어요?
제 생각에는 다이사트가 <에쿠우스>에서 제일 인간적인 것 같아요. 극 중 등장하는 다른 어른들, 알런의 엄마 아빠나 가정법원 판사 헤스터하고 비교해 봤을 때요. 좋은 어른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솔직함 아닐까 싶거든요. 그런데 다이사트는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잖아요. 나중에는 알런한테 사실 자기는 정신병원 진료실이 너무 싫다고, 이 방을 나가 신들이 멱을 감으러 가던 넓은 바다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만큼이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권위주의적인 면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욱 인간답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현실적이니까. 전 다이사트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너무 궁금해요. 알런이 병원을 떠나면 아마 다이사트도 병원을 나오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봤어요.



자아를 잊게 하는 희열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가장 최근에 봤을 때 유난히 마음에 크게 박힌 장면이나 대사가 있어요?
다이사트의 마지막 독백에 나오는 대사인데,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이요. 가장 최근 공연에서는 이 대사가 제 마음속에 좀 크게 울렸던 것 같아요. 과연 정상적이라는 것은 뭘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들더라고요. 아마 그때 청소년 극을 준비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을 두고 사회의 미래라고 하는데, 저는 청소년들이 우리의 현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청소년들도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어떤 때는 어른보다 더 현명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보통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이유로 십 대들의 본능을 억압하고 파괴하려 하잖아요. 각자 가진 개개인의 열정을 인정해 주지 않고. 사회가 아이들을 꼭 주인에 복종하는 개로 만들려는 것 같아요. 표현이 너무 심한가. (웃음) 아무튼 청소년 극 <죽고 싶지 않아>를 공연하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어요.

알런은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여겨지지만, 자기 세상에서는 정상일 수 있죠. 맥락에서 조금 벗어난 질문일 수 있는데, 혹시 남들의 시선에서는 비정상처럼 보이는 성격이나 취미가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평범해서…. (웃음) 아, 제가 다큐멘터리 보는 걸 엄청 좋아해요. 평소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는 잘 안 보는데 다큐는 챙겨 봐요. <현장르포 동행>이랑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거요. 전 고등학교 때부터 밥 먹을 때 다큐를 틀어놔서 이젠 거의 습관이 됐죠. 근데 주위에 이 이야기를 하면 좀 신기해하더라고요. 다큐 보는 게 왜 좋았냐면, 일단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고, 특히 어릴 때는, 아, 지금도 어리지만요. (웃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다큐를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람은 늘 자기 합리화를 하잖아요. 그런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을 보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전 제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 했거든요. 왠지 지는 것 같아서요. 힘든 걸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도 다큐를 통해서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큐를 많이 봤던 게 제 연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까 알런이 느꼈던 감정적 희열을 아직 못 느껴봤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가장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찾아보자면 언제예요?
본능이라는 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잖아요. 최근에 <죽고 싶지 않아>를 공연하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어요. 그 공연 엔딩 장면이 배우 한 명이 핀 조명을 받으면서 ‘I Will Survive’에 맞춰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는 거거든요. 매일 공연 10분 전에 오늘은 누가 엔딩 신을 맡을지 그날그날 정해서요. 그런데 마지막 공연날 저보고 엔딩 신을 하라는 거예요. 하필 제가 그때 또 허리가 안 좋아서 연출님이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는데,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여기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 무대 위에서 5분 동안 온 에너지를 쏟아 춤을 추는데, 웃고, 울고, 소리도 지르고, 정말 신들린 듯이 춤을 췄던 것 같아요. 노래가 끝나도 춤이 멈춰지지가 않았어요. 그날 공연을 본 관계자분들이 저보고 조상님이 도와주신 것 같았대요. (웃음) 그 희열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알런이 느꼈던 말과 하나되는 듯한 희열이 이런 거였을까요. 어쨌든 저는 몸을 움직일 때 느껴지는 쾌감이 정말 짜릿해요. 허리 건강 때문에 몸을 무리해서 쓰면 안 되는데도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한 공연을 끊을 수가 없어요!



무대 위에서 쓰러져도 좋다고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배우로서 정말 행운 같아요. 그런데 스트리트 댄스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멋있어 보이려고요. (웃음) 중3 때 친구들이랑 TV 보면서 놀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춤추는 사람들이 나온 걸 봤거든요. 애들끼리 저거 한 달만 연습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농담하다 진짜 되는지 안 되는지 내기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런데 엄마가 반대하셔서 공짜로 배우려고 춤 동아리란 동아리는 전부 다 들어갔던 것 같아요. 제가 좀 충동적인 성향이 있거든요.  (웃음) 나름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해서 축제 무대에 나갔는데, 담임선생님이 공연을 보시곤 이런 걸 계속할 수 있는 예술고가 있다고 알려주시더라고요. 근데 정작 예고에 들어가선 연기과 선배들이 하는 공연을 보고 연기에 빠지게 됐고요. 전과 시켜달라고 엄청 울었어요. 

춤을 췄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을 느꼈던 거겠죠?
네, 너무 멋있었어요. 진짜, ‘이거다!’ 싶은 느낌. 제가 원래 좀 소심한 편이었는데, 춤을 추면서 성격이 조금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춤을 출 때만 덜 소심해지고 평소에는 여전히 소심했단 거예요. (웃음) 연기는 뭔진 모르겠지만, 저걸 하면 내가 진짜 바뀔 것 같았어요. 그때는 이유 없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그래요. 돌이켜 보면, 그때 연기하겠다고 진짜 많이 고집을 부렸어요. 엄마가 춤추는 것도 반대하셨지만 연기하는 건 더 반대하셨거든요. 아마 친가하고 외가를 통틀어서 예체능계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러셨던 것 같아요. 제 형만 해도 수학 선생님이라 저희 집에서는 제가 완전 특이했던 거죠. 그러다 엄마가 그래도 제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인정해 주셨던 게 <렛미인>이었는데, 되게 웃긴 해프닝이 있었어요. 뭐냐면, 엄마한테 “나 <렛미인> 됐어” 그러니까 엄마가 그걸 니가 왜 신청했냐는 거예요. 엄마는 <렛미인>이 성형 프로그램인 줄 아셨던 거죠. 근데 설명하기 귀찮아서 “몰라, 그냥 했어” 그랬어요. (웃음)

배우를 시작했을 때 품었던 꿈이 있었을 테잖아요. 예를 들면, 저 극장에는 꼭 서보고 싶다든가 저 사람하고는 꼭 작업하고 싶다든가 하는 거요. 혹시 그중에서 이룬 게 있어요? 
제가 처음 연극을 본 곳이 예술의전당이라서 나중에 저기 꼭 한번 서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렛미인>으로 너무 빨리 그 꿈을 이루게 돼서 오히려 성취감을 못 느낀 것 같아요. 원래 성취감이라는 게 힘들게 노력한 끝에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더 크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이루긴 이룬 거니까요. (웃음) 지금은 어떤 극장에 서고 싶다, 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욕심보다는 제 삶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제대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요.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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