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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캣츠>, 뮤지컬이 된 시집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 [No.204]

글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S&CO 2020-09-21 4,802

<캣츠> 40년의 역사

1981년 5월 11일. 이날부터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를 지키고 있는 <캣츠>의 역사가 시작됐다. 독특한 컨셉으로 불안하게 출발한 이 작품이 어떻게 굳건한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40주년 기념 공연은 아날로그 무대의 가치가 소중해진 지금 또 어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지, <캣츠>가 부린 마법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뮤지컬이 된 시집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

이제 때가 되었다.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속 고양이도 사람도 아닌 듯했던 ‘캣츠’(영화를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더 많지만 얼마나 망측했는지는 안 본 사람도 다 안다는 그 고양이들)는 다 잊고 무대 위의 살아 있는 고양이들을 영접할 때다. 처음 뮤지컬 <캣츠>를 봤을 때가 떠오른다. 오리지널 안무가인 질리언 린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단 뉴 런던 시어터의 어두운 객석에서, 털이 부숭부숭한 꼬랑지를 휘휘 돌리는 사람만 한 고양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그 이후로도 운 좋게도 몇 번이나 더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고 심지어 1998년에 VHS와 DVD로 출시된 아델피 극장판을 여러 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솔직히 고백하건대, 누군가 <캣츠>의 줄거리를 물어오면 잠시, 아니 꽤 오래 고민에 빠지곤 했다. 분명히 여러 번 관람한 공연인데 볼 때마다 순서가 기억과 다를 뿐만 아니라 처음 본 듯한 장면과 맞닥뜨리는 것은 둘째치고 이 뮤지컬에 소위 ‘플롯’이라는 게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다. 줄거리를 나열하다 보면 가끔은 바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짧게 요약하면 ‘일 년에 한 번 젤리클 달이 뜰 때 젤리클 고양이들이 모여 젤리클 볼 축제를 연다. 이때 한 마리 고양이를 선택해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데, 거리를 떠돌던 버림받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뽑혀서 타이어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말해 버리면 2막에 걸쳐서 등장하는 그 수많은 고양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하여, 그때그때의 감정 상태에 따라 <캣츠>의 줄거리는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내용에 관한 의문은 이 작품에 바탕이 된 시인 T.S. 엘리엇의 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을 읽어도 속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시보다는 에드워드 고리가 그린 삽화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렀기 때문일까. 이 사람이 제1차 세계대전의 황폐함을 담은 시집 『황무지』를 쓴 그 시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은 80년 전에 발표된 고양이 집사의 주접글의 점잖은 버전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모든 시 속에서 고양이들이 얼마나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고양이의 이름이 지닌 특징을 일일이 나열하지만 사실상 고양이들은 시인도 알았듯이 때로는 아무리 불러도 수염이나 귀, 꼬리만 탁탁 칠 뿐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존재들이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뮤지컬 <캣츠>에 품었던 대부분의 의문은 톰 후퍼 감독의 극장판 영화 <캣츠>를 통해 풀렸다. 극장판 실사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은 <빌리 엘리엇>의 작가 리 홀은 무대 뮤지컬에는 없었던 빅토리아와 마법사 고양이 미스토펠리스의 동반 성장 서사를 꽤 감동적으로 쌓아올리면서도 원작의 기조를 거의 흩트리지 않는 놀라운 변화를 선보였다. 하지만 리 홀의 노력은 아쉽게도 춤추는 시궁쥐, 바퀴벌레 그리고 CG 쫄쫄이들과 함께 런던의 시궁창으로 흘러가 버렸다. 리 홀이 채운 성장 서사를 통해 역설적으로는 뚜렷한 이야기 구조가 없는 뮤지컬 <캣츠>의 느슨함이 오히려 이 뮤지컬의 불가사의한 매력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셰익스피어의 나라에서 서사가 없다시피 한 이 고양이 컨셉 뮤지컬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시인 엘리엇의 미발표 시에서 그리자벨라의 서사를 읽고 거기에 영감을 받아 고양이에 관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덕분이다. 


 

원작 시집에서는 ‘The Song of the Jellicles’ 단 한 편에서만 젤리클 볼과 젤리클 고양이, 젤리클 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사실 뮤지컬에서 풀어놓은 이 수많은 ‘젤리클’이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난 후 젤리클 고양이와 다른 고양이들의 차이가 뭔지, 오로지 런던 어느 뒷골목에만 젤리클 고양이들이 사는지, 고양이들의 일 년은 사실 4개월 주기로 찾아오는 건 아닌지 등의 수많은 의문들에 딱히 속 시원한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은 사실상 고양이들을 가득 만나는 것과 재미있는 노랫말의 아름다운 곡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 만족도에는 엄청난 스케일의 무대 미술과 소품들도 큰 몫을 한다. 실제로 ‘젤리클’이라는 단어는 원작자 엘리엇의 조카가 어렸을 때 ‘Dear little’을 잘 발음하지 못하고 ‘Jellicle’이라고 발음했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 애당초 웃자고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젤리클 고양이와 다른 고양이들의 차이는 뭘까? 젤리클 달이 뜨는 날 열리는 축제 젤리클 볼을 아는 고양이와 모르는 고양이로 나뉜다. 그들은 거리에서 살거나 자유로운 외출냥이며 때로는 외출을 꺼리지만 원할 때는 얼마든지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고양이들이다. 쓰고 보니 이는 ‘모든’ 고양이의 특성이 아닌가. 하긴 고양이 집사였던 엘리엇이 감히 고양이들의 부류를 나눴을 리가 없다. 결국 젤리클 고양이들은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다. 인간 눈에는 한없이 제멋대로인 듯이 보이는 고양이지만 그들의 아홉 번의 생이 다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들과 인간과의 유일한 공통점이 아닐까.
 

뮤지컬에는 시집에 수록된 시 외에도 미수록 시 몇 편이 더 인용되었고 특히나 가장 유명한 노래인 ‘Memory’는 엘리엇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쓴 시집 『The Dry Salvages』에서 가져왔다. 엘리엇은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시집 『황무지』를,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 시집을 통해 피폐해진 인간 사회의 회복을 도모했다. 뮤지컬 <캣츠>는 영국이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과 대량 해고 사태의 와중이었던 ‘빌리 엘리어트’의 시대에 개막해 아직까지도 영국인들을 달래주고 있다. 오래전 그토록 염세적이었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애정을 담아 ‘주머니쥐 영감’이라 불렀던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시구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코로나19에 지칠 대로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극장 고양이 거스에게 물어보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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