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CULTURE IINTERVIEW] <화전가> 배삼식 작가, 결코 지울 수 없는 봄날의 기억 [No.198]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20-03-30 4,465

<화전가> 배삼식 작가
결코 지울 수 없는 봄날의 기억


배삼식 작가는 특정 시대, 특정 인물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근현대사의 풍경을 더듬어보는 작업을 해왔다. 최근작 <1945>에서는 1945년 해방 직후 만주에서 귀국 열차를 기다리는 조선인에 주목했다. 이번에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4월 경북 내륙 지역의 반촌 집안의 여인들을 들여다본다. 대립과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 여인들의 하룻밤 수다와 화전놀이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위대한 저항
<먼 데서 오는 여자>, <1945> 등 최근작을 보면 근현대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다. <화전가> 역시 1950년 전쟁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   故 김동현 형과 공동 창작 작업을 했다. 근현대사 시리즈로 <착한사람 조양구>를 올렸는데 월남전 실종됐던 남자의 이야기였다. 뿌리를 따져보면 거기가 출발점인 것 같다. ‘지금, 여기’를 연극의 모토라고 이야기하는데 가까운 과거의 경험과 삶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지금, 여기를 이해하기 힘들고 미래의 전망을 가져오기도 힘들다. 그런데 나부터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더듬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작인 <1945>에서는 해방 직후인 1945년을 한국인의 영점이라고 말했다. <화전가>의 배경인 1950년은 어떤 시기로 보았나.   우리 사회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거기 맞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혐오해 왔다. 민족주의든 사회주의든 중대한 사회적인 의미들이 넘쳐나는 의미 과잉의 시대였다. 역사 정치적인 의미 차원에서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학살하고 전쟁까지 벌였다. 

<화전가>의 세계는 그런 혼란과 대립의 세계와는 다른 정서를 준다.   대단히 무의미하고 사소한 삶의 순간들을 무대 위에 담아놓았다. 중대한 사회적 의미들이 충돌하면서 전쟁까지 이어지는 시기였지만 작품 속의 여인들은 커피 마시고 초콜릿이나 설탕을 나눠 먹는다. 당시의 중심 가치로는 의미 없는 일들이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우리 삶을 지탱하고 보듬고 이어가는 힘을 주는 일들이다. 중대한 의미가 억압한 의미랄까. 현재도 마찬가지다. 각자에게 중요한 의미에 부합하지 않은 의미는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한다. 한편으로 연극을 비롯한 예술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무의미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시간 속에 붙들어 놓는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경북 내륙 지역의 반촌, 그것도 반촌의 여인들에 집중했다.   예전 경북 내륙, 대구뿐만 아니라 안동, 영주, 봉화 이쪽의 삶이 오늘날의 인식과는 결코 달랐다. 오늘날로 치면 야당,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귀족 세력들의 근거지였다. 실제 구한말에는 이 지역의 안동 유씨, 안동 김씨 등 세력 있는 집안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키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한일합방이 되자 제일 먼저 가산 팔아서 서간도로 망명해 교육 기관을 세우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이쪽 분들이 많았다. 당시 전국적으로 의식 있고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는 중도좌파를 포함해 사회주의를 더 희망적인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 작품의 모델이 되는 안동 가회마을은 안동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 시대에 이곳 남자들은 죽거나 실종 상태고, 해방 공간에서는 좌익으로 몰려 집 안에서 살 수가 없었다. 일부러 여인들만 나오는 상황을 조성했다기보다는 이러한 내력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당시 경북 내륙 지방의 사투리를 섬세하게 고증했다.   아내의 할머님이 봉화분이셨다. 우리가 아는 경상도 사투리처럼 투박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 지역 말이 대단히 단정하고 온유하고 물처럼 흐른다. 경북 내륙 지역 말 자체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있다. 표준어로 해도 의미 전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말 자체가 지닌 울림을 살리고 싶었다. 방언이나 구술 자료를 찾아서 그 목소리를 재현하려 했다. 의미 전달 기능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겠지만 말투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이 작품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봤다. 작가의 설정이나 구상보다도 당시 여인들의 한밤의 수다를 그대로 옮겨 놓는 게 이 작품에서는 더 중요했다.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상하지 않다. 일반적인 극의 구조와는 다르다.  중간중간 분절은 있지만 24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고전적인 희곡의 규칙을 잘 따르는 작품이지만 갈등의 축 자체가 다르다. 젊었을 때 여성들이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신기했다. 저렇게 맥락도 없는 이야기를 목적 없이 이리 뛰고 저리 건너뛰면서 어떻게 저렇게 재밌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수다를 떠는 행위 자체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품 속 여인들의 이야기에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나오지만 터뜨리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밀어 넣고 돌려 말한다.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갈등의 축이다. 이 여인들이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모일지, 이 순간이 못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게 입고 맛있는 거 먹고 서로에게 선물하면서 떠나보낸다. 이것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스스로는 넓게 보면 극적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념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화전놀이를 다루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영화 <시민 케인>을 보면 명예와 권력을 쫓던 케인이 죽을 때 ‘로즈버드’라고 하며 죽는다. 그가 어렸을 때 타던 썰매 이름이다. 이 영화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뜬금없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전놀이를 겪고 난 뒤에는 아무리 세계가 파괴되고 암울해지더라도 딸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은 한순간을 갖게 된다. 1장에서 김씨(어머니)가 시집가기 전의 봄날을 떠올리듯이, 그 순간의 기억을 딸들이나 며느리에게도 만들어준다. 이보다 더 위대한 저항이 있겠는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세계
인물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인물 창조는 어떻게 하는가. 특히 그 집안일을 도와주는 독골할매와 홍다리댁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작품 구상을 위해 안동 가회마을에 갔다. 그곳의 가옥 구조를 보면 건물 앞쪽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이 머무는 행랑채가 있거나 근처에 작은 집이 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머슴으로 사시는 분들이 있곤 했다. 계층이 완전히 다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돈독한 관계를 맺고 집안사람처럼 함께 생활했다. 홍다리댁(부모가 누군지 모르고 독골할매가 딸처럼 거두어 키운 인물, 몇 번 결혼을 했으나 안착하지 못하고 잠시 독골할매 댁에 들른다)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존재다.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삶에 밀착된 존재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작품 속에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된다. 지금은 흔치 않은 옛날 음식이 주는 정취가 이 작품을 더욱 애틋하게 한다.  욕심 같아서는 무대 위에다 실제 마시고 쩝쩝거리고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진짜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여성들의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관념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즐거움의 세계. 일 년 중 제일 좋은 신록이 돋아나고,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화전놀이를 간다. 예전으로 치자면 고된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 한 번 허락되는 축제다. 딸과 며느리가 봄나들이 옷을 화사하게 갈아입고 나오는 순간, 무대가 꽃밭이 됐으면 했다. 

<화전가> 역시 안동 내륙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화전놀이 소재의 내방가사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최근 논픽션이나 수기, 다큐멘터리 등을 극작에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나 스스로가 작가라기보다는 편집자, 또는 기술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단순하게는 내가 그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오기 전에 지나간 일들을 구현하는 데 혼자 머리 굴려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당연히 자료를 찾게 되고 그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을 찾게 된다. 나 혼자 자가발전 해봐야 나올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의식적으로 이런 극작술을 해야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이해를 넘어 마음이 움직여야 쓰는 건데, 마주치는 순간이 구체적이고 풍부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자료를 많이 찾으려고 한다. 

인물이나 소재의 구체성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화전가>에는 종소리라는 문학적인 은유와 상징이, 작품 전반에 깊게 깔려 있다.   원래는 종소리가 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작품을 구상할 무렵 양양 낙산사에 갔다. 예전 낙산사에 화재가 나지 않았나. 그때 동종이 녹아버렸다. 나무뿌리 뽑아놓은 것처럼 시커멓게 탄 동종이 유리 안에 전시되어 있더라. 거기서 모티프를 얻어 원래는 전쟁의 한복판을 놋그릇들이 통과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 흔적이 종소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 쓰지 않은 특별히 관심 갖는 시대와 지역이 있나. 이후 어떤 작품을 계획 중인가?   당산나무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마을이라고 선언하듯이 마을 어귀에 심어놓은 나무. 큰 나무들을 보러 다니고 있다. 끔찍한 이야기이긴 한데 서산 해이읍성에 가면 교수목이라는 나무가 있다. 나무에 깊이 팬 자국이 남아 있는데 천주교 박해 때 목매달아 죽인 흔적이다. 6·25전쟁 때는 정자나무에서 재판을 벌이고, 총살시키기도 했다. 패이고 어디 깊은 곳엔 총알이 박혀 있기도 한 거대한 나무들. 나무의 생이 길지 않나, 모든 것을 지켜봤고. 평야 지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신령스런 나무를 통해 학살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너무 날것 그대로는 아니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의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해당 공연은 취소되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