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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ketch] ‘명작 뮤지컬의 이해’ 강좌 2탄 <에비타> [NO.96]

정리 | 이민선 2011-09-14 5,029

박병성 편집장과 함께 한 명작 뮤지컬의 이해
성공적인 일대기 뮤지컬의 모범 사례 <에비타>

 

<에비타>는 다들 알다시피 에바 페론의 일생을 다룬 뮤지컬이다. 1978년에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해 1985년까지 2900회 공연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역시 롱런했다. 1996년에는 알란 파커 감독이 지휘하고, 마돈나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06년에 웨스트엔드에서 리바이벌됐고, 그해 국내 관객에게도 소개된 작품이다. 오랜 생명력을 가진 작품은 제각각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오는 연말 국내에서 재연될 <에비타>가 어떤 점에서 명작 뮤지컬이라 불릴 만한 강점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자.

 

 

 

일대기 뮤지컬의 지루함을 극복한 컨셉
굳이 분류하자면 <에비타>는 일대기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다. 창작뮤지컬인 <명성황후>나 <영웅>, <청년 장준하>, 라이선스 뮤지컬인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등은 한 인물의 삶을 소재로 한 뮤지컬들이다. 뮤지컬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는 극적 구성이 필요한데 인간의 삶이라는 게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삶에 맥락이 있겠나. 한 사람의 삶을 극으로 표현하려면 맥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팩트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에비타>가 성공적인 이유가 이번 명작 뮤지컬 강좌의 핵심이다.


<에비타> 대본의 강점은 일대기를 나열하되, 관객들이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는 데 있다. 에비타는 가난하게 태어나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다가 부와 명성을 좇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탱고 가수와 기자, 군인 등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여러 명의 남자들을 통해 그녀는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지금까지도 에비타에 대한 평가는 ‘악녀 vs 성녀’로 의견이 분분하다. 뮤지컬 <에비타>는 에비타에 대한 대립적인 시각 사이의 팽팽한 끈을 놓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가 악녀인지 성녀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시종일관 이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한 채 드라마가 진행되는데, 이런 컨셉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 해설자 체이다. 해설자의 등장은 <에비타>뿐만 아니라 일대기 뮤지컬에서 많이 사용되는 장치이다. 한 인물이 겪었던 수많은 사건 중 일부만을 선택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에피소드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해설자에게 맡기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비타와 체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표적인 혁명가인 체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일대기의 주요 사건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설명하는 동시에 비판적 시선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일대기 뮤지컬이 성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뮤지컬의 핵심은 판타지인데 일대기 뮤지컬은 역사적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사실주의가 불가능한 장르이다. 제4의 벽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극을 진행하는 것이 사실주의인데 뮤지컬은 일단 노래와 춤을 춘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그러지는 않지 않나. 뮤지컬은 대사와 노래, 춤을 섞어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 전달과 감정 표현을 하는 장르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벌레스크 같은 쇼가 뮤지컬의 한 줄기가 된 것을 생각해봤을 때, 뮤지컬은 대중들이 고민 없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물에 가깝다. 판타지에 가까운 뮤지컬에서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데서 오는 충돌을 몇몇 작품에서는 허구를 삽입함으로써 해소했다. <영웅>의 링링과 <명성황후>의 홍계훈 같은 캐릭터를 통해 로맨스 드라마를 넣은 것이 그런 예이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적 속성에 판타지를 부여하는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에비타> 역시 대중적 판타지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에비타>는 송 스루 형식으로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작품의 컨셉을 전달하는 잘 짜인 음악으로 드라마를 전개시킨다. 한 곡의 노래에서도 여러 명의 화자가 다른 박자와 스타일로 노래함으로써 드라마를 이어가는 데다가, 몇 가지 주요 멜로디가 23곡의 뮤지컬 넘버 전체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와 ‘성녀 vs 악녀’ 컨셉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드라마의 구조를 이끈 음악
몇몇 곡의 예를 살펴보면 더욱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에비타>는 한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굉장히 긴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긴 스토리를 음악에 압축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에바가 남자들을 바꿔가며 최고의 권력자 페론을 만나는 과정을 ‘굿나잇 땡큐(Goodnight and Thank You)’ 한 곡으로 보여준다. 이 곡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온 에바가 남자들을 갈아 치워가며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 장면이며,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체가 에바의 러버들에게 비아냥대면, 에바가 과거의 남자들을 거짓 위로하고, 에바에게 버림받은 남자들은 진정한 사랑은 없다고 합창한다. 에바에게 버림받은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즉 세 번째 부분의 합창이 화려해질수록 에바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체가 에바의 러버들에게 부르는 첫 부분의 멜로디가, 앞선 곡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겠어(Eva, Beware of the City)’에서 마갈디가 어린 에바를 유혹하고 고향에 남겨두려고 할 때 부르는 멜로디와 같다는 점이다. 에바가 남자들을 이용했지만, 그 이전에 에바가 이용당하는 대상이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페론 이전에 만났던 모든 남자들을 ‘굿나잇 땡큐’ 한 곡에 압축해 넣고, 페론을 유혹하는 장면에서는 특별히 다른 한 곡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I`d Be Surprisingly Good for You)’를 부른다. 은근하지만 강렬한 유혹이 느껴지는 노래로 페론을 사로잡고 난 후, 페론과 에바는 ‘굿나잇 땡큐’의 세 번째 부분 ‘영원한 사랑은 없다’와 같은 멜로디를 합창한다. 페론도 앞선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이다.


<에비타>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슬퍼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대통령직에 오른 후안 페론이 연설한 후, 에바가 그녀를 지지하는 수많은 민중들을 향해 부르는 곡이다. 자신을 낮추며 성스럽게 부르는 이 인상적인 뮤지컬 넘버의 주요 멜로디는 에바의 죽음을 알리는 레퀴엠이 끝난 후 체가 부르는 곡에서 이미 들려졌는데, 이 곡의 첫 가사는 제목과도 같은 ‘오! 멋진 쇼(Oh, What a Circus, Oh, What a Show)’이다. 에바의 일생을 향해 체가 ‘웬 생쇼냐’고 비아냥대는 멜로디가 성녀로서 에바의 이미지가 정점에 달한 순간에 반복되었다는 데서 이 작품이 에바에 대해 지니고 있는 비판적 시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계산된 음악적 구조 안에 드라마의 핵심을 녹여내었다니,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위에서 언급한 곡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에바를 향한 이중적인 뉘앙스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 순방에 나선 에바를 두고 ‘그녀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각료들은 ‘예스 예스(Yes, Yes)’라고 답하지만 그 말투는 의심에 차 있다. 체와 에바의 탱고는 체는 에바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에바는 그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일종의 논쟁이다. 에바가 성녀인지 악녀인지 작품의 전면에 뚜렷이 드러내지는 않으나, 체의 등장으로 미루어 비판적 평가에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에비타>에는 마돈나가 주연을 맡아 논란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겐 여전히 성녀로 기억되는 에바를 마돈나가 연기한다니 흥분할 만했다. 마돈나에 대한 기대와 저항이 분분했던 데서 영화의 캐스팅 역시 작품의 컨셉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대기 뮤지컬이 재미있고 특색 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에비타>는 체라는 해설자를 등장시켜서 주인공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유지하였고 음악이 이러한 드라마의 구조를 이끌어가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잘 만든 뮤지컬의 한 모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더뮤지컬> 명작 뮤지컬 강좌 시리즈

7월 10일 김문정 음악감독 <맘마미아>
7월 24일 이지나 연출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8월 21일 박병성 편집장 <에비타>
9월 4일 원종원 평론가 <오페라의 유령>
10월 박천휘 번역가 <스위니 토드>
11월 이지혜 작곡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2월 조용신 평론가 <컴퍼니>

문의 및 접수 : 02) 546-3614, tm@themusical.co.kr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6호 2011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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