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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속 LGBT, 성 소수자가 뮤지컬의 주인공일 때 [No.203]

글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2020-08-31 6,853

뮤지컬 속 LGBT

<베어 더 뮤지컬>, <렌트>, <제이미>, <펀홈>, <킹키부츠>. 8월에 공연되는 이들 뮤지컬의 공통점은? 바로 LGBT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어느덧 흥행의 열쇠로 회자되는 LGBT. 이들은 어떤 역사를 거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일까? 과연 이들은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무대 위 그들의 자리를 점검해 보았다. 

 

성 소수자가 뮤지컬의 주인공일 때 

 

한국 공연계는 겉으로만 보면 성 소수자에게 활짝 열린 시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서 성 소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성공한 케이스는 ‘남의 일’일 때다. ‘퀴어 프랜들리’한 작품들이 트렌드를 훌쩍 넘어서 무대 공연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남의 일일 때

20년 전 국내에 초연된 <렌트>에는 드래그 퀸 엔젤, 그와 사랑에 빠진 콜린, 남자친구를 차고 조앤과 연애 중인 양성애자 모린 등 파격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 작품에 돌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불치병에 걸려 내일을 알 수 없는 청춘들의 폭주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내세운 <헤드윅>도 초연 당시 모두의 예상을 깨고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 봐도 과격한 <록키 호러 쇼>는 관객들이 다 함께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운 작품으로 여겨진다. 드래그 퀸이 주인공인 <킹키부츠>는 물론이거니와, 가톨릭 사립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남자 고등학생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베어 더 뮤지컬>, 게이 커플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을 기반으로 한 <라카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에 얽힌 두 남자의 애증 어린 관계를 다룬 <쓰릴 미>도 꾸준히 인기다.
 

이는 비단 뮤지컬뿐 아니라 남미를 배경으로 혁명주의자와 드래그 퀸이 감옥에서 동료로 만난 상황을 그린 <거미 여인의 키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프랑스인과 중국인 가수의 사랑을 그린 , 동성애가 정신질환처럼 여겨졌던 과거와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 현대라는 각기 다른 시대 게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프라이드>도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움츠러든 상황 속에서 드래그 퀸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제이미>와 브로드웨이 최초로 여성 성 소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토니상 작품상을 받은 <펀홈>이 초연을 올렸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이 몇 년째 차별금지법을 입법조차 못한 나라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여성보다 더 여성다울 것

하지만 게이 문화가 뮤지컬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한국에서 여전히 성 소수자는 ‘관망 대상’에 머문다. 영화가 성 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인 편견이나 정서적인 고통을 탐구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는 동안에도 공연 장르는 게이를 낯선 소재로서 소비하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고 ‘남의 나라’에서 사는 외국인이어야 비로소 마음 편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라이선스 작품에서 소비되는 게이는 ‘여성보다 더 여성다움’을 특징으로 내세우며 그 여성다움은 의심할 여지없이 ‘아름다움’으로 정의된다. <렌트>의 드래그 퀸인 엔젤이나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헤드윅은 늘 진한 화장과 짧은 드레스 차림을 한 모습이 화제가 되어 왔다. <킹키부츠>의 드래그 퀸 코러스인 엔젤 또한 그러하다. 이들은 공연 내내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찬사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드래그 퀸이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법도 하지만 화려한 외양만 홍보하는 식이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게이 역할 데이의 외형은 여전히 한국에서 ‘게이물’의 주인공을 형상화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다. 덕분에 게이는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존재로 각인되어 무대 위의 게이는 여성보다 ‘더’ 아름다울 것을 강요받는다. 여성을 향한 아름다움에 대한 강요가 그들에게로 고스란히 투영되는 식이다. 한쪽에서는 코르셋을 벗기 위해 전력투구 중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더 끔찍한 코르셋을 만들어 입히는 양상이다. 가톨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베어 더 뮤지컬>의 경우는 십 대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런 양상에서 벗어나지만 등장하는 여학생들을 ‘창녀’ 아니면 ‘게이의 편’으로 이분화해 버린다. 나디아는 1957년에 개막했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갱단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톰보이 여성 ‘애니바디스’를 연상케 한다. 그가 하는 대사를 생각하면 동성애자인 제이슨을 이해하며 학교 안의 권력 싸움에 염증을 느끼는 폭넓은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초등학생처럼 반바지를 입고 제이슨보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인물로 그려진다. 

 

남의 일이 아닐 때

반면 한국에서 창작된 ‘게이 소재’의 작품들은 실제 동성애자였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더라도,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은유적으로만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동성애자였거나 양성애자였던 인물들의 사랑도 뮤지컬 속에서는 ‘우정’으로 포장된다. <니진스키>의 디아길레프와 니진스키의 연인 관계, <랭보>의 랭보와 베를렌의 연인 관계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명한 내용이지만, 뮤지컬에서 이들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에서 그친다. 이들의 관계에 ‘사랑’을 넣는 것은 관객 몫이다. 무대 위에서는 분명히 성적 긴장감이 흐르지만 거기에서 동성 간의 사랑을 읽는 것은 관객에게 달렸다. 여기에 BL 문화가 슬쩍 끼어든다. 1990년대부터 마이너한 붐을 일으켰던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팬픽이 일본에서 유입된 BL과 만나면서 헤테로 남성과 여성의 연애관을 남성들에게 투영한 BL물이 인터넷 소설과 만화 시장을 통해 메이저급으로 성장한다. 뮤지컬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끼워 넣어 이를 ‘브로맨스’로 포장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관객 다수가 젊은 여성이기에 그들이 남성 배우를 좋아한다는 안이한 판단과 더불어, 여성들이 동성인 여성을 질투하기 때문에 BL물을 본다고 일차원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규모가 커진 BL 시장은 그 내부로부터 탈BL 운동과 BL물이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수직적 권력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사실 BL물이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수직적 권력 관계의 타자 역할에서 빠져나와 ‘그들’의 리그를 맘 편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향’이라는 단어 자체를 폄하의 단어로 사용하지만 사실상 여성들이 여성의 손으로 일구어낸 거대한 이 시장의 존재 가치가 단지 ‘브로맨스’라는 장치를 통해 남성 배우들을 더 많이 무대에 올려놓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기에는 그 기저에 너무 많은 결이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거의 모든 작품들은 남성 동성애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최근 한국 무대에는 ‘무성애자’와 ‘레즈비언’들이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브로드웨이가 성 소수자에게 열려 있는 곳이며, 그들이 거대한 하나의 기둥이라 해도 그들 뮤지컬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은 남성 성 소수자들이다. 여성 성 소수자가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한 뮤지컬이 이번에 한국에서 개막한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작 <펀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브르드웨이는 사실 게이 친화적이지 성 소수자 전부에게 친화적인 시장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환기해 준다. 이런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 한국의 뮤지컬계는 현재 넘어야 할 산들이 높되, 관객들의 요구도 높다.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할 때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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