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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DIARY] <13 Fruitcakes> 드래그퀸 모어,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No.190]

글 |모어 드래그 아티스트 사진 |모어 드래그 아티스트 2019-07-15 849

<13 Fruitcakes> 드래그퀸 모어,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뉴욕 라 마마 시어터에 오른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 <13 Fruitcakes>. 이 의미 있는 자리를 빛낸 드래그퀸 모어의 이야기.

*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그의 스타일에 따릅니다.



 

 

인생 2막의 무지개 깃발 

서울이 퀴어 퍼레이드 개최 20주년을 맞이한 바야흐로 서기 2019년 6월. 빨갛고, 노랗고, 보랗고, 전 세계가 무지개 칼라의 깃발로 미쳐 날뛰는 달에 뉴욕에서 열리는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에 초대되었다. 기념 공연이 펼쳐지는 장소는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등의 전설들이 모조리 다녀간 60년 전통의 유서 깊은 라 마마 시어터! 이 엔간한 뉴스는 작년 연말 즈음 스무해 동안 여기저기서 애쓰는 내 모습을 본 공연 관계자의 러브콜로 시작됐다.

 

“지민 씨, 저희 공연 환경이 좀 열악해서 산 넘고 바다 건너는 험난한 여정이 될지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에 초대받아 뉴욕에 가는 아름다운 일이긴 하나,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공연 운행 컨디션이 이만저만고만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짐을 다 직접 날라야 할 수도 있고요.” 

“아니, 너무 괜찮고요, 그 고생길에 동행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찢어져 보시죠.”

 

꼭 십 년 전에도 뉴욕 공연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회사의 삽질로 무산돼 천추의 한이었거늘. 이번엔 도가니가 파괴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해야만 했다. 그 영광 누리기 위해 여태 버텨왔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또 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이윽고 라 마마 시어터의 홈페이지에 <13 Fruitcakes> 공연 소개가 올라갔고, 말로만 듣던 뉴욕 타임스에도 내 공연 기사가 떴다. 

 

인생 참 알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틀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이지만, 신이 고이 인도해 주는 내 갈 길을 그저 따라 살다보면 좋은 소식, 나쁜 소식에 덩실덩실 신명나게 춤을 추는 날이 온다.

 

스톤월 항쟁 50주년 

월드 프라이드

말해모해 

그저 덩더쿵!

내 인생 2막의 문이 활짝 웃으며 무지개 깃발을 펄럭였다.

 

*잠시 스톤월 항쟁 소개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은 1969년 6월 28일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게이 바 ‘스톤월 인’을 급습한 경찰들이 난폭한 단속을 벌이자 현장에 있던 동성애자들이 이에 맞서 시위를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성소수자 차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그 결과 미국 역사에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촉발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된다. 매해 6월 전 세계에서 열리는 퀴어 페스티벌은 1970년 6월 28일 스톤월 항쟁 1주년을 기념하고자 뉴욕과 시카고, LA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 게이 퍼레이드에서 시작됐다.



 

뉴욕 무당과 서울 무당의 뉴욕 랑데부

2019년 6월 7일. 비행 시간 총 14시간. 서울에서 분명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는데 뉴욕의 JFK 공항에 도착하자 또 다른 세상의 아침이었다. 혼미한 정신 상태로 무려 3시간에 걸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목적지인 라 마마 시어터에 도착! 극장 입구에 부착된 <13 Fruitcakes> 공연 포스터 속의 내가 우릴 맞이했고, 로비 곳곳에는 공연 소식을 알리는 홍보물이 걸려 있었다. 게다가 내 사진이 메인에 실려 있는 라 마마 시어터의 월간 프로그램 북. 그제야 뉴욕의, 라 마마의 환대가 다 현실이라는 게 실감났다.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연습에 투입되는 정신 하나 없는 스케줄이 시작됐다. 하지만 바쁜 틈에도 공연 하루 전날인 12일 존 캐머런 미첼 집에 들이닥쳤다. 뉴욕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의 우상인 그에게 공연 소식을 전했더니, 거두절미하고 마침 그때 자신의 집이 비어 있을 거니 원하면 편하게 와서 머물라며! 눈물 한 바가지, 소름 두 바가지, 사랑 세 바가지, 오열 네 바가지. 난 단지 공연 소식을 전하고자 했을 뿐인데, 존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백인 무당임이 틀림없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살던 동네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존의 집에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헤드윅>의 공연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존은 내게 아직 발매도 안 된 <헤

드윅>의 블루레이 한정판을 선물해 줬고, 나는 그에게 라면과 김, 햇반, 연양갱, 아이크림을 선물했다. 우상의 집에서 우상을 만나다니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 같았다. 우리는 아주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고, 존은 영화제 참석을 위해 공항으로 부랴부랴 떠났다. 뉴욕 라 마마 시어터에서 공연하는 것도 엔간한 뉴스지만, 할리우드 스타의 집에서 언제 또 자보겠나 싶어 의기양양한 기분이 하염없이 우뚝 솟았다.



 

운명의 6월 13일

수많은 리허설을 거쳐 드디어 공연 날. <13 Fruitcakes>는 역사 속에서 유명했던 성소수자 열세 명의 이야기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등장인물로 나오는 오스카 와일드, 월트 휘트먼,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작가들이 쓴 글을 가지고 안병구 작가가 각색을 맡고(그는 연출도 맡았다), 이지혜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나는 13명

의 등장인물 가운데 버지니아 울프가 쓴 소설 『올랜도』의 올랜도 역을 맡았다. 그리고 차이콥스키 장면에서는 발레 토슈즈를 신은 흑조로, 장칼 뱅 장면에서는 빨강 하이힐을 신은 예수로, 혜공왕 장면에서는 드래그 자작나무가 되었다. 결국 난 서울에서나 뉴욕에서나 인간이 되지 못하는, 어쩌면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털 난 물고기일지 모른다. 어쨌든 그저 나인 채로 서게 된 오페라 형식의 뮤지컬 <13 Fruitcakes>! 등장인물 13명, 총 13장의 장면, 공연 날마저 13일. <13 Fruitcakes>은 잘될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잠시 <13 Fruitcakes> 스토리 소개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탄압받던 시절. 1969년 6월 어느 날,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게이 바. 열세 명의 성소수자 남녀들(과일 케이크들)이 성 정체성 때문에 경찰에 쫓겨 분장실로 숨어 들어와 갇혀 있다. 게이 바 출입을 이유로 구속되는 사람들은 신문에 보도되어 신분이 노출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시절이었기에 그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지만 올랜도라 불리는 신비한 드래그퀸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기도 하고 무서워 할 일이 아니라고 야단도 치면서 인류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분장실에 갇힌 이들은 점차 올랜도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빠져든다. 올랜도와 열두 사람들은 천사 같은 존재들인 마이티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도움으로 시공을 초월한 과거로 시간 여행을 시작하고 마이티 뮤지션들은 이들의 시간 여행을 관조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독재 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작에 기여한 동성 커플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이야기부터, 1948년 UN 인권선언문을 만든 레즈비언 엘리너 루스벨트의 이야기까지, 역사적인 성소수자 13인의 이야기는 음악, 노래, 시, 무용, 미디어아트를 통해 무대 위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2500년의 시간 여행을 끝낸 열세 사람은 분장실에 갇혀 있는 현실로 되돌아오는데, 이들은 더 이상 걱정과 공포에 떨지 않는다. 올랜도가 들려준 13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과 용기를 얻은 이들은 경찰 밴의 차 문을 부수고 거리로 나가 20세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촉매제가 되었던 스톤월 항쟁에 앞장서게 된다.

 

공연 전 라 마마 시어터가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총 여섯 개의 질문 가운데 한국 드래그 신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요즈음은 내 옆집 사람도 드래그퀸일 정도다. 드래그퀸이 넘쳐난다. 끼에 부대끼다 다들 밖으로 겨 나왔다.”

 

그리고 여기서 디지버지는 소식 하나. 제9장 버지니아 울프 장면의 노래 가사를 이지혜 작곡가의 도움으로 직접 써보았는데, 실제 공연에 쓰이면서 작사가로 데뷔. 이 모든 것이 다 역사적인 일이 되고야 말았다.

 

<하염없이 피가>

 

지독한 불면이 갉아먹은 아침 꽃을 사러 가

밤새 물고 있었던 담배만큼이나 하늘은 잿빛 

내가 유배당한 적막을 벗어나 도시로 가고 싶어

네게 닿지 못하는 페이지 위에 번지는 핏빛 

언젠가 여기 지옥을 벗어나 고요하리

하염없는 모래 바람 소리

환청일까 너일까

강물 위로 피가 하염없이, 우-

피가 피가 우-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우-

하염없이 피가

내 손을 잡아 주오, 내 소설 속의 연인이여

 

‘첫공 파이팅’을 외치고 관객이 입장하는 시간 동안 나는 400년을 살다 간 올랜도가 되어 무대 안에서 분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끼를 떨며 관객을 맞이했다. 그리고 월트 휘트먼의 시를 옮긴 노래와 함께 저녁 8시 첫 공연의 서막이 열렸다.

 

저기 가는 낯모르는 사람이여! 

내 이토록 그립게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은 내가 찾고 있던 그이, 혹은 내가 찾고 있던 그 여인,

꿈결에서처럼 그렇게만 생각됩니다.

 

첫 공연이라 조금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연습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은 뉴욕 데뷔! 박수갈채 짝짝짝. 공연이 끝나고 나서 라 마마에서 축하의 의미로 열어준 리셉션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을 한 잔 삼킨 후 나는 어쩐지 공허함으로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지 못했다. 마치 산모가 열 달 동안 배에 아이를 잉태하다 내놓은 자식에 혼절한 기분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가 하는 그동안 해온 이 모든 무형의 것들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미지의 블랙박스 속의 무에서 유로 뚝딱. 사람들의 눈과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 절대 만지거나 소유할 수 없는 한시적인 것들. 떠나간 옛 연인처럼 그리워해야 하는 사랑. 영원으로 건너간 친구처럼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이 허무한 감정들. 이 역사적인 날의 영광과 환호와 갈채는 온데간데없이 나는 왜 없을까. 

 

다음 날 정오, 극장에 가기 전에 스톤월 메모리얼을 찾았다. 철문에 꽂혀 있는 수십 개의 레인보우 깃발이 유난히 평온한 낮잠을 취하는 듯 보였다. 벤치에 앉아 그들이 당했을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는 이만큼 자유로운데, 그 옛날에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세가 되고 살해가 되고. 그러고 보면 내 유년 시절도 치욕으로 얼룩진 기억뿐이었다. 그 폭력과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이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죽지 않고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수많은 생각이 고통스럽지 않게 밀려왔다. 이 도시 한 걸음 한 걸음에 놓인 무지개를 보며 내 인생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 싶어 따뜻한 위로가 됐다.

 

난 삶을 저주했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행이라고 투덜거렸다. 세상엔 너무 많은 사랑과 자유가 있는데, 난 없다고만 했다. 그런데 버티다 보면 월드 투어를 갈수 있고, 월드 프라이드를 구경할 수 있고, 우상의 집을 무상으로 쓸 수 있고, 당신을 만날 수 있고,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있다. 난 그저 그 아름다운 기억들만 가지고 아름답고 끼스럽게 살아가겠다. 누군가 내게 “애 많이 쓰셨네요”라고 말해 준다면 “그러게요, 다음 생은 애쓸 필요 없는 하루살이로 태어나 지구의 찰나만 알다 가고 싶네요?”라고 멋이나 부려야겠다.

 

빛은 나를 위해 비추고 있다. 

소리는 나를 위해 진동한다. 

입이 많은 침묵. 

내가 존재하는 사진에 나는 없다 . 

내가 머물러 있는 영상은 내가 아니다. 

나는 있고 없고 이내 사라질 미련의 파편이다.

 

P.S  모어는 결국 뉴욕에서 <헤드윅> 콘서트 무대에 서게 됐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0호 2019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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