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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USICAL INSIDE] <시라노> 김동연 연출가,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사랑을 실천한 검객, 시라노 [No.193]

글 |박병성 사진제공 |CJ ENM 2019-11-01 5,333

<시라노> 김동연 연출가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사랑을 실천한 검객, 시라노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타의 희곡 『시라노 드 벨쥐락』은 애절한 사랑과 헌신을 담은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품이다. 뮤지컬은 2017년 국내 초연 이후 2년 만에 연출진을 바꾸고, 새롭게 보완하여 작품의 설득력을 높였다. 뮤지컬 <시라노>호의 새로운 선장을 맡은 김동연 연출가와 새로워진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력적인 다양한 인물들

시라노는 낭만적이고 영웅적이면서 비극적으로 큰 코로 인해 역설적으로 완벽해진 인물이다.  희극성과 비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인물 자체가 완벽하기보다는 드라마적으로 완벽해진 인물이다. 
 

크리스티앙은 자칫 정신 연령이 낮은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단지 표현이 서툰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인물로 그리려고 했나? 이번 공연에서는 성장하는 인물로 보이길 바랐다. 시라노가 영웅이긴 하지만 성장하는 인물은 아니다. 크리스티앙이나 록산은 시라노를 통해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지길 바랐다. 그래서 극 초반의 크리스티앙과 군대에 들어간 크리스티앙 사이에 인물의 낙차가 느껴지도록 했다.
 

극 초반 크리스티앙은 종종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모자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뮤지컬 넘버 ‘만약 내가 말할 수 있다면’을 보면 지능이 낮다기보다는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 가사를 보면 표현이 시라노에 뒤지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라 이해는 되면서도, 뮤지컬에서 노래가 대사의 연장이라고 볼 때 노래 가사도 크리스티앙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 노래를 자연스럽게 부르게 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해도 프랭크 와일드혼이 워낙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곡을 만들어 놔서 드라마와 잘 붙지 않는다.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크리스티앙의 대표곡으로 노래 자체는 굉장히 좋은데, 좀 더 담백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록산 같은 경우는 초연에 비해 좀 더 주체적인 인물로 바뀌었다.  왜 시라노가 록산에게 반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작가가 바꾸고 싶어 했다. 시라노는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고 영혼을 보는 고결한 인물인데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는 게 맞지 않았다. 록산의 말투나 대사가 그 시대의 언어를 따르다 보니 자기중심적이고 공주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시대의 관점으로 봤을 때 굉장히 진취적인 인물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기경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전쟁터로 찾아간다. 캐릭터를 바꾼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한 것이다. 록산 역을 캐스팅할 때도 이런 점이 중요했다. 클래식 발성을 하면 예쁘게 포장된 이미지가 생겨서 진성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실제 성격이 활달하고 가식이 없어서 록산을 연기할 때 자연스러울 수 있는 배우를 찾으려고 했다. 
 

주체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록산이 어린 시절에 시라노를 놀리는 아이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여성 문학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대부분 말로 전해지다 보니 주체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미흡했다.  2막 전쟁 장면에서 록산은 포위된 대원들에게 빵 마차를 가져간다. ‘영광을 향해’를 록산이 주도적으로 부른다. 원래는 남자 음역대 노래여서 음악 팀에서는 반대하기도 했는데 록산의 주체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장면을 바꾸었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을 보호하기 위해 시라노를 전쟁터에 보내는 행동 때문에 관객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다. 그런 록산의 부탁마저도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시라노여서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 된다. 시라노의 헌신적 사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록산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그때 록산이 부르는 노래 가사가 세서 더 그렇다. 자기를 좋아하는 마음도 모르고 방패가 되어 달라니. 그 말 자체는 미울 수 있는데 용서받을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했다. 록산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그녀를 사랑하는 시라노의 매력도 떨어진다. 크리스티앙이나 시라노가 사랑할 수밖에 없고 평생 사랑을 간직할 대상이기 위해서는 록산이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도 매력이 있어야 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라노와 닮은 록산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록산이 처음에는 크리스티앙의 외모에 반하지만 그의 서툰 고백을 듣고 마음을 돌린다. (록산은 상대가 크리스티앙인 줄 알지만) 어둠 속에서 시라노의 말을 들은 후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방패가 되어 달라는 말은 자신의 사랑을 지켜달라는 말이니까 시라노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극적인 아이러니가 있는 말이다. 



 

초연과 달라진 변화

초연 공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체적인 평은 드라마에 설득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달에서 떨어진 나’(시라노가 외계인인 척하며 드기슈 백작을 잡아두기 위해 부르는 노래)는 굉장히 튀는 노래인데 이번 공연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들더라.  그 장면을 설득력 있는 장면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세팅을 했다. 실제 시라노라는 인물은 공상 과학 소설을 썼던 걸로 알고 있다. 달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록산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이상한 코 때문에 친구들이 달에서 온 사람이라고 놀렸다는 이야기를 넣었다.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지만 이 노래가 슬프면 성공한 거라는 말을 했다.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곡인데 노래가 너무 튀긴 한다.
 

이번 공연은 초연에 비해 계급적인 대립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시라노가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에도 계급에 대한 대립이 나온다. 극 초반에 시라노가 연극을 방해하는데 배우가 연기를 못해서 훼방을 놓는 걸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추기경에게 아부하고 귀족들에게 돈을 걷고 세상의 비위를 맞추는 예술에 대한 분노, 가치 없는 예술에 대한 분노가 담기기를 원했다. 시라노가 생각하는 예술과 배치되는 연극으로 설정한 것이다. 빵집에서도 의도적으로 시와 빵을 배치해 놓았다. 빵은 삶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시와 빵을 대비해 놓고 시를 즐기는 서민들과, 서민들을 괴롭히는 귀족,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우는 시라노로 갈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어야 시라노의 존재가 더 명확해질 것 같았다. 
 

초연에 비해 네 곡이 줄었다. 그중 세 곡이 드기슈 백작의 노래이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감이 줄어들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성격이 좀 더 명확해졌다.  드기슈의 노래들은 곡 자체는 좋지만 드라마 진행상 비경제적인 노래가 많았다. 노래를 과감히 삭제하고 대신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적인 부분을 더 채워 넣으려고 했다. 노래를 부르면 디테일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속도감 있게 진행하면서 록산과의 칼싸움이라든가 드기슈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추가했다. 
 

르브레와 라그노 역시 마치 만담 커플처럼 코믹 릴리프로서의 역할이 명확해졌다.  초연에는 좀 더 여러 인물이 등장했는데 이것을 둘에게 몰아주었다. 드기슈의 여러 부하들이 등장했지만 그 역할을 드기슈에게 모아놓았고, 시라노 역시 원래는 가스콘 부대의 대장이 아니다. 원래 대장은 따로 있었는데 시라노에게 대장 역할까지 맡긴 것이다. 옛날 3막짜리 희곡은 인물이 많이 나온다. 흩어진 인물을 하나의 역할로 모아놓는 작업을 했다. 



 

아름답고 극적인 음악

록산이 시라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하는 노래, ‘누군가’를 부르는 장면이 초연에서는 빵집이었는데 바뀌었다.  몇 장면은 장소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초연에는 극장에서 솔로만 세 곡, 그리고 빵집에서도 세 곡을 부른다. (시라노가 록산을 떠올리며 부르는) ‘록산’도 원래는 극장에서 부르는 노래였다. ‘거인을 데려와’도 그다음에 바로 극장에서 불렀다. 이번 공연에서는 ‘록산’은 상상하면서 거리에서 부르고, ‘거인을 데려와’와 ‘패스트리와 시’는 초연 때와 노래 순서를 바꿔서 장소를 이동하게 했다. 록산과 시라노는 아침에 수녀원 정원에서 만난다. 이것은 2막 마지막 장면에서 록산과 시라노가 만나는 장소와 동일하다. 단지 봄과 가을, 아침과 저녁으로 계절과 시간의 대비를 주어 극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고전 희곡의 방식이다. 뮤지컬은 음악에 따라 드라마가 진행되는데 세트나 장소가 변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극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드라마는 뮤지컬 넘버 8번 ‘누군가’부터 진행된다. 이 장면까지 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앞부분은 시라노를 소개하고 정보를 주는 장면이라 큰 사건이 없다. ‘누군가’부터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 넘버를 빼기는 힘들었고 장소를 이동하면서 속도감을 주었다. 다이어트를 하긴 했는데,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바뀐 내용 중 가스콘 부대가 고립된 중에 식량이 끊기자 시라노와 크리스트앙이 낚시를 간다. 일촉즉발인 상황에 낚시 장면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우리끼리도 토의를 많이 한 부분이다. 어쨌든 시라노와 크리스트앙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둘의 유대 관계가 깊어졌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장면에 ‘이별 편지’라는 곡을 새로 만들었다. 긴박한 가운데도 여유가 있는 시라노의 성격을 드러내고 부대원을 먹여야 한다는 상황을 보여주려 했다.
 

이중 회전 무대를 중요하게 사용한다. 전쟁 중 서로 엇갈린 대상에게 사랑을 노래하는 ‘하루 또 하루’ 장면은 이중 회전 무대 효과가 확실히 살아났다.  2막의 전쟁 장면을 액티브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회전 무대가 필요했다. 원작 희곡에서도 그저 싸운다고만 되어 있지 전쟁 장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쟁 신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동선을 역동적으로 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하루 또 하루’에서는 시라노와 록산, 크리스티앙이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면서 엇갈렸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는 효과를 이중 회전 무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부상을 당한 시라노가 상처를 감추고 록산을 방문해 부르는 ‘안녕, 내 사랑’은 시라노의 헌신적인 사랑을 잘 보여준다. 이 노래를 1막에 먼저 부르게 한 결정은 매우 탁월했다. 이 노래로 둘의 사랑에 정점을 찍었는데 2막도 1막의 마지막 곡 ‘나 홀로’로 마무리한다.  2막에서 ‘나 홀로’가 리프라이즈될 때는 “나 홀로”라는 가사가 나오지 않고 여전히 나아가겠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 작품이 돈키호테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데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한다. 원작 희곡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라노가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는 “내가 얼룩 한 점 없이 가져가는 것은... 깃털 장식”이다. 그 마지막 대사의 의미를 담아낸 선택이다. 
 

희곡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록산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면은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 홀로’의 리프라이즈가 그런 주제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다. 둘시네아를 사랑하는 모습은 지켜야 하는 기사의 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로 자신의 상상 속 세계와 싸웠지만 시라노는 실제로 전쟁과 사랑과 예술을 모두 품고 살아 나간 인물이다. 그런데 자칫 잘못해서 록산이 이상향을 향해 가기 위한 도구로 비친다면 이것이 남성 중심의 낭만주의적 해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록산을 이상화된 여성으로 상징화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여성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록산의 사랑을 통해 지켜야 할 가치, 이상, 도덕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시라노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낭만주의자로 해석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담은 시와 그 시를 전하는 외적인 아름다움까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시라노는 자신이 고통스럽더라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록산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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