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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No.203]

글 |오한솔 뉴욕 통신원 2020-08-13 4,354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추모를 넘어 변화의 시작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관이 무려 8분 46초 동안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측 발표와는 달리 비무장 상태의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는데도 경찰이 무릎으로 그의 목을 누르고 있는 영상이 공개되자 분개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미니애폴리스를 넘어 뉴욕, 워싱턴, LA 등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직후 벌어진 시위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발전했다. 마틴 루터 킹의 죽음 당시 뉴욕 시장 존 린지를 보좌했던 한 인사가 킹 목사 사망 당시에도 이 정도 분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고 회고했을 정도이니 이번 사태가 미국 사회, 특히 흑인 커뮤니티에 얼마나 큰 분노와 파장을 불러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뉴욕은 수만 명의 시민들이 가해자에 대한 적법한 처벌과 경찰 개혁,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 초반에 몇몇 지역에서 혼란을 틈타 약탈 및 폭력 사태로 비화되는 일이 생기자 뉴욕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 만에 처음으로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행진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은 이번 사건 훨씬 이전인 2013년에 시작되어 백인 우월주의를 타파하고, 흑인 공동체에 가해지는 국가와 자경단의 폭력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2020년 상반기에만도 아머드 아버리(2월 23일 사망), 브리오나 테일러(3월 13일 사망) 등 흑인들이 연이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되었는데도 이에 대한 사법부의 미온적인 대처는 계속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 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런 인종차별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번 시위는 단지 한 시민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분노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구조화된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공연계에서 퍼져 나온 각성의 목소리

플로이드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크고 작은 공연 예술 단체들 역시 성명을 통해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주의적 행태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선언했다. 하지만 공연 예술계 일각에서는 단순히 이번 운동에 대해 유대를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의 일부인 공연 예술계가 그간 제도화된 차별에 어떤 식으로 공모, 또는 동조해 왔는지 돌아보고, 공연 예술계 내의 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월 8일, 유색인 공연 예술계 종사자들은 ‘Dear White American Theate(백인 연극계에게)’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처음 세 명의 예술가의 대화에서 출발한 성명서는 이내 퓰리처 수상 작가인 수잔-로리 팍스와 린 노티지, <해밀턴>을 만든 린 마뉴엘 미란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산드라 오 등을 포함, 3백여 명이 서명한 공동 선언으로 발전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미국의 공연 예술계를 ‘백인’들의 연극계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공연 예술계가 현재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며, 모두를 포용하고 대변하는 ‘미국’ 공연계이기보다는 백인들 위주로 짜여진 ‘백인’ 공연 예술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 성명은 유색인 예술가와 스태프 들이 극장에서 일하며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차별적 관행과 관련자들의 언행을 지적한다.
 

이들에 따르면 극장에서는 백인 작가가 쓴 작품을 백인 연출가가, 백인 배우들과 백인 드라마투르그를 데리고 백인 관객을 상대로 공연하며, 이따금 유색인 작가들의 작품을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색인 작가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극장의 백인 운영진은 대개 해당 작품이 백인 관객의 눈높이와 취향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작업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은 충분히 하지 않으면서 유색인 작가의 작품이 ‘별로라서’ 공연이 잘 안됐다고 결론을 내리고, 흥행 실패의 책임을 개별 유색인 예술가들에게로 떠넘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인 지도부가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공연 예술 생태계에서 유색인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이들의 예술적 발전과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성 시스템에 대한 침묵과 순종의 대가 혹은 이들을 길들이기 위해 조건부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유색인 작가나 스태프들은 흔히 극장의 ‘공정성, 다양성과 포용성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동원된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선언문에 명시된 것과 같은 공정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면,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방관이었다고 고발한다. 다시 말해 극장들이 유색인 작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또는 유색인 배우를 고용해 무대 위에 시각적인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 효과에 불과할 뿐 극장의 지도부, 행정, 재정 운영 등 무대 바깥의 더 큰 구조, 즉 업계 전반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적 관행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성명은 공연 예술계가 바깥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영속화하는 데 은밀하게 기여해 왔음을 폭로한다.  
 

뉴욕 매거진의 비평가 헬렌 쇼는 이러한 선언이 시위 자체에 대한 반응이기보다는 시위에 연대를 표한 극장들의 태도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고 평한다. 극장들이 앞다투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감동적인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기회의 확대와 다양성 증진을 약속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유색인 예술가와 스태프 들은 극장으로부터 이에 훨씬 못 미치는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뉴욕의 링컨 센터를 살펴보자. 근 몇 년간, 링컨 센터는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린 노티지, 재키 드루어리 시블스, 도미닉 모리소 등 흑인 작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왔다. 겉으로 보면 극장이 다양한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점은 극장 운영진이 전적으로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를 어떻게 지원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유색인 예술가와 행정가의 목소리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또 설사 유색인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규모에서 불이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링컨 센터가 운영하는 브로드웨이 극장인 비비언 보몬트 시어터(Vivian Beaumont)에서 마지막으로 흑인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 때가 1987년이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3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대극장에서 흑인 작가의 작품을 한 번도 무대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비영리 극장의 이사회,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행정가, 공연장을 꾸준히 찾는 중산층 이상의 관객에 이르기까지, 백인들로 이루어진 촘촘한 망 속에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백인이 아닌 다양한 스태프와 예술가, 작품이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런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극장들은 운영과 프로그래밍, 관객 개발 등에 유색인 스태프와 예술가의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링컨 센터는 그간 다양성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 나갈지 구체적인 방안을 새로 발표했다. 링컨 센터는 인종차별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지고 운영된 극장의 역사(링컨 센터는 1962년 흑인과 라틴계 주민 7천여 가구가 살던 주거지를 허문 자리에 세워졌다)를 인정하며 앞으로 뉴욕시의 다양성을 더욱 적극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또한 불평등을 지속 가능하게 했던 내부 구조를 혁신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조직 내 인종차별주의를 건설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극장, 문을 열다: #로비를열어주세요 

공연이 전부 중단된 데 이어 다양성 부족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공연계는 지금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극장들이 단시간 안에 변화된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극장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금 이 역사적인 변화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거기에 동참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6월 3일, 익명의 연극인들이 @OpenYourLobby라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해 극장들이 시위대를 위해 로비를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뉴욕 시어터 워크숍이 시위대에게 극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에 이어 다른 극장들의 참여와 연대를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이 계정을 개설한 익명의 연극인들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시위 참여 경험을 통해서 이번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비필수 사업장이 모두 폐쇄되고 약탈을 우려한 상점들이 건물 전면을 판자로 막아버린 뉴욕의 거리에서 화장실이나 몸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시위대를 보면서 이들은 자연스레 극장을 떠올렸다고 한다. 극장들은 대개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데다가 큰 화장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SNS 계정 운영진은 시위대가 경찰의 추격이나 진압으로부터 몸을 피해야 하는 경우 극장이 안전한 도피처를 제공할 것을 요청하며, 극장이 시위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안내한다. 이들에 따르면 경찰이 영장 또는 별도의 허가 없이 이들 공간에 진입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경찰이 극장 진입을 시도하면 백인 그리고 비흑인 유색인 스태프가 극장 입구에 서서 경찰을 저지하고 영장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야 한다. 또 만일의 경우 시위대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극장 측이 별도의 비상 출입구도 준비해 둘 것을 당부한다. 이 밖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시위대가 이용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이 한정된 점을 고려해 극장이 시위대에게 쉼터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며, 극장 로비를 개방해 쉴 곳과 마실 것, 간식을 제공할 것, 화장실과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할 것,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할 것, 손 세정제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할 것 등의 가이드라인도 명시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오프브로드웨이와 오프오프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중심으로 극장들이 로비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계정이 만들어지고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지 나흘 만에, 뉴욕을 넘어 전국에서 64개 극장이 운동 참여를 선언했다. 뉴욕에서는 퍼블릭 시어터, 플레이라이츠 호라이즌스, 시그니처 시어터, 애틀랜틱 시어터 컴퍼니 등이 7월까지도 계속해서 시위대를 위해 극장을 개방해 왔다. 라운드어바웃 시어터는 건물을 개방하지 못하는 대신 퍼블릭 시어터에 생수와 기타 물품을 보내는 방식으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한편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OpenYourLobby의 운영진들은 계정을 통해 극장의 위치와 개방 시간이 표시된 지도를 공유하며 시위대와 극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7월 6일자로 뉴욕이 3단계 경제 정상화에 들어가면서 극장 외에 이용 가능한 편의 시설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자 @OpenYourLobby는 이제 그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며 극장 로비 개방 운동을 이쯤에서 멈추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시작한 해시태그 캠페인은 공권력에 맞서 시민들을 위해 공간을 개방했다는 점에서 극장이 섬기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공공성’과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서 극장의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이 운동은 약 한 달 정도 짧게 이어졌지만, 공연이 아니더라도 대안적인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때, 극장이 우리 모두를 위해 거기에 있어줬다고 말이다. 



제1회 안토니오 시상식: 흑인 예술가들의 성취를 기념하다

시위가 한창이던 6월 중순, 유튜브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제1회 안토니오 시상식이다. 이 행사는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드루 셰이드(Drew Shade)와 다리어스 반스(Darius Barnes)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흑인 예술가들의 작업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상을 만들면 어떨까?” 두 사람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은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된 상황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새로운 상의 이름은 ‘안토니오 어워드’다. 토니상이 아메리칸 시어터의 공동 창립자인 안투아네트 토니 페리의 애칭을 따 ‘토니’라 불린 데서 착안해 ‘안투아네트’를 변형한 ‘안토니오’라 부르기로 했다. 이번 시위가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기획 중이던 이 시상식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시의성과 역사적 의미도 갖게 됐다. 
 

2019-2020년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유색인 예술가들의 활약을 분석한 공연 전문 매체 시어터 마니아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브로드웨이 시즌 공연과 공연할 예정이었던 37개 작품 가운데 오직 네 편만이 유색인 작가의 작품이었으며, 유색인 배우가 단 한 명도 고용되지 않은 작품은 여덟 편이었다. 이처럼 유색인 창작진과 배우에게 돌아오는 기회가 한정적인 가운데, 안토니오 시상식은 공연계 곳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흑인 예술가들을 조명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느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배우상 부문에서 성별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처럼 성별을 명시하는 대신 카테고리를 주연상, 조연상으로 정해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들이 경쟁할 수 있게 했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공연계의 다양성 관련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거나 간과되어 왔던, 백스테이지에서의 흑인 예술가들의 기여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무대 디자인 부문이다. 이번 ‘안토니오 시상식’의 최우수 무대디자인상은 단독 후보였던 로렌스 E. 모텐이 받았다. 내로라하는 경쟁자가 많았던 여타 부문과 달리, 그는 홀로 후보자 명단에 올랐을 뿐 아니라, 사실 그의 무대 디자인은 작품이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자격 조건에 미달된다. 다른 시상식이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상이 주어진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그간 무대 디자인 분야에서 흑인 예술가들의 활동이 얼마나 제한돼 있었는가를 여실히 말해 줄 뿐 아니라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의 기회의 분배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6월 19일 노예해방기념일,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안토니오 시상식’의 막이 올랐다. 흑인들의 애국가로도 알려져 있는 ‘Lift Every Voice and Sing’이라는 다소 무게감 있는 곡으로 막을 열기는 했지만, 시상식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척 흥겨웠다. 이날 <자살을 생각한 흑인 소녀들을 위하여/무지개가 찬란할 때>는 재공연상, 주연상 포함 5개 부문 수상으로 최다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던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은 최우수 브로드웨이 뮤지컬 및 브로드웨이 뮤지컬 최우수 주연상(아드리엔 워너)을 차지했다. 마이클 R 잭슨은 뮤지컬 <이상한 밧줄 고리>로 퓰리처상, 드라마데스크상에 이어 세 번째 극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특별 무대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흑인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오마주를 표하며 현재의 예술가들이 이전 세대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이어가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정의 실현을 통해 차별을 철폐할 것을 외친다면, 이날의 시상식은 흑인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 공연 예술계에서 그들의 존재와 기여를 재확인하고 빛냄으로써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 극장에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어떤 모습으로 공연계가 바뀌어 있을지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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