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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ASTERPIECE] <오페라의 유령>과 19세기 공연 예술, 그 유령은 어디에서 왔을까 [No.196]

글 |김영주 공연 칼럼니스트 2020-01-22 5,391

<오페라의 유령>
다시 시작되는 유령의 노래


앤드루 로이드 웨버, 뮤지컬이라는 작은 세계를 넘어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가장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 천재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그가 남긴 많은 명작 가운데 <오페라의 유령>이 음악적으로 가장 완벽한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관객들에게 가장 깊이 사랑받는 작품인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86년 웨스트엔드에 입성한 이후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불멸의 존재 유령의 세상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그 유령은 어디에서 왔을까

<오페라의 유령>과 19세기 공연 예술 

 

 

1986년 10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허 머제스티스 시어터에 처음 <오페라의 유령>을 올렸을 때 관객들은 이 놀라운 공연의 모든 것에 흥분했다. 단번에 머릿속에 각인되는 강렬한 음악과 흥미로운 드라마,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 기대하는 것을 한없이 뛰어넘는 안무와 시각 디자인. 그리고 이 작품의 상징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면 아마 곧바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작품의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경이로운 특수 효과, 무대 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주인공들이 배를 타고 지하 수로를 건너 280여 개의 촛불이 드리운 은신처로 숨어드는 마법은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경이로운 테크놀로지였다. 19세기 파리의 오페라하우스라는 가장 고전적인 배경으로 최대치의 환상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 바로 그 무대 효과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극장의 신비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의 신비를 지키기 위해 공연 곳곳에 숨어 있는 기술적인 트릭에 대한 발설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고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오로지 그 무대 효과 자체에 경외감을 느끼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타워즈>가 그렇듯이 <오페라의 유령> 또한 여전히 <오페라의 유령>이다. 거대한 폐선처럼 무대 가운데에 놓여 있는 샹들리에가 전설적인 파이프 오르간 전주와 함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프로시니엄의 가장자리에 바로크적으로 장엄하게 늘어뜨려져 있던 막이 순식간에 걷혀진다. 그 순간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극장의 신비’를 이해하고 사랑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막이 걷히면 등장하는 현실 너머의 다른 세상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관객들의 열망은 19세기나 21세기에도 다를 수가 없다.    
 

극 중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관객들은 누구나 이 작품이 파리에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 속칭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2막을 여는 환상적인 ‘마스커레이드’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제각각 엉뚱하고 화려한 분장을 한 배우들로 가득한 우아한 나선형 계단은 실제로 가르니에의 명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중앙 계단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이처럼 <오페라의 유령> 속에는 아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는 숨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3막의 발레 장면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친 크리스틴이 대기실에서 라울과 유령을 차례로 맞이할 때, 문밖의 어둠 속에서는 마담 지리의 엄격한 지도를 받는 발레단의 무용수들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 속의 님프들 같기도 하고 오르골 인형처럼도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랑스러운 소녀들은 풍성한 머리를 귀여운 리본으로 묶은 헤어스타일에 천사의 날개인 양 가볍고 풍성한 하얀 로맨틱 튀튀 차림을 하고 있다. 이제 막 고통스러운 삼각관계를 시작한 우리의 세 주인공, 유령과 크리스틴, 라울에 조금만 덜 집중해 무대 전체를 보게 된다면 드가가 한평생 자신의 캔버스에 옮겨 담았던 오페라하우스의 그 소녀들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드가와 마담 지리가 활동했던 19세기에 발레 예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고도로 양식화된 이 무용 예술은 오랫동안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여타 공연 장르에 비해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다. 독립된 공연이라기보다는 오페라 공연 중에 무대 장치를 옮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때나 막간에 신사들의 관심을 붙잡아두기 위한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던 시절도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칼롯타가 유령의 농간으로 두꺼비 소리로 노래하는 수치를 당하면서 공연이 엉망진창이 되자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뛰어나온 극장주는 3막의 발레 장면을 보시겠다고 둘러댄다. 당시 인기 있던 오페라 공연은 인터미션마다 막간극으로 발레를 공연했는데, 본 공연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3막의 막바지에는 지금까지 보여준 오페라의 내용을 춤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발로 그란데’가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돌발적인 상황에 급하게 무대를 채운 막간극처럼 주로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18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막간극은 독립된 발레 공연으로 발전했고 3막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발레는 그대로 그랜드 오페라의 핵심 요소가 되어 종합 예술로서 오페라의 완성도를 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프리마 돈나, 무대 위의 여왕

당대 최고의 디바가 갑작스럽게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언더스터디로 등장한 무명의 신인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두 사람이 운명의 라이벌이 되고, 결국은 기존의 일인자가 여왕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는 서사는 그 주인공을 크리스틴과 칼롯타에서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로 바꾸어도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앙드레와 피르맹이 두 사람을 둘러싼 스캔들이 가장 좋은 홍보 수단이라며 기뻐했던 것처럼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드라마틱한 라이벌 관계를 누구보다 열렬하게 환영하고 부추겼던 것은 극장 관계자들과 음반사였다. 
 

오페라 캐스팅 명단의 첫자리를 차지하는 여가수, 제1의 여성이라는 뜻인 프리마 돈나는 오늘날의 탑 가수와 다를 바 없는 요란스러운 인기를 누렸다. 그 영광스런 선망의 지위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라이벌전은 당연히 당사자들의 선의의 경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과 SNS가 없던 시절에도 무대 위의 누군가를 숭배할 때 벌이는 어리석은 열정의 충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팬들의 신경전은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유령이 자신의 ‘최애’ 크리스틴을 위해 칼롯타에게 저지르는 위협과 모략은 현대의 어떤 악명 높은 악플러도 감히 따라잡기 힘들 만큼 집요하다. 
 

크리스틴과 유령이 서로 동의하는 그들의 관계는 사제지간이고, 유령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연인 관계인데, 사실 음악사에서 보면 사제지간으로 시작해서 연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창작자이자 스승인 연상의 남자와 공연자이자 제자인 어린 여성의 관계는 현대의 도덕률로는 금기시되지만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공연계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극장의 후원자와 연인 관계인 크리스틴을 두고 쏟아졌던 오페라 가수로서의 그녀에 대한 모욕적인 폄하와 비아냥거림을 생각해 보라. 전근대 사회에서 공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극소수의 여성,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에게 가해졌을 압박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사라 브라이트만을 한순간에 세계적인 디바로 만들어주고, 6년간의 결혼 생활로까지 이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애 첫 공교육을 발레 학교에서 받았고 성악과 팝 창법에 모두 능숙한 경이로운 음역대의 보컬리스트. 무엇보다 당장 깨져버릴 듯 예민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독특한 정서를 가진 그녀의 존재로 인해 <오페라의 유령>이 만들어졌다. 이 사실은 작품 속 유령과 크리스틴의 관계에 현실의 창작자와 그의 뮤즈를 대입하고 싶게 만든다. 

 

뮤지컬 속의 오페라

<오페라의 유령>에는 총 3편의 모조 오페라가 등장한다. 서막을 여는 <한니발>은 전형적인 19세기 그랜드 오페라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웅적인 역사물에 여왕이 등장하는 가상의 로맨스가 더해졌고 장대한 스케일의 무대 장치와 원색의 이국적인 의상들이 무대를 호화롭게 채운다.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유럽인들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이국 취향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유령이 지하 미궁에서 걸치고 있는 중국풍의 의상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유령은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살면서도 당대의 문화계 트렌드에는 누구보다도 민감했던 것인데,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가 공존하는 캐릭터에 적절한 설정이다. 
 

모차르트풍의 희가극 <일 무토>에서 크리스틴은 여장을 한 시동 역으로 등장하는데 사실 오페라에서 여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바지 역’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들은 메조 소프라노에게 맡겨지지만 크리스틴은 칼롯타와 마찬가지로 소프라노다. 다행히 <일 무토>의 시동 세라피모 역은 대사와 노래가 없는 설정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극 중에서 유령이 직접 작곡한 오페라 두 편 <일 무토>와 <돈 후안의 승리>는 모두 사랑과 욕망, 부부와 연인의 기만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마 똑바로 보기도 힘들 만큼 일그러진 외모 때문에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 밖으로 내쳐진 괴물은 마치 포도나무 아래에 선 키 작은 동물처럼 사랑의 가치를 냉소하고 비웃는다. 그는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어떤 좋은 말도 해줄 생각이 없지만 자꾸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할수록 스스로의 추함을 더욱더 통렬하게 의식하고, 스스로의 추함이 견딜 수 없는 만큼 더더욱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굴레는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괴물뿐만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스타워즈>가 여전히 <스타워즈>인 것처럼 <오페라의 유령>

이 여전히 <오페라의 유령>인 것은 그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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