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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ENSEMBLE] <마틸다> 김시영, 무대는 나의 꿈 [No.217]

글 |최영현 사진 |이배희 2022-10-18 700

<마틸다> 김시영
무대는 나의 꿈

 

뮤지컬배우 김시영에게 뮤지컬은 “안 하면 안 되는 것,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굉장히 비장하게 말하는 그에게 물었다. 뮤지컬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런데 한 번도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그에게 무대에 서는 일은 숨 쉬는 것만큼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돌아온 무대

 

오늘부터 <마틸다> 런스루 연습을 시작한다고 들었어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분이 어때요?
너무 설레요. 초연 때는 <마틸다>가 아시아에서 처음 공연되는 거라 작품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서 걱정됐어요. 어떻게 무대가 완성될지 상상이 안 됐거든요. 막상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니까 정말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더라고요. 이제는 <마틸다>가 어떤 작품인지 잘 아니까 어서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요. 새로운 마틸다들과 만들어내는 무대는 어떨까 기대도 되고요. 

 

초연과 재연의 역할에 변화가 있나요?
맡은 역할은 초연 때와 똑같아요. 처음 등장하는 역할은 우선 오프닝곡인 ‘미라클Miracle’ 마지막에 나오는 부모 중 한 명이에요. 나름 부잣집 아빠입니다. (웃음) 그리고 ‘스쿨 송School Song’에서 학교 교문을 타고 오르면서 춤추는 역할, 웜우드 부인이 ‘라우드Loud’를 부를 때 등장하는 댄서, 그리고 ‘웬 아이 그로우 업When I Grow Up’에서 그네를 타는 성인 배우로 등장해요. 그 밖에도 장면마다 여러 역할을 맡고 있죠. 

 

<마틸다>와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반복해서 출연한 작품이 없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때 제 목표는 대한민국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에 다 출연해 보는 거였어요. 한 작품을 계속하면 그 작품에 대한 전문성이 생기지만 새로운 무대를 경험할 기회는 줄어들잖아요. 저는 되도록 여러 작품에 참여해서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이전에 했던 작품이라도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출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되도록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려고 해요. 하지만 말씀하신 <마틸다>나 <시카고>는 예외예요. 두 작품의 안무 스타일을 너무 좋아해서 기회가 되는 한 계속 참여하고 싶어요. 

 

<마틸다> 안무는 어떤 점이 매력적인데요?
춤으로 표현하는 감정이 정말 다양해요. ‘이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게다가 에너지도 엄청나요. 안무 감독님이 늘 강조하는 점도 에너지를 잃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만큼 에너지 있게 춤추면서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어서 <마틸다>는 무조건 다시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스쿨 송’ 장면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 장면에서 강동주 형님과 짝을 이뤄서 춤을 추는데, 누구도 저와 동주 형님처럼 호흡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저희의 호흡은 정말 환상적이에요. (웃음) ‘스쿨 송’ 때문에라도 <마틸다>는 꼭 다시 하고 싶었어요.  

 

재연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느끼는 점이 있나요?
처음 참여하는 작품은 다른 배우들과 친해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이번 <마틸다>에는 초연에 참여했던 성인 배우들이 많이 돌아와서 빠르게 팀워크를 맞출 수 있었어요. 저는 앙상블의 팀워크가 좋아야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연습 초반부터 빠르게 손발을 맞출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확실히 한 번 해본 작품이어서 무대나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제가 맡은 걸 소화하기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동료들의 연기에 리액션을 할 만큼 여유가 생겼어요. 춤출 때도 마찬가지예요. 여유가 생기니까 동작 하나하나를 신경 쓸 수 있어서 더 정확하게 안무를 소화할 수 있게 됐어요.

 

<마틸다>는 아역 배우가 많이 등장해요. 아역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장면이 많은데 어려움은 없나요?
아역 배우들이 워낙 잘해서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 대신 부담스러운 건 있죠. 아역 배우들이 성인 배우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내거든요. 성인 배우들이 장면 연습을 하면 쪼르르 앉아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잖아요. 성인 배우들끼리 연습할 땐 컨디션에 따라 연습을 살살할 수도 있는데 <마틸다>에서는 그게 절대 불가능해요. 늘 선생님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만, 연습이 끝나면 아이들이 “선생님 멋있어요!” 이러니까 열심히 안 할 수 없어요. (웃음)

 

아역 배우들 덕분에 실력이 더 늘겠네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배우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정말 투명한 유리 같아요. 모든 걸 그대로 통과시켜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성인 배우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다 보니까 연기할 때 계산하는 게 많아요. 아이들은 그런 게 없어요. 거짓 없이 진심으로 연기하니까 “감사합니다”라는 흔한 말에도 감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우로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점은 뭐예요? 
워낙 에너지 소모가 큰 작품이라 체력 관리에 신경 쓰고 있어요. 작품마다 안무 스타일이 다 다르잖아요. 달리기로 예를 들면 마라톤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경보 같은 작품도 있고요. <마틸다>는 매 장면이 100미터 전력 질주예요.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죠. 평소에 체력 관리가 안 되면 버텨낼 수 없어요. 저는 <마틸다> 초연 때 틈틈이 운동하는 습관이 생긴 덕분에 체력이 좋아졌어요. 다른 작품을 할 때도 <마틸다> 때처럼 운동했더니 이제는 어디 가서 체력으로는 빠지지 않는 배우가 됐죠. (웃음)

 


오래도록 무대 위에

 

올해로 데뷔 10주년이라고 들었어요. 스스로 실감하나요?
2012년 <영웅>으로 데뷔했으니까 딱 10년이네요. 『더뮤지컬』과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10주년이라는 게 실감 나더라고요. 예전에 앙상블 배우 열두 명이 『더뮤지컬』의 표지를 장식한 적이 있잖아요? 그때 그 열두 명 안에 들지 못해서 엄청 아쉬웠는데 오늘 단독 인터뷰로 한을 푸네요. (웃음) 선배들이 늘 그랬거든요. 10년만 버티면 뭐가 돼도 된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찬찬히 돌아보니 뮤지컬배우로 10년을 헛살진 않았구나 싶어요. 돌아보면 힘든 일도 있었지만, 오늘처럼 즐거운 일도 생기니까 만족하며 살 수 있죠.

 

중학교 때는 스포츠 에어로빅 선수로 활동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뮤지컬배우를 꿈꾸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춤이 너무 좋아서 초등학생 때도 밤새 춤을 췄어요. 어머니가 아예 전문적으로 춤을 배워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어머니가 아는 전문적인 춤이 에어로빅밖에 없었던 거죠. (웃음) 어린 마음에 선수들이 멋있어서 스포츠 에어로빅을 시작했지만 워낙 힘든 운동이라 그만뒀어요. 고등학생 때는 잠깐 방송 백업 댄서로 활동한 적도 있어요. 뮤지컬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어요. 학교는 서울예대로 정했는데 어느 과를 가야 할지 몰라서 찾아보니까 연기, 노래, 춤 다 배울 수 있는 뮤지컬 전공이 있더라고요. 뮤지컬이 뭔지 몰라도 이걸 배우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울예대 연기과 뮤지컬 전공에 지원했죠. 

 

대학교에서 뮤지컬을 배우고 난 후에 뮤지컬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거예요?
정신없이 1학년을 보내고 군대에 다녀왔어요. 서울예대가 3년제 학교라 제대 후에 학생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딱 2년밖에 없더라고요. 2년 동안 배운 걸로 평생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어요. 이왕 뮤지컬을 시작했으니 뮤지컬로 끝장을 봐야겠더라고요.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1년 동안 뮤지컬 무대 크루로 일하면서 사회 경험을 쌓았어요. 프로들의 무대를 보면서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죠. 그때부터 다른 생각은 안 하고 뮤지컬만 보고 달렸어요.

 

그렇게 2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데뷔했어요. 처음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 어땠는지 기억나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신선호 안무 감독님이 스트릿 댄스 강의를 하셨어요. 졸업할 때쯤 감독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크루즈에서 뮤지컬 갈라쇼를 하는데 해 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공연 기간이 석 달 정도였어요. 갈라쇼니까 여러 뮤지컬을 접할 수 있겠다 싶어서 경험 삼아 참여했어요. 그사이에도 쉬지 않고 오디션을 봤고요. 하루는 한국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는데 문자가 오더라고요. <영웅> 오디션 합격 문자였죠. 솔직히 그렇게 빨리 오디션에 합격할 줄은 몰랐어요. 성공한 배우들 얘기를 들어보면 오디션에 수십 번씩 떨어졌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합격이라니! 말도 못 할 정도로 좋았죠. 게다가 타이밍도 좋게 크루즈 갈라쇼 기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영웅>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중단된 경우 빼고는 한 번도 뮤지컬 무대를 떠난 적이 없어요.

 

코로나19로 많은 배우가 어려움을 겪었죠. 시영 씨는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어요?
처음으로 뮤지컬배우로 사는 것에 회의가 들었어요. 코로나19로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는데,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언제 다시 공연이 재개될지 모르니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겨우 시간이 맞다 싶으면 나이 제한에 걸리기 일쑤였어요. 진지하게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죠. 그런데 도저히 무대를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함께했던 선배, 동기 배우들이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으로 무대를 떠날 때마다 속상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제가 무대를 떠나야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상황이 되니까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저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 다 그랬으니까 버틸 수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마음을 추슬렀죠.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뮤지컬배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뭐예요?
한 번도 뮤지컬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반대로 많이 생각했어요. ‘배우 말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뮤지컬배우로 살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어요. 소소하게 좌절할 때도 많고요. 지금 <마틸다>를 하면서도 그래요. 저는 대사 한 마디도 엄청 떨면서 하는데 마틸다 아역 배우들이 엄청난 양의 독백을 해내는 걸 보면 10년을 허투루 했나 싶죠. (웃음) 저는 뮤지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능력이 되는 한 오래오래 무대에 서는 게 제 꿈이에요. 10년 뒤에 제가 지금처럼 춤출 수 없다고 해도 괜찮아요. 어떤 역할이든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7호 2022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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