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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KETCH] 뮤지컬 속 여성 돌아보기 [No.187]

글 |박보라 2019-04-04 4,999

뮤지컬 속 여성 돌아보기



 

지난 3월 9일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집에서 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해 <더뮤지컬>이 주최하는 특별 강좌가 열렸다. 극작가 겸 공연 칼럼니스트 이수진이 강사로 나선 이번 강의는 ‘빵과 장미와 뮤지컬’이라는 제목으로, 공연계가 무대 안팎의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주제로 구성됐다. 뮤지컬 속 남녀 캐릭터의 차이를 살펴보며 그동안 수동적이고 도구화된 존재로 그려져 온 여성성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보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취향 없는 여자들

강의 시작에 앞서 이수진 강사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뮤지컬 속 주인공은 과연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만의 꿈이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바탕으로 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파악하는 동시에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 앤 하이드>를 살펴보자.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 에릭은 자기 자신에게 ‘에릭’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자기애가 넘친다. 또 오페라 극장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녔고, 늘 연미복을 갖춰 입고 있을 정도로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자, 그럼 여성 주인공 크리스틴은?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에겐 어떤 취향도 없다. 심지어는 그녀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돼도 크리스틴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도 지킬은 실험에 몰두하는 품위 있는 신사로, 또 다른 자아 하이드는 비록 악당이지만 퍼 코트를 즐겨 입는 고급스런 취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도 당연하게 여성의 취향은 다뤄지지 않는다. 지킬을 사랑하는 크리스틴과 루시는 사랑 앞에 ‘순수한’ 여자로, 이들의 유일한 차이는 신분이다. 특히 루시는 사창가에서 몸을 팔고 노래를 부르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여자로 그려지는데, 지킬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루시가 노래하는 새로운 삶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결국은 하이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그녀들은 정말 주인공이었을까

최근 국내 뮤지컬계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레드북> 그리고 <마리 퀴리>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지닌 문제점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는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죽음을 맞는 권선징악의 예처럼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시대적 배경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도 그려지지 않는다. 작품에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인물은 안나의 남편인 카레닌이다. 그는 작품 내내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데, 불륜에 빠진 안나를 증오했다가 그녀를 연민하며 자기의 행동을 뉘우치기도 한다. 카레닌 외에도 <안나 카레니나>의 모든 남성은 확고한 취향과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 ‘<안나 카레니나>에 진짜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가 있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다. 하지만 <마리 퀴리>에서 마리는 무대 중앙보다 구석에 마련된 실험실에 자주 등장한다. 노벨상을 받을 때에야 마리가 무대 중앙에 서는데, 심지어 이때도 그녀는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왜냐면 마리의 남편 피에르와 함께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마리의 감정 대신 피에르의 다양한 내면이 드러난다. 그는 과학적·인문학적 소양과 가정과 육아를 모두 전담하는 다정다감한 인물로 등장하는데, 1막에서 죽음을 맞이함에도 계속 무대에 등장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심지어 라듐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도 그다. 반면 마리는 실험을 향한 의지만 드러낸 채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마리가 당시 이민자이자 여성 과학자로 겪은 차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라듐 피해자의 고통은 알지만 사과하지 않겠다고 하며, 피해자를 향한 공감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마리가 오직 실험에만 집중한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도록 한다. 즉, 앞서 설명한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으로 움직이는 여성이 아니라 플롯에 끼워 맞춘 이야기로 남겨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레드북>의 안나는 다른 작품보다 한 단계 나아간 여성이라 볼 수 있다.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한마디를 더 붙인다. ‘난 야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라고. 따라서 관객은 적어도 안나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그동안 뮤지컬 속 여성은 대부분 한 단어로도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작품 곳곳에 아쉬운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거다. <마리 퀴리>의 마리에겐 ‘실험밖에 모르는 여자’라는 설명이 더해졌다는 면에서, 야한 이야기를 쓰는 <레드북>의 안나는 순수하지 않은 행동을 실행하는 여성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라 볼 수 있다는 것. 



 

여성 서사가 나아갈 방향

그렇다면 뮤지컬의 여성 서사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수진 강사는 남성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통해 여성 서사가 발전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여성 캐릭터에게 합당한 동기나 취향 등이 주어진다면, 이것은 충분히 여성 서사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수진 강사는 이런 말을 전하며 끝을 맺었다. “한국 연극·뮤지컬계는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여성 서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을 여성도 할 수 있고 여성 또한 복합적인 서사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어떤 작품도 완벽할 수는 없다. 일부분이 아쉽더라도, 좋은 부분이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하리라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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