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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뮤지컬 영화 <캣츠>를 위한 변명 [No.197]

글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2020-02-05 4,813

뮤지컬 영화 <캣츠>를 위한 변명


 

영화와 뮤지컬, 두 업계의 엇갈린 반응

뮤지컬 영화 <캣츠>는 사실상 개봉 전부터 흥행 실패가 예견된 작품이었습니다. 첫 조짐은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였습니다. 경악할 만한 수준의 모질을 보여주었거든요. 하지만 제작진은 경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번째 티저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티저에서 경악했던 포인트가 더욱 강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숨길 것도 없어요. 그것은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데 무섭도록 정교한 바로 그 지점입니다. 영화 속의 고양이들은, 아니 사람들은, 아니 고양이들은, 아니 고양이 흉내를 내는 사람들, 아무튼 그것들 말입니다. 마치 사람이 잘못 진화해서 고양이로 변해 간 듯한 그런 기괴함이었지요. 
 

뉴욕에서 <캣츠>가 개봉했을 때 영화 평론가들이 재치 있는 악평 쓰기 대잔치를 벌일 동안 공연 평론가들은 조심스럽게 호평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철퇴를 맞았지요.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트위터에 올라온 “브로드웨이 밖에도 사람 살아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공연 밖의 ‘진짜’ 세상에 신경 좀 쓰라는 질타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의외로 뮤지컬 영화 <캣츠>를 통해서 오랫동안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무대 뮤지컬 <캣츠>와 화해를 했습니다. 이전에는 <캣츠>가 내용이라고는 거의 없이 귀여운 고양이로 화려한 쇼를 구현해서 돈을 버는 상업 뮤지컬의 대표 주자라는 내적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물론 저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며 경악한 관객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할 뿐 아니라, 그런 분들에게 이 영화가 사실은 좋은 영화라고 설득하려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그저, 이 영화를 즐겁게 본 사람이 있다는 것과 안타깝게도 그 소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나치게 원작 시집에 충실한 뮤지컬 영화 <캣츠>에 대한 변명을 두 손 모으고 공손하게 전개해 보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로 성장하는 고양이들 

하얀 아기 고양이 빅토리아가 달빛 아래 춤추는 장면은 뮤지컬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장면입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그리자벨라가 ‘Memory’를 부르는 장면이겠지요. 빅토리아는 그리자벨라에게 손을 내미는 첫 번째 고양이이자 작품 속에서 가장 어린 고양이기도 합니다. 뮤지컬에서 그리자벨라를 처음 만지는 고양이가 빅토리아라면 그리자벨라의 ‘Memory’를 함께 부르는 고양이는 제마이마인데, 영화에서는 이 두 캐릭터를 하나로 합쳤습니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프란체스카 헤이워드가 연기한 영화 속 빅토리아는 처음부터 젤리클 고양이로 나오는 뮤지컬과 달리 사람에게 버림받는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젤리클 고양이들이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 마대 자루 안의 빅토리아를 건드리고 더러운 뒷골목에 버려진 빅토리아가 젤리클 일원이 되기까지의 하룻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노래 ‘Beautiful Ghosts(아름다운 유령들)’는 빅토리아가 그리자벨라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외롭고 슬펐던 나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빅토리아의 인생이 사람의 집에 가기 전에 이미 길 위에서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죠. 빅토리아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젤리클 밤을 겪으면서 길고양이로서 젤리클 무리에 받아들여집니다. 그 과정에서 빅토리아는 무리 바깥에 있으면서 간절하게 무리 안에 다시금 받아들여지고 싶은 그리자벨라를 보게 됩니다. 뮤지컬에서 그리자벨라는 늙고 초라해진 고양이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젤리클 고양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사악한 고양이 맥커비티의 유혹에 빠져 젤리클 무리를 등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 과정을 모두 아는 무리 ‘안’의 고양이들은 그리자벨라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빅토리아는 길 위의 자신의 고단했던 삶과 그리자벨라의 처지에서 공통점을 느끼며 그에게 손을 내밉니다.
 

뮤지컬에서 낯선 세계로 떨어진 빅토리아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가이드를 하는 고양이는 사회자 역할을 하는 멍커스트랩이지만 영화에서 빅토리아에게 호감을 느끼고 곤경에 빠졌을 때 구해 주는 친구가 되는 것은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입니다.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마법사이긴 하지만 아직 마법에 자신이 없는 고양이기도 합니다. 이 두 미숙한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서 빅토리아는 젤리클의 일원이 되고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마법을 익히고 친구가 됩니다. 미스터 미스토펠리스가 맥커비티에게 납치된 듀터로노미를 되찾아 오는 것은 뮤지컬처럼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젤리클 고양이들의 염원과 격려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마법은 기적처럼 완성됩니다. 
 

뮤지컬에서 럼텀터거는 호기심 많은 고양이라고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암고양이들이 넋을 놓고 따라다니는 수고양이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변덕 때문에 많은 고양이들이 럼텀터거를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뮤지컬처럼 암고양이들이 넋을 놓는 것도 아니고 또 암고양이만 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럼텀터커는 가사에 충실한 고양이로 돌아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젤리클 고양이들에게 존경받는 현명한 우두머리 듀터로노미를 <캣츠> 역사 39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배우인 주디 덴치가 연기했습니다. 주디 덴치는 지혜롭고 사려 깊고 자긍심도 강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간식을 떠올리면 군침을 삼키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 나온 김에 더하자면 욕심꾸러기에 말썽쟁이 마법사이기도 한 맥커비티 역시 아무리 근육질에 사악한 성격이라 해도 결국은 고양이더군요. 

 

뮤지컬 <캣츠>를 향해 더욱 커진 기대 

영화 <캣츠>는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없는 뮤지컬 <캣츠>에 빅토리아의 자아 찾기와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성장담을 얹고 그리자벨라가 외부인의 시각에서 다시 내부로 받아들여진 이야기를 빼곡하게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뮤지컬의 핵심에는 고양이에게 이름 붙이기라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하나의 미션이 있을 뿐이거든요. 자신의 이름을 제일 잘 노래한 고양이가 새 묘생을 얻는다는데, ‘아니, 뭐 어쩌라구?’ 하는 생각이 어찌 들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첫 번째 젤리클 송을 부르며 이름의 중요성을 말하는 장면은 고양이들이 엄숙할수록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지만 이 영화는 그 첫 장면부터 말아먹습니다. 진짜로 지나치게 엄숙해서, 이미 털을 보며 경악한 관객들에게 초장부터 얼음물을 촤악 끼얹습니다. 여름이면 좋겠지만 한겨울에 얼음물이라니요. 
 

돌이켜 보면 영화는 성공할 요인보다 실패할 요인이 더 많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영화 <캣츠>가 왜 망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영화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함께 작업한 새로운 곡 ‘Beautiful Ghosts’만큼 멋진 새로운 요소를 가졌지만, 그게 기존의 요소와 잘 버무려지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인종과 계급,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각을 잘 버무린 각색에 저도 모르게 뮤지컬 <캣츠>와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각색을 맡은 작가는 <빌리 엘리어트>를 쓴 리 홀입니다. 이 영화는 새로운 뮤지컬 <캣츠>를 기대하게 합니다. 스크린에 박제되지 않는 무대 공연의 즐거움이랄까요. 이제 곧 40주년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캣츠>가 편견의 벽을 깨고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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