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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무대 위에 현실과 환상을 함께 요리한다, 연출가 김동연 [No.103]

글 |이민선 사진 |박진환 장소협찬 | Saint Jordi Flowers (02-2211-6300) 2012-04-30 4,905

 

창작의 결과물에서 창작자의 성향이 드러나는 건 당연하다. 떠들썩하지 않게 상대를 배려하며 이야기하는 김동연 연출가는 연습실에서도 그런 모습일 듯했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되, 유쾌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은 2012년에 쭉 볼 수 있다. 밝은 로맨틱 코미디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리의 연인>에 이어, 가을에는 따뜻하고 소박한 <심야식당>에서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올 상반기에 <심야식당> 리딩 공연에 이어 <커피프린스 1호점>과 <파리의 연인>까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연출가 중 한 명인 것 같은데요.

상반기에만 바쁘고 하반기에는 할 일이 없는 건 아닐지…. (웃음) 배우도 마찬가지지만 연출가도 스스로 일을 벌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누군가 저를 선택해서 일을 맡겨줘야만 활동이 가능하잖아요. 제가 운 좋게, 그리고 타이밍 좋게, 일을 맡게 된 거죠. 세 작품을 연이어 작업하는 가운데, 아이가 세상에 나왔어요. 올해는 여러 모로 출산을 많이 했네요.


세 작품 모두 뮤지컬이지만, 작품의 규모나 그 안에서 연출님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요.

<심야식당>은 정식 공연이 아니었어요. 작가·작곡가와 함께 준비해온 작품의 제작이 사정상 무산되었는데, 그냥 사장시키긴 아까워서 계속 개발을 진행했어요.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님이 공연권을 취득하는 데 도움을 주셨고, 두산아트센터에서 지원해준 덕에 리딩 공연을 올릴 수 있었죠.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연극열전의 홍기유 대표님이 제작 의사를 보이셔서, 올가을쯤 정식 무대에 오를 것 같아요. <심야식당>은 공연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창작자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 더 애착이 가요.

처음 <커피프린스 1호점>의 연출 의뢰를 받고선 조금 망설였어요. <김종욱 찾기>와 <파리의 연인>에 이어 로맨틱 코미디만 경험하면 스스로 관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예전부터 청춘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만 애 아빠가 됐고…(웃음), 마흔이 되기 전에 청춘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을 때, <커피프린스 1호점>의 대본을 보게 됐어요. 이 작품이 그저 로맨틱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청춘들의 발랄하고 때로는 변덕스러운 모습이 있어요. 그들이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고 꿈꾸기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출해보고 싶어졌죠.

<파리의 연인>은 외국인 연출가와 함께 창작 작업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아무래도 구스타보 자작은 외국 뮤지컬 제작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잖아요. 그가 운영하는 시스템과 갖고 있는 시각을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물론 그도 한국 제작 스타일에 적응해야 했죠. 라이선스 뮤지컬의 협력 연출이 아니라, 외국인 연출가와 함께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건 굉장히 다른 느낌이에요.

 

구스타보 자작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저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의 많은 뮤지컬 연출가들이 텍스트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자작은 작품 전체의 리듬과 템포를 중시해 여러 요소들을 배치해요. 여기엔 빅 댄스, 여기엔 드라마, 이런 식으로요. 텍스트가 조금 헐거운 부분을 음악 또는 춤으로 채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서, 훨씬 뮤지컬다운 작품이 되었다고 할까요. 텍스트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를 텍스트로만 채우지 않고 음악과 동선, 춤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분명하다는 거죠. 뮤지컬의 언어를 충분히 활용한 작품이 된 것 같아요.


<파리의 연인>에서 뮤지컬만의 매력을 볼 수 있겠네요.

뮤지컬에선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있을 거고요. 태영이라는 인물이 신데렐라가 돼서 상류 사회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기주가 태영의 세상으로 들어오는, 다른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만나는 컨셉이 뮤지컬에선 좀 더 명확하게 보일 것 같아요. 영화를 공부하는 태영을 보여줄 때, 드라마에서는 영화관에서 일하고 시나리오 쓰는 장면으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면, 뮤지컬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이 춤이나 노래로 표현되기도 하고 연출이 좀 더 화려해지죠.


학교에선 연기를 하셨다면서요? 연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학교 다닐 때 연기와 연출을 겸했는데, 연기를 더 많이 했어요. 고학년 때 두 번 연출을 맡았는데 다들 연출 전공인 줄 알더라고요. 그쪽으로 좀 더 소질이 있었나봐요.


배우로선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주로 주인공들이 저한테 죽었죠. (웃음) 인상이 강해서인가. 주인공은 안 시켜주더라고요. 늘 주인공과 대립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맥베스>의 맥더프처럼요.


연기와 연출, 각각 다른 재미가 있었을 텐데요.

왜, 배우가 못 돼서 연출을 하고, 연출을 못해서 평론을 한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서 있는 배우를 동경하고, 일종의 존경심 같은 걸 느껴요. 근데 제가 배우로 무대에 섰을 땐 제가 연기를 못해서인지 굉장히 괴로웠어요. 머릿속에는 굉장히 멋진 캐릭터가 있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몸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웃음) 진심으로 연기했는데도 관객들은 어색해하고…. 연출할 때 훨씬 편안했어요. 이 일에 더 몰두하고 집중하는 자신을 보면서, 연출이 더 잘 맞구나 생각했죠. 기본적인 건 학교에서 배웠지만 졸업한 후에 사회에서 경험하면서 익힌 게 더 많아요. <난타>와 <점프> 초반 작업 등 넌버벌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대학로 연극의 무대 감독과 조연출로 일했어요. 이은결 씨와 마술 콘서트의 컨셉을 잡고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도 오랫동안 함께했고요.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서 텍스트에서 조금 벗어난 퍼포먼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신 것도 큰 화제가 됐죠.

아, ‘영계백숙’이요. 의뢰를 받고 김태호 피디를 만나서 컨셉에 대해 설명을 듣고선, 뮤지컬 형식으로 영웅담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요. 기본적으로 코믹한 쇼를, 좀 더 과장해서 웅장하게 하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되게 즐겁게 작업했어요. 그런데 그 방송의 여파가 그렇게 클 줄이야. 제가 이 바닥에서 십년을 일했는데, 과거에 했던 모든 작업들이 <무한도전>의 ‘영계백숙’ 하나에 다 묻혔죠. (웃음) 어떤 작품의 김동연이 아니라, ‘영계백숙’의 김동연으로 알리는 건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연출가로 데뷔한 작품이 <환상동화>죠? 그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클 것 같아요.

<환상동화>는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에요. 제가 직접 쓰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빨리 데뷔하기도 어려웠겠죠. <환상동화> 역시 퍼포먼스 비중이 큰 연극이에요. 이전의 작업에서 익힌 것들이 많이 투영됐죠. 데뷔 작품이면서, 지금도 진행 중인 작품이에요. <환상동화>를 뮤지컬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연극이 광대들이 들려주는 동화 같았다면, 뮤지컬은 콘서트 형식으로 꾸며보려고요. 퍼포먼스를 훨씬 더 많이 가미해서요. 록이나 라틴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사랑과 예술, 전쟁이라는 테마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현재 정영 작가, 김경육 작곡가와 작업 중입니다. 언제 무대에 오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가능하겠지요.

 

가장 김동연다운 작품으로 <환상동화>를 꼽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환상동화>는 전쟁과 사랑, 예술이라는 세 가지 큰 테마를 갖고 있어요. 어려운 주제들이 섞여 있지만, 광대들이 흥겹게 풀어줘서 재밌게 볼 수 있어요. 관객들이 즐겁게 보고 나서 이런 주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본다면 좋죠. 전 현실과 환상은 아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도 꿈을 꾸면 환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죠.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서 객석 문을 열고 각박한 현실로 나가더라도 꿈을 꾸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린 전쟁 같은 현실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또 아름다운 것을 보기 원하잖아요. 현실에서도 환상을 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요.

 


작품 이력을 쌓아오면서 연출가라는 직업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은 게 있다면 뭔가요?

저도 아직은 명확히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데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더 대단한 것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 예술성이 뛰어난 이야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잘 다루지 못하고 그 이야기를 기술적으로 무대에 구현하지 못하면, 작업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무척 괴로워지죠. 연출가의 훌륭한 철학이라는 건, 작품을 위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평소에 지니고 있는 것이겠죠. 착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 하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스스로 정직하게 세상에 맞서야 하는 거고요. 보통 예술성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 현실 비판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저는 성격도 그렇지만, 진지하게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꿈꾸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요. 그런 이야기도 필요하잖아요. 제가 좀 더 나이를 먹고 또 다른 생각들이 쌓이면, 제 작품에서 그런 철학이 묻어나겠죠. 지금 어른들이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한 데서도 ‘저기에 인생이 담겨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처럼요. 일부러 어떤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뮤지컬 연출가로서 포부를 갖고 계시다면 어떤 것인가요?

전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배워가는 단계에 있어요. 현재 <김종욱 찾기>, <빨래>,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같은 작품들이 롱런하고 있잖아요. 이들을 이을 다음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선 작품들의 경우, 창작자들이 먼저 작품을 만든 후에 제작자의 도움을 받아 발전시켰잖아요. 제작자들이 기획한 여러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서 제각각의 성과를 냈지만, 그래도 창작자들이 먼저 합심해서 만든 작품들이 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창작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게도 그런 의무감이 있어요. 그래서 <심야식당>에도 참여했고, <환상동화>도 잘 만들어 보려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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