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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오만과 편견> 이동하, 부족함을 알기에 완전해지는 [No.191]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stylist | 노희구·문채원 2019-09-04 4,585

<오만과 편견> 이동하
부족함을 알기에 완전해지는   
 

 

지난봄 2년간의 공백을 깨고 연극 무대로 복귀한 이동하. 그런데 오랜만의 복귀작이 막을 내리기도 전에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곧이어 출연할 차기작이 발표된 것! 그가 새롭게 준비 중인 연극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대표 로맨스 소설을 남녀 이인극 형식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모으는 작품. 자신과 세상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가는 사랑 이야기를 통해 그는 또 어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게 될까.

 


 

흔들리지 않는 꿈

지난봄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2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어요. 오랜만에 무대에서 서면서 뭐가 가장 즐거웠어요?  공연을 하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좋아요. 특히 제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 흐름을 관객들에게 바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좋더라고요. 제 감정선이 객석에 제대로 전달되면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게 뭔지 느껴지거든요. 이건 촬영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죠. <어나더 컨트리> 같은 경우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배우들끼리 서로 더 깊어지고 호흡도 잘 맞아서 공연하는 게 재밌어요. 즐겁고 행복하죠.
 

내가 이미 지나온 시기의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때 생각이 날 것 같은데, 배우 이동하의 십 대는 어땠나요? 예전 인터뷰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고 하던걸요.  전 어렸을 때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그 시절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몰라서 많이 방황했죠. 세상에 반항도 많이 했고요.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을 때라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루 단위로 생각이 바뀌었죠. 근데 저도 <어나더 컨트리>의 가이 베넷처럼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친구 소개로 서울예대 연극과 선배를 알게 되면서 나도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사수를 했다죠. 그만큼 절실함이 컸던 걸까요?  첫 번째 입시에서 떨어지고 나서 그 생각뿐이었어요. 5년, 10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들어가야겠다는 마음. 원래 좀 고집 있는 성격이거든요. (웃음) 다른 건 몰라도 하고자 하는 일에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혹시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그때만큼 고집을 꺾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요?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원래 학교 다닐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공연 기획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연기를 하게 됐던 거였거든요. 얼결에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계속 좋은 기회들이 이어졌죠. 물론 연기가 재미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초반에는 저한테 이 길이 맞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2012년쯤에 <나쁜 자석>이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당시 추민주 연출님과 대사 하나하나의 서브텍스트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니 제 감정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연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됐거든요. 뭔가 진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아, 이런 게 연기하는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그때 이후로는 무대에 서는 매 순간이 행복했어요.



 

결점을 통해 나를 알아가기

신작 <오만과 편견>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감사하게도 제작사 달컴퍼니에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사실 저희 회사에서는 <어나더 컨트리>를 끝내고 드라마를 하길 바랐는데, <오만과 편견> 작품 소개서랑 시놉시스를 읽어 보니까 이 작품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무엇보다 배우 두 명이서 이렇게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야 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게 진짜 가능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저랑 친한 (윤)나무가 자기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같이하면 좋을 것 같다더라고요. 제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좀 늦게 팀에 합류했는데, 함께할 배우들이 너무 좋았어요. 여러모로 이 작품을 안 하면 후회하게 될 것 같았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연을 망설이진 않았어요?  아뇨, 전혀 주저하지 않고 결정했어요. 왜냐면 이런 기회가 쉽게 또 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두 명이서 여러 캐릭터를 나누어 맡아 공연을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인 데다, 이 경험을 잘 해내면 배우로서 많이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런 형식의 이인극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은 한 역할이 메인이 되는 게 아닌 다양한 역할들을 모두 깊이 있게 표현해야 하거든요. 물론 이제 막 연습을 시작한 상태라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요.
 

여러 캐릭터를 깊이 있게 연기해야 한다니 무척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려요.  네, 전 이 작품에서 다아시 외에 제인, 미스터 베넷, 키티 등등 남녀 캐릭터를 넘나들어야 해요. 그건 상대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의상 교체 없이 시작부터 끝까지 쭉 같은 옷을 입고 공연해요. 대신 각각의 인물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인물 변화를 나타내죠. 예를 들어, 재채기를 하면 키티가 되는 식으로요. 의상 변화 같은 장치의 도움 없이 연기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셈이에요. 박소영 연출님이 그러셨는데,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변신할 때 순발력과 속도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대요. 그리고 스무 명 넘는 등장인물을 다 깊이 있게 표현해야 한다고 하고요.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희화화하면 절대로 안 되죠. 
 

이전에도 <쓰릴 미>나 <마마, 돈 크라이>, <트루 웨스트>를 통해 이인극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배우로서 이인극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럼요, 그 작품들을 통해 너무 많은 것들을 얻었어요. 일단 두 명이서 공연을 끌어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아무래도 여러 명이 공연하는 작품보다 더 높은 집중력이 요구돼요. 단 두 명이서 많은 관객들을 집중시키려면 잠시도 긴장감을 놓쳐선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게 이인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오만과 편견>에서는 한 배우가 열 개 넘는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데, 멀티맨 개념이 아니라 각각의 서사가 있는 인물들을 진심으로 연기해야 하니까 더 매력적이에요.   
 

혹시 이 작품 영화도 봤어요? 어떤 인상으로 남았나요?  키이라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로 나왔던 버전은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봤어요. 그 영화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훨씬 지났으니까 사실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 났는데, 이번에 공연을 하기로 하면서 다시 보니까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물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배우라서 그런지 인물 간의 감정이 부딪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인물 묘사가 굉장히 생생한 점도 좋았고요. 원작 소설이 수백 년 전에 쓰였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여성 캐릭터가 과감한 성격을 띠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다양한 등장인물 가운데 특히 흥미로웠던 캐릭터가 있을까요.  저는 특정 캐릭터보다는 인물들이 처하는 상황이 흥미로웠어요. 특히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성격이 너무 다른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후 오해 때문에 계속 어긋나다 다시 만나기까지의 상황이 재미있더라고요. 엘리자베스는 결혼과 사랑에 대해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다아시도 그에 못지않게 자기 소신이 강하죠. 전 다아시의 오만한 성격이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 때문에 생긴 것 같아요.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편견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게 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다아시의 오만함은 작품 제목에 나타나 있을 정도잖아요. 배우로서 이 인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이 인물이 지닌 내면의 결점을 드러내는 거요. 그리고 그 결점을 인정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전 어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는 자라온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아시가 왜 이런 성격을 갖게 됐는지 그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 다아시의 친한 친구인 빙리는 굉장히 밝고 걱정 없는 성격인데, 그것만 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 같거든요. 하지만 다아시는 고집이 아주 세다 못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꽉 막혀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 생각엔 사람들은 모르는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결점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다아시가 왜 이런 결점을 갖게 됐는지 제 스스로 답을 찾는 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에요. 
 

배우들은 직업의 특성상 자기 결점에 대해 더 크게 느낄 수 있잖아요. 평소 결점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너무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저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 (웃음) 원래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렸을 때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했어요. 주위에서 낯가림이 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특히 이십 대 때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사수를 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는데,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이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배우라는 일이 매력적인 게, 저 같으면서도 제가 아닌 사람이 무대에 있어요. 제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거니까. 근데 아직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먼저 다가가고 싶어도 마음처럼 잘 안 돼요. 나도 활발한 사람들처럼 어디 가서나 말 좀 잘하고 싶다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리고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에 대해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생각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거든요. 그 외에도 아주 많은 결점들이 있죠. (웃음)
 

이제 막 연습이 시작됐으니까 앞으로 연습실에서 작품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겠죠.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을 이 작품의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 하지만 그 결점을 인정하고 극복하고 성장하는 게 인간 아닐까.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받았어요. 오늘이 세 번째 리딩 연습 날이었는데, 안 그래도 연출님이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각자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어요. 모든 배우들이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공감했죠. 이 작품은 결국 각자 모순적이고 결점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공연날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갈 것 같아요.
 

어느덧 벌써 경력 십 년의 배우가 됐는데, 지금 이 시점에 배우 이동하에 대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나쁜 자석>이라는 연극에서 처음 연기의 참맛을 느끼고 나서 지금까지 재미있게 작품을 해왔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어요. 핑계를 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으니까 분명 사람들이 보기에도 제게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정을 더 섬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늘 그런 고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열심히 노력해 왔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다는 데는 후회가 없을 만큼요. 십 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여유라는 것도 생겼을 텐데, 거기에 안주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평생 넘치는 부분은 깎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과정을 반복할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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