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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장애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 해외 주요 인클루시브 극단 [No.187]

글 |안세영 2019-04-20 5,052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

 

‘4월’ 하면 어떤 기념일 먼저 떠오르는가.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일? 4·19 혁명 기념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기념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4월에는 하나의 기념일이 더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말이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최대 배려인 휠체어석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문화가 형성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인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장애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 해외 주요 인클루시브 극단

 

‘장애에도 불구하고’라는 구태의연한 수식어는 거부한다! 여기 뛰어난 작품성으로 당당하게 주류의 자리를 노리는 장애·비장애 통합 인클루시브 극단들이 있다. 지난 1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주한영국문화원의 초청으로 내한한 하이징스를 비롯해 영미권에서 활약 중인 대표 인클루시브 극단들을 소개한다. 

 


 

하이징스 Hijinx

“학습장애인의 사고는 비장애인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이 있죠. 저는 이것이야말로 배우에게 필요한 환상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공연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공연입니다. 학습장애 배우들은 색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존 인식에 의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학습장애인과 함께 연극을 만드는 이유는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학습장애인과 함께하면 예술적으로 더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하이징스의 대표 클레어 윌리엄스가 내한 당시 컨퍼런스에서 남긴 말은 이 극단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영국 웨일즈에 기반을 둔 극단 하이징스는 2012년부터 학습장애 배우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공연이나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전문 교수진으로부터 서커스, 코미디, 무언극, 가면극 등 다양한 장르의 연기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아카데미는 놀이 형식의 수업을 통해 학습장애인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게 한다. 하이징스의 작품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현재 하이징스는 웨일즈 전역에 다섯 개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70명의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 들어오길 원하는 학습장애인들의 대기 명단은 길어지고 있다.

이 아카데미의 독특한 점은 학습장애인이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기간만큼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배우는 ‘롤플레잉 하우스’에 고용되어 출연료를 받고 일한다. 롤플레잉 하우스란 경찰, 의사, 공무원 등 각 직업군이 역할극을 통해 학습장애인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터득하는 곳이다. 웨일즈 지역에서는 이 역할극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의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배우들은 아카데미에서 갈고 닦은 연기 실력으로 직접 돈을 벌면서 배우 활동을 지속한다. 

하이징스는 주류 극단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윌리엄스 대표는 말한다. “우리는 특이한 사람들과 특이한 연극을 선보이는 비주류 극단으로 불리고 싶지 않습니다. 남다른 배우들과 함께 얼마나 훌륭한 연극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극단과 협업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이징스는 2014년부터 펀치드렁크(Punchdrunk), 블라인드 서밋(Blind Summit), 클루이드(Theater Clwyd), 스파이몽키(Spymonkey) 등 유명 극단과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 지금도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제작한 판타스틱 어셈블리(Frantic Assembly)와 함께 신작을 준비 중에 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하이징스는 극단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리고 세계 곳곳을 투어하는 극단으로 성장했다. 

지난 1월 서울에서도 이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었다. 하이징스의 연극 <프레드(Meet Fred)>가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초청 공연을 올린 것이다. 3명의 장애 배우와 4명의 비장애 배우가 출연한 <프레드>는 인간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인형 프레드의 이야기다. 인간들이 권하는 ‘인형에게 어울리는 일’이란 죄다 프레드가 하고 싶지 않은 일뿐이지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인형 생존 수당’을 받을 수 없어 자신의 팔다리를 움직여줄 인형사를 해고해야 한다. 하지만 프레드는 착한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입이 거칠고, 유머 감각도 뛰어난 이 인형은 끊임없이 일자리와 애인과 집이 있는 정상적인 삶을 부르짖으며 주어진 현실에 반항한다. 프레드가 마주한 혹독한 현실을 통해 장애인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을 재치 있게 풍자하는 작품이다. 

하이징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습장애 배우들의 연기를 공연, 영화, 드라마 등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윌리엄스 대표는 학습장애인들이 작품 안에서 왜곡되게 묘사되지 않도록 ‘장애인 배역에 당사자를 캐스팅할 것(Cast Authentically)’을 포함하는 모두 일곱 개의 학습장애인 캐스팅 가이드라인을 고안했다. 또한 학습장애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웹 플랫폼(www.hijinxactors.co.uk)을 만들어 그들이 하이징스 밖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윌리엄스 대표는 당당하게 말한다. “2030년까지 오스카, 골든 글로브 등 주류 시상식에서 학습장애 배우가 상을 받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라이아이 Graeae

1980년 설립된 그라이아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작품을 만드는 영국 극단이다. 그라이아이는 청각장애인 예술감독 제니 실리가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을 연출하며 유명해졌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등장했던 이 개막식 공연은 그라이아이의 기존 공연 레퍼토리를 재구성해 만들었다. 당시 무대 중앙에서 펼쳐진 록 밴드 공연이 바로 그라이아이의 대표작 <리즌스 투 비 치어풀>의 한 장면. <리즌 투 비 치어풀>은 1970년대 전설적인 장애인 펑크 록커 이언 듀리의 음악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로, 신체장애인, 학습장애인 배우가 등장해 화끈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에너지로 관객을 사로잡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칸두코 Candoco Dance Company

1991년 설립된 칸두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가로 이루어진 영국의 현대무용단이다. ‘할 수 있다(Can Do)’는 뜻을 담은 단체 이름처럼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무용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하반신이 마비된, 저마다 다른 신체장애를 지닌 무용수들은 목발, 휠체어 등에 의지해 역동적이고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칸두코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콜드플레이와 함께 공연한 이력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6년 <비헬드> 내한 공연을 펼쳤다. 2018년에는 안무가 안은미와 협업한 <굿모닝 에브리바디>를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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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웨스트 Deaf West Theatre 

1991년 설립된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 헐리우드에 기반을 둔 청각장애인 수어 극단. 데프 웨스트의 대표작은 뮤지컬 마니아라면 한번쯤은 영상으로 접해 봤을 2015년 <스프링 어웨이크닝>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이다. 이 공연은 벤들라, 모리츠 등 주요 배역을 청각장애인 배우가 연기하고, 각각의 목소리는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해 캐릭터의 또 다른 자아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청각장애인 배우의 수어는 가사와 대사를 전달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안무에 녹아들었다. 억압적인 19세기 교육 시스템 속에서 고통받는 십대들의 이야기는, 구화법 습득을 강요하고 수어를 금지시켰던 그 시대 청각장애인 교육의 역사와 맞물려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은 휠체어를 탄 배우가 등장한 최초의 브로드웨이 공연, 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해설을 제공한 최초의 브로드웨이 공연으로도 기록되었다.  

 

* _하이징스 컨퍼런스 자료 제공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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