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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DIARY] 은평구 끼순이 비로소 미첼을 만나다 [No.182]

글 |모지민 사진 |모지민 2018-11-08 6,624

은평구 끼순이 비로소 미첼을 만나다

 

10.5.Fri

금요일 밤,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태원의 모 클럽에서 쇼 한탕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곳은 1995년 한국의 첫 드래그 쇼 클럽으로 오픈해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국내외 셀렙(크리스틴 스튜어트, 틸다 스윈턴, 칼 라거펠트, 라나 워쇼스키 등등 나열하기 힘듦)이 다녀간 유일무이한 드래그 클럽 명소 트랜스(TRANCE)다. 십 년 전쯤 미첼이 처음 내한했을 때도 이곳에 들렀는데, 당시에 난 이런저런 일로 그 자리에 없었고 그를 만날 기회를 저버린 것에 땅을 백 번 천 번 쳤던 걸로 기억한다. 
 

“하이, 안녕하세요. 오늘 미첼 공연 보고 오셨군요?”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헤드윅 분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셀이란 미국 여자는 이번 콘서트 때문에 한국에 온, <헤드윅>의 모든 투어를 따라다니다 미첼과 개인적 친분까지 쌓아버린 성덕 중의 성덕이었다. 또 다른 두 여인은 엄마와 딸 사이였는데 그 어머님도 이번 투어 호주 공연에 찾아갔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광팬이었다. 내가 “대단하시네요, 세련이시네요, 엔간하시네요” 했더니 어머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뭐가 대단해요? 제 삶의 유일한 낙인걸요. 그래도 이번엔 한국에서 하니까 티켓 값만 들이면 되잖아요. 외국 투어를 따라다니면 경비가 말도 못해요.” 속내로는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주말 쇼의 피로를 무릅쓰고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없었던 나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다는 둥의 아니야한 생각을 하다 ‘기레, 그렇다면 헤드윅 기분이라도 내보자’며 준비한 레퍼토리 대신 <헤드윅>의 ‘Wig In A Box’로 쇼를 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광팬 어머님의 딸에게서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이 와 있었다. 미국서 온 한셀이 전날 밤 내 쇼 영상을 미첼에게 보여줬고, 그 친구를 통해 미첼이 직접 ‘So beautiful!’이라며 날 만나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게 꿈이야, 뭬야.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들이키며 세종문화회관에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을 공연을 상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찰나 따님한테서 일요일 공연 티켓이 남은 게 있으니 시간이 괜찮으면 보러 오겠냐는 연락이 왔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시간이 없어도 가야지요. 무조건 가겠습니다. 내일 보아요.



 

10.7.Sun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The Origin of Love’를 부르며 헤드윅 님 등장! 공연은 시작부터 감동의 도가니였다. 첫 곡을 마친 미첼은 11년 만에 한국에 왔다며, 세종에서 공연하려면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옷 안에서 ‘카스’를 꺼내 한 모금 들이켜다 ‘뷁’ 하고 뿜었다. 그 모습에 모두들 깔깔깔! 모든 대사 하나하나가 다 성경 말씀처럼 주옥같았으나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건 미첼의 전남친 잭에 대한 이야기였다. 근심스러운 중년을 지나 순진무구한 노년으로 가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에 눈물이 핑! 이 노래 저 노래를 하다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를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드래그 퀸 친구가 ‘꽃밭에서’로 쇼를 자주했던 데다, 미첼이 부르는 ‘꽃밭에서’가 유난히 구슬펐기 때문이다. ‘Tear Me Down’이나 ‘Angry Inch’ 같은 파워풀한 노래를 삼 일 내내 부르는 것은 무리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연륜 가득한 에너지로 모든 것을 아우르며 이렇게 말했다. “My hair is dead but I’m not dead(내 가발은 풀이 죽어버렸지만, 난 아직 죽지 않았지).” 옳다, 옳아, 안 죽었네. 앙코르 곡으로 부르는 ‘섬집 아기’에 난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내게 티켓을 준 왕팬 어머님 딸을 쫓아 대기실로 향했다. 한셀과 그들은 백스테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팬이었다.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 백스테이지를 보니 몇 해 전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팀이 내한했을 때 필라테스로 배우들 웜업 지도를 했던 기억이 마구 떠올랐는데, 바로 그때 미첼이 내 쪽을 향해 왔고 나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쉰 후 큰절을 올렸다. “그 비디오의 인물이 너야? 너무 아름답더라.” 미첼의 다정한 말에 나는 너무 긴장해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눈으로만 끄덕끄덕하다 영원으로 건너간 ‘꽃밭에서’의 드래그 퀸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어떻게 그게 생각나서 입을 열었는지 모르겠다. 

 

10.8.Mon

월요일은 원래 쇼가 없는 날이지만 다음 날이 공휴일이었던 터라 트랜스 마담 언니의 부름에 쇼를 하러 갔다. 자정 즈음 분장실에서 더덕더덕 화장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가 날 찾는다고 해서 나갔더니 이게 무슨 일! 미첼이 내 쇼를 보러 왔단다. 미첼과 이틀 연이은 만남이라니 디지버진다, 디지버져!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타고난 의심병! 클럽 안 테이블에 착석한 그와 나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래그 퀸의 힘인 것일까. 그를 응대하는 것이 참 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자고 일어나보니 미첼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어제 너무 반가웠고, 언제 시간이 날 때 요가를 하자는 것이었다. 전날 밤 내가 요가를 가르친다고 하자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내게 요가를 배우고 싶다기에 빈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었을 줄. 나는 내 다큐를 찍고 있는 감독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미첼이 제게 요가를 배운다고 하네요. 이렇게까지 디지버져야 하나요. 믿기지가 않아요, 엉엉.” 전화를 끊고 나선 미첼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다큐 촬영에 대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마는 작년에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일하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 도쿄 공연을 보고 다큐를 찍자고 제안했는데 내내 고사하다 얼마 전에 승낙한 것이다.  제작 기간이 얼마나 되지요?/ 1년에서 3년이요. / 미? 난 못하오. / 아니요, 하셔야 하오. 당신을 꼭 보여줘야 하오. / 어디에 말이요? / 이 세상에요. / 기레요? 그럼 돈은 얼마 줄 생각이요? / 한푼 두푼 모아 세푼이요. / 레알이요? 그래도 못하겠소.  감독과 이런 실랑이를 몇 번 반복하다 이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트랜스 마담 언니의 말에 “어디 한번 해봅시다” 하고 시작한 촬영이었다. 미첼한테 이만저만고만해서 이러한 다큐를 찍고 있는데 가능하면 출연해 줄 수 있느냐고, 만약 허락한다면 가문의 영광일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기까지 두근두근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만에 도착한 메시지. ‘Of course!’ 그는 정말 쿨한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것도 할리우드 록 스타! 



 

10.10.Wed

오후 1시. 미첼이 오기 전 요가 스튜디오 바닥을 대충 훑고 그의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매트를 깔아주었다. 그리고 절친 이랑의 ‘신의 놀이’를 틀고 요가 준비 완료! 한국 친구와 함께 약속 시간에 맞춰 온 미첼은 내 설명을 들으려는 건지 마는 건지 아사나 동작에 심취했다. 나는 뇌가 자고 있는 건지, 아님 늙어서 그런 건지, 영어로 요가를 가르치려니 ‘내 말을 잘 듣고 따라 하라’는 쉬운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허드레인 내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요가 수업은 이렇게 저렇게 흘러갔고, 수업을 마친 그는 촬영 감독의 인터뷰 요청에도 역시나 흔쾌히 응해 주었다. 
 

“I'm hungry!” 나에 대한 칭찬 일색 인터뷰(냐하하)를 끝낸 미첼이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보광동으로 왕림한 그를 위해 내가 생각해 낸 곳은 오랜 단골집인 곤드레 쌈밥집이었다. 밥이 나오기 전, 미리 준비해 온 이랑의 「신의 놀이」 일본판과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했더니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곧바로 오노 요코가 참여한 <헤드윅> 트리뷰트 앨범을 꺼냈다.  이거 희귀판인데? / 난 네 진짜 팬이라고, 어여 사인해 줘. / JIMIN Love & JCM. 여기 잘려버린 페니스 그림도 그려줄까? / 기레, 좋지.  그는 부서진 고추를 앨범 커버에 곱게 그려주었다. 수다삼매경 중 옆에서 신들린 듯 가위질을 하는 식당 직원을 발견한 미첼이 말했다. “Oh, Scissors lady!” 가위로 음식을 잘라 먹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가위 여인의 복수 활극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단다. 나는 앨범에 그려준 그림처럼 가위로 고추를 잘라 ‘앵그리 인치’로 만들어버리는 건 어떻겠냐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박찬욱 스타일로 찍어야겠다고 했고, 그럼 내가 박찬욱에게 연락을 취해 보겠다고 되도 않는 농을 쳤다. 미첼은 뉴욕으로 돌아가면 당장 시나리오를 쓸 기세로 곤드레 쌈밥은 뒷전으로 하고 끝없이 가위 여인 이야기를 물고 늘어졌다. 

미첼, 너도 전설이 되려면 네 자신을 진작 죽였어야 했어. / 데이비드 보위는 자살하지 않았잖아? / 데이비드 보위는 죽기 전에도 이미 전설이었던지라 예외!  서슴없는 농담에 우리 모두 깔깔깔.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았던 홀리한 미첼은 고맙다며 내 밥값을 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비싼 거 먹었을 텐데 아쉽네? 그가 계산하는 틈에 주방에서 가위 두 개를 가져와 말했다. 미첼, 씨저 레이디 이모님이랑 사진 찍어! 미첼은 할리우드 액션으로 포즈를 취했고, 이모님은 귀찮은 표정으로 어리둥절 사진을 찍어주셨다.
 

다음 날 미첼에게 내 다큐 출연을 흔쾌히 허락해 주어 너무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너와 함께한 꿈같은 시간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모어, 넌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야. 또 보자.’ 하지만 미첼과의 네 번째 랑데부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는 내가 주말 쇼로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든 연락해서 같이 차 마시고 싶은 친구 같았던 사람. 언젠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현실과 환상의 헤드윅을 이제 그만 고이 보내드리기로 했다. 대신 오늘은 <헤드윅> 노래로 쇼를 해야겠다.

 

 

내 얼굴엔 메이크업 카세트 테이프 노래 

가발로 마무리하면 

어느새 난 미소 짓는 미인대회 여왕님 

언제까지나 나는 잠들면 안 돼!

 

잘가요, 내 영웅. So long, my hero. 

 

 

*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그의 스타일에 따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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