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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어린이 공연의 세계① - <장수탕 선녀님> 원작과 똑같이, 때로는 다르게 [No.212]

글 |최영현 사진 |할리퀸크리에이션즈 2022-09-23 1,370

<장수탕 선녀님>
원작과 똑같이, 때로는 다르게

 

인기 그림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수탕 선녀님>은 오래된 동네 목욕탕에서 선녀님을 만나 신나는 하루를 보낸 덕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뮤지컬은 원작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무대 위에 충실히 반영하면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덧붙여 뮤지컬만의 매력을 살렸다.

 

 

#1. 장수탕 탈의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을 무대로 옮기면서 가장 공들인 것이 원작과 무대의 싱크로율이다. 백희나 작가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되도록 원작의 의도를 살린 무대를 구현하려 했다. 아이들에게는 그림책과 똑같은 모습의 무대를 만나는 것 역시 공연을 보는 재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관찰력이 무척 뛰어나서 어떤 게 그림책과 다른지 금방 찾아낸다. 그래서 무대 세트, 의상, 소품을 만들 때 원작과 싱크로율을 높이려고 더 노력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원작과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마치 그림책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원작 그림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할리퀸크리에이션즈 김영인 대표

 

 

#2. 냉탕놀이
<알사탕>과 <장수탕 선녀님>은 모두 백희나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연출 방향이 조금 달랐다. <알사탕>이 원작 속 장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출할까에 집중했다면, <장수탕 선녀님>은 장면과 장면 사이를 어떤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나갈지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갔다. 예를 들어 덕지와 선녀님이 친해지는 이야기와 신비로운 연못으로 가는 이야기를 한 번에 엮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이 덕지와 함께 날개옷을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로 풀어볼까 생각했고, 혼자 냉탕에서 장난감 배를 갖고 놀던 덕지가 배를 따라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원작에서 답을 찾았다. 원작에는 선녀님과 덕지가 냉탕에서 놀면서 친해지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냉탕에서 온갖 물놀이를 하며 친해진 덕지와 선녀님이 잠수 놀이를 통해 신비로운 연못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완성했다.
- 홍승희 연출가

 

 

#3. 신비로운 연못
선녀님이 목욕탕에 사는 이유를 원작에서는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딱 한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오랜 세월을 장수탕에서 홀로 지낸 선녀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그동안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와 장수탕에 살게 된 선녀님의 사연을 솔로곡에 담았다. 선녀님은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구시대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젊은 할머니로 그려보고 싶어서 음악, 조명, 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장면을 연출했다.
- 홍승희 연출가

 

선녀님은 우아한 어르신이었다가 금세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진다. 종잡을 수 없는 선녀님의 매력을 한 곡에 담고자 노력했다. 이 장면은 선녀님의 첫 등장 신이기도 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나이 든 어르신이 부를 것 같지 않은 선율과 리듬, 폭넓은 음역을 사용해 노래 솜씨를 뽐낼 수 있도록 했다. 선녀님 이미지에는 금관악기가 어울릴 것 같아서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가스펠 스타일로 꾸몄다.
- 조한나 작곡가

 

 

#감기
목욕탕에서 돌아온 덕지는 감기에 걸려 앓는다. 엄마는 덕지를 간호하며 덕지가 감기에 걸린 것이 자기 탓은 아닌지, 또 좋은 엄마란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 장면은 뮤지컬에만 있는 장면이다. 그림책이 한 시간 분량의 공연이 되려면 원작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당연히 엄마의 이야기가 1순위라고 생각했다. 백희나 작가가 덕지의 엄마는 덕지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면서도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엄마로 구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엄마는 아이가 아픈 밤에 어떤 마음일까 상상해 장면을 완성했다. 엄마를 비롯한 양육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담아낼지, 그 표현의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엄마의 노래가 끝나면, 선녀님의 ‘아픈 만큼 쑥 커라’라는 노래로 이어진다. 매일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번 생은 누구나 처음인 어른들에게 선녀님의 위로가 닿길 바라며 장면을 배치했다.
- 정준 작가

 

 

좋은 콘텐츠로 어린이 뮤지컬에 도전하다

할리퀸크리에이션즈 김영인 대표


할리퀸크리에이션즈는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알사탕』 『장수탕 선녀님』을 어린이 뮤지컬로 제작해 호평받았다. 하지만 할리퀸크리에이션즈가 처음부터 어린이 뮤지컬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김영인 대표는 그저 좋은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회사 설립 전까지 어린이 뮤지컬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어린이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게 됐나?
할리퀸크리에이션즈는 공연계에서 제작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목표 아래 모여 2018년에 설립한 회사다. 처음부터 어린이 뮤지컬을 제작하겠다는 목표로 출발한 건 아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던 대표가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앤서니 브라운 책으로 뮤지컬을 제작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어린이 공연에 관심을 갖게됐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뮤지컬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때 만든 작품이 <신비한 놀이터>다. 원작자와 협의해 그림책 속 캐릭터와 에피소드 일부를 발췌해 이야기를 창작했다. 처음 제작하는 어린이 뮤지컬이라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어떤 점을 많이 배웠나? 기존 공연 제작과 어린이 공연 제작에 차이가 컸나?
아이들은 공연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공연을 보면서 반응하는 포인트가 어른들과 다르다. 극적 상황과 현실을 구분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한다. 그러다 보니 대사나 동작에 무척 신경을 썼다. 극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했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삼가려고 애썼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창작자들과 끊임없이 의논하며 적절한 표현을 찾았고, 공연 후에는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극을 수정했다. 극장 하우스 팀에도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뛰지 마세요”가 아니라 “천천히 걸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점이 어린이 뮤지컬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연을 제작하면서 어린이 공연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나?
어른이기에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알사탕>은 뮤지컬이지만 꽤 연극적인 작품이라서 아이들이 어렵게 느끼진 않을지 개막 전까지 걱정했다. 그런데 첫 공연이 끝나고 보니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해력이 높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포용력도 컸다. 그때부터 더 아이들을 믿고 작품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지금까지 선보인 어린이 뮤지컬 네 편 중 세 편이 그림책을 바탕으로 한다. 그림책을 뮤지컬로 만드는 이유가 있나?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찾은 그림책들이 이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이지, 일부러 그림책을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고집한 건 아니다. <신비한 놀이터> 이후에 라이선스 뮤지컬 <아빠 사랑해요!>를 공연하고, 후속작을 찾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발견하게 됐다. 우리가 찾던 좋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책에 있어서, 무작정 출판사 대표 이메일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림책을 뮤지컬로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우리의 작업은 한 장의 그림 속에, 혹은 그림과 그림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림책은 그림 한 장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림과 그림 사이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그림책은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기 때문에 극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알사탕』은 “나 혼자 논다.”라는 짧은 문장과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창작자들과 함께 그 그림 한 장을 어떻게 노래가 있는 무대 장면으로 완성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행히 백희나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과 우리의 뮤지컬이 서로 다른 예술 영역임을 인정해 주고, 각색할 때 창작의 여지를 많이 열어주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원작에 없는 장면 중에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연출이 많았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기본적으로 회의를 많이 한다. 원작자, 창작자, 심지어 우리 회사 직원들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별의별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어린이 공연을 제작할 때 좋은 점은 상황을 과장하는 장면에서는 마음껏 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지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선입견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큰 구슬로 구슬치기하고, 강아지가 탭댄스를 추고, 난데없이 요구르트들이 등장해 춤추며 파티를 해도 괜찮다. 처음에는 이렇게 과해도 괜찮을까 싶어서 주저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과감해졌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는 꽤 좋았는데 막상 공연에 접목했을 때 어울리지 않는 것도 많았다. 지금 완성된 공연은 숱한 아이디어 속에 살아남은 것들이다.

 

창작 과정에서 원작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나?
아무리 우리에게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백희나 작가가 구현한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림책 속 세계를 가장 잘 아는 원작자에게 의견을 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본 작업을 할 때 사소한 것이라도 상의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뜻밖에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알사탕>에서는 백희나 작가의 메모로 노래 가사를 만들었고, <장수탕 선녀님>은 작가의 경험담에서 무대 연출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원작자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극이 다채로워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이 소통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뮤지컬 창작자들과도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가 먼저 원작을 선정한 후 창작자를 섭외하기 때문에 창작자와 협업하듯 작업하는 편이다. 우리가 원하는 제작 방향을 제시하면 창작자들이 그 의견을 반영해 최선의 결과물을 찾아낸다.

 

객석으로 들어가기 전 관객들이 거쳐가는 공간에도 여러모로 신경을 쓴 게 느껴졌다. 로비에 아기자기한 공간을 꾸며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에게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봤다. 그 아이들의 인생에 대단한 이벤트는 아닐지 몰라도 생애 첫 경험은 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 공연 시간은 한 시간이라 해도 극장에 오가는 시간이나 공연 전 대기 시간까지 따지면 공연 보는 데 거의 하루를 소비한다. 그 시간을 더 알차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로비 공간을 꾸몄다. 사진도 찍고, 책도 읽고,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우선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좋겠다 싶어서 전용관을 운영하게 됐다.

 

어린이 뮤지컬 제작자로서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관객들이 우리 공연을 재미있게 봐줄 때가 가장 뿌듯하다. 공연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어른들도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넣기도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어린이날이나 명절처럼 특별한 날에 삼대가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함께 즐길 만한 공연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공연을 즐기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좋은 어린이 공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학교 공부도 온라인으로 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기회는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에게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장에 와서 배우와 눈을 마주치며 공연을 보고,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경험이 정서적으로 많은 자극을 주기 때문에 더 좋은 공연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올해 하반기에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다른 작가들의 그림책을 뮤지컬화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아마 내년에 개발을 시작할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콘텐츠를 확장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어린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다. 공연을 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할리퀸크리에이션즈를 처음 만들었던 목표가 ‘좋은 공연’이었으니 어린이 공연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좋은 공연도 선보이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2호 2022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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