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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라이온 킹> 레보 M·도널드 홀더, 세계를 창조한 사람들 [No.183]

글 |배경희 사진제공 |클립서비스 통역 | 김해윤 2018-12-11 6,329

<라이온 킹> 레보 M·도널드 홀더 , 세계를 창조한 사람들

 

‘라이온 킹의 목소리’라 불리는 작곡가 겸 보컬, 합창 디렉터 레보 M과 야생의 세계에 아름다운 빛을 선물한 조명디자이너 도널드 홀더. 1997년 뮤지컬 <라이온 킹>의 신화를 만든 두 사람과 함께 역사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레보 M  “<라이온 킹>의 음악은 계산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탄생했어요.” 



 

한스 짐머의 추천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참여하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한스 짐머와는 영화 <파워 오브 원> 작업으로 만났어요. 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려면 아마 세 시간은 필요할 텐데요(웃음), 간단히 말해 한스 짐머의 친구가 운영하는 LA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게 됐어요. 당시 저는 그곳의 인턴이었죠. 우리는 함께 영화 음악 작업을 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파워 오브 원>이에요. 그때부터 우정을 키우게 됐고, 이후 <라이온 킹>에서도 동료로서 함께하게 되었죠.
 

무척 어린 나이에 클럽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셨다죠.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시겠지만, 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는 정치적으로 암흑기였죠.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는 운동권에서 활동하거나 갱스터가 되거나,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제게는 음악이 있었죠. 열세 살 때부터 펠리칸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최연소 가수로 활동했으니까요. 아마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였던 부모님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1979년, 열다섯 살에 남아프리카를 떠나 미국으로 갔는데, 사정이 안 좋아서 길거리 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흑인 교회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죠. 저한테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건, 아프리칸 합창으로 참여한 영화 <자유의 절규(Cry Freedom)>예요. 그 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면서 아프리칸 음악 편곡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거든요. 그 후 한스 짐머와 함께 작업하면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다 <라이온 킹>에 참여하게 됐죠. 
 

<라이온 킹> 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웃음) 사실 처음엔 정식으로 제안받은 게 아니었어요.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죠. 어느 날 모임 장소에 가니 한스 짐머 외에 아홉 명의 백인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이 이뤄졌어요. 어떤 애니메이션이고 어떤 내용인가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죠. 저는 보통 미팅을 할 때 노래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가거든요. 그래서 첫 클립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유명한 ‘Nants Ingonyama’를 불러 데모 테이프로 남겼죠. 함께 작업하자는 정식 제안을 받은 건 아마 그로부터 한두 달쯤 지났을 때일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곡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요?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스 짐머랑 작업해 본 적이 있다 보니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땅을 빼앗겼다 되찾는 왕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져 작품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제 나라 남아프리카도 비슷한 슬픔을 겪었으니까요. 고국에서 추방당한 젊은이로서 저한테 무파사는 꼭 넬슨 만델라 같았죠. 특히 무파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나오는 모습을 연상시켰어요. 개인적인 감정과 창의적인 발상이 어우러져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라이온 킹>을 떠올리면 뭐가 가장 먼저 생각나세요?

브로드웨이에 가기 전 미니애폴리스에서 공연이 올라갔는데,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에 도망치고 싶었던 게 생각나요. 당시 공연에서는 영양 역으로 직접 출연도 했거든요. 사실 애니메이션 작업 때도 그랬지만, 뮤지컬 역시 작업 초반에는 우리가 흥행작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큰 기대가 없었어요. 아마 디즈니조차 뮤지컬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을 거예요. 특히 뮤지컬의 경우엔 이미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크리에이티브 팀은 곧 두 개가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라는 것을 인식하고 작업에 임했죠. 그 결과 스토리 라인이 강화됐고, 독자적인 형식을 지닌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뮤지컬도 당연히 성공할 거라 생각했다면, 우리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이는 연출가 줄리 테이머의 창의적인 재능과 디즈니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공이었죠. 
 

뮤지컬 음악 작업에서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뮤지컬에서 제 역할은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줬던 음악적 여정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었어요. 처음 뮤지컬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애니메이션 때와는 또 다른 음악이 필요하리라는 걸 알았죠.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음악을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장르의 차이 때문에 그 쓰임새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음악 작업을 같이했던 마크 맨시나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줄리 테이머와 안무가 가스 훼이건을 만난 후 두 사람이 우리와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는 뮤지컬만을 위한 곡을 새로 쓰기도 했죠. 제 생각에 뮤지컬 <라이온 킹> 음악 작업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음악들이 계산적으로 쓰이지 않고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이에요. 개인적 감정과 창조적 영감이 일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며 작업했죠. 물론, 즐거웠던 만큼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지만요. 참고로, 줄리 테이머는 애니메이션 OST의 후속 앨범 「Rhythm of the Pride Lands」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프로덕션에 참여했는지 기억하세요?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몇 년간은 작품의 모든 것이 오리지널 크리에이터들의 책임이었어요. 특히 처음 1~2년 동안은 크리에이티브 팀의 역할이 중요해서 마치 가족을 챙기듯 작품을 다뤄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죠. <라이온 킹>의 정체성을 말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데, <라이온 킹>의 음악은 악보에 쓰인 것만으로는 결코 다 알 수 없어요. 때문에 제가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음악을 지도해야 했죠. 1999년 도쿄 공연이었나, 런던 공연 이후부터는 제가 더 이상 배우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음악감독이 제 역할을 대신하게 됐어요. 왜냐면 전 <라이온 킹>이 올라가는 나라들로 가서 음악감독을 교육하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이걸 행운이라 해야 할지, 불운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라이온 킹>의 모든 프로덕션 공연에 참여하게 됐죠. (웃음)  
 

당신과 같은 음악가를 꿈꾸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저 역시 아직 54세의 젊은 사람이라 제가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웃음) 다만 한 가지, 당신이 어디에서 온 누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대신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지세요. 세상은 언제나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어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사람들은 당신과 다른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죠. 나는 당신이 당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생각을 나누길 바라요. 우리는 글로벌한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도널드 홀더 “우리의 목표는 세렝게티의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을 무대로 옮기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뮤지컬 <라이온 킹>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라이온 킹>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있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직접적인 이유는 줄리 테이머의 추천이었고요. 줄리 테이머와는 1993년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으로 만나게 됐는데, 저는 그 전부터 당시 뉴욕의 젊은 크리에이터였던 그녀의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이력서도 보내보고, 제 공연에 초대하기도 했는데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죠. 그런데 어느 날 줄리 테이머에게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게 된 거예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알겠다고 했죠. 그 이후 그녀가 <라이온 킹> 연출을 맡게 되면서 조명디자이너로 저를 강력하게 추천했어요. 당시 전 브로드웨이 작품 경력이 전혀 없었는데도요. 열두 살 때부터 조명디자이너를 꿈꿨던 저에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꿈의 무대였어요. 그런데 브로드웨이 데뷔작으로 <라이온 킹>을 하게 됐으니 제 경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제가 얻은 가장 큰 성공이에요. 
 

첫 브로드웨이 작업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처음 작업 제안을 받았을 때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줄리 테이머와 무대디자이너 리처드 허드슨을 만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셋이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었죠. 애니메이션은 정말 최고였어요. <라이온 킹>이 왜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는지 알 수 있었죠. 하지만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이 작품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표현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줄리 테이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애니메이션을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본질을 가지고 새로운 해석을 하자고 했는데, 아주 많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이 됐죠. 줄리 테이머에게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아니라면 보지 못할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요. 
 

조명은 관객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또 어떤 것을 보여주지 않을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죠. 당신이 <라이온 킹>에서 보여주기로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라이온 킹>이 여느 뮤지컬과 가장 다른 차이점은 공연의 비밀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 모든 관객들이 이를 지켜보게 한다는 것이에요. 보통의 인형극은 배우의 존재를 분장이나 의상으로 가리기 마련인데, <라이온 킹>에서는 인간인 배우와 그 배우가 연기하는 동물을 동시에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배우가 타는 자전거에 가젤 퍼펫을 달아 가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표현하는 식으로요. 이러한 설정은 제 조명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했던 작업은 광활한 세렝게티의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을 무대로 옮기는 거였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라 많은 연구와 도전이 필요했죠.
 

하늘을 표현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감을 준 것이 있을까요?

실제 세렝게티의 하늘 사진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계절 변화에 따라 어떻게 햇살이 달라지는지 특히 집중적으로 찾아봤죠. 아프리카 날씨에 대한 조사도 많이 했고요. 줄리 테이머와 리처드 허드슨이 연구한 자료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라이온 킹>의 디자인에 대해 하나 팁을 드리자면, 작품의 독특한 점이 바로 통일성에 있다는 거예요. 줄리 테이머는 공연의 모든 디자인 요소에 패턴이나 패브릭으로 아프리카 느낌을 살리길 바랐죠. 공연을 볼 때 한번 자세히 보세요. 그럼 모든 요소들이 다음 장면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한 예로, 라피키의 나무 줄기에 그려진 패턴을 배우들의 의상에서도 찾을 수 있죠. 의상 색깔과 하늘 빛깔도 하나의 이미지처럼 어우러지고요. 
 

좋아하는 장면은 언제나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으세요?

제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할 장면은 2막에서 무파사의 얼굴이 허공에 나타날 때 아닐까 싶어요. 이 장면의 흥미로운 점은 마법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아주 간단한 원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이 장면을 연출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아홉 개의 마스크 조각과 마스크를 움직여줄 댄서들, 그리고 빛이에요. 움직이는 마스크 조각에 아주 작은 점처럼 빛을 쏘아 각각을 연결해 무파사 얼굴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럼 관객 입장에서는 별처럼 보이던 빛이 갑자기 우주 속의 무파사 얼굴로 바뀌는 거예요. 움직임과 빛이 잘 결합되어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장면은 저희 작품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숨기는 순간이기도 해요.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배우들이 손전등으로 자신들의 얼굴을 비출 때까지 암흑 속에 있어야 하거든요. 
 

무파사의 얼굴 장면은 아날로그적인 연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크리에이티브 팀은 <라이온 킹>의 본질이 ‘내추럴함’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자연에서 태어난 듯한 자연스러움이 작품에 담기길 바랐고, 그렇게 표현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했죠. 모든 부분에서요. 때문에 많은 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는데, 무파사 얼굴 장면에서 점 같은 빛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 역시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했어요. 슬라이드에 아주 작은 구멍을 일일이 낸 다음에 커다란 프로젝트에 슬라이드를 끼워 태양과 달과 별을 상징하는 빛을 표현했죠. 저는 이 같은 사소한 디테일이 공연을 빛내 준다고 생각해요. <라이온 킹>이 탄생한 지 벌써 22년이 지났으니, 이제 이런 장면은 디지털 프로젝터로 대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22년 전에 사용했던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죠. 전 앞으로도 이 공연에 현대식 기술을 사용하는 시도를 반대할 거예요. 작품의 본질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돌이켜 봤을 때 <라이온 킹>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라이온 킹>은 저의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선물이죠. 결과만큼이나 준비 과정도 매우 특별했고요. 극장에 들어가기 2년 전부터 조명 준비에 들어갔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엄청난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이루어졌거든요. 줄리 테이머나 레보 M 같은 대단한 창작자와 일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에요. 제게 <라이온 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 공연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 2007년 요하네스버그 공연 당시 슬럼가 아이들을 공연에 초청한 적이 있어요.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와본 아이들이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아주 자랑스럽게 극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라이온 킹>은 다방면에서 아프리카 문화를 오마주한 공연이잖아요. 그리고 <라이온 킹>을 본 젊은 조명디자이너나 지망생들이 제게 이 작품을 보고 꿈을 더욱 키우게 됐다고 말할 때, 그게 제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저 역시 고등학생 때 마이클 베넷의 <코러스 라인>을 보고 이 일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큰 선물이에요.
 

과거 인터뷰에서 조명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풍경이나 명화를 보면서 빛을 연구하라고 하셨던 것 기억하세요? 혹시 여기에 더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우선 읽는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말하고 쓰는 연습도 중요하죠. 또 창작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으면 깊이가 생길 수 없어요. 그래서 제 생각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좀 더 성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조명 디자인이라는 것은 직업을 넘어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해요. 장시간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젊은 사람들에게 꼭 조언을 해줘야 한다면, 이곳은 경쟁이 심하고, 그만큼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믿고 전진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한마디로 단단해져야 하죠. 예전에 누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사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면 열심히 매진하세요. 방법은 그뿐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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