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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라이온 킹>, 은유로 가득한 베스트셀러 [No.182]

글 |김영주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디즈니, 클립서비스 2018-11-07 4,071

<라이온 킹>, 은유로 가득한 베스트셀러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는 그림. 이러한 뜻의 애니메이션을 무대 위 가면극으로 옮길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제가 무엇일까. 캐릭터의 감정은 변화무쌍한데 가면의 표정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라이온 킹> 초기 제작 단계에서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배우가 가면을 쓰는 대신 방패처럼 들거나 등에 이고 다니게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지만 줄리 테이머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캐릭터의 복합적인 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를 상상해서 함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영웅적인 지도자이자 완벽한 가부장인 무파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의 위대함과 분노, 유머와 열정을 모두 담아내는 하나의 표정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줄리 테이머는 다음같이 설명한다. “무파사는 강인하고 무섭지만 인정이 많다. 이 모든 것을 그의 얼굴에 표현해야 한다. 무파사 캐릭터의 핵심은 균형성이다. 그는 중도를 지키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이런 균형감을 살리기 위해 무파사 머리 주위에는 둥그런 갈기를 둘렀다. 만물의 중심인 태양신을 닮았다. 주위에 둥근 궤도처럼 자리 잡은 갈기 테가 이것을 형상화한다.” 프라이드 록의 주인인 무파사의 둥근 갈기는 작품의 주제인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적인 암시와 은유로 가득한 작품이 <라이온 킹>이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뮤지컬이다 보니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상당히 많다. 작품 특유의 개방적인 에너지 덕분일까. 비행기가 연착된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배우들이 흥겨운 즉흥 공연을 선보이고 승객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모습이 인기 영상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잦다. <오페라의 유령>, 아니 <레 미제라블> 팀에서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주인공 심바 역의 오리지널 캐스트는 <오클라호마!>, <왕과 나>, <미스 사이공>의 내셔널 투어 팀에서 크지 않은 역할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약관의 배우 제이슨 레이즈였다. 타이틀롤의 경험이 없는 무명 배우에게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뮤지컬의 주연을 맡긴 이유를 설명하는 데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당장 유튜브를 켜고 ‘Jason Raize’를 검색하라고 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20여 년 전의 영상이라 볼품없는 저화질이지만 로지 오도넬 쇼에서 그가 부른 ‘Endless Night’는 가히 천상의 어떤 것이라고 일컬을 만한 신비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다. 불안하고 미성숙하지만 매혹적인 소년기와 청년기의 경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이 재능 넘치는 배우는 불행히도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 달리 밤의 끝을 여는 새벽을 보지 못한다. 3년을 함께한 <라이온 킹>을 떠난 후, 팝 가수들과 협연을 하거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에 호아퀸 피닉스와 함께 목소리 출연을 했던 그는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한동안 평범한 일꾼으로 지낸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이 일하던 농가의 헛간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스물여덟의 나이였다. 
 

여느 브로드웨이 대작처럼 <라이온 킹> 역시 국내 관객들에게는 라이선스 뮤지컬 버전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공연의 제작사는 일본 뮤지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극단 시키. 전설적인 연출가 아사리 게이타의 진두지휘 아래 기존의 시키 소속 한국 배우들과 오디션을 통해 새로 선발된 신인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전자의 경우가 김준현(무파사), 이경수(심바), 후자의 경우가 차지현(라피키), 박은태(앙상블)였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여름, 아사리 게이타 대표의 부고가 들려왔다. 생전의 그에게 여러 가지 갈등에도 굳이 한국에서 공연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극단 소속의 한국 배우가 ‘Circle of Life’를 노래하는 것을 듣고 눈물이 흐를 만큼 깊은 감동을 받은 후로 그에게 한국어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꼭 주고 싶었다고 했다. 당연히 그 마음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아마도 99가지 이유 중 하나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한국 배우들이 특유의 에너지로 극장 천장을 밀어 올릴 듯 노래하는 <라이온 킹>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란다.   


 

<라이온 킹> 라이선스 공연을 둘러싼 격렬한 충돌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다 의미 없다 싶으니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여담인데, 당시 제작진과 배우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고 한다. 무파사의 죽음 이후 암사자들이 흰 눈물을 흘리며 애도를 표하는 순간 객석에서는 항상 웃음이 터졌다는 것이다. <라이온 킹>을 공연하는 어느 나라에서도 없던 일이라 이유가 궁금했다는데 이번 내한 공연에서 객석의 반응에 따라 그 오랜 수수께끼가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라이온 킹>이라는 작품이 가진 의의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20여 년간의 엄청난 흥행 기록을 정리한 숫자만으로 한 페이지를 가득 써 내려갈 수도 있고, 예술적인 성취에 집중해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이 작품이 메이저 제작사의 거대 자본과 마이너리티의 창조성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적으로 결합된, 현재까지는 유일무이한 걸작이라는 점이다. 관객들로부터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훌륭한 작품들은 <라이온 킹> 이전에도 이후에도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캐머런 매킨토시, 옛 거장 오스카 해머스타인과 리처드 로저스, 레너드 번스타인,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독야청청하며 이 환상적인 장르 안에 자신들의 세계를 창조했다. 하지만 <라이온 킹>만큼 예외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 걸작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보수적인 가부장제 신화가 가장 전위적인 스타일로 무대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라이온 킹>을 공연하는 극장에 프라이드 치킨을 들고 들어오는 흑인 관객들에 대한 논란은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뮤지컬계에 일어난 의미심장하고 흥미진진한 균열이기도 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관크’에 해당하는 민폐지만 또 한편으로 <라이온 킹>이었기에 가능한 문화 충돌이었던 것이다. 여러 의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라이온 킹>은 <왕과 나>나 <미스 사이공>이 아시아를 소비하던 방식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했다. 미국식 보수주의의 메카였던 디즈니가 어떻게 1997년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거대 자본은 결국 이윤 추구 자체가 이념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선호가 변해 가는 것을 그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고 대응한다. <라이온 킹>의 전설적인 성공이 없었다면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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