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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ARTIST] 스티브 발사모 -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그 이후, 혹은 그 이상 [No.68]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통역|소은정 2009-06-08 7,423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려진 위대한 작품에서 훌륭한 연기를 한 모든 배우의 이름이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의 끝까지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쟁쟁한 역대 캐스트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특별히 각인시킬 만한 확고한 개성과 매력, 그리고 OST 레코딩이나 영상물 발매라는 행운까지 따라줄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스티브 발사모는 단 1년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예수 역으로 출연했을 뿐이지만 그 모든 조건을 갖추었기에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역만리의 뮤지컬 팬들과 배우들에게까지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그것이 딥퍼플의 존 로드와 함께 콘서트를 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나는 이유이다. 언어의 세계 밖에서 그만큼 빛나는 사람을 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일이지만 나름의 소용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알려진 것과 달리 뮤지컬계를 떠나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온 샛별

테너 마리오 란자를 사랑하는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컨트리 가수 짐 리즈의 팬이었던 웨일즈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스티브 발사모는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밴드의 보컬을 맡으면서 전공까지 음악으로 바꿔버린 별난 이력의 소유자다. 심장이 시키는 바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 성격은 이후로도 그의 인생에서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된다.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던 발사모가 처음 배운 뮤지컬 넘버는 <레 미제라블>의 ‘브링 힘 홈(Bring him home)’이었다.  “<레 미제라블>의 열성 팬인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위해 그 곡을 불렀는데, 노래를 들으시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내 노래가 정말 아름답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주일 후 학교에서 <레 미제라블>의 오디션 소식을 들은 그는 새벽 3시에 출발하는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 9시에 역에 도착해서 첫 번째 지원자로 심사위원들 앞에 섰을 때 그가 부를 수 있는 뮤지컬 넘버는 ‘브링 힘 홈’과 ‘겟세마네’뿐이었다. “학교 공연에서 의 예수 역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꼭 커트 위큰슨 같다’고 말했을 때도 속으로 ‘그래, 그게 대체 누구야?’라고 생각할 만큼 이 분야에 대해 무지했다.” 그가 1991년 <레 미제라블> 투어에서 마리우스의 언더스터디와 앙상블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부풀린 교내 무대 경력으로 가득 채운 이력서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 <7인의 신부>가 너무 싫어서 테입을 숨겨버렸고, 장성한 후에도 손드하임의 <암살자들>과 헨리 굿맨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관객 중 한 사람에 불과했던 그는 <레 미제라블>을 통해 주 8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목을 보호하는 법과 극작법 및 연출법, 그리고 매니지먼트와 프로덕션과 연출 팀 간의 체계에 대해서 빠르게 배웠나갔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소득은 그에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오디션 기회를 가져다 줄 에이전시와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에이전트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고 묻기에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내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예수 역을 따내라고 했다. 그 후에 음반사와 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고.”


발사모의 에이전트는 <레 미제라블> 투어 때 그가 ‘겟세마네’를 부르는 것을 들었던 사람이었다. 3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린 엄청난 경쟁 속에서 발사모는 1년여간 총 14차에 걸친 오디션을 보았고 연출가 게일 에드워드는 그가 다음 오디션까지 수행해야 할 과제들을 끊임없이 내줬다. 앞이 보장되지 않은 길고 긴 여정 동안 그를 북돋아준 것은 위대한 뮤지션들과의 만남이었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그에게 ‘나를 위해서 ‘겟세마네’를 불러 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발사모는 사면에 걸린 낡은 거울을 통해서 그 거장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 하고, 전설적인 프로듀서 짐 스타이먼이 노래하는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오디션에서 그들은 주빈 발라라는 또 다른 지원자를 들여보냈다. 우리가 어울릴지, 연결고리가 형성될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상해보라. 나는 공연계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고, 그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지 모르는 상황을. 그렇게 노래를 시작하고 우리 두 사람의 음성이 처음으로 어우러졌는데 그 순간 전율을 느꼈다. ‘최후의 만찬’의 대결 장면을 연기하면서 유다 역의 그가 나를 움켜잡고 내가 그를 밀쳤을 때, 확신이 들었다.”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면서 발사모가 동료에게 ‘우리가 됐어’라고 말했을 때 주빈 발라는 미심쩍어했지만, 정말로 그날 오후 두 사람은 합격 전화를 받았다.
“첫날 주빈에게 네가 날 도와줘야만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때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를 연기하던 배우였다. 나는 밴드에서 노래하고 있었고.” 대단한 이력의 유다, 그리고 -스스로 표현대로라면-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토끼처럼’ 당황한 경험 없는 예수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주빈은 내가 만나본 가장 은혜롭고 관대한 사람이었고 대단한 배우이자 환상적인 뮤지션이었다. 그는 첫 리허설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한결같이 훌륭했고,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는 정말로 엄청난 경험이었고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다. 무엇보다 나 자신, 다른 사람, 그리고 상호작용에 대해서.”

 

 

 

심장이 지시한 두 번째 여정

를 끝낼 때, 그는 남아달라는 제안도, 다른 작품의 출연 제의도 모두 거절했다. “400번의 고난과 시련, 십자가에 못 박힘, 찬사와 비판 모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십자가를 이고 다니느라 나의 등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으니까.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처음 에이전시에게 말했던 대로 나의 꿈, 목표는 음반 계약을 맺고 내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결정했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나에게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모든 것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소니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재미있고, 발전적이었고, 좌절감도 안겨줬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좋았다. 음반사는 내가 2~3년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곡을 쓰게 해주었다. 타고나는 재능도 물론 있지만 곡을 쓰는 작업은 어쨌든 기술적인 일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록 뮤지션으로서 그는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은 록밴드 더 스토리즈(The Storys)의 프론트맨이다. 발사모는 건스 앤 로지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와 미트 로프의 앨범에 작곡가로도 참여했다.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 <뱅크 잡>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연주를 하고, 엔드크레딧에 그들의 음악이 사용된 흥미로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한 위대한 뮤지션의 전폭적인 지지이다. “굉장히 어렵게 두 번째 앨범을 내고 나서 딸아이와 집에 있을 때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엘튼 존에게 전화가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는 거였다. 그리고는 전화가 또 울렸다. 수화기 너머 한 남자가 “안녕, 스티브. 나는 엘튼이야”라고 해서 나는 “안녕, 엘튼. 난 스티브야”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지금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당신과 대화하느라 긴장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엘튼은 내 음반을 들었고 정말로 마음에 든다면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지, 아니면 내가 미치는 걸 보고 싶었던지 우리의 첫 싱글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무슨 일이 어떻게 되든 세계 최고의 작곡가 중 하나가 우리의 음악이 좋다고 말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성공이라고.” 비단 엘튼 존만은 아니다. 이언 길런과 로버트 플랜트를 숭배했던 소년은 어느덧 그들과 함께 노래하는 뮤지션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당신들에게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노래를 하는 것과 쓰는 일은 모두 계속 되고 있고,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다. 둘 중 어느 쪽으로 기억되길 바라냐고? 가수라고 답하겠다. 감성적으로 열려서 사람들과 연결되어 감동을 주고 싶을 때, 작곡보다는 노래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어떤 생성과 변형의 원리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먼 옛날 누군가가 내게 노래를 하게 했고, 그 노래를 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일들 말이다.”


발사모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이후 록밴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노트르담 드 파리> 웨스트엔드 공연에서 페뷔스 역으로, 에릭 울프슨의 에서 에드가 앨런 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는 올해 독일에서 공연을 시작해서 웨일즈로 넘어오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다. “뮤지컬계를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미술과 록 음악, 그리고 뮤지컬을 오가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적은 없다. 어디서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내가 있어야 할 곳처럼 느꼈고, 언제든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어떤 분야든 완전히 문을 닫아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60회 생일을 기념하는 BBC 공연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예수를 연기한 것은 10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는 여전히 놀라운 집중력과 감성으로 그 난해한 곡의 가치를 증명한다. 드라마적인 몰입의 과정 없이 그 정도로 집약적이고 폭발적인 곡을 부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일종의 근육 기억력과 같은 것이다. 어떤 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는 그 역할에 대한 표준 기대치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후에는 감정적으로 어느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렇게 장기간 한 역할로 공연을 하다보면 때로는 피곤하거나 감정몰입이 덜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내면 깊은 곳에 방아쇠처럼 계기가 되어주는 자극점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기억을 되돌렸을 때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자기최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지금도 ‘겟세마네’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설 때는 음악적으로나 연기적으로 전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서 곡에 대해 거듭 고민하곤 한다.”

런던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려야 했던 젊은 뮤지션 지망생이 3천 명의 경쟁자들을 이기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의 주역으로 캐스팅된 순간은 물론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그보다 더 놀랍고 매력적인 것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자신이 발굴해낸 사람들을 흥분시킬 인재라고 자랑스러워하고, 백전노장 에릭 울프슨이 ‘그로 인해 지금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맛보았다’고 고백하게 한 스티브 발사모의 재능, 그리고 그 재능에 짓눌리는 법 없이 자기 심장이 이끄는 대로 이어가고 있는 그의 여정이 아닐까 싶다. 그가 말했듯이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첫 만남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 자신의 바람처럼 다시 이곳에서의 인연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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