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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서울연극센터 칾-다운 아카데미, 예술가의 젠더 연습 [No.192]

글 |조연경 더뮤지컬 리뷰어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단 2019-09-21 3,662

서울연극센터 칾-다운 아카데미

예술가의 젠더 연습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가 여름을 맞아 연극인의 창작 활동 역량 강화를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 <칾-다운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올해 프로그램은 배리어 프리 공연 제작, 극단 간 해외 교류 및 공동 제작, 무대 위 성별 재현 방식에 대한 강의와 워크숍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강의 ‘예술가의 젠더 연습-리플레이와 리허설’은 최근 부쩍 늘어난 젠더 이슈에 관한 관심을 반영해 창작자의 젠더 감수성을 함양하고자 마련되었다. 지난 8월 8일, 6시간 동안 진행한 특강에서 창작자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흥미로울 만한 지점을 짚어봤다.



 

젠더의 두 가지 용법

몇 년 사이 공연계에서 ‘젠더프리’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헤롯 역, 2016년 <트레이스 유>의 우빈 역을 여성 배우가 맡았을 때는 일종의 마케팅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17년에는 <광화문연가>의 월하 역에 남녀 배우가 더블 캐스팅됐다. 2018년에는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배우들이 성별과 상관없이 여러 캐릭터를 번갈아 연기했고, 연극 <비평가>가 초연과 달리 여성 배우를 기용했으며, <더데빌>의 X-화이트와 X-블랙 역에 여성 배우가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2인극 뮤지컬 <해적>이 전 배역 혼성 캐스팅으로 공연한 데 이어 연극 <오펀스>와 <에드거 앨런 포>도 기존 남성 역할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했다. 공연계의 젠더 실험은 그동안 관성적으로 남성 배우에게 주어졌던 중요 배역을 여성 배우도 맡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갈수록 흥미로운 담론을 형성하며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강의는 젠더 개념의 역사와 용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본래 ‘젠더(Gender)’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이 느끼는 성별 위화감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으로, 196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전유하여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는 통념에 저항하기 위해 사용했다. 젠더 개념의 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분석 범주로서의 젠더다. 특정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하는 태도, 행동 양식을 습득시킨 결과 나타나는 구분된 성 역할, 성별 규범을 가리킨다. ‘젠더프리(Gender-free)’는 배우가 젠더 구분에 상관없이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이므로, 이때의 젠더는 첫 번째 용법으로 쓰인다. 둘째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으로서의 젠더다. ‘젠더크로스(Gender-cross)’는 배우가 자신과 반대되는 성별 정체성을 연기한다는 의미이므로, 이때의 젠더는 두 번째 용법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많은 이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열린 관점으로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논바이너리(Non-binary)’, ‘젠더퀴어(Genderquee)’ 등 성별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용어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젠더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젠더, 인종, 계급, 나이 등 다양한 요소가 교차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젠더와 계급의 문제가 복잡하게 교차한다. 때로는 사회가 계급 갈등을 은폐하기 위해 젠더 갈등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기득권인 상류층 남성은 하류층 남성의 분노가 자신들이 아닌 여성을 향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이러한 범주 간 교차성을 염두에 두고 인물 관계에 접근할 때 더 깊이 있는 성찰과 표현이 가능하다. 



 

체험된 몸

2강에서는 성별화된 몸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다뤘다. 역사적으로 남성은 정신, 이성, 문화, 여성은 육체, 감정, 자연과 연결 지어 사유되어 왔고, 우월한 전자가 열등한 후자를 지배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은 이러한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해서 몸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몸을 성별화해 남성이라면 혹은 여성이라면 서로 같은 체험을 하리라 전제하는 것부터 잘못된 접근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 다른 몸을 지녔으며, 그 몸으로 서로 다른 체험을 하고, 이것이 한 사람의 고유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몸의 감각은 우리가 언제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호 의존적 존재라는 걸 인지하게 만든다. 몸은 만지는 동시에 만져지고, 보는 동시에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누군가를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상이다. 

공연에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배우의 고유한 몸이다. 무대 위의 배우는 퍼포먼스를 통해 직접 감각을 느끼고 보여주는 주체이자 관객에 의해 보여지고 느껴지는 대상이다. 관극이란 어떠한 감각이 배우의 몸을 경유해 관객에게 전해지는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크린 속 배우를 볼 때와 달리, 공연을 보는 관객은 배우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 감각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연극 <비평가>가 보여준 젠더프리 캐스팅의 묘미도 이러한 몸의 중요성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을 경유해서 나올 때 관객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현의 문제

3강에서는 재현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자동차나 술 광고에 섹시한 여성이 등장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게 바로 성 상품화의 예다. 이러한 광고는 여성과의 유흥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연약하고 신비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운 화보도 숱하게 눈에 띈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이자 처벌당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는 사물로 취급하는 성적 대상화에 해당한다.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는 무엇이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취급되는가에 따라 발생한다. 뻔한 장면을 뻔한 방식으로 배치할 때 이야기는 재현이 아닌 전형이 된다. 고민 없이 익숙한 문법을 따라하다 보면 그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재생산하기 쉽다. 최근에 논란을 산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문제가 된 이유도 여기 있다. 대중문화의 코드 안에서 여아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입을 부각시킨 장면이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몰랐다고 발뺌하는 건 창작자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없다. 

공연계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이 이슈몰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이 어떤 미학적 성취를 거뒀으며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는지 분석할 만큼 충분한 수의 작품이 공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향후 흥미로운 논의가 늘어날 공연계에 대한 기대를 전하며 강의가 마무리되었다. 강연자의 바람처럼 이번 강의를 들은 창작자들을 통해 공연계의 젠더 실험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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