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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바람의 나라-무휼> 고영빈·지오 [NO.128]

글 |나윤정 사진 |김수홍 스타일리스트 | 정기빈 | 헤어·메이크업 | 이창은(라메종0809) 2014-06-09 6,109
지금, 이 바람의 방향



<바람의 나라>의 무휼과 호동. 이들은 왕과 왕자라는 무거운 직위를 내려놓으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끈끈한 연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일까? 무휼과 호동으로 한 무대에 오르게 된 고영빈과 지오는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아 보였다. 물론 여심을 흔드는 멋진 외모도 한몫을 했지만, 무대를 향한 진득함이 더욱 그러했다. 지금 이 무대에서 만나기까지, 배경과 이력이 다른 두 배우가 걸어온 길은 완연히 달랐다. 그럼에도 이제 이들은 같은 곳을 향해갈 것이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저 멀리 무대라는 한 방향으로 말이다. 


어제와 다른 시작  

고영빈은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요즘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스스로를 ‘거북이’라고 정의하듯 뒤도 보고 옆도 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덧 데뷔한 지 15여 년 차에 접어든 그는 맡고 싶은 역할 또한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찾는 특별함을 보였다.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돌리듯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작품들을 하나씩 시간을 두고 열심히 연구해서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제게 새로운 건 필요 없어요. 죽을 때까지 그것만 반복해도 좋아요.” 이런 그가 <바람의 나라>에 다시 오르게 됐으니, 기대가 되는 건 당연했다. 

“매번 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했는데…. 이렇게 한 작품을 계속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고마워요.” 5년 만에 무휼을 만나게 된 고영빈. 2006년 초연을 시작으로 어느덧 무휼과의 네 번째 만남이니 그 소회가 남다를 법도 하다. “첫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픔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었는데…그만큼 애쓰고 고생한 작품이 역사 속에 묻히지 않고 재연되니 참 좋죠. 심리적으로도 보상이 되는 것 같고.” 그는 <바람의 나라>에 대한 애틋한 정을 하나씩 풀어냈다. “<바람의 나라>는 다른 작품하고는 조금 다른 차원에 있어요. 스스로도 내가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이 공연하는 걸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내심 제가 빠지면 서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지금의 고영빈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좀 더 여유로워졌달까. 그 영향 때문인지 무휼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 이 인물을 연기했을 땐, 긴장하고 경직된 모습이 많이 있었어요. 지금은 인물의 깊이를 표현하는 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죠. 올해는 제 나이에 맞게끔 인물을 좀 더 편안하게 풀어낼 생각이에요.” 이지나 연출의 생각 또한 그와 일맥상통했단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안 해도 되는 시기가 있다. 네가 지금 그 시기인 것 같다. 연기를 하지 마라. 자연스레 배어날 수 있도록 해라.” 그는 세월이 흐른 만큼, 무휼의 아픔과 깊이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말했다. 

이번 무대에서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런 무휼이 기대되는 건, 실제로 만난 고영빈 그 자체가 이미 그런 느낌을 주고 있어서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최근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사실 저 요즘 정말 행복해요. 뭔가 주위의 기운들이 확 바뀌었다고 할까요? 제 안에 우울하고 힘들었던 것들이 한 번 싹 순환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발길 닿는 곳마다 고마워해요.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의욕이 넘쳤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행복하죠.” 

그의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잠시 동안의 휴식기를 지나면서부터다. “얼마 전, 4개월 정도 공연 공백기를 가졌어요. 쉬고 싶기도 했고. 마침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어요.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 라인업이 짜여 있어서, 그 이전에 준비 기간으로 삼으면 되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금까지 저의 모습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때 혹은 제 능력이 부족할 때, 그것을 채워 나가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커버하면서 적당히 했던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이제 그러면 안 되겠다! 반성과 고민을 많이 했죠.” 

지난겨울 그가 스스로를 돌아본 시간들은 이제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지 않을까? 밝고 분명한 그의 대답엔 강한 믿음이 실려 있었다. “분명히 좋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예전에 보지 못한 저의 모습이 꼭 나오기를 바라고, 또 그럴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어요. 올해 제가 무대 위에서 보여드릴 모습은 분명히 예전의 저와 다를 거란 자신감이 있어요.” 


내실을 다져가는 시간

<바람의 나라>는 지오의 세 번째 뮤지컬 무대다. 아직은 첫걸음 단계이지만, <광화문 연가> 이후 <서편제>, <바람의 나라>로 이어지는 지오의 이력은 꽤나 매력적이다. 이 세 작품들은 색깔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기에 참 좋은 조합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초심자에겐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지오는 그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족한 상태더라도 도전을 해야 성장할 수 있는데, 지레 겁먹고 좀 더 완벽해졌을 때를 기다리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부족해서 그것을 잡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도전은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오의 뮤지컬 데뷔는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그는 2012년 <광화문 연가> 오사카 공연에서 현우 역을 맡았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요계의 경우엔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성공을 가리는 요소들이 많아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요. 반면 뮤지컬은 파트별로 전문가들이 잘 이끌어주셔서, 정말 저 하나만 열심히 잘하면 되더라고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 때 계속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의 확신이 행동으로 이어진 데에는, <광화문 연가>에서 만난 이지나 연출의 도움도 컸다. “구세주가 나타난 거죠. 세상을 먼저 경험한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돈을 쫓지 마라! 아이돌은 생명력이 길지 않으니,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순간 그는 뮤지컬의 끝없는 생명력에 이끌렸다. “내 몸과 내 목이 도와주는 한 계속 무대에 설 수 있잖아요. 정식으로 뮤지컬에 도전해서, 정말 잘해내야겠다! 다짐했죠.” 
두 번째 무대 <서편제>에서 지오는 이 작품의 첫 아이돌 캐스팅으로 먼저 눈길을 모았다. 그만큼 부담감도 컸을 터, 그것을 털어내는 방법은 오직 성실한 연습뿐이었다. 그는 엠블랙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공연의 모든 연습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배우로서의 기본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동호가 판소리를 잘해야 하는 역할은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적인 부분에서 부담은 덜했어요. 오히려 록을 많이 선보이는데, 중학교 때 제가 밴드부 보컬을 했거든요.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아니깐 이질감보단 익숙함이 컸죠.” 그는 동호의 이야기에서 차차 자신의 경험도 발견했다. “저도 지방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과정들을 겪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 그것만 보고 달려 나가는 정신이 동호와 닮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바람의 나라>의 호동은 어떠할까? “그와는 많이 닮지 않았어요. 저는 이상향을 꿈꾸기보단 현실주의자거든요. 현실적으로 계산을 해서 안 될 것 같은 일이면 빨리 포기를 해요. 저희 멤버 중엔 딱 한 명, 천둥이가 이상향을 품고 있어요. 동생이지만 그런 천둥이를 보며 많이 배우는데, 호동도 그렇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에게 나올 수 없는 결단력과 정신력이 정말 대단해 보여요. 또 호동의 넘버들은 모두 순수해요. 어린 나이에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것들이 가사에 담겨 있다 보니 참 좋아요.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원작 만화와 과거 공연 영상들을 섭렵 중이라는 지오, 그는 지금 서서히 작품의 매력에 젖어가고 있었다. “만화를 볼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력들을 고스란히 무대에 옮겨놨더라고요. 무대, 조명, 세트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적인 작품이에요.” 작품의 매력을 하나씩 꼽던 지오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제가 잘해야죠!” 

이제 막 출발 선상에 선 배우인 만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도 많을 법하지만, 지오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듯하다. “어떤 역할을 희망하기보단, 제 내실을 다져나야 할 때에요. 뮤지컬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 보는 눈도 키우고, 실력을 많이 쌓아야죠.”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어떤 배역이든 이질감 없이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진심 어린 바람을 전했다. “아이돌로서의 인기를 뮤지컬 티켓파워로 삼는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하지만 전 뮤지컬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인정받고 그분들이 제 티켓 파워가 되길 바라요. 그래서 제가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믿고 보는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제 꿈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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