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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투씨>, 새 옷을 잘 차려입은 오래된 이야기 [No.190]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9-07-08 4,796

<투씨>, 새 옷을 잘 차려입은 오래된 이야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변장을 통해 인물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은 코미디를 만들 때 흔하게 쓰이는 연극적 장치이다. 유럽과 서구의 전통 코미디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나 구전 이야기 속에서도 변장이라는 극적 도구는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여장 남자 혹은 남장 여자는 코미디에서 자주 쓰이는 변장 장치로(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인 『십이야』나 『끝이 좋으면 다 좋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통해 관객들이 당연하게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젠더 감수성이 크게 달라진 지금, 웃음을 목적으로 구시대적인 성 역할을 종용하면 오히려 관객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다. 특히 원작이 존재하고, 그 이야기가 구시대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면 각색 작업은 좀 더 까다로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투씨>는 변장, 특히 여장 남자라는 소재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고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나름대로 2019년 관객들의 기대를 잘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꽤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의 원작은 1982년에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다. 일자리가 없어진 배우 마이클 도시가 절박한 심정에 여성으로 변장을 하는데, 예상 밖의 일이 펼쳐진다. 원작 영화의 주인공은 텔레비전 배우, 뮤지컬의 주인공은 공연을 주로 하는 무대 배우라는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이야기나 웃음 코드 그리고 대사마저도 여러 부분에서 차용해 원작과 상당히 비슷하게 진행된다. 조금은 낡아 불편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2019년의 현실을 반영해 주는 일부 대사와 연출 덕택에 즐거운 뮤지컬 코미디로 성공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성으로 살아본다는 것의 상징적 의미 

주인공 마이클 도시는 공연이나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닮았는데, 자아가 강하고 배우로서 예술에 대한 욕심이 상당하다. 그는 연출이나 작가와 쉽게 부딪히고 제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람이지만 그 논리가 우스꽝스럽고 비논리적이라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예를 들면 대사 한마디를 하는 행인을 연기할 때도 해당 인물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혼자 인물의 과거사를 설정하고, 연출의 지시가 자신이 설정한 부분을 담아내지 못한다며 그의 지시를 거부해서 배역을 잃는다. 또 토마토 역할을 맡아서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받으면 토마토이기 때문에 앉을 수 없다는 고집을 부려서 일자리를 잃는 식이다. <투씨>는 마이클이 이런 성격 때문에 연출과 싸우고 쫓겨나듯 극장을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무대 위에 서 있던 극중극 뮤지컬의 앙상블이 “이 이야기는 마이클 도시의 이야기”라며 인물을 소개해 주는 사이 마이클은 자신이 웨이터로 일하는 음식점으로 간다. 마이클과 함께 음식점에서 일하는 제프는 변변한 작품 하나 없는 극작가로 그의 오랜 친구이자 룸메이트다. 그는 마이클의 40번째 생일을 맞아 마이클이 어렸을 적 마흔이 되었을 때 이루고 싶어 했던 것들의 리스트를 상기시켜 준다. 이 리스트는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모님이 인정해 주는 배우가 된다”나 “짝을 만난다”처럼 꽤 뻔한 것들인데, 마이클은 몇 개 되지 않은 리스트 중에서도 하나도 이룬 것이 없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는다. 그날 저녁, 집에서 마이클의 생일 파티가 열리며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생일 파티에서 마이클의 친구이자 배우인 샌디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줄리엣의 저주>라는 새로운 뮤지컬의 유모 역할 오디션 공고가 났다며 오디션 준비를 도와달라고 한다. 마이클은 자신에게 이 새로운 뮤지컬에 관해 말해 주지 않은 것을 따지기 위해서 자신의 에이전트를 찾아간다. 에이전트는 고집을 부리느라 늘 배역을 잃고 돌아오는 마이클에게 더는 일을 찾지 못할 거라면서 그를 내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마이클은 여장을 한 채 도로시 마이클이라는 이름으로 샌디와 함께 오디션에 참여해 마이클은 연출을 제외한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통과한다. 첫 장면에서 마이클을 잘랐던 연출이 새롭게 참여하는 작품은 역시나 내용이 엉망인데, 도로시로 분장한 마이클은 줄리엣 역할을 맡은 배우 줄리와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내용을 고쳐 나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마이클은 도로시가 되어 여성으로, 여성 배우로 마주하는 어려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이클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까워진 줄리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공연 오프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도로시 모습을 하고 줄리에게 깊은 키스를 한다. 도로시를 똑똑하고 믿음직한 가까운 동료로만 생각하고 있던 줄리가 놀라서 도망가면 1막의 막이 내린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2막은 마이클이 여성 도로시와 줄리를 사랑하게 된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이야기다. 마이클은 도로시가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인 마이클로서 줄리에게 다가가지만 퇴짜를 맞고, 다시 도로시로 줄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줄리는 고민 끝에 자기도 도로시를 사랑하는 것 같다며, 도로시의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한다. 도로시는 놀라고, 줄리는 자기도 용기를 냈는데 마음이 변한 것 같자 크게 상처를 받아 그녀를 쫓아낸다. 개막일이 되고, 공연의 프로듀서는 도로시에게 계약을 연장하겠다면서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한다. 이쯤 되자 이상주의자인 마이클도 자기가 도로시면서 마이클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첫 공연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대본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해 버린다. 당연히 마이클은 공연에서 다시 잘리게 된다. 공연은 마이클 없이 계속되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마이클은 줄리를 만난다. 원작부터 유명했던 대사인 “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더 나은 남자였다”는 말로 줄리의 용서를 구한다. 이 말을 들은 줄리 역시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 같은 분위기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진정성을 살린 연기

많은 뮤지컬 코미디가 그렇지만 <투씨> 역시 브로드웨이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을 담은 뮤지컬 코미디 속의 인물들을 진실하게 표현한 배우들이다. 지난 6월 9일 열린 2019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투씨>의 마이클로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산티노 폰타나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영화 <겨울 왕국> 속 한스 왕자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지난해 시카고 공연을 비롯한 브로드웨이 공연까지 마이클을 맡은 폰타나는 그가 연기하는 마이클처럼 인물의 진실을 제대로 꿰뚫은 듯 진정성을 담아서 연기한다. 특히 도로시로 변장한 마이클을 연기할 때, 노래와 대사, 행동과 손짓마저도 중층적인 매력을 굉장히 잘 살렸다. 특히 1막에서 줄리의 집에 초대받은 도로시가 줄리와 가까워지면서 부르는 ‘Who Are You’는 극 전개상 마이클과 줄리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처음으로 함께 부르는 듀엣곡이다. 이 노래는 한 사람으로 인해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선 두 사람의 마음을 잘 그려낸다. 특히 다른 장면과 다르게 도로시의 모습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의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점에서 그의 복잡한 마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줄리는 도로시에게 “여자로서 산다는 것은 복잡하지 않아?”라며 묻고, 도로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굉장히 복잡하지”라고 답하는 대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또한 도로시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신나게 부르는 뮤지컬 넘버 ‘Unstoppable’은 마이클의 굵은 남자 목소리로 시작해 도로시의 팔세토 목소리로 끝난다. 이 장면은 남들이 보기에는 위태롭지만, 그의 이상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도로시의 밝은 미래를 나타낸다. 처음엔 마이클의 노래로 시작해 도중에 퀵체인지를 한 도로시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장면에서 그녀가 입고 있는 새빨간 오프 숄더 머메이드 스타일의 반짝이 드레스는 원작 영화에도 나왔던 도로시의 대표 의상이다. 이 순간 도로시가 되어 전혀 무리 없이 남자와 여자의 발성을 소화하는 산티노 폰타나는 확실히 2019년 토니상을 받고도 남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산티나 폰타나 이외에도 마이클의 룸메이트인 제프 역으로 나오는 앤디 그로텔루쉔은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앙상블 극단의 매력을 보여준 피아스코 컴퍼니에서 활동했다. 앤디 그로텔루쉔은 마이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짓궂고 까칠한 친구 제프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소화한다. 무엇보다 제프는 2019년 관객의 시각을 대변해 주면서 공감을 얻는다. 예를 들면 마이클이 여장 남자로 여성 배우에게 주어져야 할 역할을 따냈다고 기쁘게 말할 때, 지금 이 시점에 마이클이 여성 배우의 역할을 뺏는 뻔뻔함을 보였다는 점을 짚어주거나 마이클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때 직언하는 시원한 성격을 보여준다. 특히 2막의 첫 곡인 ‘Jeff Sums Up’에서 마이클이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지적할 때 그의 매력이 제일 잘 드러난다. 마이클의 또 다른 친구인 샌디를 맡은 사라 스타일스는 계속된 오디션 실패로 자존감이 낮아져서 비관적이고 히스테리컬한 샌디를 인상 깊게 연기했다. 그 외에도 실력 없고 자의식만 강한 연출 론 칼라일 역할을 연기한 렉 로저스는 특유의 리듬으로 매너리즘과 쇼비니즘과 나르시즘으로 가득한 인물을 코믹하게 잘 담아냈다. 

이번 토니상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극본상을 받은 로버트 혼의 극본은 대부분 인물을 코믹하게 잘 그려냈고, 이로 인해 배우들이 깊고 맛깔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원재료를 주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좋은 평을 내리고 싶다. 특히 무대 위에서 크고 작은 역을 균등하게 잘 그렸다는 데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가치를 높였다고 볼 수 있고, 제프와 마이클의 관계를 통해서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들이 듣기에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수상 자격이 있다. 데이비드 야즈벡은 작년에 <밴즈 비지트>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뮤지컬 코미디에 딱 어울리는 좀 더 가볍고 귀에 잘 들어오는 음악과 가사로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 같은 뮤지컬 

<투씨>를 보는 두 시간 반의 시간은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선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웃음을 살리기 위한 템포도 좋았다. <할리데이 인>과 <허니문 인 베가스> 등을 통해 뮤지컬 코미디 안무의 베테랑으로 자리 잡은 데니스 존스의 안무도 웃음 포인트로 효과적이었다. 특히 윌리엄 아이비 롱이 디자인한 도로시의 의상은 색과 선이 다른 배우들의 의상과 조금 다른데,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속의 인물인 도로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했다. 

그렇지만 이 유쾌한 뮤지컬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남성 배우와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마이클이 도로시의 옷을 입고 여성으로 살면서 자신이 남성으로서 가진 특권에 대해서 점차 눈뜨고 여성의 고민을 나누게 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나름 고무적이었다. 여기에 마이클이 아닌, 도로시를 사랑하게 되는 젊은 배우가 “트랙터 같은 여자”라든가 “단단하다”는 표현으로 그녀에 대해 늘어놓는 찬사도 나름 신선하다. 트랙터 같은 단단한 여자도 사랑스럽고 매력적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의 초점이 마이클의 성장과 변화에 있는 한 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마이클의 이야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마이클의 친구인 샌디는 굉장히 히스테리컬하게 그려지는데,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해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또 도로시조차도 마이클의 잠재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투씨>의 해피엔딩은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이클과 줄리의 관계 역시 완전한 해피엔딩이 아닌 여지가 남은 결말로 보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낡고 오래된 것을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듯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있지만 올해 토니상에서 <투씨>가 최우수 작품상의 <하데스타운>을 누르고 극본상을 받은 것은 보수적이지만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브로드웨이의 방향성을 다시금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나름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기에 <투씨>는 아쉬워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0호 2019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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