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ODD NOTE] <보이즈 인 더 밴드>, 함께 꾼 꿈이 서로의 심장을 겨눌 때 [No.197]

글 |김영주 공연 칼럼니스트 2020-02-12 4,330

<보이즈 인 더 밴드> 
함께 꾼 꿈이 서로의 심장을 겨눌 때

 

2000년대 초, 영국 록 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리버틴스의 초기 역사는 <헤드윅>의 토미가 열 살 넘게 차이나는 불가해한 존재 대신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또래 소년을 소울메이트로 만났을 때의 평행우주를 보는 것 같다. 토미와 헤드윅이 그랬던 것처럼 밴드의 공동 프런트맨 피트 도허티와 칼 바랏은 서로로 인해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곡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창작 과정과 예술적인 결과물을 공유하는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이 질투심과 승부욕, 소유욕과 주도권 싸움은 단절과 자기 파괴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란 두 소년의 만남

타블로이드가 열광하는 사고를 치는 게 자신들의 의무라고 믿는 영국 록 신의 문제아들 틈에서도 독보적인 도허티의 악명을 생각하면 의외이지만, 그 역시 <헤드윅> 토미와 마찬가지로 군 장교 출신인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주둔지를 따라 계속 이사를 다녀야 했던 탓에 친구가 없었는데, 사실 도허티 같은 캐릭터로는 태어난 동네에서 학교 교육을 모두 마쳤다고 해도 교우 관계에 획기적인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보통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괴짜였고 언젠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줄 만한 특별한 상대를 만날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오만한 외톨이였다.    
 

도허티의 꿈은 그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이루어진다. 누나 에이미의 소개로 그녀의 플랫 메이트이자 대학 동기인 한 살 위 남자를 만나는데 그의 이름은 칼 바랏.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두 소년의 만남은 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영국 록 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게 한다. 
 

안전한 중산층 가정에서 사랑과 보호를 듬뿍 받으면서 자란 도허티와는 정반대로 바랏은 노동자 계층의 아이였고 부모님의 이혼 이후 엄마를 따라 성장기의 일정 시기를 히피 커뮤니티에서 보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다는 고백을 미루어 봤을 때 그곳이 아이가 자라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바랏이 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난 쌍둥이 형제의 빈자리 또한 그의 인생에 깊은 그림자를 남긴다. 하지만 중산층 가정의 지루한 평화를 혐오하던 도허티에게 바랏의 어두운 과거는 마치 신화처럼 매혹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만한 특별한 존재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바랏에게 도허티는 ‘넌 특별한 존재고 우리가 함께한다면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백일몽 같은 소리를 진심으로 속삭였다. 자존감을 한껏 끌어올려 준 데 대한 보답으로 바랏은 도허티에게 기타 치는 법과 범죄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가는 법을 가르쳤다. 함께 곡을 쓰고 노래를 하면서 그들은 사드 후작의 소설 『소돔 120일』에 나온 ‘난봉꾼’에서 따온 이름 ‘리버틴스’로 제 자신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애증으로 얼룩진 영광스러운 패배 

리버틴스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우리는 함께 알비온호를 타고 잃어버린 아르카디아를 찾아서 떠난다’는 것이었다. 21세기에 불쑥 튀어나온 고대 영국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처음부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밴드 스토리가 그렇듯이 미약한 시작에는 매몰찬 거절만이 넘쳐났다. 영국의 저명한 인디 레이블들은 모두 다 한 번 이상 리버틴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는 활로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괴상한 실험을 시작한다. 자신들이 ‘알비온 룸’이라 이름 붙인 작은 아파트에 관객들을 초대한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돈만 내면 두 명의 ‘리버틴’이 사는 아파트에서 열리는 공연을 볼 수 있고, 자유롭게 놀다 나가기 전에 청소만 해주면 된다는 인터넷 공지에 런던의 인디 록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음에 시달리던 인근 주민들은 당연히 그들을 자주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들이 누가 저지른 일인지 범인을 찾자 도허티와 바랏이 서로를 지목한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그 순간은 ‘진짜’였고 열기와 체취, 담배와 대마초 연기가 엉망으로 뒤섞인 좁은 공간에서 그 ‘진짜’를 공유한 젊은이들은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밴드의 지지자가 되었다. 빠른 속도로 유명세를 얻으면서도 리버틴스는 록 스타와 팬 사이에 존재하는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히 부정했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밴드의 좋았던 시절은 이때까지다. 
 

전설적인 인디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와 계약한 기점부터 두 소울메이트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최악의 기준을 높여갔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도허티가 심각한 마약 중독에 빠지면서 밴드가 진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작업 과정-작곡과 레코딩, 투어-에 모두 깽판을 놓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록 스타가 된 후에도 기존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려던 도허티와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의무를 어느 정도는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 바랏의 갈등이 중심에 있었다. 둘 다 나름의 명분이 있었고, 때문에 싸움은 결코 끝이 나지 않았다. 번갈아 가며 서로를 엿 먹이던 두 사람이 두 번째 앨범을 레코딩하기 위해서는 녹음실에 경호원이 대기해야 했다. 아주 사소한 충돌이어도 금방 유혈 난투극으로 번지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떼어놓을 안전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형제나 연인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영혼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대만이 심장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칼을 찔러 넣고 비틀 수 있는 법이다. 리버틴스의 두 번째 앨범에는 그들이 서로로 인해 느낀 고통과 토해 놓은 신음이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마치 알비온 룸에서 벌이는 게릴라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진짜’였다. 유명한 앨범 재킷조차 그랬다. 도허티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바랏의 아파트에 무단 침입해서 집을 때려부수고 물건을 훔친 죄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그가 출소한 날 두 사람이 화해한 기념으로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우연히 찍힌 사진이 그대로 앨범 재킷으로 쓰였다. 당연하게도 그 화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리버틴스는 출발부터 사람들에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특별한 통찰력이나 예지력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시도했던 방식으로는 긴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리버틴스의 영향을 받아 시작했지만 최종적으로 리버틴스와 비교도 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밴드들-예를 들자면 악틱 몽키스-과 리버틴스의 이름이 주는 울림은 완전히 다르다. 때로는 어리석은 실수로 가득한 처절한 패배가 어느 영광스러운 성공보다도 오랫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극히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닌, 이 세계의 반짝이는 아이러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