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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UST SEE] <펀홈> 무대 디자인 미리 보기,Come to the Fum Home! [No.202]

글 |안세영 2020-07-28 4,035

<펀홈> 무대 디자인 미리 보기 

Come to the Fum Home!

 

<펀홈>의 한국 공연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에서 대본과 음악만 가져와 새로운 무대 미학을 보여준다. 한국 공연의 무대와 소품 디자인은 박소영 연출가와 <섬:1933~2019>, <오만과 편견>, <차미> 등 여러 작품을 함께해 온 최영은 무대디자이너가 맡았다. <씨왓아이워너씨>의 삼각형 무대,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의 마당극형 무대, <베르나르다 알바>의 런웨이형 무대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무대와 객석을 탐색해 왔던 최영은 디자이너는 <펀홈>에서도 색다른 구조의 무대를 선보인다. 

 

<펀홈> 브로드웨이 초연 무대  사진

 

양면으로 열린 무대

브로드웨이의 원형 극장인 서클 인 더 스퀘어에서 초연한 <펀홈>은 무대를 객석으로 둘러싸고, 바닥 리프트로 세트를 전환하여 눈길을 끌었다. 한국 공연에서도 독특한 구조의 무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위에 객석을 마련해, 무대를 사이에 두고 양면에서 객석이 마주 보게 만든 것이다. 최영은 무대디자이너는 “어떻게 하면 한국 공연에서도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양면 객석을 사용하면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반대편 관객 모습까지도 하나의 배경으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대석 사이에도 배우의 등퇴장로를 마련하여 관객과 한층 가깝게 호흡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무대는 양면 객석의 시선을 모두 고려해 디자인했다. 등받이 없는 카우치와 스툴, 낮은 사이드 테이블 같은 가구를 선택해 어느 쪽에서 바라봐도 배우의 모습이 잘 보이게 배치했다. 무대 바닥에는 턴테이블을 설치하여 그 위에 놓인 세트를 회전시키며 다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턴테이블은 동성애자인 아버지 브루스와 딸 앨리슨의 삶이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박물관 같은 집

무대는 전체적으로 주인공 앨리슨이 어린 시절 펜실베이니아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형상화한다. 이 집은 앨리슨의 아버지 브루스가 열성적으로 수집한 고풍스런 가구와 장식품으로 꾸며진다. 극 중에 앨리슨의 대사로 ‘아빠가 정말로 사랑한 것은 그 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최영은 디자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집은 브루스라는 사람 그 자체로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도록 디자인하는 동시에 앨리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풍경을 생생히 재현할 예정”이다. 극 중 앨리슨이 ‘난 실제 물건이 있어야 그릴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난 기억이란 걸 믿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한 것처럼, 실제 앨리슨 벡델이 그린 원작 그래픽 노블 『펀홈』과 후속작 『당신 엄마 맞아?』를 참고해 집의 구석구석을 디자인했다고. 카펫, 샹들리에, 금박 몰딩,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서재의 거대한 책장 등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세트다.

대본에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수집품이 많다 보니 비슷한 것을 구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거실로 헤플화이트 의자를 옮기길 원해’라는 가사 때문에 18세기풍 헤플화이트 의자를 찾아 헤맸고, 벽지를 가리켜 ‘윌리엄 모리스의 진품’이라고 말하는 대사에 맞게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수많은 벽지 패턴을 조사했다. 원작 만화가 검정색과 푸른색으로만 그려진 점에 착안해, 벽지의 색감 또한 푸른빛으로 설정했다. 대학생 앨리슨의 기숙사 책상에서는 브루스가 엄선하여 보낸 제임스 조이스와 콜레트의 책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하나 특별히 공들여 제작한 세트는 바로 벡델 집안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의 관. 진짜 관처럼 완벽한 색감과 광택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샌딩 작업을 거쳐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펀홈> 한국 초연 무대 스케치

 

기억 속 그곳으로

<펀홈>은 주인공 앨리슨의 기억을 쫓아 과거와 현재의 여러 공간을 오가며 진행된다. 각각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는 여러 대도구가 동원된다. 예컨대 앨리슨의 대학생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기숙사용 침대와 책상이 등장하고, 그가 동성애자 모임이 열린 방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장면에서는 문이 등장하는 식이다. 이 대도구에는 모두 바퀴가 달려 있어 배우들이 직접 움직이며 장면을 전환하는데, 다섯 곳의 등퇴장로를 이용해 배우와 대도구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다양하게 변하는 시공간 가운데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현재 시점의 앨리슨 작업실이다. 현재 나이 43세로 등장하는 앨리슨은 만화를 그리며 자신의 기억 속 순간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가 ‘캡션’을 외치고 내레이션을 시작하면서 공간이 전환된다. 그는 무대 한구석에 머물며 기억 속에 되살아난 자신의 과거를 지켜보기도 한다. 이때의 앨리슨에게 적당한 공간을 부여하는 일은 무대디자이너에게 주어진 큰 숙제였다. “양면 객석 구조로 인해 감수해야 할 제약이 있는데, 무대에 43세 앨리슨을 위한 고정 공간까지 마련하면 연기 공간이 너무 줄어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앨리슨이 만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드로잉 테이블에 바퀴를 달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드로잉 테이블이 실존 인물인 앨리슨 벡델의 드로잉 테이블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실제 작업실을 묘사한 여러 그림을 참고해 디테일을 살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2호 202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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