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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블러디 사일런스: 류진 더 뱀파이어 헌터> 임진섭, 함께 행복해지는 법 [No.204]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20-09-21 3,798

<블러디 사일런스: 류진 더 뱀파이어 헌터> 임진섭 
함께 행복해지는 법




처음으로 본 뮤지컬은 <노트르담 드 파리>였어요. 한창 가수를 준비하다가 막 연기에 재미를 붙인 시점이었죠. 전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버지 뜻에 따라 졸업하면 은행 취업이 보장되는 전문대에 진학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자퇴서를 냈죠. 6개월간 부모님과 연락도 끊고 친구 집에 얹혀살며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결국 잘 안 풀렸지만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며 연기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게 된 거예요. 우와! 거기에 제가 찾던 길이 있더라고요. 노래를 하면서 연기도 할 수 있다니,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뮤지컬 오디션을 봐서 2017년 <꽃보다 남자> 조연으로 데뷔했어요. 이어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 순호 역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당시 오디션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불렀는데 감사하게도 음악감독님과 연출님 반응이 좋았어요. 제가 준비해 간 역할인 주화와 동현 대신 순호 역 대사를 주시면서 잠깐 시간을 줄 테니 연습해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한 순호 역을 맡게 됐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언제까지나 제 마음속에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거예요.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까지 모두 사이가 좋아서 더없이 행복하게 공연했거든요. 이렇게 따뜻한 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부모님이 제 공연을 보러 온 것도 이때가 처음이에요. 무뚝뚝한 아버지가 공연을 보면서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완전히 팔불출이 되셔서 친구들 앞에서 아들 자랑하기 바쁘세요. 

여담이지만, 제 군 생활에도 이 작품이 영향을 미쳤어요. 장군님 사모님이 뮤지컬을 좋아하셔서 절 아셨던 거예요. 장군님도 키 크고 목청 좋은 저를 마음에 들어하셔서, 장군님을 모시는 1호차 운전병이 되었죠. (웃음) 이후 군대에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일찍 제대하고 만난 작품이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에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현 역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여전히 매회 새롭고 설레요. 가끔 동료 배우들이 재밌는 애드리브를 던질 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하고요. 하나하나 배워가는 기분이에요. 

순호와 수현은 모두 제 자신처럼 느껴질 만큼 잘 맞았던, 고마운 캐릭터예요. 하지만 체격이 큰 제가 순호와 수현처럼 유약한 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긴 분들이 많았죠. 저도 남들보다 큰 제가 싫었어요. 중소극장 무대에 서면 저만 너무 튀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몸을 굽히고 다녔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요. 오히려 큰 체격을 저만의 차별성과 반전 매력을 만들어내는 무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음, 근데 지금 <블러디 사일런스> 팀에서 양승리 형이 저보다 키가 크거든요, 솔직히 기분 좋아요. 아싸, 드디어 나도 누구보다 작다는 얘길 듣는구나! (웃음) 

<블러디 사일런스>는 캐스팅된 배우들 이름을 듣자마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함께 연기해 보고 싶었던 배우들이 많거든요. 연습실에서 형과 누나 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오늘은 또 어떤 걸 보여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습실에 가죠. 작품이 B급 감성의 코미디라서 저희끼리 엄청 웃으며 연습했는데, 부디 관객들도 실컷 웃다 가시면 좋겠어요. 심각한 공연을 보러 가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또 몰입하고 있는 주변 관객에게 피해를 줄까봐 긴장한 채 공연을 보게 되잖아요. <블러디 사일런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다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제가 연기하는 준홍은 존재감 없는 고등학생에서 잘생긴 뱀파이어로 변하는 역할이에요. 제 입으로 잘생겼다고 말하려니 죄송한데 설정상 잘생겼어요. (웃음) 제 생각에는 뱀파이어가 되어 존재감이 생긴 준홍 안에도 여전히 약한 면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 그리고 남을 해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계속 사람을 피하는 거죠. 그렇게 자기 안에 사로잡혀 있던 준홍이 류진과 헌식을 만나 점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어울릴 수 있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록 음악도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기대돼요. 극 중 준홍이 ‘뱀파이어’라는 장대한 솔로곡을 부르는데,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음역대가 높아요. 여태껏 이렇게 고음을 소화해야 하는 노래를 부른 적이 없지만, 사실 저 고음도 자신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배우로서 제 기량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더 연기력을 쌓아서 성숙한 매력의 캐릭터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20대 초반에 데뷔하다 보니 그동안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 신입생 역할을 주로 맡았거든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다른 캐릭터인 석구도 하고 싶고, 아직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도 꼭 하고 싶어요. 꾸준히 스펙트럼을 늘려서 어떤 곳에 가든 동료 배우와 스태프에게 ‘저 친구는 믿을 만하다’는 얘기를 듣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아, 제가 주변 사람 얘기를 많이 했나요? 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주변을 더 챙기는 편이라 ‘일단 너부터 생각해야지’라는 충고를 듣기도 해요. 그런데 마침 오늘 아침에 본 영상에서 제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이 잘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말을 듣는데 내가 원하는 게 딱 이거구나 싶었어요. 저와 함께 있으면 웃음이 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래야 저도 행복하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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